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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 한 보부상 소녀의 기록 -

목차

제1부 - 시작

1회.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2회. 밀려난 사람들 3회. 처음 건넨 손 4회. 자리세 5회. 오일장의 얼굴 6회. 거절 7회. 균열 8회. 첫 번째 사건 9회. 선택의 시간 10회. 도윤의 결심

제2부 - 투쟁

11회. 떠나는 사람들 12회. 백무겸의 이유 13회. 수원의 장터 14회. 도윤의 행동 15회. 소문 16회. 백무겸의 선택 17회. 다시 만난 사람들 18회. 자리세 19회. 수원의 모임 20회. 추적자

제3부 - 확산

21회. 체포 22회. 도윤의 결단 23회. 조사의 시작 24회. 궐 앞에서 25회. 변화의 시작 26회. 각자의 길 27회. 새로운 적 28회. 서린의 책 29회. 왕의 부름 30회. 확산

제4부 - 시련

31회. 두 번째 파도 32회. 서린의 선택 33회. 도윤의 시련 34회. 연대의 힘 35회. 왕의 병 36회. 새로운 왕 37회. 평양의 해결 38회. 서린의 두 번째 책 39회. 마지막 시험 40회. 새로운 시작

에필로그 - 10년 후

주요 등장인물

윤서린 - 보부상의 딸. 기록자. 변화의 시작점.

강도윤 - 종로상단 주인의 아들. 관리. 내부의 변화자.

백무겸 - 돈번이 출신. 속죄하는 자. 힘의 보호자.

강만수 - 도윤의 아버지. 종로상단 주인. 변화하는 기득권.

왕(선왕) - 변화를 지지하는 군주. 개혁의 후원자.

왕(신왕) - 선왕의 조카. 온건한 개혁가.

정석, 민호 - 성균관 유생들. 도윤의 친구. 지식인 연대.

1회.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종로 장터의 아침은 늘 소란스러웠다.

천막이 펄럭이는 소리, 나무 상자들이 바닥에 내려앉는 둔탁한 소리, 장사꾼들의 구성진 외침이 골목을 가득 채웠다. 해가 채 떠오르기 전부터 사람들은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손길로 자리를 잡고, 물건을 펼치고, 하루를 준비했다.

윤서린은 아버지 옆에서 작은 좌판을 펼쳤다. 천 위에 놓인 물건들은 많지 않았다. 놋그릇 몇 개, 작은 옥 장신구, 낡았지만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은비녀. 하나하나 정성껏 닦아 온 것들이었다. 서린은 천을 펼치며 물건들의 위치를 조정했다.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비녀를 놓고, 그릇들은 손님이 집어 들기 쉽게 배치했다.

"서린아, 오늘은 바람이 좋구나."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었지만, 눈가의 웃음은 여전히 따뜻했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어떤 날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시선은 장터 입구를 향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골목 입구에 서 있었다. 종로상인들의 심부름꾼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손짓은 거칠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늘 누군가는 자리를 잃었다.

서린은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작은 한숨을 삼켰다. 아버지는 이미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의 등은 예전보다 더 굽어 보였다.

"이리 와봐."

검은 옷의 남자 하나가 손짓했다.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장터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순간 작아지는 것 같았다. 몇몇 보부상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여긴 오늘 자리 없다."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남자는 서린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있던 늙은 보부상을 가리켰다. 보부상은 이미 천막을 반쯤 펼쳐놓은 상태였다.

"어제도 여기였잖습니까."

보부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삼십 년을 장사해온 사람이었다. 서린도 어릴 적부터 그를 봐왔다. 그는 늘 이 자리에 있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지."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논리도, 설명도 없었다. 그저 힘의 언어만이 있었다.

보부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이 천막 기둥을 움켜쥐었다가 천천히 풀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천막이 접히고, 물건들이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서린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놀라 서린의 팔을 붙잡았지만, 서린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왜 자리가 없는 건가요? 여기는 모두가 쓰는 장터잖아요."

검은 옷의 남자가 서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무표정했다. 마치 벌레를 보듯, 귀찮은 것을 보듯 그렇게 바라보았다.

"모두가 쓰는 장터?"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 "여기 땅이 네 거냐? 네 아버지 거냐?"

서린은 말문이 막혔다. 남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은 서린의 것도, 아버지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의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서린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종로상단에서 이 구역을 관리하기로 했어. 이제 여기서 장사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해. 자리세도 내야 하고."

남자는 마치 당연한 규칙을 설명하듯 말했다. 하지만 서린은 그런 규칙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도, 다른 보부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요?" 서린이 물었다.

"오늘부터."

대답은 간단했다. 오늘부터. 어제까지는 없던 규칙이 오늘 생겨났다. 누구의 동의도 없이, 누구의 허락도 없이.

사람들이 하나둘 밀려나기 시작했다. 보부상들의 천막이 접혔다. 오랜 세월 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짐을 꾸렸다. 어떤 이는 항의하려 했지만, 검은 옷의 남자들이 더 가까이 다가서자 입을 다물었다.

장터의 풍경이 변해갔다. 보부상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천막들이 들어섰다. 더 크고, 더 화려한 천막들이었다. 종로상단 소속 상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여유롭게 물건을 펼쳤다. 비단, 도자기, 귀한 약재들. 보부상들이 팔던 것보다 훨씬 값비싼 물건들이었다.

서린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서린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서린아, 우리는 괜찮다. 우리 자리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는 안심시키려는 것이었지만, 서린은 알았다. 오늘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일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오늘 저들에게 밀려난 사람들도 어제까지는 괜찮았다.

