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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자들의 노래


31회 — 품앗이 착복, 어른들도 다를 바 없다
보고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준호와 서연은 방과 후 도서관에서 매일 만났다. 각자 조사해온 것을 교환하고 구성을 잡았다. 박민준이 가끔 메시지로 도움을 줬다. 자신이 연구실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을 보내줬다.
그 자료 중 하나에서 준호가 멈췄다.
장영실 가마 사고 관련 실록 원문 번역본이었다.
거기서 특이한 것이 발견됐다. 가마 사고 이후 처벌 과정에서 목재 담당 장인의 이름이 기록에 나왔다가 이후 수정된 흔적이 있다는 분석이었다. 원본에는 목재 담당 장인의 이름이 있었는데 나중에 베껴 적은 판본에서는 그 이름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준호가 서연에게 말했다.
"이거 봐요. 목재 담당 장인 이름이 원본에 있었는데 후대에 지워진 흔적이 있대요."
서연이 읽었다.
"그러면 목재를 고른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증거가 있었는데 그걸 지웠다는 거네요."
"영실이 혼자 책임을 쓴 게 아니라는 증거가 있었는데 그 증거를 없앴다는 거죠."
둘이 한동안 그 자료를 들여다봤다.
서연이 말했다.
"이거랑 비슷한 일이 지금도 있어요."
"어떤 거요."
서연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우리 엄마 회사 이야기예요.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말하고 싶으면 해요."
서연이 말을 시작했다.
서연의 엄마는 중소기업 회계팀에서 일했다.
오 년 전부터 팀에서 연간 보고서 작업을 맡아왔다. 팀원 네 명이 나눠서 작업했는데 실제로는 서연 엄마와 다른 팀원 한 명이 대부분을 했다. 나머지 두 명은 이름만 올라갔다.
그 이름만 올라가는 두 명 중 하나가 팀장이었다.
팀장은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팀원들이 한 것을 자신의 성과로 보고서에 올렸다. 회사에 보고할 때도 자신이 주도한 것처럼 발표했다.
서연 엄마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팀 분위기가 나빠진다. 팀장한테 찍히면 업무가 힘들어진다. 어차피 팀 전체 성과로 연봉이 오르니까.
하지만 연봉은 균등하게 오르지 않았다.
팀장은 개인 성과로 성과급을 별도로 받았다. 서연 엄마가 한 일이 팀장의 개인 성과가 돼서 팀장의 지갑으로 들어갔다.
서연이 말했다.
"엄마가 술 한 잔 하고 나한테 그 얘기 했어요. 오 년이 됐는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고. 말하면 된다고 했더니 엄마가 웃으면서 네가 어른의 세계를 모른다고 했어요."
준호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말이 없었다.
"어른의 세계가 다를 줄 알았어요. 중학교 조별 과제 수준의 일이 회사에서도 일어난다는 게."
서연이 말했다.
"다르지 않아요. 규모만 달라요. 그리고 규모가 달라지면 피해도 커지고."
준호가 말했다.
"그게 품앗이 착복이잖아요. 같이 해야 할 일을 일부는 하지 않으면서 결과는 같이 가져가는 것."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장영실이 만든 것을 관직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과처럼 가져갔고, 정약용이 쓴 것을 누군가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가져가려 했고. 지금도 똑같아요."
준호가 노트에 적었다.
품앗이 착복의 구조: 일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공을 가져가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세종 연간에도, 정조 연간에도, 2024년 회사에서도.
왜 바뀌지 않는가: 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면 잃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분위기, 관계, 자리. 그 손해를 감수하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 모르겠다.
준호는 마지막 줄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보고서에 문제를 쓰는 건 할 수 있는데 해결책이 뭔지."
서연이 말했다.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어요. 완벽한 해결책은."
"그러면 보고서에 뭘 써요."
서연이 잠깐 생각했다.
"해결책이 없어도 기록할 수 있잖아요. 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기록하는 것. 그게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쓴 이유잖아요. 당장 바꿀 수 없어도, 있다는 것을 쓰는 것. 그게 첫 번째 단계니까."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는 것을 쓰는 것. 그게 첫 번째 단계.
정약용이 강진에서 한 것이 그것이었다. 당장 제도를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썼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썼다. 그것이 남았다.
준호는 보고서 구성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박민준에게 서연 엄마 이야기를 전했다.
익명으로. 구체적인 정보는 빼고.
박민준이 답했다.
그 구조 연구해봤어요. 학술 용어로는 무임승차 문제라고 해요. 집단 안에서 기여하지 않고 결과만 가져가는 사람.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예요. 말해도 바뀌지 않는 건 개인이 나쁜 게 아니라 말해봤자 손해를 보는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에요.
그 구조를 바꾸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기록과 연대. 혼자 말하면 고립되지만 여럿이 기록하고 같이 말하면 달라져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도 제자들과 함께였던 것처럼.
준호는 그 메시지를 서연에게 보여줬다.
서연이 말했다.
"기록과 연대."
"우리 보고서 제목이 될 것 같은데요."
서연이 웃었다.
"맞아요. 그걸로 해요."
보고서 제목이 정해졌다.
기록과 연대: 장영실에서 박민준까지, 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방법
준호가 제목을 보며 말했다.
"박민준 선배 이름 들어가도 된다고 했으니까."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마지막에 박민준까지라고 하면 거기서 끝나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거기서 끝나지 않으니까."
준호가 제목을 고쳤다.
기록과 연대: 장영실에서 지금까지, 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방법
서연이 읽었다.
"좋아요."
창밖에 저녁이 오고 있었다. 도서관 안이 따뜻했다. 두 사람의 노트와 태블릿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준호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혼자였다면 이 보고서를 쓸 수 없었다. 서연이 없었으면, 박민준이 없었으면, 그리고 수백 년 전 장영실과 정약용과 정약전이 없었으면.
기록과 연대.
그 두 가지가 있어서 지금 이 자리가 있었다.
32회 — 공정함이란 게 진짜 존재할까
보고서를 쓰면서 준호가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공정함이었다.
보고서의 한 챕터에서 세 시대의 공통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정함 문제가 나왔다. 장영실은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정약용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 서연 엄마는 공정한 성과 배분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공정함은 존재하는가.
준호는 그 질문에 답을 쓰려고 했는데 막혔다.
존재한다고 쓰면 거짓말 같았다.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건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쓰면 허무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서연에게 물었다.
"서연 씨는 공정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서연이 잠깐 생각했다.
"자연 상태에서는 없는 것 같아요. 자연은 원래 불공정해요.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지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져요."
"그러면 없는 거네요."
"근데 사람들이 만들려고 하는 거잖아요. 원래 없으니까 만들어야 하는 거고. 자연에 없다고 포기하면 영원히 없는 거예요."
