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 한 보부상 소녀의 기록 -

16회. 백무겸의 선택

백무겸은 거리에 붙은 글을 읽었다.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무겸은 글을 잘 읽지 못했다. 어릴 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은 끝까지 읽었다.

옆 사람에게 물어가며, 어려운 글자는 설명 들으며.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무겸은 멍하니 서 있었다.

'나도... 이 구조의 일부구나.'

글에는 종로상단이 어떻게 보부상들을 내쫓았는지, 누가 이익을 보는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무겸도 알았다. 자신이 그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칼부림. 그것도 이 구조가 만든 것이었다.

보부상들과 돈번이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진짜 문제를 가린 것.

무겸은 주먹을 쥐었다.

'나는... 이용당한 거야.'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몰랐다.

종로상단? 투자자들? 아니면 자신?

무겸은 천막으로 돌아갔다.

강만수의 제안이 생각났다.

사흘 후 답을 달라고 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겸은 고민했다.

받아들이면 안정을 얻지만, 이 부당한 구조의 일부가 된다.

거절하면 양심을 지키지만, 계속 떠돌아야 한다.

무겸은 천막 안에 앉아 칼을 내려다보았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차지 않은 칼.

'이 칼로 나는 사람을 다치게 했어.'

'이 칼로 나는 누군가의 삶을 위협했어.'

'이제 이 칼로 무엇을 할 거지?'

무겸은 칼을 들었다.

무거웠다. 쇠붙이의 무게가 아니라, 의미의 무게가.

그리고 결심했다.

무겸은 칼을 칼집에 넣었다.

그리고 품속에 넣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무겸은 천막 밖으로 나갔다.

동료들이 물었다.

"어디 가?"

"볼일 있어."

"종로상단 가는 거야? 답 주러?"

"그래."

"뭐라고 할 건데?"

무겸은 웃었다.

"거절한다고."

동료들이 놀랐다.

"미쳤어? 좋은 기회잖아!"

"나한테는 안 맞아."

"그럼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저렇게는 안 살아."

무겸은 걸어갔다.

종로상단으로.

건물에 도착하니, 강만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 답을 정했나?"

"네."

"좋네. 들어보세."

무겸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강만수의 얼굴이 굳었다.

"거절?"

"네."

"이유가 뭔가?"

"제게 맞지 않아서입니다."

"자네 처지를 생각해봤나?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거야."

"후회는 제 몫입니다."

강만수는 무겸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혹시... 오늘 아침 글 때문인가?"

무겸은 놀랐다. 들켰나?

하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구조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네는 이미 일부야. 칼부림을 일으켰잖나."

무겸은 할 말이 없었다.

강만수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무겸은 단호하게 말했다.

강만수는 한참을 무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알았네. 자네의 선택이니 존중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억해. 이 세상은 냉혹해. 양심만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보고 싶습니다."

무겸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건물을 나서는데, 뒤에서 강만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겸."

"네?"

"자네, 용기 있는 사람이군."

무겸은 대답하지 않고 걸어갔다.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시원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무겸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제는 다르게 살겠다고.

힘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조금은 옳은 방식으로.

무겸은 공터로 돌아갔다.

동료들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

"거절했어."

"정말로?"

"응."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무겸은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바꾸고 싶어."

"뭘?"

"우리 방식을.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을."

동료들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생각이 좀 바뀌었어."

무겸은 천막에 들어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뭐 해?"

"떠날 거야."

"어디로?"

"수원."

"수원? 왜?"

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서린. 그 소녀가 거기 있을 거야.'

'사과하고 싶어. 그리고... 뭔가 바로잡고 싶어.'

무겸은 짐을 다 꾸렸다.

많지 않았다. 돈번이는 늘 가볍게 다녔다.

"정말 가는 거야?"

"응. 너희도 조심해."

"너도."

무겸은 공터를 떠났다.

한양을 벗어나 남쪽으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무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동생아, 나 잘하고 있는 거지?'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무겸은 믿었다.

여동생이라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줄 거라고.

17회. 다시 만난 사람들

며칠 후, 수원 장터.

서린은 평소처럼 좌판 앞에 앉아 있었다.

장사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단골도 생겼다.

"서린아, 오늘은 날씨가 좋구나."

단골 아낙이 인사했다.

"네, 어머니. 오늘은 뭐 필요하세요?"

"비녀 하나 보려고."

서린은 비녀들을 보여줬다.

아낙은 고르고 있었다.

그때, 서린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을 봤다.

낯익은 뒷모습.

서린의 심장이 빨라졌다.

'설마...'

그 사람이 가까워졌다.

얼굴이 보였다.

백무겸이었다.

서린은 얼어붙었다.

무겸도 서린을 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겸은 한 걸음 다가왔다.