해가 중천에 떴다. 장터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는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불안, 혹은 두려움 같은 것이.

서린은 좌판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손님들은 여전히 물건을 구경하고, 값을 깎으려 흥정했다. 하지만 서린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맴돌았다.

이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모두의 것이라고 믿었던 이곳이, 사실은 누군가의 것이었던 걸까. 아니면 지금 누군가의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저녁이 되었다. 서린과 아버지는 물건을 정리했다. 오늘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손님들도, 상인들도 모두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장사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장터는 어둠 속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천막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서린은 무언가가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서린은 처음 느꼈다.

이 장터가, 모두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서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작은 손이었지만, 그 안에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 내일도 서린은 이곳에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이곳이 정말 누구의 것인지, 그 답을 찾을 때까지.

2회. 밀려난 사람들

보부상들은 장터 바깥으로 몰려났다.

짐을 등에 진 채, 천막을 접은 채, 그들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늘 있는 일이었다. 자리 싸움, 밀고 밀리는 것.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조심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한 보부상이 균형을 잃으며 비틀거렸다. 등에 진 짐이 무너지면서 물건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도자기 그릇 몇 개가 돌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맑은 소리를 내며 깨지는 그릇들. 그것은 그 사람의 생계였고, 가족의 밥이었고, 내일의 희망이었다.

"아, 아..."

보부상은 무릎을 꿇고 깨진 그릇 조각들을 주웠다. 손이 떨렸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도우려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게요."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체념과 분노가 뒤섞인, 그러나 어쩔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서린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저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 자신과 아버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린 늘 떠돌이잖니."

아버지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짐을 묶는 손이, 천을 접는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서린은 아버지의 손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떠돌이.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떠돌이니까, 이런 일쯤은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서린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괴로워한다는 것을. 다만 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아버지."

"응?"

"우리도... 언젠가는..."

서린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을 묻고 싶었던 걸까. 우리도 언젠가는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우리도 언젠가는 밀려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서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우리는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 말에는 확신이 없었다.

보부상들은 계속 밀려났다. 누군가는 물건을 떨어뜨렸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이는 분노로 얼굴을 붉혔지만, 결국 돌아서야 했다. 검은 옷의 남자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차갑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때 한 소년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터 안쪽, 기와지붕이 올려진 점포 앞에 그는 서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청색 두루마기는 깨끗했고, 갓은 반듯했다. 굳게 다문 입은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복잡했다. 그는 종로 안쪽 점포에서 막 나온 참이었다.

강도윤이었다.

도윤은 점포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게였다. 강가의 점포는 종로상단에서도 손꼽히는 곳이었다. 비단, 약재, 도자기를 취급했고, 한양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물건을 사러 올 정도였다.

"도윤아."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잘 닫고 가거라. 오늘은 일찍 들어와도 좋다."

"예, 아버지."

도윤은 대답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밖을 향하고 있었다. 밀려나는 보부상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축 처진 어깨를, 무거운 발걸음을 보고 있었다.

도윤은 문을 닫았다. 나무 문이 딸깍 소리를 내며 잠겼다. 그는 점포 앞에 서서 장터를 바라보았다.

'왜 항상 이래야 하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하게 울렸다.

도윤은 어릴 적부터 이런 모습을 봐왔다. 보부상들이 밀려나는 것을. 작은 상인들이 자리를 잃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 종로상단 소속 상인들이 들어서는 것을.

아버지는 말했다. 이것이 장사라고. 경쟁이라고.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살아남는 것이라고.

하지만 도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누군가는 밀려나야만 하는가. 왜 모두가 함께 장사할 수는 없는가.

"도련님."

점포 점원 하나가 도윤에게 다가왔다.

"오늘 저 자리에 우리 물건 펼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점원은 허리를 굽신하고 가버렸다.

도윤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점원은 보부상들이 떠난 자리로 갔다. 큰 천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값비싼 비단을 꺼냈다. 반짝이는 은그릇들을 늘어놓았다.

도윤의 입이 더욱 굳게 다물어졌다.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한 소녀와 마주쳤다.

서린이었다.

서린도 그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짐을 정리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장터 안쪽을 바라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도윤이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다. 아마도 몇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서린은 도윤의 깨끗한 옷을 보았다. 점포의 단단한 문을 보았다. 그의 안정된 자리를 보았다.

도윤은 서린의 낡은 천을 보았다. 작은 좌판을 보았다. 그녀의 불안한 처지를 보았다.

서린은 분노했다.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저 사람은 자신과 다르다고. 저 사람은 밀려나지 않는다고.

도윤은 죄책감을 느꼈다. 논리 없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저편에 있다는 것에. 자신이 밀어내는 쪽에 있다는 것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서린은 다시 짐을 정리했다.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마음을 다른 곳에 두려 했다.

도윤은 발걸음을 옮겼다. 점포에서 멀어졌다. 장터를 벗어났다.

아직, 말할 수 없는 거리였다.

아직, 다가갈 수 없는 간격이었다.

하나는 밀려나는 쪽에, 하나는 밀어내는 쪽에 있었다. 그 선은 분명했고, 쉽게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그 선 위에서, 혹은 그 선을 넘어서, 언젠가는 서로를 마주봐야 한다는 것을.

해가 높이 떴다. 장터는 여전히 움직였다. 물건이 팔리고, 돈이 오갔고, 사람들은 흥정했다.