준호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공정함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만들려는 노력이 멈추면 사라진다. 장영실의 시대에 세종이 만들려 했고, 정약용의 시대에 정조가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지자 공정함도 흔들렸다. 공정함은 한 번 만들면 유지되는 게 아니다. 계속 만들어야 한다.
서연이 그것을 읽었다.
"좋아요. 그 방향으로 써요."
준호가 계속 썼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공정함을 만들 수 있는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기록한다. 부당한 것이 있으면 기록한다. 기록이 없으면 없었던 것이 된다.
둘째,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이 된다. 말하는 것이 무서워도 말한다.
셋째, 연대한다. 혼자 말하면 고립되지만 함께 말하면 달라진다.
이 세 가지가 장영실 시대에도 부족했고 정약용 시대에도 부족했다. 지금도 부족하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장영실의 이름이 기록에서 지워졌지만 수백 년 후에 다시 불렸다. 정약용의 책이 탄압받았지만 지금 읽힌다.
공정함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방향이다. 그 방향으로 계속 걷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준호는 그것을 읽어보고 서연에게 보여줬다.
서연이 오래 읽었다.
"이거 좋아요. 이게 결론이에요."
준호가 말했다.
"확실해요?"
"확실해요. 이게 우리가 보고서 쓰면서 찾은 거잖아요."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잎이 떨어졌다가 다시 날았다.
공정함은 방향이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좋은 의미로.
박민준에게 보고서 초안 일부를 보냈다.
박민준이 읽고 답장을 보냈다.
강준호 학생, 정말 잘 썼어요. 특히 공정함은 방향이라는 부분이 좋아요. 교수님한테도 보여드렸는데 중학생이 쓴 거 맞냐고 하셨어요.
한 가지 덧붙이면, 장영실 기록에서 제가 최근 새로 찾은 것이 있어요. 세종실록에 가마 사고 이후 한 구절이 있는데 세종이 영실을 변호하려 했다는 암시가 있어요. 세종이 처벌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맥락이 보여요. 관심 있으면 자료 보내줄게요.
준호가 빠르게 답했다.
보내주세요.
자료가 왔다.
준호는 그것을 읽으며 오래 생각했다.
세종이 영실을 변호하려 했다. 최소화하려 했다. 하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권력이 있어도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종도 신하들의 압박을 완전히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타협했다.
하지만 타협 안에서도 최대한 보호하려 했다.
그게 세종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보고서에 추가했다.
장영실을 완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세종의 한계였다. 하지만 세종이 없었다면 장영실은 그 자리에 올라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완전한 보호는 없었지만 기회는 줬다.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역사가 달라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공정한 세상은 없다. 하지만 기회를 주는 사람이 있다. 기록해주는 사람이 있다. 연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역사를 조금씩 바꾼다.
서연이 그 부분을 읽고 말했다.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역사가 달라졌다. 이 문장이 제일 좋아요."
준호가 말했다.
"세종이 장영실에게 기회를 줬고, 정약전이 창대에게 기회를 줬어요. 그리고 박민준 선배가 우리에게 노트로 기회를 줬고."
서연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거네요."
준호가 서연을 봤다.
"누구에게요."
서연이 말했다.
"아직 모르는 누군가에게요. 나중에."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창밖을 봤다.
아직 모르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지금 어딘가 있을 것이었다. 잘하면 잘할수록 외로워지는 것이 왜인지 모르는 누군가. 조별 과제에서 혼자 다 하고 있는 누군가.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 언젠가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장영실과 정약용이 수백 년 후의 자신들에게 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었다.
33회 — 자유와 평등, 말뿐이었나
보고서 마감이 일주일 남았다.
준호와 서연은 도서관에서 마지막 챕터를 쓰고 있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주제였다. 조선시대에도 자유와 평등을 말한 사람들이 있었다. 정약용이 그랬고 정약전이 그랬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것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왜인가.
준호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멈췄다.
자유와 평등.
학교에서 배웠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부터 나오는 말이었다. 사회 시간에 배웠고 도덕 시간에 배웠다. 중요한 가치라고 배웠다.
그런데 실제 교실에서 자유와 평등이 있는가.
준호는 자신의 경험을 생각했다. 전교 1등이 왕따를 당한다. SNS에 익명으로 악성 댓글이 달린다. 조별 과제에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공을 뺏긴다.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그게 자유인가. 그게 평등인가.
말로는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았다.
왜인가.
준호는 노트에 썼다.
자유와 평등이 말로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다르다. 헌법에 적혀 있다고 해서 교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말로 선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다. 그리고 실천은 불편하다.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 그래서 기득권자들은 자유와 평등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방해한다.
서연이 그것을 읽으며 말했다.
"맞는 말인데 너무 어둡지 않아요?"
"어두운 게 사실이면 어떻게 해요."
"사실이라도 방향이 있어야 해요. 어두우면 끝이잖아요."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그러면 뭘 쓰죠."
서연이 말했다.
"정약용이 어떻게 했는지 써요. 자유와 평등이 말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더 진짜에 가깝게 만들려고 했잖아요. 목민심서가 그것이고. 완성되지 않아도, 현실이 되지 않아도, 방향을 가리켰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잖아요."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다시 썼다.
정약용은 자유와 평등이 말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유배를 당했고 신분제가 살아 있는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도 목민심서를 썼다.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썼다. 그것이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 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달이 바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손가락이 없으면 달을 찾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을 말하는 것이 그 손가락이다. 말뿐이어도 말해야 한다. 말이 쌓이면 언젠가 실천이 된다.
서연이 그것을 읽었다.
"이게 이 챕터의 결론이에요."
준호가 말했다.
"확실해요?"
"확실해요."
둘이 동시에 말해서 동시에 웃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준호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늦게 돌아온 날이면 항상 피곤한 얼굴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준호가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갔다가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 회사에서 공정하다고 느낀 적 있어요?"
아버지가 핸드폰에서 눈을 들었다. 아들이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의외였는지 잠깐 멈췄다.
"뜬금없이 왜."
"보고서 쓰고 있어서요. 공정함에 대해."
아버지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공정하다고 느낀 적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고. 가끔은 느껴. 근데 자주는 아니야."
"왜 자주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천장을 봤다.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 게 아니야. 잘 보이는 사람이 인정받아. 위에 잘 보이고 아래를 잘 다루는 사람. 실제로 일 잘하는 사람은 일만 더 많아지고."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노트를 꺼내 적었다.
아버지가 그것을 보며 말했다.
"적어?"
"네. 보고서에 쓸 거예요."
아버지가 잠깐 웃었다.
"뭐 하는 보고서야."
"장영실이랑 정약용이랑 지금 시대를 연결하는 거예요. 공통점이 뭔지."
아버지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공통점이 뭔데."
"잘하는 사람이 이용당하는 구조요. 그게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요."
아버지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맞는 말이네. 나도 그거 느끼거든."
"아버지도요?"