서린은 몸을 움츠렸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서린의 목소리는 떨렸다.

무겸은 멈춰 섰다.

"죄송합니다."

"왜 여기 왔어요?"

"당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저를? 왜요?"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서린은 비웃었다.

"사과요? 지금 와서?"

"늦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당신 때문에 사람이 다쳤어요. 우리 모두 공포에 떨었어요. 그리고 떠나야 했어요."

무겸은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알면 뭐해요? 이미 일어난 일인데."

"하지만 바로잡고 싶습니다."

"어떻게요?"

무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서린은 한숨을 쉬었다.

"가세계속1월 21일17회. 다시 만난 사람들 (계속)

"가세요. 보고 싶지 않아요."

무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발 한 번만 들어주세요."

"들을 게 뭐가 있어요?"

"저도... 저도 변하고 싶습니다."

서린은 무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후회가, 절실함이.

하지만 서린은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변하고 싶다고요? 말은 쉽죠."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떻게요?"

무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 도움이 필요 없어요."

"보부상들을 도울 방법을요."

서린은 입을 다물었다.

무겸이 계속 말했다.

"종로에서 글이 붙었습니다. 종로상단 비리를 폭로한 글이요."

"알아요. 소문 들었어요."

"저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무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힘만 믿고 살았습니다. 누구든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서린은 무겸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래서요? 그걸 깨달았으니 용서해달라는 건가요?"

"아니요. 용서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속죄하고 싶습니다."

"속죄요?"

"네. 제가 저지른 잘못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습니다."

서린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정말로 바로잡고 싶다면, 증언하세요."

"증언?"

"네. 종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종로상단이 어떻게 보부상들을 내쫓았는지. 당신이 본 것을 증언하세요."

무겸은 숨을 들이켰다.

"그건... 위험합니다."

"옳은 일은 원래 위험해요."

서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무겸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정말요?"

"네. 제가 본 것을 말하겠습니다."

서린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솔직히 무겸이 동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에게 증언하죠?"

무겸이 물었다.

서린도 막막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방법을 찾아봐야죠."

그때 아버지가 다가왔다.

"서린아, 누구냐?"

아버지는 무겸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 사람은..."

서린은 설명하려다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칼부림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도우려는 사람이라고?

무겸이 먼저 말했다.

"저는 백무겸입니다. 한양에서 왔습니다."

"한양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혹시 당신이... 그날..."

"네. 제가 칼부림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서린을 뒤로 끌었다.

"왜 여기 온 거냐?"

"사과하러, 그리고 속죄하러 왔습니다."

"속죄? 네가 무슨 속죄를..."

"아버지."

서린이 아버지를 말렸다.

"들어보세요. 이 사람 이야기를."

아버지는 의아한 얼굴로 서린을 보았다.

서린은 무겸에게 말했다.

"다시 설명하세요. 왜 왔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무겸은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종로에서의 일, 자신이 저지른 잘못, 글을 읽고 깨달은 것, 그리고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

아버지는 들으면서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그래서... 증언을 하겠다고?"

"네."

"위험한 일이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겸을 한참 바라보았다.

"젊은 사람이 용기가 있구만."

"아니, 이제야 용기를 내는 겁니다. 늦었지만."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늦지 않았네. 아직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니까."

무겸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서린은 무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 정말 변한 걸까?'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일단 앉으세요."

서린이 말했다.

"먼 길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물이라도 드세요."

무겸은 조심스럽게 앉았다.

서린이 물을 떠다 주었다.

무겸은 받아 마셨다.

"고맙습니다."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어색했다. 하지만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여기서 머물면서 일자리를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증언할 기회를 기다리겠습니다."

"일자리? 뭘 할 줄 아나?"

"힘 쓰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짐 나르기, 밭일, 뭐든."

"쉽지 않을 걸세. 이 동네도 일자리가 많지 않거든."

"괜찮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저희가 아는 사람 있어요. 주막 주인인데, 일손이 필요하다고 했었어요."

"정말?"

"네. 소개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무겸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해가 기울 무렵, 서린은 무겸을 주막으로 데려갔다.

주막 주인은 무겸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힘 좋아 보이네. 일은 할 수 있겠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 내일부터 나와. 아침 일찍."

"감사합니다!"

무겸은 일자리를 얻었다.

주막을 나서며 무겸은 서린에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무슨. 당신이 진심을 보여주면 돼요."

"보여드리겠습니다. 꼭."

무겸은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

서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서린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그날 밤, 서린은 다시 기록을 썼다.

"오늘 백무겸을 다시 만났다."

"그는 사과하러 왔다. 속죄하고 싶다고 했다."

"믿어야 할까?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서린은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한양에서도 같은 별을 보고 있을까.