하지만 서린과 도윤은 그 날 내내, 그 짧은 눈 마주침을 잊을 수 없었다.

서린은 좌판 앞에 앉아 물건을 팔면서도, 계속 장터 안쪽을 훔쳐보았다. 도윤은 골목을 걸으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언젠가는 좁혀질 것만 같았다.

아직은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3회. 처음 건넨 손

장터 밖 공터에서 서린은 좌판을 다시 펼쳤다.

공터는 종로 장터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고, 땅은 고르지 않았으며, 그늘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터 안쪽은 이미 종로상단 소속 상인들로 가득 찼고, 보부상들은 하나둘 이곳으로 밀려났다.

서린은 천을 펼치며 한숨을 삼켰다. 울퉁불퉁한 땅 위에 천을 평평하게 깔기가 쉽지 않았다. 돌멩이를 치우고, 흙을 고르고, 그제야 물건들을 하나씩 놓을 수 있었다.

놋그릇, 은비녀, 작은 옥 장신구. 어제와 같은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어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장터 안쪽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물건을 구경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서린아."

아버지가 옆에 좌판을 펼치며 말했다.

"오늘은 힘들 거야. 하지만 괜찮아. 천천히 하자."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았다. 눈가에 그늘이 져 있었다.

"네, 아버지."

서린은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컸다. 이곳에서 얼마나 팔 수 있을까. 오늘 하루 벌이는 얼마나 될까. 집세는 낼 수 있을까.

해가 높이 떴다. 공터에는 서서히 다른 보부상들도 모여들었다. 모두 같은 처지였다. 장터에서 밀려난 사람들. 갈 곳 없어 이곳에 모인 사람들.

"에이, 망했어."

한 보부상이 투덜거렸다.

"여기서 누가 사겠어. 사람도 안 오는데."

"그래도 어쩌겠어. 여기라도 있어야지."

다른 보부상이 대꾸했다. 체념이 섞인 목소리였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오지 않았다. 종로 안쪽이 더 크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더 다양한 물건이 있었고, 더 좋은 자리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다.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마예요?"

한 아낙이 놋그릇을 들어 물었다.

"오십 냥입니다."

서린이 대답했다.

"너무 비싸네. 종로 안쪽에서는 사십 냥이던데."

"이건 손으로 직접 두드려 만든 거라 조금 더..."

"됐어요."

아낙은 그릇을 내려놓고 가버렸다. 서린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정오가 지났다. 서린은 아직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옆에서 아버지도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서린은 앉아서 장터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북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곳이 진짜 장터였다. 이곳은... 이곳은 무엇일까.

서린은 작은 장부를 꺼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팔린 물건과 가격을 적는 장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적을 것이 없었다. 빈 페이지만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서린은 장부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밀려나야 할까.

바람이 불었다. 서린의 천이 펄럭였다. 서린은 황급히 천 끝을 눌렀다. 하지만 그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장부가 바람에 날아갔다.

"아!"

서린이 손을 뻗었지만, 장부는 이미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작고 가벼운 장부는 바람을 타고 공터를 가로질렀다.

서린은 황급히 일어나 장부를 쫓아갔다. 하지만 바람이 더 빨랐다. 장부는 계속 날아갔다. 공터를 벗어나, 골목으로, 그리고 장터 쪽으로.

"잠깐만, 잠깐만!"

서린은 달렸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천막 사이를 지나쳐, 장부를 쫓았다. 하지만 장부는 계속 날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장부는 누군가의 발 앞에 떨어졌다.

서린은 숨을 헐떡이며 그곳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이거 떨어졌어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어제 들었던 목소리였다.

서린이 고개를 들자, 아침에 봤던 소년이었다.

도윤이었다.

도윤은 땅에 떨어진 장부를 주워 들고 있었다. 그는 서린을 내려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복잡했다.

서린은 순간 망설였다.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자신을 밀어낸 쪽의 사람이었다. 종로상단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녀의 작은 장부를 내밀었다. 조심스럽게, 마치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고마워요."

서린은 얼떨결에 웃었다.

왜 웃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당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저 소년의 눈빛에서 적의가 없음을 느꼈기 때문일까.

서린은 장부를 받았다. 두 사람의 손이 스쳤다. 짧은 접촉이었다. 하지만 서린은 느낄 수 있었다. 도윤의 손이 따뜻하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것을.

도윤도 긴장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도윤이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다.

"네, 괜찮아요. 장부만 찾으면 되니까."

서린이 대답했다. 장부를 꽉 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할 말은 많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저기..."

도윤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네?"

서린이 물었다.

"...아니에요. 조심하세요."

도윤은 결국 다른 말을 했다. 그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서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천천히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조금 굳어 있는 것 같았다.

서린은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작은 장부였다. 낡았고, 모서리가 해졌고, 페이지는 거의 비어 있었다. 하지만 도윤은 이것을 주우러 왔다. 그것도 직접.

서린은 천천히 공터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린을 맞았다.

"어디 갔었니? 걱정했잖니."

"죄송해요, 아버지. 장부가 날아가서..."

서린은 장부를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구나. 잃어버렸으면 어쩔 뻔했니."

"네. 누가 주워줘서 다행이에요."

서린은 그렇게만 말했다. 누가 주웠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더 묻지 않았다.

해가 기울었다. 공터는 여전히 한산했다. 서린과 아버지는 결국 하루 종일 거의 팔지 못했다. 은비녀 하나와 작은 옥 장신구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짐을 꾸리며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린은 계속 생각했다. 도윤의 얼굴을. 그의 눈빛을. 그가 장부를 건네던 그 순간을.