"어. 팀에서 내가 제일 많이 하는데 발표는 팀장이 해. 성과급은 팀장이 더 받고."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묘했다.
서연 엄마 이야기와 똑같았다. 아버지 이야기와 똑같았다. 자신과 서연이 수행평가에서 겪은 것과 똑같았다.
규모가 다를 뿐 구조가 같았다.
"아버지는 말 안 해요? 팀장한테."
아버지가 잠깐 침묵했다.
"말해봤어. 한 번."
"어떻게 됐어요."
"그 이후로 내 업무에서 핵심 프로젝트가 빠졌어. 대신 잡무가 늘었어."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노트에 적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근데 말 안 했으면 지금도 모른다는 게 아니라.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게 어른의 세계야."
준호는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실제로 그것을 겪었다. 준호가 이론으로 아는 것을 아버지는 몸으로 알았다.
"그래도 말한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가 준호를 봤다.
"그렇지. 잘못된 건 아니야. 손해를 봤지만 잘못된 건 아니야."
준호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손해를 봤지만 잘못된 건 아니야.
그것이 자유와 평등을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장영실이 관직을 잃었지만 잘못한 게 아니었다. 정약용이 유배를 갔지만 잘못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핵심 프로젝트를 빼앗겼지만 잘못한 게 아니었다.
손해와 잘못은 달랐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했다.
34회 — 우리가 먼저 바꿀 수 있을까
보고서 마감 사흘 전이었다.
준호와 서연이 도서관에서 마지막 편집을 하고 있었다. 박민준이 최종 검토를 해준다고 했다. 박민준에게 파일을 보냈다.
한 시간 후에 답장이 왔다.
읽었어요. 정말 잘 썼어요. 중학교 2학년이 쓴 수준이 아니에요. 교수님한테 보여드렸는데 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셨어요.
준호와 서연이 그 메시지를 동시에 읽었다.
서연이 말했다.
"학술지요?"
준호가 말했다.
"과장이겠죠."
박민준이 다시 보냈다.
과장 아니에요. 교수님이 우리 연구실 학술지에 실어도 되겠다고 하셨어요. 물론 학생 이름으로. 같이 보완해서 투고할 의향 있어요?
준호가 그 메시지를 읽으며 손이 멈췄다.
학술지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기록된다는 것은 알았다. 남는다는 것은 알았다.
서연을 봤다.
서연도 준호를 봤다.
"어떻게 생각해요?"
서연이 말했다.
"해봐요."
준호가 박민준에게 답했다.
하겠습니다. 서연이도 같이요.
박민준이 답했다.
좋아요. 강준호, 박서연. 이름 두 개 다 올릴게요.
준호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 올라간다.
장영실의 이름이 지워졌던 것처럼, 창대의 이름이 거의 기록되지 않을 뻔했던 것처럼. 이름이 지워지고 남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공부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이름이 어딘가에 남게 됐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뭔가 맞는 것 같았다.
그날 학교에서 최민재가 준호를 불렀다.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에서였다. 최민재가 혼자 있었다. 평소답지 않았다. 최민재는 항상 무리와 함께 있었다.
"야, 강준호."
"왜요."
"그 자유 탐구 보고서 쓴다고 했잖아. 어떻게 됐어?"
"거의 완성됐어요."
최민재가 잠깐 머뭇거렸다.
"나도 쓰고 싶은데."
준호가 최민재를 봤다.
"뭘 쓰고 싶어요?"
"모르겠어. 근데 너네 보고서 주제 보면서 나도 뭔가 하고 싶어졌어. 근데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최민재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발표 때 사실을 말했던 최민재, 청소 시간에 제대로 한 게 없다고 했던 최민재. 그 사람이 지금 이 말을 하고 있었다.
준호가 말했다.
"마감이 사흘 남았어요."
"알아."
"그러면 급하게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면 돼?"
준호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뭐가 하고 싶어요? 보고서 주제 말고. 평소에 하고 싶은 게."
최민재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게 보고서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어요. 하고 싶은 것에서 주제가 나와요."
최민재가 잠깐 생각했다.
"나 사실 게임 유튜브 하고 싶어. 예전부터."
"그거 하면 되잖아요."
"잘 안 돼. 시작했다가 구독자가 안 늘어서 그만뒀어."
준호가 말했다.
"몇 번 했어요?"
"열 번 정도."
"열 번 하고 안 됐다고 그만뒀으면 너무 빨리 그만둔 거 아니에요? 장영실이 물시계 열 번 만들고 안 된다고 그만뒀으면 자격루가 없었겠지."
최민재가 멈췄다.
"야, 그게 무슨 비교야."
"비교가 아니라 원리가 같다는 거예요. 멈추지 않으면 남는다고요."
최민재가 준호를 오래 봤다.
"너 왜 나한테 이런 말 해줘."
준호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하는 말이에요."
최민재가 웃었다.
이상한 웃음이었다. 비웃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웃는 것도 아닌. 뭔가 부끄러운 감정이 섞인 웃음이었다.
"알았어. 게임 유튜브로 보고서 써볼게."
준호가 말했다.
"그게 보고서가 돼요?"
"왜 안 돼. 유튜버도 기록하는 사람이잖아. 그것도 장영실이랑 연결할 수 있지 않아?"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연결할 수 있겠네요."
최민재가 돌아서며 말했다.
"이따 점심 같이 먹을래?"
준호가 멈췄다.
최민재가 준호에게 점심을 먹자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준호가 말했다.
"서연이도 같이 먹어요."
최민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최민재가 게임 유튜브 이야기를 했다.
처음 시작한 게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유명 유튜버 영상을 보고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폰으로 게임 화면을 찍고 편집했다.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수 10이었다. 그중 5는 자신이 봤다.
다음 영상을 올렸다. 조회수 8이었다.
열 번을 올렸다. 가장 높은 조회수가 23이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서연이 말했다.
"열 번은 너무 빨라요."
"그러니까. 준호도 그랬어."
서연이 말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 쓰는 데 몇 년 걸렸는지 알아요?"
"몇 년이나 걸렸어?"
"십 년 이상이요. 유배 가 있는 동안 내내 썼어요."
최민재가 멈췄다.
"십 년?"
"처음부터 완성본을 쓴 게 아니에요. 매일 조금씩 썼어요. 어부들한테 물어보고 기록하고 고치고. 그게 쌓여서 책이 된 거예요."
최민재가 밥을 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말했다.
"나는 열 번 하고 안 된다고 그만뒀는데."
"그래도 열 번 했잖아요. 안 한 사람보다는 열 번 앞선 거예요."
최민재가 준호를 봤다.
"야, 너 위로 잘한다."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에요."
최민재가 웃었다.
이번엔 아까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서연이 말했다.
"보고서에 그 경험 써요. 열 번 하고 그만뒀다가 다시 하기로 한 이야기. 그게 장영실이랑 정약전 이야기랑 연결돼요."