도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는 정말 그 글을 쓴 걸까.

서린은 궁금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바로잡힌 후에.

18회. 도윤의 위기

한양에서는 소동이 커지고 있었다.

글이 붙은 후, 종로상단은 범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누가 쓴 건지 꼭 찾아내야 해!"

강만수는 직원들에게 명령했다.

"주변을 조사해.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보고해."

직원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이상한 사람 본 적 없습니까?"

"밤에 수상한 행동 하는 사람 없었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들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정말 몰랐다.

강만수는 초조했다.

투자자들이 계속 압박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럴 건가? 빨리 처리하게!"

"우리 평판이 떨어지고 있어. 이러다 사업에 지장이 생긴다고!"

강만수는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점점 의심의 범위를 좁혀갔다.

'내부 정보를 아는 사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용기 있는 사람.'

그러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도윤.

강만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아들이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도윤의 최근 행동들이 떠올랐다.

보부상들을 동정하던 것, 자리세에 반대하던 것, 이상하게 밤늦게 다니던 것.

'설마...'

강만수는 불안했다.

어느 날 밤, 강만수는 도윤의 방을 조사하기로 했다.

도윤이 밖에 나간 사이, 몰래 방에 들어갔다.

책상을 살폈다.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종이 뭉치.

강만수는 그것을 꺼내 읽었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메모들이었다. 종로상단에 대한 기록들, 투자자 명단, 보부상들의 이름들.

그리고... 글의 초안.

거리에 붙은 그 글의 초안이었다.

강만수의 손이 떨렸다.

"도윤이가... 정말..."

강만수는 주저앉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있었다.

강만수는 종이를 꽉 쥐었다.

화가 났다.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슬펐다.

'내 아들이 나를 적으로 본 거구나.'

문이 열렸다.

도윤이 돌아왔다.

방에 아버지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버지?"

강만수는 종이를 들어 보였다.

"이게 뭐냐?"

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건..."

"네가 쓴 거냐? 그 글을?"

도윤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강만수가 소리쳤다.

"대답해! 네가 쓴 거냐!"

"...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강만수는 종이를 바닥에 던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네 아버지를, 네 가족을 배신해!"

"배신이 아닙니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옳은 일을 한 겁니다."

"옳은 일?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게 옳은 일이냐!"

"아버지가 하는 일이 옳지 않으니까 그런 겁니다!"

"뭐라고?"

"보부상들을 내쫓는 것, 부당한 자리세를 받는 것, 그게 옳은 일입니까?"

"그건 장사야! 생존이야!"

"다른 사람을 짓밟아서 하는 생존은 옳지 않습니다!"

강만수는 도윤에게 다가갔다.

"도윤아, 네가 뭘 했는지 알기나 하니? 우리 집안이 얼마나 위험해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했다고?"

"네. 그래도 해야 했습니다."

강만수는 할 말을 잃었다.

분노와 슬픔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였다.

"너는... 너는 내 아들이 맞니?"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꼭두각시는 아닙니다."

"꼭두각시?"

"네. 저는 제 신념대로 살고 싶습니다."

강만수는 고개를 저었다.

"네 신념이 우리 가족을 파멸시킬 거야."

"파멸하지 않습니다. 바로잡는 겁니다."

"바로잡아? 어떻게?"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고치면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강만수는 소리치다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도윤아, 아버지가 부탁한다. 그만둬. 더 이상 이런 일 하지 마."

"못 합니다."

"왜?"

"왜냐하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강만수는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뭐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냐?"

"싸움이요. 불공평함에 맞서는 싸움이요."

도윤의 눈빛은 단호했다.

강만수는 깨달았다.

아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강만수가 일어섰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할 일을 해야겠다."

"무슨 뜻입니까?"

"투자자들에게 알려야지. 범인이 누군지."

도윤은 놀랐다.

"아버지, 그러시면..."

"어쩔 수 없어. 네가 선택한 거야."

강만수는 방을 나갔다.

도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무릎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도윤은 두려웠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다.

다음 날, 소문이 퍼졌다.

"범인이 밝혀졌대."

"누군데?"

"강만수의 아들이래."

"뭐? 아들이?"

사람들은 놀랐다.

종로상단 주인의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했다니.

어떤 사람은 도윤을 비난했다.

"아버지를 배신하다니, 불효자야."

어떤 사람은 도윤을 칭찬했다.

"용기 있는 젊은이야. 옳은 일을 했어."

의견은 갈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도윤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

투자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를 처벌해야 해."

"본때를 보여줘야지.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지 못하게."

도윤은 위험에 처했다.

정석과 민호가 급히 찾아왔다.

"도윤아, 큰일이다!"

"알고 있어."

"도망쳐야 해. 그들이 너를 잡으려고 해."