그날 저녁, 서린은 장부를 보며 생각했다.

종로상인의 아들도, 저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괴로워하는 얼굴. 무언가를 고민하는 얼굴. 죄책감을 느끼는 얼굴.

서린은 처음 알았다. 밀어내는 쪽에 있는 사람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그들도 선택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서린은 장부를 덮었다. 내일도 공터에 가야 했다. 내일도 물건을 팔아야 했다. 내일도 살아남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서린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도윤은 왜 장부를 주웠을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돌려주러 왔을까.

그리고 그때, 도윤의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

서린은 답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았다. 언젠가는 다시 마주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는,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 깊었다. 서린은 장부를 베개 옆에 두고 잠들었다. 작은 장부였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 것 같았다.

처음 건넨 손의 기억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4회. 자리세

다음 날, 장터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들었어?"

"뭘?"

"자리세가 오른대."

아침부터 보부상들 사이에서 속삭임이 퍼졌다. 서린이 공터에 도착했을 때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오른대?"

"두 배래. 아니, 어떤 곳은 세 배까지."

"세 배라고? 그럼 우리가 어떻게 내!"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불안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서린은 아버지 옆에 좌판을 펼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어제보다 더 많은 주름이 생긴 것 같았다.

"아버지, 자리세가 뭐예요?"

서린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서 장사하려면 내야 하는 돈이란다. 원래도 있었어.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지."

"그런데 왜 갑자기 오르는 거예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정오쯤 되었을 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공터로 왔다. 종로상단의 심부름꾼들이었다. 그들은 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자리세 공고문이다!"

한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앞으로 이 공터에서 장사하려면 새로운 자리세를 내야 한다. 문서를 나눠줄 테니 잘 읽어보고, 내일까지 답을 정해라."

남자들은 보부상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종이를 나눠주었다. 서린과 아버지에게도 한 장이 건네졌다.

아버지는 종이를 받아 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는 글을 잘 읽지 못했다. 글자를 아는 것과 문서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서린아, 네가 좀 읽어볼래?"

서린은 종이를 받아 들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글을 배웠다. 어머니는 양반가의 서녀 출신이었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래서 서린에게도 가르쳐주었다.

서린은 종이를 펼쳤다. 단정한 글씨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종로상단 공고문..."

서린이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떨렸다.

"이 공터는 종로상단의 관리 하에 놓인다. 앞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하려는 자는 다음의 자리세를 납부해야 한다..."

서린은 숫자를 보고 숨이 막혔다.

"한 달에... 백 냥?"

"뭐라고?"

아버지가 깜짝 놀라 종이를 빼앗아 보았다. 하지만 숫자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서린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백 냥이라니... 이건..."

아버지는 종이를 꼭 쥐었다. 손이 떨렸다.

백 냥. 그것은 서린의 가족이 한 달에 버는 돈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니,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면 세 배, 네 배가 될 수도 있었다.

"안 내면 못 장사한대."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다른 보부상이었다. 그도 공고문을 들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돼. 우리가 어떻게 이걸 내."

"내라는 게 아니라 나가라는 거지. 결국."

"그럼 우린 어디로 가?"

보부상들 사이에 불안이 번졌다. 목소리들이 커졌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절망했다.

서린의 아버지는 종로상인의 문서를 받아 들고 한숨을 쉬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체념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서린은 달랐다.

서린은 종이를 꼭 쥐었다. 글을 읽을 수 있었기에, 더 분노가 치밀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그녀를 자극했다. '관리 하에', '납부해야', '위반 시 퇴출'.

이것은 공고가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협박이었다. 우리가 여기를 지배한다는 선언이었다.

"아버지."

서린이 말했다.

"이건 불공평해요."

"서린아,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단다."

"하지만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이러다가 정말 다 쫓겨나요."

"그래도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니."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무력함이 담겨 있었다. 오랜 세월 떠돌며 살아온 사람의 체념이었다.

하지만 서린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해가 저물었다. 보부상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터를 떠났다. 모두의 손에는 공고문이 들려 있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구겨 버렸고,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접어 품속에 넣었다.

서린과 아버지도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거의 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생겼다. 자리세.

좁은 방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는 계속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요?"

서린이 물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야. 종로상단이 점점 넓게 퍼지고 있어. 이제 한양에서 그들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단다."

"그럼... 한양을 떠나야 하나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답이었다.

서린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날 밤, 서린은 잠들 수 없었다. 작은 등잔 불을 켜고, 방 한구석에 앉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장부가 아닌 다른 종이를 꺼냈다. 어머니가 남긴 종이였다. 깨끗하고 좋은 종이였다. 어머니는 이 종이에 시를 쓰곤 했었다.

서린은 붓을 들었다. 먹을 갈았다.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사람의 기록'

서린은 제목을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그 아래 쓰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자리세 공고를. 보부상들의 얼굴을. 아버지의 한숨을.

글을 쓰면서 서린은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이 불공평함을 적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장부는 물건과 돈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기록이었다. 밀려나는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목소리를 잃어가는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서린은 밤새 글을 썼다.

"오늘 종로상단은 공고문을 돌렸다. 자리세를 백 냥으로 올린다고.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것은 우리를 내쫓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다른 보부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종로상단은 이곳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도 여기서 살아왔다. 우리도 이곳에서 장사해왔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우리를 쫓아낼 권리가 있는가."