최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써볼게."
35회 — 작은 용기, 교실에서 시작되다
보고서 마감일이었다.
준호와 서연의 보고서가 제출됐다. 박민준이 최종 검토를 해줬다. 제목은 그대로였다.
기록과 연대: 장영실에서 지금까지, 잘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방법
최민재도 보고서를 제출했다.
제목은 이랬다.
열 번의 실패와 열한 번째: 정약전의 십 년과 나의 열 번
선생님이 제출된 보고서 목록을 훑다가 멈췄다.
방과 후에 준호와 서연을 불렀다.
"이 보고서, 네 것이에요?"
"네."
선생님이 한참 보고서를 봤다.
"박민준이라는 사람이 나와요. 누구예요?"
"졸업 선배예요. 도움을 받았어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배가 역사 전공한다고 했는데, 선배 연구실에서 이걸 학술지에 실을 가능성이 있대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잠깐 보고서를 더 읽다가 말했다.
"준호야."
"네."
"너 요즘 많이 달라졌어."
준호가 선생님을 봤다.
"무슨 뜻이에요."
"전에는 혼자만 잘하려고 했어. 도움 안 받으려 하고, 말도 안 하고. 근데 이 보고서는 달라. 여러 사람이 연결됐어. 서연이, 민준 선배, 심지어 최민재도 이야기에 들어왔잖아."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잠깐 생각했다.
달라졌나.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잘 몰랐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면 자신은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보고서 쓰면서 배운 것 같아요."
"뭘요."
"혼자 잘하면 지워질 수 있다는 거요. 장영실처럼. 근데 같이 기록하면 지워지지 않는다는 거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어른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중학교 2학년이 알았네."
서연이 말했다.
"장영실이랑 정약용이 가르쳐줬어요. 저희가 알아낸 게 아니라."
선생님이 웃었다.
그날 오후 교실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이준서가 준호에게 다가왔다.
"야, 강준호."
"왜요."
"있잖아, 나 수학 도저히 모르겠는데. 방과 후에 같이 봐줄 수 있어?"
준호가 이준서를 봤다.
이준서는 최민재 무리 중에서도 SNS 사건 이후 준호를 피하던 아이였다. 아마도 댓글을 단 사람을 알고 있거나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말해야 하는가. 그때 일을 꺼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게 나은가.
서연이 한 말이 떠올랐다. 기회를 주는 것.
이준서가 지금 기회를 요청하고 있었다. 준호에게. 예전 일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준호가 말했다.
"오늘은 보고서 마감이라 좀 그렇고, 내일 점심시간에 볼게요."
이준서가 눈을 약간 크게 떴다.
거절할 줄 알았던 것 같았다.
"진짜?"
"네."
이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말하려다가 멈췄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때 댓글 건, 미안해."
준호가 멈췄다.
이준서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직접 단 건 아닌데 알면서 말 안 했어. 그게 같이 한 거랑 비슷한 거잖아."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한참 이준서를 봤다.
최민재가 말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최민재가 이준서에게 뭔가 말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알겠어요. 내일 점심에 봐요."
이준서가 돌아갔다.
준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작은 용기였다. 이준서에게도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교실의 뭔가 하나를 바꿨다.
서연이 옆에서 봤는지 말했다.
"이준서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어."
"최민재가 뭔가 말한 것 같은데요."
"아마도요."
서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최민재가 달라졌어요."
준호가 말했다.
"조금이요."
"조금이면 충분해요. 처음엔 다 조금이잖아요."
그날 저녁 준호는 박민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님, 보고서 제출했어요. 선생님이 좋다고 하셨어요.
박민준이 빠르게 답했다.
잘됐네요. 나도 교수님한테 말씀드렸어요. 다음 달 학술지 마감이라 조금 보완하면 투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강준호 학생, 한 가지 말할게요. 오 년 전에 내가 그 노트를 도서관에 두고 나서 오랫동안 아무도 연락이 없었어요. 솔직히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네가 연락해줬잖아요.
그게 생각보다 많이 위로가 됐어요. 내가 거기 두고 온 것이 의미가 있었다는 게. 아무도 못 찾았으면 그냥 사라진 건데.
준호가 그 메시지를 읽으며 잠깐 멈췄다.
저도 위로받았어요. 선배님 노트가.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 년 전에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이상하게 덜 외로웠어요.
박민준이 답했다.
그게 기록이 하는 일이에요. 혼자라는 느낌을 덜어주는 것. 정약용이 그래서 썼고, 정약전이 그래서 썼을 거예요. 읽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려고.
준호는 그 메시지를 오래 읽었다.
읽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려고.
수백 년 전 강진의 초당에서 밤새 붓을 들던 정약용이 그것을 알았을까. 자신이 쓰는 것이 수백 년 후 서울의 중학생에게 닿을 것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썼다. 모르면서도 썼다.
그게 기록의 힘이었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오늘 밤은 별이 잘 보였다. 서울 하늘에서 보기 드문 밤이었다. 구름이 없었다. 북쪽 하늘에 유독 밝은 별 하나가 있었다.
준호는 오늘 처음으로 그 별이 북극성이라는 걸 알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다른 별들이 다 돌아가도 북극성만 제자리에 있었다.
장영실이 열두 살에 봤을 별이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
준호는 그 별을 한참 봤다.
별이 한 일이 뭔지 생각했다. 별은 그냥 있었다.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그 별을 보고 방향을 찾았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방향이 됐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것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직 많은 것을 몰랐다. 틀릴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멈추지 않는 것. 기록하는 것. 연대하는 것.
그 세 가지를 계속 하면 됐다.
그게 장영실이 가르쳐준 것이었고, 정약용이 가르쳐준 것이었고, 박민준 선배가 노트로 가르쳐준 것이었다.
준호는 노트를 꺼냈다.
오늘의 것을 적었다.
오늘 별을 봤다. 북극성. 움직이지 않는 별. 열두 살의 장영실도 봤을 별.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북극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멈추지 말자.
노트를 덮었다.
창밖의 북극성이 거기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36회 — 세 시대의 공통점을 발견하다
보고서가 제출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박민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강준호 학생, 교수님이 보고서 읽으시고 우리 연구실 세미나에 발표자로 초청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대학교 세미나예요.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되는데 관심 있으면 알려줘요.
준호는 그 메시지를 읽으며 한참 멈췄다.
대학교 세미나.
중학교 2학년이 대학교 세미나에서 발표를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대학생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서연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강준호: 박민준 선배한테서 연락 왔어요. 대학교 세미나 발표 초청이에요.
박서연: 진짜요? 언제요?
강준호: 다음 달이래요. 같이 할 거죠?
박서연: 당연하죠. 근데 무서운데요.
강준호: 나도요.
박서연: 무서워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준호는 그 답장을 읽으며 웃었다.