"어디로 도망쳐?"

"수원으로 가. 거기 네가 아는 사람 있잖아."

도윤은 서린을 떠올렸다.

"하지만..."

"주저할 시간 없어. 빨리!"

민호가 도윤의 팔을 잡았다.

"우리가 시간을 벌게. 넌 지금 당장 떠나."

"너희는?"

"걱정 마. 우리는 괜찮아. 넌 중요한 사람이야. 살아남아야 해."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가!"

도윤은 급히 짐을 챙겼다.

많지 않았다. 옷 몇 벌, 책 몇 권, 그리고 기록들.

집을 나서려는데, 아버지가 나타났다.

"가는 거냐?"

"...네."

강만수는 도윤에게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이거라도 가져가라."

도윤이 열어보니 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말하지 마. 그냥 가. 그리고... 조심해."

강만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과는 필요 없어. 네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한 거니까. 다만..."

강만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도윤은 아버지를 껴안았다.

"언젠가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가라."

도윤은 집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문앞에 서 있었다.

작아 보였다.

도윤은 눈물을 닦고 걸었다.

한양을 벗어나 남쪽으로.

수원으로.

서린이 있는 곳으로.

19회. 수원의 모임

도윤은 사흘을 걸어 수원에 도착했다.

지쳤지만 쉴 수 없었다.

서린을 찾아야 했다.

수원 장터로 갔다.

다행히 서린은 그곳에 있었다.

"서린!"

도윤이 불렀다.

서린은 고개를 들었다. 도윤을 보고 놀랐다.

"도윤 씨?"

"서린, 나야."

도윤은 달려갔다.

서린도 일어나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왜 여기..."

"말하자면 길어. 일단... 도와줄 수 있어?"

서린은 도윤의 창백한 얼굴, 먼지투성이 옷, 초조한 눈빛을 보았다.

"무슨 일 있었나요?"

"위험에 처했어. 숨어야 해."

"들어와요. 빨리."

서린은 도윤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갔다.

작은 방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쓰는 곳.

"앉으세요. 물 드릴게요."

서린은 물을 떠다 주었다.

도윤은 벌컥벌컥 마셨다.

"고마워."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도윤은 모든 것을 말했다.

글을 쓴 것, 들킨 것, 아버지와의 대화, 도망친 것.

서린은 듣으면서 눈이 커졌다.

"당신이... 그 글을 쓴 거였군요."

"그래."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해야 했어. 옳은 일이니까."

서린은 도윤을 다시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더 단단하고, 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모르겠어. 일단 숨어야 해. 그리고... 다음을 준비해야지."

"다음?"

"이건 시작일 뿐이야. 더 많은 걸 해야 해."

그때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들어왔다.

"서린아, 누구... 어?"

아버지는 도윤을 보고 놀랐다.

"이 사람은..."

서린이 설명했다.

아버지는 도윤을 위아래로 살폈다.

"종로상단 아들이라고?"

"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도윤이 말했다.

"아버지와 결별했습니다."

"왜?"

"신념이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도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 있는 젊은이로군. 여기 있게. 우리가 숨겨줄게."

"감사합니다."

도윤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셋은 모여 앉았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합류했다.

백무겸이었다.

무겸은 주막 일을 마치고 찾아왔다.

"서린, 오늘 장사는... 어?"

무겸은 도윤을 보고 멈췄다.

"당신은..."

"강도윤입니다."

"종로상단의..."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무겸과 도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힘으로 보부상들을 위협했던 사람.

한 명은 권력으로 보부상들을 내쫓았던 집안의 사람.

이제 둘 다 여기 있었다.

서린이 설명했다.

"도윤 씨가 그 글을 쓴 사람이에요."

무겸은 놀랐다.

"그게... 당신이?"

"네."

"왜 그런 일을?"

"옳은 일이니까요."

무겸은 도윤을 다시 보았다.

"당신도... 변했군요."

"당신도요."

두 사람은 미소 지었다.

이상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둘 다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사람들.

"앉으세요."

서린이 말했다.

넷이 둘러앉았다.

서린, 아버지, 도윤, 무겸.

"이제 어떻게 할까요?"

서린이 물었다.

"우리 넷만으로는 부족해요. 하지만 뭔가 해야 해요."

도윤이 말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무겸이 말했다.

"수원에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장사꾼들, 보부상들.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종로상단의 영향력은 여기까지 미치거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요."

서린이 말했다.

"그럼 작은 모임부터 시작해요. 몰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19회. 수원의 모임 (계속)

"그럼 작은 모임부터 시작해요. 몰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서린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시작하지?"

무겸이 물었다.

"내일부터요. 한 명씩 조심스럽게 접근해요."

도윤이 말했다.