서린은 계속 썼다. 손이 아팠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기록되어야 했다.

동이 틀 무렵, 서린은 붓을 내려놓았다. 종이 몇 장이 글씨로 가득 찼다.

서린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리고 장부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것이 무엇이 될지 서린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 같았다. 언젠가 이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서린은 창문을 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오늘도 공터에 가야 했다. 오늘도 장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내일까지 결정해야 했다. 자리세를 낼 것인가, 떠날 것인가.

하지만 이제 서린에게는 또 다른 일이 생겼다.

기록하는 일. 잊히지 않도록 쓰는 일.

서린은 종이를 만졌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될 것이었다.

서린은 마음먹었다. 매일 쓰기로. 매일 기록하기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누가 밀려나든, 누가 고통받든, 그것을 글로 남기기로.

왜냐하면 서린은 알았다.

권력은 잊게 만든다. 힘있는 자들은 약한 자들의 이야기를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글은 남는다.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이것을 읽을 것이다.

서린은 그렇게 믿었다.

해가 떠올랐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서린은 일어나 준비를 했다.

오늘도 공터로 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 서린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이제 단순히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5회. 오일장의 얼굴

오일장이 서는 날, 공터는 평소보다 더 붐볐다.

오일장은 다섯 날마다 열리는 큰 장이었다. 멀리서도 사람들이 찾아왔고, 물건도 더 많이 팔렸다. 보부상들에게는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날이었다.

서린은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다. 조금 더 좋은 놋그릇, 더 화려한 비녀, 작은 은제 향로.

"오늘은 좀 팔아야 할 텐데."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자리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내일이 마감이었다. 오늘 장사가 잘 되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해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터는 활기를 띠었다. 보부상들의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좋은 그릇 있어요!"

"은비녀, 싸게 드립니다!"

"신선한 약초, 여기 있습니다!"

서린도 목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살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버려야 했다.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물건을 구경하고, 값을 물었다. 서린은 정성껏 설명했다. 아버지도 열심히 손님을 맞았다.

"이 그릇 얼마예요?"

"육십 냥입니다."

"너무 비싸네. 오십 냥에 안 돼요?"

"그럼 오십오 냥은 어떠세요?"

흥정이 오갔다. 결국 물건이 팔렸다. 서린은 작은 기쁨을 느꼈다. 오늘은 잘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공터 입구에서 소란이 일었다.

"뭐야, 저 사람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서린도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대여섯 명이었다. 모두 젊었고, 옷차림은 단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들은 큰 짐을 지고 있었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공터 안으로 들어왔다.

떠돌이 장사치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돈번이'라 불렀다.

돈번이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장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오일장이나 큰 장터에 나타나 물건을 팔고 사라지곤 했다. 그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았고, 규칙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상인들과 자주 충돌했다.

"여기 자리 괜찮네."

선두에 선 소년이 말했다. 그는 나이가 서린과 비슷해 보였다. 열여섯, 혹은 열일곱쯤. 하지만 얼굴에는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거친 삶의 흔적들.

백무겸이었다.

무겸은 공터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자리 비켜."

무겸의 말은 짧고 거칠었다.

그는 한 보부상을 가리켰다. 나이 든 보부상이었다. 그는 이미 자리를 펼쳐놓고 장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여긴 내 자리요."

보부상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분명했다.

"이제 네 자리 아니야."

무겸이 다가갔다. 그의 무리도 따라왔다. 그들은 보부상을 에워쌌다.

"오일장은 먼저 온 사람 자리야. 당신들이 늦게 왔으니 다른 데 가시오."

보부상이 항의했다. 하지만 무겸은 웃을 뿐이었다.

"먼저 온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강한 놈이 중요한 거지."

무겸은 손짓했다. 그의 무리가 움직였다. 그들은 보부상의 물건들을 들어 옆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짓이야!"

보부상이 소리쳤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돈번이들은 힘이 셌고, 거침이 없었다.

"할아버지, 다치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무겸이 말했다. 웃고 있었지만 협박이었다.

결국 보부상은 밀려났다. 그의 물건들은 구석으로 옮겨졌다. 돈번이들은 그 자리에 자신들의 천막을 펼쳤다.

공터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보부상들은 긴장했다. 돈번이들이 나타나면 늘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힘으로 밀어붙였고, 반항하는 자는 다치곤 했다.

서린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장터에서 밀려나 공터로 왔더니, 이제 공터에서도 밀려나야 하는가.

무겸은 천막을 펼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서린에게 멈췄다.

서린과 눈이 마주쳤다.

무겸은 의미 없는 미소를 지었다. 조롱하는 듯한, 하지만 무관심한 미소였다.

"여긴 약한 사람들 자리 아니야."

무겸이 말했다. 서린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니었다. 공중에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서린은 알았다.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서린은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겸과 그의 무리는 힘이 있었다. 서린은 어린 소녀였고, 아버지는 늙은 보부상이었다.

"서린아."

아버지가 서린의 팔을 잡았다.

"가만히 있어. 그들과 부딪히면 안 돼."

아버지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돈번이들은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물건은 다양했다. 옷감, 도구, 심지어 무기까지. 그들은 무엇이든 팔았다.

"자, 오일장이다! 좋은 물건 많으니까 와서 봐!"

무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공터를 가득 채웠다. 보부상들의 외침을 압도했다.

손님들이 돈번이들의 천막으로 몰려갔다. 그들의 물건이 더 다양했고, 더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서린의 좌판 앞은 한산해졌다. 아까까지 오던 손님들도 이제는 돈번이들의 천막으로 갔다.