무서워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서연다운 말이었다.
박민준에게 답했다.
하겠습니다. 서연이도 같이요.
세미나 준비를 하면서 준호는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처음 쓸 때는 각각의 이야기가 따로따로였다. 장영실 이야기, 정약용 이야기, 박민준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 각각은 완결된 이야기였지만 연결이 느슨했다.
세미나에서는 그 연결을 더 단단하게 해야 했다.
준호는 노트를 꺼내 세 시대의 공통점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기존 질서가 위협받는다.
장영실이 뛰어났기 때문에 공조의 장인들이 위협받았다. 정약용이 뛰어났기 때문에 노론 권력자들이 위협받았다. 박민준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교실의 서열이 위협받았다. 준호가 전교 1등이기 때문에 교실에서 고립됐다.
뛰어남은 그 자체로 위협이었다. 왜냐면 뛰어남은 비교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비교가 생기면 덜 뛰어난 사람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은 공격이었다.
장영실에게는 가마 사고라는 덫이 놓였다. 정약용에게는 서학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박민준에게는 따돌림이 시작됐다. 준호에게는 SNS 익명 댓글이 달렸다.
방법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저 사람을 내려앉혀야 내가 안전하다.
세 번째. 공격을 받아도 멈추지 않은 사람이 남았다.
장영실은 관직을 잃어도 계속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지만, 그가 만든 것들은 남았다. 정약용은 유배 십팔 년 동안 오백 권의 책을 남겼다. 박민준은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노트를 썼고 지금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준호는 왕따를 당하면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 공통점을 노트에 정리하고 나서 준호는 한참 그것을 바라봤다.
세 시대. 다른 이름. 다른 공간. 다른 시간.
하지만 구조가 같았다.
이 구조가 왜 반복되는가.
준호는 그 질문이 보고서에서 충분히 답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세미나에서는 그 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반복되는가.
그날 저녁 준호는 오래 생각했다.
공부를 하다가 멈추고 생각했다. 밥을 먹다가 멈추고 생각했다. 잠들기 전에 또 생각했다.
새벽 두 시쯤이었다.
뭔가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준호는 벌떡 일어나 노트를 꺼냈다.
왜 이 구조가 반복되는가.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공격하는 것은 개인의 나쁜 심성 때문이 아니다. 구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것을 지키려는 힘과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힘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지금 있는 것을 지키려는 힘은 항상 기존 질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편이다. 새로운 것을 가져오는 사람은 항상 그 질서의 바깥에 있다.
장영실은 노비였다. 노비가 양반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기존 질서를 흔드는 일이었다. 정약용은 남인이었다. 남인이 노론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기존 권력 구조를 흔드는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하는 학생이 나타나면 못하는 학생이 드러난다. 그 드러남이 불편한 사람이 공격을 한다. 회사에서 잘하는 직원이 나타나면 못하는 관리자가 드러난다. 그 드러남이 불편한 관리자가 방해를 한다.
공격은 뛰어남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공격으로 변한다.
준호는 거기서 멈췄다.
두려움이 공격으로 변한다.
이영준이 장영실을 공격한 이유가 두려움이었다. 심환지가 정약용을 공격한 이유가 두려움이었다. 최민재가 준호를 무시한 이유도, 누군가 익명으로 댓글을 단 이유도 두려움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면 해결책이 뭔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다. 하지만 두려움이 공격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어떻게?
준호는 계속 썼다.
두려움이 공격으로 변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뛰어난 사람이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나는 나의 것이 있다. 최민재는 발표를 잘했다. 그것이 준호의 공부를 지우지 않는다. 준호의 공부가 최민재의 발표를 지우지 않는다.
둘째, 뛰어난 사람도 불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영실도 두려웠을 것이다. 정약용도 외로웠을 것이다. 뛰어남이 두려움과 외로움을 없애주지 않는다. 뛰어나다고 강한 게 아니다.
준호는 그것을 읽어봤다.
이게 맞는 것 같았다.
세미나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새벽 세 시가 됐다. 준호는 노트를 덮고 눈을 감았다. 빠르게 잠이 들었다. 처음으로 오래 생각하고 나서 편안하게 잠든 밤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서연에게 어젯밤에 쓴 것을 보여줬다.
서연이 오래 읽었다.
읽다가 멈추고 다시 읽었다.
말했다.
"두려움이 공격으로 변한다는 부분이요."
"어떤 점이요."
"이게 세 시대의 공통점이 왜 반복되는지를 설명해요. 구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구조의 근원이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거잖아요."
"맞아요."
"근데 그렇다면 구조를 바꿔도 두려움은 남아요. 그러면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준호는 그 질문에 잠깐 멈췄다.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죠."
"그러면 보고서 결론과 충돌하지 않아요? 공정함은 방향이라고 했는데. 해결할 수 없다면 방향도 의미 없는 거 아닌가요."
준호가 생각했다.
"해결할 수 없어도 방향은 의미 있어요. 병이 완전히 낫지 않아도 치료를 계속하는 게 의미 있는 것처럼."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세미나에서 해요."
"어떻게요."
"완전한 해결은 없다. 하지만 방향은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조금씩 나아졌다. 그게 장영실이고 정약용이고 박민준이고 강준호와 박서연이다."
준호가 서연을 봤다.
"마지막에 우리 이름이 들어갔어요."
"맞아요. 우리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예요. 작지만."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창밖을 봤다.
작지만 그 사람들 중 하나.
어릴 때 역사를 배울 때 역사는 위인들의 이야기였다. 세종, 이순신, 정약용. 그들은 크고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준호 같은 평범한 중학생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를 쓰면서 알았다. 역사는 위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창대라는 어부가 없었으면 자산어보가 달랐다. 황상이라는 제자가 없었으면 다산초당이 달랐다. 박민준이 노트를 두지 않았으면 준호는 달랐다.
위인들의 역사 안에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름 없는 사람들도 역사를 만들었다.
자신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37회 — 진짜 평등은 어디서 오는가
세미나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준호와 서연은 방과 후마다 도서관에서 발표 준비를 했다. 박민준이 온라인으로 함께 준비해줬다. 대학교 세미나가 어떤 분위기인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질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준비 중에 박민준이 물었다.
발표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핵심 하나.
준호가 생각했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장영실 이야기, 정약용 이야기, 두려움의 구조, 기록의 중요성. 그런데 하나만 고르라면.
준호가 답했다.
진짜 평등은 뛰어난 사람을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라는 거요.
박민준이 잠시 후 답했다.
좋아요. 그게 핵심이에요. 거기서 시작해요.
준호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진짜 평등은 뛰어난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 건 최민재 때문이었다.
최민재가 처음에 한 것이 무엇이었나. 준호가 잘한다는 걸 알면서 자신은 하지 않으려 했다. 준호를 이용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 그것이 일종의 끌어내리기였다. 직접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올라가지 못하게 막는 방식으로.