"나는 아직 얼굴을 드러내면 안 돼. 추적자들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럼 우리 셋이 움직이죠."

서린이 말했다.

그렇게 계획이 세워졌다.

다음 날부터 서린, 아버지, 무겸은 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조심스럽게, 한 명씩.

"혹시 한양 소식 들으셨어요?"

"종로에서 일어난 일 말이에요?"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잖아요.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경계했다.

"위험한 일이야.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

"가족이 있어.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맞아. 뭔가 해야 해."

"우리만 계속 당할 순 없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열 명이 모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시작이었다.

그들은 밤에 몰래 만났다.

서린의 거처에서, 혹은 한적한 곳에서.

도윤은 숨어서 그들을 만났다.

"저는 한양에서 온 강도윤입니다."

도윤은 자신을 소개했다.

"종로상단의 비리를 폭로한 글을 쓴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놀랐다.

"정말로?"

"그 유명한 글을?"

"네. 그리고 그 때문에 쫓기고 있습니다."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했습니까?"

한 사람이 물었다.

"옳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도윤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짓밟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물었다.

"우리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권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숫자가 있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있습니다."

"숫자? 목소리?"

"네. 우리가 모이면 힘이 됩니다. 우리가 함께 말하면 들립니다."

무겸이 덧붙였다.

"저는 힘으로만 살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진짜 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생긴다는 것을."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됩니까?"

"일단 더 많은 사람을 모읍시다."

도윤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합시다. 누가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기록해서 뭐합니까?"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서린이 자신의 장부를 꺼냈다.

"저는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로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은 장부를 보았다.

빼곡한 글씨. 날짜, 이름, 사건들.

"대단하네요."

한 사람이 감탄했다.

"우리도 합시다. 각자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서린이 제안했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말해주세요. 제가 대신 써드릴게요."

사람들은 동의했다.

그날부터 그들은 기록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나는 십 년 동안 한양에서 장사했다. 하지만 자리세가 올라서 떠나야 했다."

"내 아버지는 보부상이었다. 평생을 장터에서 살았다. 하지만 쫓겨났다. 그리고 병들어 죽었다."

"나는 세 아이의 어머니다. 남편이 일자리를 잃은 후, 우리는 떠돌고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였다.

고통의 기록, 불공평의 기록, 하지만 동시에 저항의 기록.

서린은 그것들을 모두 자신의 장부에 옮겨 적었다.

밤마다 등불을 켜고, 붓을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도윤도 도왔다.

"이건 역사가 될 거야."

도윤이 말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것을 읽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요?"

서린이 물었다.

"버텨야지. 우리가 포기하면, 이 모든 게 헛수고가 돼."

무겸도 합류했다.

"나도 쓸게. 내 이야기를."

무겸은 서툰 글씨로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은 것, 돈번이가 된 것, 칼부림을 일으킨 것, 그리고 후회하는 것.

"이걸... 써도 되는 걸까?"

무겸은 불안했다.

"당연하죠. 이것도 진실이니까."

서린이 말했다.

"우리는 진실을 기록하는 거예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한 달이 지났다.

모임은 스무 명으로 늘었다.

기록은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낮에는 평범하게 장사하고, 밤에만 모였다.

하지만 비밀은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다.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수원에 이상한 모임이 있대."

"보부상들이 모여서 뭔가 한다던데."

"위험한 일 아닐까?"

종로상단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양에서 사람이 파견되었다.

수원을 조사하러.

그리고 도윤을 찾으러.

20회. 추적자

낯선 남자가 수원 장터에 나타났다.

깔끔한 옷차림, 날카로운 눈빛.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한양에서 온 젊은 양반 본 적 있습니까?"

"키가 크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인데요."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요."

"그런 사람 못 봤어요."

하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물어다녔다.

주막에서, 가게에서, 골목에서.

서린은 장터에서 그 남자를 봤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저 사람... 도윤 씨를 찾는 거야.'

서린은 황급히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윤 씨!"

"왜 그래?"

"추적자가 왔어요. 당신을 찾고 있어요."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벌써?"

"어떻게 해요?"

"숨어야 해. 완전히."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아는 사람 집에 숨어 있게. 장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하지만 그럼 모임은?"

"잠시 중단하자. 안전이 먼저야."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내 때문에..."

"아니에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서린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 선택한 길이에요."

도윤은 서린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두렵지만 단호했다.

"고마워."

그날 밤, 도윤은 장터에서 멀리 떨어진 농가로 옮겨졌다.

서린의 아버지가 아는 사람의 집이었다.

"여기서 당분간 지내게."

"감사합니다."

도윤은 헛간에 숨었다.

창문도 없는 좁은 공간.

하지만 안전했다.

한편, 추적자는 계속 조사했다.