"저런..."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흘렀다. 해가 중천에 떴다. 하지만 서린과 아버지는 거의 팔지 못했다. 돈번이들이 모든 손님을 빼앗아갔다.

그날 장터의 공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보부상들은 침울했다. 오일장을 기대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돈번이들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누군가 중얼거렸다.

"종로상단에도 밀리고, 이제 돈번이들한테도 밀리고."

"우린 어디로 가야 하지."

절망이 퍼져나갔다.

서린은 그 소리들을 들으며 앉아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 밤 기록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야."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무겸이 서 있었다. 그는 서린의 좌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파는 거야?"

무겸이 은비녀를 가리켰다.

"네."

서린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가웠다.

"얼마야?"

"팔지 않아요. 당신한테는."

서린이 분명하게 말했다.

무겸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는 놀란 듯했다. 그리고 웃었다.

"재밌네. 장사하면서 손님을 거부하다니."

"당신은 손님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

"약탈자요."

서린의 말에 무겸의 얼굴이 굳었다. 웃음이 사라졌다.

"약탈자?"

"네. 남의 자리를 빼앗고, 힘으로 밀어내는 사람. 그게 약탈자 아닌가요."

침묵이 흘렀다.

무겸은 서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서린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서린아!"

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서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 겁이 없구나."

무겸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겁은 있어요. 하지만 말해야 할 건 말해야죠."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모르죠. 하지만 침묵하면 아무것도 안 달라지잖아요."

무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아까의 차가운 미소와는 달랐다.

"재밌는 애네."

무겸은 돌아섰다.

"좋아. 오늘은 네 물건 안 살게. 그 대신 기억해둬. 이 공터도 오래 못 버틸 거야. 약한 놈들은 결국 밀려나게 돼 있어."

무겸은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서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서린아, 너무 위험한 짓이야. 저 사람들은 거칠어. 다칠 수도 있었어."

"죄송해요, 아버지.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꾸짖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도 이해했을 것이다. 서린의 마음을.

해가 기울었다. 오일장이 끝나갔다.

돈번이들은 많이 팔았다. 그들의 천막은 활기찼다. 반면 보부상들은 거의 팔지 못했다.

서린은 짐을 정리하며 무겸을 바라보았다. 무겸도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는 서린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서린은 알 수 있었다. 그도 서린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린은 생각했다.

오일장에는 여러 얼굴이 있었다. 보부상들의 지친 얼굴, 돈번이들의 거친 얼굴, 그리고 무겸의 복잡한 얼굴.

무겸은 악인인가? 서린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폭력적이었고, 불공평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다. 생존의 절박함 같은 것.

그날 밤, 서린은 다시 기록을 꺼냈다.

"오늘 오일장에 돈번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힘으로 자리를 빼앗았다. 백무겸이라는 소년이 그들을 이끌었다."

"그는 약한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곳은 강한 자의 자리라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강함이란 무엇인가. 힘으로 밀어내는 것이 강함인가."

"아니면 견디는 것이 강함인가."

서린은 붓을 멈추고 생각했다.

답은 아직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 같았다.

6회. 거절

강도윤은 아버지 강만수 앞에 서 있었다.

넓은 사랑채였다. 기둥은 단단했고, 바닥은 윤이 났으며, 벽에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종로상단의 주인답게, 집안 곳곳에서 부가 느껴졌다.

하지만 도윤은 그 부가 불편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아버지는 문서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내일 보부상들에게서 답을 받는다. 자리세를 낼 것인지, 떠날 것인지."

"아버지."

도윤이 입을 열었다.

"네가 할 말이 뭔지 알고 있다."

아버지가 도윤의 말을 잘랐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문서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구나. 우리는 장사를 하는 거다.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야."

"장사라는 게 남을 내쫓는 일인가요?"

도윤이 물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질문은 분명했다.

아버지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내쫓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거다. 질서를 만드는 거야."

"무슨 질서요? 우리에게만 유리한 질서잖아요."

"그래, 우리에게 유리한 질서다. 그게 뭐가 잘못됐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윤아, 네가 먹는 밥, 네가 입는 옷, 네가 공부할 수 있는 여유, 그게 다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장사에서 나오는 거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서 번 돈으로 사는 거란 말이다."

"하지만 더 잘하는 것과 남을 밀어내는 건 다르지 않나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윤에게 다가왔다. 도윤보다 한 뼘은 더 큰 아버지였다. 그 키가 지금은 더욱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도윤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거야. 장사는 전쟁이다.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어.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우리가 밀려나. 그게 세상이야."

"그럼 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들도 살 길을 찾겠지. 다른 곳으로 가든지, 다른 일을 하든지."

"그게... 그게 옳은 건가요?"

도윤의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도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옳고 그른 게 아니야. 살아남는 거야. 네가 언젠가 이 집을, 이 상단을 물려받으면 알게 될 거다. 감정으로는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없어."

"저는..."

도윤이 입을 열려 했지만, 아버지가 손을 들어 막았다.

"오늘은 내가 나갈 필요 없어. 점원들이 처리할 테니까. 너는 방에서 글이나 읽어."

"아니요."

도윤이 말했다.

"뭐?"

"아니요. 그건 잘못됐어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변했다. 온화함이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지금 뭐라고 했니?"

"잘못됐다고 했어요. 보부상들한테 자리세를 요구하는 건, 그들을 내쫓는 건, 잘못된 일이에요."