학교에서 잘하는 아이를 왕따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뛰어난 아이를 올려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평등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 평등이 아니었다.
준호가 발표문에 썼다.
가짜 평등은 뛰어난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진짜 평등은 뛰어난 사람이 더 올라갈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장영실 시대의 세종이 하려 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노비라도 뛰어나면 기회를 주겠다.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틈을 만들려 했다.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지만 방향은 옳았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하려 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수령이 잘하면 백성이 덜 억울하다. 백성이 덜 억울하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쓸 수 있다. 재능이 신분에 막히지 않는 세상을 원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준호는 거기서 잠깐 멈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학교 2학년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법을 바꿀 수도 없고 제도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준호는 계속 썼다.
중학교 2학년인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교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잘하는 친구를 이용하지 않는다. 잘한 것에 무임승차하지 않는다. 잘하는 친구를 시기해서 끌어내리지 않는다. 대신 잘하는 친구가 더 잘할 수 있게 응원한다. 자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한다.
그것이 교실에서의 진짜 평등이다. 누군가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올라가는 것.
서연이 옆에서 그것을 읽었다.
"발표문 거의 완성된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어디가요."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로 느끼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서연이 생각했다.
"그러면 최민재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넣어요. 최민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최민재 이름을 써도 될까요."
"물어봐요."
준호가 최민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강준호: 민재야, 대학교 세미나 발표 준비 중인데. 네 이야기를 써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처음에 수행평가에서 있었던 것들이랑 달라진 것들.
최민재가 바로 답했다.
최민재: 대학교 세미나? 진짜로?
강준호: 어.
최민재: 내 이름도 나와?
강준호: 그러려고.
잠깐 뜸이 있었다.
최민재: 나쁜 이야기도 나와?
강준호: 처음에 수행평가 안 한 것도 나오고, 나중에 달라진 것도 나와요.
또 뜸이 있었다.
최민재: 써. 근데 나 이름 최민재 말고 가명으로 해줘. 창피하잖아.
준호가 피식 웃었다.
강준호: 알겠어요.
서연이 옆에서 그 대화를 보며 말했다.
"창피하다고 하면서 써도 된다고 했네요."
"그게 최민재예요."
서연이 웃었다.
준호도 웃었다.
창피한데 써도 된다고 하는 것. 그것도 용기였다. 작은 용기. 하지만 분명히 용기였다.
세미나 전날 밤이었다.
준호는 발표문을 소리 내어 읽어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 이십 분이 걸렸다. 중간에 목소리가 흔들리는 부분이 있었다. 박민준 노트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였다.
멈추지 마세요. 당신이 한 것은 남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처음 그 노트를 찾았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도서관 책장 사이에서 낡은 노트를 꺼내 첫 줄을 읽었을 때. 잘하면 잘할수록 외로워지는 것이 왜인지 알고 싶다는 문장. 그게 자신의 이야기 같았을 때.
그때 외로웠다. 지금도 완전히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서연이 있었다. 박민준이 있었다. 황상이 있었고 창대가 있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쓴 것들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게 가장 큰 달라짐이었다.
준호는 발표문을 덮고 노트를 꺼냈다.
내일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진짜 평등은 어디서 오는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것을 할 수 있을 때 온다. 잘한다고 끌어내려지지 않을 때. 잘하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그 느낌이 모일 때 평등이 가까워진다.
그 느낌을 만드는 것이 기록이고 연대다. 장영실이 기록됐기 때문에 지금 내가 두려움 없이 잘하려 한다. 정약용이 기록됐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억울해도 멈추지 않으려 한다.
내가 지금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그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노트를 덮었다.
내일이었다.
38회 — 장영실·정약용이 지금 여기 있다면
세미나 당일 아침이었다.
준호는 일찍 일어났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거울을 봤다. 중학교 2학년. 교복을 입은 자신이 대학교 세미나에 간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아침을 챙겨줬다.
"많이 떨려?"
"조금요."
"잘할 거야."
"어떻게 알아요."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보기엔 요즘 많이 달라졌거든.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긴 것 같아."
준호가 밥을 먹으며 말했다.
"장영실이랑 정약용 공부하면서요."
"수백 년 전 사람들한테서 배웠네."
"그 사람들이 남긴 게 있어서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밥을 다 먹고 가방을 쌌다. 발표문, 노트, 필기도구. 그리고 낡은 노트 한 권. 박민준의 것이었다. 오늘 돌려줄 예정이었다. 세미나에서 처음 만나기로 했다.
대학교 정문에서 서연과 만났다.
서연이 먼저 와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당당한 얼굴이기도 했다.
"준비됐어요?"
"됐어요. 떨리지만."
"나도요."
둘이 함께 연구동으로 걸어갔다.
대학교 캠퍼스는 처음이었다.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았다. 다들 바빠 보였다. 책을 들고 걷는 사람, 노트북을 들고 걷는 사람,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 준호와 서연은 교복을 입고 있어서 여기저기 눈길이 왔다.
박민준이 연구동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보다 키가 컸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앨범 사진과 달리 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오 년이 지나서였다.
"강준호 학생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박서연이고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준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였다. 준호가 손을 잡았다.
"반가워요. 메시지로만 얘기했는데 실제로 만나니까 더 반갑네요."
준호가 가방에서 낡은 노트를 꺼냈다.
"이거요. 돌려드리려고요."
박민준이 노트를 받아 들었다. 한참 들여다봤다.
"오 년 만에 보네요."
"읽었다고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읽으라고 뒀으니까."
박민준이 노트를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이게 거기 있었다는 게 신기해요. 내가 두고 나서 가끔 갔는데 없어진 줄 알았거든요. 누군가 버린 줄 알았어요."
준호가 말했다.
"책장 맨 아래 칸에 끼어 있었어요. 거의 보이지 않는 자리에."
박민준이 웃었다.
"필요한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거네요."
세미나실은 작았다.
이십여 명이 들어오면 꽉 찰 공간이었다. 대학원생들과 학부 연구생들이 앉아 있었다. 교수님이 앞에 앉아 있었다. 오십대로 보이는 분이었다. 안경을 쓰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교수님이 준호와 서연을 봤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들었어요. 보고서 읽어봤는데 정말 잘 썼어요. 나이가 믿기지 않아요."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오늘 편하게 얘기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발표 처음엔 다 떨었어요."
대학원생들 몇 명이 웃었다.
준호는 그 분위기에 조금 긴장이 풀렸다.
발표가 시작됐다.
준호가 먼저 섰다. 발표문을 들었다.
첫 마디가 나오기 전에 잠깐 멈췄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역사를 전공한 대학원생들이었다. 자신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하지만 발표문에 쓴 것을 생각했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나는 나의 것이 있다.