주막에서 묵으면서, 매일 장터를 돌아다녔다.

무겸이 그와 마주쳤다.

"혹시 한양에서 온 젊은 양반 봤습니까?"

추적자가 무겸에게 물었다.

"몰라요."

무겸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정말 모릅니까? 혹시 숨겨주고 있는 건 아니고?"

"왜 제가 그래야 하는데요?"

"종로상단에서 왔습니다. 협조해주시면 보상이 있을 겁니다."

무겸은 추적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관심 없어요."

무겸은 돌아서려 했다.

추적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당신... 백무겸 아닙니까?"

무겸은 멈췄다.

"어떻게 내 이름을?"

"종로에서 유명하죠. 돈번이 무리의 우두머리."

"그건 옛날 일이에요."

"왜 여기 있습니까? 한양을 떠난 이유가 뭡니까?"

무겸은 팔을 뿌리쳤다.

"당신이 알 바 아니에요."

"혹시... 강도윤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닙니까?"

무겸의 표정이 굳었다.

추적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아는군요. 어디 있습니까?"

"모른다고 했잖아요."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당신 표정에 다 나와 있습니다."

추적자는 주머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협조해주십시오. 그럼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

무겸은 돈주머니를 보았다.

많은 돈이었다.

예전의 무겸이라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필요 없어요."

무겸은 걸어갔다.

추적자가 뒤에서 소리쳤다.

"후회할 겁니다! 우리는 결국 찾아낼 겁니다!"

무겸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무겸은 서린에게 달려갔다.

"큰일이야. 저 사람이 날 알아봤어."

"어떡하죠?"

"더 조심해야 해. 그리고 도윤을 완전히 숨겨야 해."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임도 중단해야겠어요."

"아니."

무겸이 말했다.

"중단하면 안 돼."

"하지만 위험해요."

"위험하지 않은 때가 언제 있었어? 우리는 계속 해야 해."

서린은 무겸을 보았다.

"정말요?"

"응. 지금 멈추면, 우리가 한 게 다 무너져."

서린은 생각했다.

무겸의 말이 맞았다.

"그럼 더 조심스럽게 하죠. 장소를 바꾸고, 시간도 바꾸고."

"좋아."

그들은 모임을 계속했다.

하지만 더 은밀하게.

장소는 매번 달랐다.

한 번은 숲속에서, 한 번은 버려진 창고에서, 한 번은 강가에서.

추적자의 눈을 피하면서.

하지만 추적자는 집요했다.

계속 단서를 모았다.

"밤에 사람들이 어디론가 모인다던데요."

"어디서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 수상해요."

추적자는 밤에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미행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서린을 발견했다.

서린은 모임 장소로 가고 있었다.

추적자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서린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추적자도 따라 들어갔다.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작은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열다섯 명 정도.

그들은 원을 그리고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추적자는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계속 기록해야 합니다."

서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가 그때입니까?"

다른 사람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준비는 해야죠."

추적자는 메모했다.

'비밀 모임. 약 15명. 무언가를 계획 중.'

하지만 강도윤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숨어 있는 거지?'

추적자는 계속 지켜보았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추적자는 서린을 다시 미행했다.

서린은 집으로 돌아갔다.

추적자는 집을 확인했다.

'여기 숨어 있을까?'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추적자는 관아로 갔다.

수원 관리를 만났다.

"비밀 모임이 있습니다. 수상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모임인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반역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반역?"

관리의 얼굴이 굳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제가 직접 봤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사하겠습니다."

추적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끝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서린과 무겸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그날 밤, 서린은 긴급 모임을 소집했다.

"추적자가 우리를 알아챘어요."

사람들이 술렁였다.

"어떡하죠?"

"도망쳐야 하나요?"

"아니요."

서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도망치지 않아요. 대신 더 조심할 거예요. 그리고..."

서린은 두꺼운 장부를 꺼냈다.

"이것을 숨길 거예요. 안전한 곳에."

"왜요?"

"만약 우리가 잡히면, 이 기록만은 살아남아야 해요. 이게 우리의 증거니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숨길 건가요?"

"도윤 씨가 있는 곳에. 거기가 가장 안전해요."

서린은 장부를 품에 안았다.

"내일 가져다 줄게요."

다음 날 새벽, 서린은 도윤이 숨어 있는 농가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헛간에 도착했다.

"도윤 씨."

"서린."

도윤이 나왔다.

얼굴은 수척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빛났다.

"이거 맡아주세요."

서린은 장부를 건넸다.

"이게..."

"우리의 기록이에요. 모든 것이 담겨 있어요."

도윤은 장부를 펼쳤다.

빼곡한 글씨. 날짜, 이름, 이야기들.

"대단해..."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할게."

도윤은 장부를 가슴에 안았다.