도윤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도 살아야 해요. 그들도 가족이 있어요. 우리가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더 힘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자리를 빼앗을 권리는 없어요."

"권리?"

아버지가 비웃듯 말했다.

"권리는 힘 있는 자가 만드는 거야. 도윤아, 네가 너무 순진해. 저 보부상들이 우리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했을 거야."

"아니에요. 그들은 다르게 행동할 거예요."

"어떻게 아니?"

"왜냐하면..."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그들 중 한 명을 봤어요. 제 나이또래의 소녀였어요. 그녀의 눈을 봤어요. 거기에는 분노가 있었지만, 동시에 정직함도 있었어요. 그녀는 우리처럼 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누구를 만났니?"

"만난 게 아니라 봤어요.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이름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도윤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화난 것보다 더 무서운 목소리였다.

"너는 이 집의 아들이야. 종로상단의 후계자야. 네 위치가 어딘지 잊지 마라. 저 보부상들과 네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지 마."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중요하죠."

"사람?"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사람은 먹여 살릴 수 없어. 돈이 필요해. 권력이 필요해. 그게 현실이야."

"하지만..."

"됐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도윤은 움찔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 오랜만이었다.

"더 이상 이 얘기 하지 마라. 내 결정은 확고해. 자리세는 받을 거고, 못 내는 사람은 떠나게 될 거야. 그게 끝이다."

"아버지..."

"방으로 가."

"하지만..."

"가라고 했다!"

도윤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단단했다.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말에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마음은 숙이지 않았다.

도윤은 사랑채를 나왔다. 뜰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무거웠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창문을 열었다.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밖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은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장터 쪽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오늘도 장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달라질 것이었다. 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잃을 것이었다.

도윤은 문 쪽을 바라봤다.

집 안 어딘가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원들에게 지시하는 소리였다. 내일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서린의 얼굴이 스쳤다.

작은 좌판 앞에 앉아 있던 그녀. 바람에 날린 장부를 쫓아 달려오던 그녀. 장부를 받으며 웃던 그녀.

그리고 어제, 공터에서 멀리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

도윤은 그녀가 내일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했다. 아마도 절망했겠지. 아마도 분노했겠지.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족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도윤도 이 집의 일원이었으니까. 이 부의 수혜자였으니까.

도윤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을 펼쳤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장사는 전쟁이다.'

아버지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정말 그런가? 장사는 반드시 전쟁이어야 하는가? 이기는 자와 지는 자로만 나뉘어야 하는가?

도윤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였다. 어머니는 늘 말했다. 장사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고. 좋은 물건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달라졌다. 더 거칠어졌고, 더 냉정해졌다. 장사는 전쟁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도윤은 어느 쪽이 옳은지 몰랐다. 어쩌면 둘 다 맞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

시간이 흘렀다. 해가 기울었다.

도윤은 창문 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장터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보부상들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내일을 걱정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린도 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도윤은 일어났다. 방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 사랑채로 향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문서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도윤이 불렀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아직도 그 얘기 하려고?"

"아니요. 다른 얘기예요."

도윤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제가 내일 공터에 가보고 싶어요. 사람들의 대답을 직접 듣고 싶어요."

아버지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았다.

"왜?"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누구인지, 제 위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버지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봐라. 하지만 기억해라. 너는 구경꾼이 아니야. 너는 종로상단의 아들이야. 네가 보는 것은 네가 만든 것이기도 해."

"알고 있어요."

도윤은 사랑채를 나왔다.

밤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도윤은 별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받든, 별은 그저 빛날 뿐이었다.

도윤은 생각했다. 자신도 별처럼 될 것인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그저 빛나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도윤은 아직 답을 몰랐다.

하지만 내일, 공터에서, 서린과 다른 보부상들을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윤은 방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서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일 어떤 선택을 할까.

자리세를 낼까, 떠날까.

그리고 자신을 보면,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까.

도윤은 그것이 두려웠다.

밤은 깊어갔다.

7회. 균열

오일장 끝자락에서 작은 다툼이 시작됐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장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정리하고, 천막을 걷고, 하루의 피로를 안은 채 집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공터의 한쪽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 자리였다고!"

"무슨 소리야? 여긴 빈자리였어!"

보부상 한 명과 돈번이 무리 중 한 명이 다투고 있었다. 자리 문제였다. 오늘 하루 종일 쌓인 불만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당신들이 아침에 우릴 밀어냈잖아!"

"밀어낸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온 거지!"

"거짓말! 우리가 먼저 왔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서린도 그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였지만 긴장감이 느껴졌다.

"서린아, 우리 빨리 정리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불안한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잘 알았다. 작은 다툼이 어떻게 커지는지.

"네."

서린은 서둘러 물건을 챙겼다. 놋그릇을 천으로 감싸고, 비녀들을 작은 상자에 넣었다.

하지만 다툼은 계속되었다.

"너희 돈번이들이 문제야! 어디 가나 자리 뺏고 싸움 일으키고!"

"우리가 왜?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당신들만 장사할 권리 있어?"

"권리? 너희한테 무슨 권리가 있어! 여기는 우리가 먼저 쓰던 곳이라고!"

"먼저가 뭐가 중요해? 힘이 중요하지!"

말다툼은 금세 커졌다.

그리고 누군가 먼저 손을 썼다.

"이 자식이!"

밀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부상이 돈번이를 밀었다. 돈번이도 맞섰다. 그도 보부상을 밀어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경꾼들도 있었지만,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매일 보부상들만 당해야 해!"