자신은 연구자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실제로 겪은 사람이었다. 교실에서 겪었고 친구들과 겪었고 노트를 발견했다. 그 경험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자신과 똑같이 갖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의 것이었다.
준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강준호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에요. 이 발표는 역사 수행평가에서 시작됐습니다. 장영실과 정약용의 이야기를 공부하다가 제 이야기와 연결됐어요."
세미나실이 조용했다. 모두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전교 1등이에요. 그리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연결된다는 걸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어요. 잘하면 좋은 게 아닌가. 왜 잘하면 외로워지는가. 그 질문에서 이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서연이 옆에서 보충하며 이어받았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전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고 그것 때문에 친구를 잃었어요. 전학을 왔고 조용히 지내려 했어요. 이 수행평가를 하면서 처음으로 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는 계속됐다. 장영실 이야기. 정약용 이야기. 박민준의 노트. 최민재의 변화. 이준서의 사과. 아버지와 서연 엄마의 회사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준호가 말했다.
"장영실이 지금 여기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봤어요.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요."
준호가 잠깐 멈췄다.
"계속 만들어라. 누가 뭐래도."
서연이 이었다.
"정약용이 지금 여기 있다면. 아마 이런 말을 할 것 같아요."
서연이 잠깐 멈췄다.
"계속 써라. 누가 읽지 않아도."
준호가 마지막을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 년 후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것을 믿으면서."
세미나실이 조용했다.
잠시 후 교수님이 박수를 쳤다.
대학원생들이 따라 쳤다.
준호는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손이 약간 떨렸다.
박민준이 맨 앞줄에서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있었다.
한 대학원생이 손을 들었다.
"발표 잘 들었어요. 한 가지 물어볼게요. 두 분이 발표에서 멈추지 않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멈추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요?"
준호가 잠깐 생각했다.
서연이 먼저 말했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춰요."
세미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서연이 계속 말했다.
"장영실도 쉬었을 거예요. 정약용도 쉬었을 거예요. 멈추지 않는다는 게 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거잖아요.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거요."
대학원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맞는 답이에요. 저도 오십이 됐는데 아직 그걸 배우는 중이에요."
세미나실에서 웃음이 났다.
39회 — 나는 어떤 시대를 살고 싶은가
세미나가 끝났다.
교수님이 준호와 서연을 따로 불렀다.
"보고서를 논문 형식으로 보완하면 우리 연구실 학부생 논문 시리즈에 실을 수 있어요. 물론 강제가 아니에요. 하고 싶으면 박민준 씨와 함께 작업해봐요."
준호가 말했다.
"하고 싶어요."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이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게 뭐예요?"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자신이 한 것이 남는다는 거요. 그게 당장 보이지 않아도."
교수님이 다시 물었다.
"서연 학생은요?"
서연이 말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거요.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쓴 것들이 지금 나한테 닿았다는 게.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것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는 게."
교수님이 잠시 두 사람을 봤다.
"좋은 연구자가 될 것 같아요. 둘 다."
준호와 서연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대학교에서 나오며 박민준과 함께 걸었다.
박민준이 말했다.
"발표 정말 잘했어요. 제가 긴장할 정도였어요."
준호가 말했다.
"선배님이 긴장하면 어떻게 해요."
"나도 사람이잖아요."
셋이 웃었다.
걸으면서 박민준이 말했다.
"강준호 학생,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이 연구 하기 전이랑 후가 달라진 게 있어요? 교실에서."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최민재가 조금 달라졌어요. 이준서가 사과했어요. 서연이랑 친구가 됐어요."
"학교 전체가 바뀐 건 아니죠?"
"아니요."
"그래도 충분해요?"
준호가 그 질문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충분한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SNS 사건의 주인공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날이 있었다. 교실의 권력 구조가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지만 시작으로는 충분해요."
박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는 말이에요. 장영실도 조선 신분제를 완전히 바꾸지 못했어요. 정약용도 조선을 개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작은 했어요. 그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서연이 말했다.
"저희도 뭔가의 시작이 된다면 좋겠어요."
박민준이 웃었다.
"이미 시작이에요. 이 보고서가 논문이 되면 기록으로 남아요. 기록이 남으면 누군가 읽어요. 누군가 읽으면 연결돼요. 그게 시작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이었다.
준호와 서연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하철이 달렸다. 창밖으로 터널이 지나갔다가 하늘이 보였다가 했다. 가을 저녁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서연이 말했다.
"강준호 씨, 어떤 시대를 살고 싶어요?"
준호가 그 질문을 들으며 창밖을 봤다.
어떤 시대를 살고 싶은가.
조선시대는 아니었다. 장영실이 이름이 지워지고 정약용이 유배를 간 시대. 뛰어나다는 것이 위험이 되는 시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시대가 완전하지도 않았다. 자유와 평등을 말하지만 교실에서 왕따가 있고 회사에서 품앗이 착복이 있고 SNS에서 익명 공격이 있었다.
그러면 어떤 시대를 살고 싶은가.
준호가 말했다.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요.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로.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해도 되는 시대요. 힘들다고 말해도 되고, 도와달라고 말해도 되고, 억울하다고 말해도 되는 시대."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완전히는 안 되잖아요. 힘들다고 하면 약하다고 하고, 억울하다고 하면 예민하다고 하고."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겠죠."
서연이 말했다.
"조금씩이요."
"조금씩이요."
지하철이 역에 섰다.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다시 달렸다. 창밖으로 서울의 저녁이 펼쳐졌다.
준호는 그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시대를 살고 싶은가.
완벽한 시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시대는 있을 수 있었다. 그 나아지는 방향에 자신이 있다면. 서연이 있다면. 박민준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강준호 씨, 보고서 다음에 뭐 쓰고 싶어요?"
준호가 웃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근데 쓰고 싶은 건 생길 것 같아요."
"나도요."
"같이 써요."
서연이 잠깐 준호를 봤다.
"제안이에요?"
"제안이에요."
서연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생각해볼게요."
준호도 창밖을 봤다.
생각해볼게요. 서연이 하는 말 중에 가장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40회 — 시대를 앞선 자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12월 초, 서울에 그해 첫눈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얇게 쌓여 있었다. 아직 다 녹지 않은 가을 낙엽 위에 흰 눈이 덮여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보며 잠깐 서 있었다.
겨울이 왔다.
수행평가를 시작할 때가 가을이었다. 보고서를 쓰고 세미나를 하고 논문 작업을 시작하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그 사이 달라진 것들을 생각했다.
서연이 친구가 됐다. 박민준 선배가 생겼다. 최민재가 조금 달라졌다. 이준서가 사과했다. 아버지와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에게 세미나 이야기를 했다. 역사 선생님이 잘했다고 했다.
논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학술지 투고는 내년 봄이 될 것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시작된 것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이 준호와 서연을 불렀다.
"두 사람 보고서 관련해서 이야기가 있어요."
선생님이 자료를 펼쳤다.