"서린, 조심해."

"당신도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로를 믿는다는 것을.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서린은 돌아갔다.

도윤은 장부를 헛간 바닥 밑에 숨겼다.

깊숙이, 안전하게.

'이것만은 지킨다.'

도윤은 다짐했다.

21회. 체포

며칠 후, 관아의 포졸들이 움직였다.

새벽녘, 서린의 집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라!"

서린은 잠에서 깼다.

아버지도 놀라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문이 거칠게 열렸다.

포졸들이 들어왔다.

"윤서린이 누구냐?"

"저... 저예요."

"체포한다. 불온한 모임을 주도한 혐의다."

"뭐라고요?"

"저항하지 마라."

포졸이 서린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제 딸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버지가 막아섰다.

"비켜라. 관아의 명령이다."

"안 돼! 서린이를 데려갈 수 없어!"

아버지가 포졸과 몸싸움을 했다.

하지만 힘으로는 당할 수 없었다.

포졸이 아버지를 밀쳤다.

아버지는 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

서린이 소리쳤다.

"같이 가!"

포졸들은 서린과 아버지 모두를 끌고 갔다.

밖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도 잡혀 있었다.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다섯 명.

"서린!"

한 사람이 불렀다.

"괜찮아요?"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웠다.

'어떻게 될까...'

그들은 관아로 끌려갔다.

뜰에 무릎 꿇렸다.

수원 관리가 나타났다.

"너희가 비밀 모임을 했다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지 않으면 형을 받을 것이다."

관리가 위협했다.

"무슨 모임을 했느냐? 목적이 무엇이냐?"

서린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를 나눴을 뿐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우리의... 어려움을."

"어려움? 그게 반역이냐?"

"반역이 아닙니다."

"그럼 왜 몰래 모였느냐?"

서린은 대답할 수 없었다.

관리는 추적자를 불렀다.

"이자가 증언하겠다."

추적자가 나섰다.

"저들은 종로상단을 비방하고, 질서를 어지럽히려 했습니다."

"증거가 있느냐?"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추적자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서린의 집에서 찾은 메모였다.

모임 일정이 적힌.

"이것이 증거입니다."

관리는 종이를 보았다.

"확실히 불온하구나."

관리는 서린을 바라보았다.

"주모자가 너냐?"

"아닙니다."

"거짓말 마라. 증거가 있다."

"저는 그저..."

"닥쳐라!"

관리가 소리쳤다.

"형을 받아라. 그러면 입이 열릴 것이다."

포졸이 회초리를 들었다.

서린은 눈을 감았다.

"멈춰라!"

누군가 소리쳤다.

모두가 돌아보았다.

무겸이었다.

무겸은 뜰로 뛰어들었다.

"이 사람들은 무죄입니다!"

"너는 누구냐?"

"백무겸입니다. 저들과 함께 한 사람입니다."

"그럼 너도 공범이구나."

"공범이 아닙니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비밀 모임 자체가 범죄다!"

"법에 비밀 모임을 금한다는 조항이 있습니까?"

무겸의 말에 관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법적으로는 애매했다. 단순히 모였다는 것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관리는 종로상단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말장난 하지 마라. 불온한 의도가 분명하다."

"의도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자가 증언했다."

관리는 추적자를 가리켰다.

무겸은 추적자를 노려봤다.

"그 사람의 증언만으로 우리를 벌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럼 저도 증언하겠습니다."

"무슨?"

"종로상단의 비리를 증언하겠습니다."

관리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종로상단은 부당하게 보부상들을 내쫓았습니다. 자리세를 올려 생계를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증거는?"

"제가 그 폭력의 당사자였습니다. 칼부림을 일으킨 사람이 저입니다."

사람들이 술렁였다.

관리도 놀랐다.

"너... 너가 그 유명한..."

"네. 저는 종로에서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로상단이 만든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무겸은 계속 말했다.

"그들은 보부상과 돈번이를 서로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진짜 문제를 숨겼습니다."

"말도 안 되는..."

"증거가 있습니다."

무겸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자신이 쓴 증언서였다.

"여기 모든 것이 적혀 있습니다."

관리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것이... 사실이냐?"

"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저만이 아닙니다."

무겸은 뒤를 돌아봤다.

관아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모임에 참여했던 나머지 사람들.

그들은 각자 종이를 들고 있었다.

"우리 모두 증언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외쳤다.

"종로상단의 비리를, 우리가 당한 불공평함을!"

사람들은 앞으로 나왔다.

종이를 관리 앞에 쌓았다.

열다섯 장의 증언서.

관리는 당황했다.

"이건... 이건..."

추적자가 나섰다.

"믿지 마십시오! 저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서린이 일어났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일을, 우리가 본 것을."

"앉아라!"