"돈번이들 때문에 우리가 못 살겠어!"

보부상들이 소리쳤다.

"뭐? 우리도 힘들긴 마찬가지야!"

"보부상들도 만만치 않잖아!"

돈번이들도 맞섰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쳤다.

긴장이 팽팽해졌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누군가 한 명만 더 밀면, 한 마디만 더 하면, 상황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만해!"

누군가 외쳤다. 나이 든 보부상이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려 했다.

"싸워봤자 우리만 손해야! 그만두고 다들 집으로..."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를 밀쳤다. 늙은 보부상은 비틀거렸다.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할아버지!"

누군가 달려갔다. 보부상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돈번이 하나가 그 앞을 막았다.

"네 아버지가 먼저 시비 걸었어."

"뭐라고?"

보부상의 아들이 돈번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상황이 터졌다.

사람들이 뒤엉켰다. 보부상들과 돈번이들이 서로를 밀치고 잡아끌었다. 욕설이 오갔다. 비명이 터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안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 아이 하나가 넘어졌다.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멈춰! 다들 멈춰!"

누군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분노는 이미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막이 무너졌다. 물건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 천이 찢어지는 소리, 사람들의 신음 소리.

서린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두려웠다.

"아버지..."

서린은 아버지를 붙잡았다.

"아버지, 가요. 빨리 가요."

"그래, 가자. 여기 있으면 안 돼."

아버지도 황급히 짐을 챙겼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서린이 도왔다. 두 사람은 서둘러 물건을 챙겼다. 주변에서는 계속 소란이 일었다.

그때였다.

"칼이다!"

누군가 외쳤다.

서린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칼? 누가? 어디서?

서린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칼을 꺼냈어! 피해!"

비명이 터졌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달리는 발소리, 넘어지는 소리, 울음소리. 모든 것이 뒤섞였다.

"서린아! 이리 와!"

아버지가 서린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군중 속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모두가 도망치려 했다. 밀고 밀리는 와중에 서린은 아버지의 손을 놓칠 뻔했다.

"아버지!"

서린은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아! 내가 있어!"

아버지가 서린을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려갔다.

서린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누가 칼을 꺼냈는지, 누가 다쳤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만, 사람들이 흩어지는 소리와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을 뿐이었다.

쿵쾅, 쿵쾅, 쿵쾅.

심장이 귀청을 때렸다.

숨이 막혔다. 주변이 빙빙 돌았다.

"서린아! 정신 차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린은 정신을 차렸다.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 너는?"

"저도 괜찮아요."

두 사람은 군중에서 벗어났다. 공터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거기서 숨을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보부상들도 흩어져 있었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칼을 꺼냈다잖아!"

"누가? 왜?"

"모르겠어! 갑자기..."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서린은 공터 쪽을 바라보았다. 혼란은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가 보였다.

백무겸이었다.

무겸은 공터 한가운데 서 있었다.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서린의 숨이 멎었다.

무겸이 칼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무겸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는 칼을 들고 있었지만, 마치 그것이 어떻게 자신의 손에 들어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무겸의 앞에는 한 보부상이 쓰러져 있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인이다!"

누군가 외쳤다.

"돈번이가 사람을 찔렀어!"

비명이 다시 터졌다.

무겸은 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나... 나는..."

무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망쳤다. 무겸에게서 멀어졌다.

돈번이 무리도 놀란 얼굴로 무겸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겸아! 칼 버려!"

돈번이 하나가 소리쳤다.

무겸은 칼을 보았다. 손이 떨렸다.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금속 소리가 공터에 울렸다.

무겸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돌아서 달려갔다. 돈번이 무리도 그를 따라 흩어졌다.

순식간에 공터는 텅 비었다.

남은 것은 쓰러진 보부상과 흩어진 물건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칼뿐이었다.

서린은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세상이 조용해졌다. 아까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공포였다.

"저 사람... 죽은 건가?"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누가 가봐야..."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나이 든 보부상이었다. 그는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가 몸을 살폈다.

"살아 있어! 숨 쉬고 있어!"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다행이다..."

"빨리 의원을 불러야 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의원을 부르러 달려갔고, 누군가는 다친 사람을 돌보기 시작했다.

서린은 그 모습을 보며 무릎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주저앉을 뻔했다.

"서린아."

아버지가 서린을 안았다.

"괜찮니?"

"네... 무서웠어요."

"나도 무서웠단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떨렸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서로를 안고.

해가 완전히 졌다. 어둠이 공터를 덮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린과 아버지도 집으로 향했다. 짐은 거의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걸어가면서 서린은 계속 생각했다.

무겸의 얼굴을. 칼을 든 그의 손을. 그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그는 정말 찌르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사고였을까?

서린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일어난 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

공터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보부상들과 돈번이들 사이의 균열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상처받고, 더욱 두려워할 것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서린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가 악몽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서린은 일어나 기록을 꺼냈다.

손이 떨렸지만, 붓을 들었다.

"오늘 공터에서 칼부림이 있었다."

서린은 썼다.

"백무겸이 칼을 꺼냈다. 사람이 다쳤다. 모두가 도망쳤다."

"균열이 깊어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린은 붓을 멈추고 종이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떨어졌다.

종이 위에 작은 얼룩이 생겼다.

서린은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계속 썼다.

기록해야 했다. 잊지 않기 위해. 이 고통이 헛되지 않기 위해.

밤은 깊어갔다.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버려진 칼 하나가 달빛 아래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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