"이 보고서를 전국 중학생 역사 탐구 대회에 출품하면 어떨까요. 선생님이 봤을 때 수상 가능성이 있어요."
준호가 서연을 봤다. 서연도 준호를 봤다.
"대회가 언제예요?"
"내년 3월 제출이에요. 시간 충분해요."
서연이 말했다.
"박민준 선배 논문 작업이랑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웃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1학기에 선생님이 수행평가 주제 낼 때 솔직히 기대 안 했어요. 세 시대를 연결한다는 게 중학생한테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두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깊이 들어갔어요."
준호가 말했다.
"주제가 좋았어요."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주제보다 사람이에요. 같은 주제를 줘도 안 파는 사람이 있고 파는 사람이 있어요. 두 사람은 팠어요."
준호는 그 말을 들으며 장영실이 생각났다.
세종이 재료와 기회를 줬다. 하지만 파고든 건 장영실이었다. 정약용에게 강진이라는 유배지가 주어졌다. 하지만 목민심서를 쓴 건 정약용이었다.
주어진 것과 그것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달랐다.
그날 오후 준호는 혼자 도서관에 갔다.
책을 빌리러 간 게 아니었다. 그냥 가고 싶었다. 낡은 노트를 처음 발견했던 그 책장 앞에 섰다.
이제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노트는 박민준에게 돌아갔다. 그 자리에 다른 책들이 꽂혀 있었다.
준호는 그 자리를 한참 봤다.
이 자리에서 시작됐다.
낡은 노트 하나에서. 그것이 서연에게 이어지고 박민준에게 이어지고 세미나에 이어지고 논문에 이어지고 대회에 이어졌다.
하나의 노트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장영실이 만든 해시계 하나가 전국으로 퍼진 것처럼. 정약용이 강진에서 쓴 책이 수백 년 후까지 읽히는 것처럼.
하나가 여럿이 됐다.
준호는 가방에서 새 노트를 꺼냈다.
자신이 쓰던 노트가 아니었다. 새것이었다.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은.
첫 페이지를 펼쳤다.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이름을 적었다.
강준호. 박서연.
두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그 아래에 한 문장을 썼다.
누군가 이것을 읽는다면, 당신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덧붙였다.
혼자가 아니에요. 수백 년 전에도 같은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고, 오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 우리도 있어요. 그러니까 멈추지 마세요.
노트를 덮었다.
준호는 그 노트를 들고 책장 맨 아래 칸을 봤다.
여기에 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아니었다. 아직 더 써야 했다. 논문도 써야 했고 대회도 준비해야 했고 내년 봄도 있었다. 이 노트가 가득 찼을 때 여기 두면 됐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저녁에 서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강준호: 새 노트 샀어요.
박서연: 왜요?
강준호: 우리 이야기 기록하려고요. 박민준 선배처럼.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박서연: 나도 사야겠네요.
강준호: 각자 써요. 나중에 합치면 돼요.
박서연: 뭘 쓸 건데요?
강준호: 오늘 있었던 것들이요. 내일 있을 것들이요. 잘하는 게 힘들 때, 외로울 때, 그래도 멈추지 않을 때.
서연에게서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3분 후에 짧게 왔다.
박서연: 그거 좋아요.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첫눈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고요한 밤이었다.
준호는 생각했다.
장영실은 열두 살에 북극성을 봤다. 그 별을 보면서 무언가를 시작했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서울의 한 중학생도 그 별을 봤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했다.
별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이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 기록하고 싶어 하는 마음, 억울함을 참지 않으려는 마음, 혼자가 되어도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 마음이 장영실에게 있었고 정약용에게 있었고 정약전에게 있었고 박민준에게 있었고 지금 준호에게 있었다.
그 마음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다.
용기라고 할 수도 있었다. 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있는 한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시대를 앞선 자들의 노래.
누군가 부르면 다음 사람이 이어받았다. 이어받은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넘겼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준호는 새 노트를 다시 꺼냈다.
첫 페이지를 폈다.
자신이 쓴 두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이 노래를 당신에게 넘깁니다.
노트를 덮었다.
창밖의 첫눈이 빛났다.
북극성이 거기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그리고 그 별을 보는 사람이 있는 한, 노래는 계속될 것이었다.
영원히.
完 — 시대를 앞선 자들의 노래
장영실 (1390?~?)은 조선 세종 연간의 과학자로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록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만든 것들은 남았습니다.
정약용 (1762~1836)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강진 유배 18년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정약전 (1758~1816)은 정약용의 형으로 흑산도 유배 중 자산어보를 완성했습니다. 어부 창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세 사람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필로그


봄이 왔다.
다산초당 터에 차나무가 새 잎을 틔웠다는 소식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강준호는 그 사진을 보다가 잠깐 멈췄다. 정약용이 매일 아침 잉어에게 먹이를 줬던 그 연못이 아직 남아 있었다.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남는다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논문이 학술지에 실렸다. 강준호, 박서연. 두 이름이 나란히 올라갔다. 중학교 2학년의 이름이 대학 연구실 학술지에 실린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실렸다. 기록됐다. 지워지지 않았다.
역사 탐구 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금상이 아니어서 잠깐 아쉬웠다. 하지만 서연이 말했다. 장영실도 처음부터 관직을 받은 게 아니었다고. 정약용도 처음부터 정조의 눈에 든 게 아니었다고. 조금씩이라고.
조금씩. 그 말이 이제 준호의 것이 됐다.
최민재는 게임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열한 번째 영상부터 조금씩 구독자가 늘었다. 백 명이 됐을 때 준호에게 자랑했다. 준호는 박수를 쳐줬다. 최민재가 멋쩍게 웃었다.
박민준 선배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장영실의 지워진 기록을 추적하는 것이 논문 주제였다. 언젠가 장영실이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밝혀낼 것이라고 했다. 준호는 그 연구가 완성되면 꼭 읽겠다고 했다.
서연은 새 노트를 두 권 썼다. 준호도 한 권을 거의 채웠다.
두 노트는 아직 도서관 책장에 두지 않았다. 아직 더 쓸 것이 있었다. 더 겪을 것이 있었다. 더 연결될 것이 있었다.
노트가 가득 차는 날, 거기 두면 됐다.
언젠가 누군가 그것을 찾을 것이었다. 잘하면 잘할수록 외로워지는 것이 왜인지 모르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첫 페이지를 펼치면 알게 될 것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북극성은 오늘 밤도 거기 있었다. 열두 살의 장영실이 봤던 자리에. 유배지의 정약용이 봤던 자리에. 도서관에서 낡은 노트를 찾던 밤 준호가 봤던 자리에.
별은 바뀌지 않았다.
그 별을 보며 멈추지 않으려 했던 마음도 바뀌지 않았다.
시대를 앞선 자들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부르면 다음 사람이 이어받는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다.
오늘 밤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이 노래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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