포졸이 서린을 밀쳤다.

하지만 서린은 다시 일어났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존자입니다. 불공평한 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 한 사람들입니다."

서린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힘이 있었다.

"우리가 모인 것은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죄입니까?"

관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서린의 말이, 무겸의 증언이, 그리고 그 많은 증언서들이 그를 압도했다.

"일단... 일단 조사가 필요하겠다."

관리는 물러섰다.

"너희를 가둬둔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가두다니요?"

"범죄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감금한다. 명령이다!"

포졸들이 그들을 끌고 갔다.

관아 뒤편의 감옥으로.

좁고 어두운 방.

서린, 아버지, 무겸,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 한 방에 갇혔다.

문이 닫혔다.

어둠이 내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서린은 벽에 기대앉았다.

지쳤다. 두려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도윤 씨... 부탁이에요. 기록을 지켜주세요.'

서린은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무겸이 서린 옆에 앉았다.

"괜찮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한 일은 옳아. 기억해."

"옳다고 해서 이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해야 해. 안 그러면..."

무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서린의 손을 잡았다.

"서린아, 아버지가 지켜줄게."

"아버지..."

"괜찮을 거야.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도 떨렸다.

밤이 깊어갔다.

감옥은 추웠다.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앉아 있었다.

한편, 농가의 헛간.

도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한 사람이 급히 찾아왔다.

모임에 참여했지만 잡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오?"

"서린과 다른 사람들이 잡혔습니다!"

도윤은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관아에 끌려갔습니다. 비밀 모임 혐의로."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내가 나가야 해."

"안 됩니다. 당신까지 잡히면 끝입니다."

"하지만 내 때문에..."

"서린이 당신에게 맡긴 게 있지 않습니까? 기록을."

도윤은 바닥에 숨긴 장부를 떠올렸다.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게 서린이 바라는 일입니다."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무력함이 느껴졌다.

'나는... 나는 여기서 숨어만 있어야 하나...'

하지만 무모하게 나갈 수는 없었다.

지금 나가면 모든 것이 끝난다.

기록도, 증거도, 희망도.

"알겠소. 하지만... 뭔가 해야 해. 뭔가."

도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서린과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22회. 도윤의 결단

도윤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헛간 안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그들을 구하지.'

새벽녘, 도윤은 결심했다.

장부를 꺼냈다.

무거운 기록. 모든 진실이 담긴.

'이것을 세상에 알려야 해. 더 큰 곳에.'

도윤은 한양을 떠올렸다.

한양에는 성균관이 있었다. 정석과 민호가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사헌부가 있었다.

'사헌부에 상소를 올린다면...'

사헌부는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곳이었다.

만약 이 기록을 사헌부에 전달한다면, 조사가 시작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도윤은 지명수배자였다. 한양에 가면 잡힐 위험이 컸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도윤은 짐을 꾸렸다.

장부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헛간을 나섰다.

주인에게 인사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어디 가시려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도윤은 한양으로 향했다.

이틀을 걸었다.

밤에만 걷고, 낮에는 숨었다.

추적을 피하면서.

마침내 한양 성곽이 보였다.

도윤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이제부터가 진짜야.'

도윤은 성문을 피해 샛길로 들어갔다.

밤을 기다렸다가 성균관으로 갔다.

정석의 방 창문을 두드렸다.

"석아, 나야."

정석이 놀라 창문을 열었다.

"도윤이? 미쳤어? 여기 오면 어떡해!"

"들어가도 돼?"

정석은 주변을 살피고 도윤을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이야? 왜 돌아온 거야?"

도윤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서린이 잡힌 것, 기록을 가져온 것, 그리고 계획.

"사헌부에 상소를 올리고 싶어."

정석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네가 직접 가면 잡혀."

"알아. 그래서 부탁이 있어."

"뭔데?"

"네가 대신 가줘."

도윤은 장부를 꺼냈다.

"이것을 사헌부에 전달해줘. 그리고 상소를 올려줘."

정석은 장부를 받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건... 대단한데."

"모든 증거야. 이름, 날짜, 사건. 다 기록되어 있어."

"하지만 내가 이걸 전달하면, 나도 위험해질 거야."

"알아.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네가 아니면 안 돼."

정석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지."

"정말?"

"우리 친구잖아. 그리고... 이건 옳은 일이야."

도윤은 정석을 껴안았다.

"고마워."

"민호도 부를까?"

"그래."

정석은 민호를 불렀다.

셋이 모여 앉았다.

계획을 세웠다.

정석이 장부를 가지고 사헌부로 간다.

민호는 성균관 유생들을 모아 지지를 얻는다.

도윤은 숨어서 기다린다.

"언제 할 거야?"

"내일 아침. 바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없어. 서린과 다른 사람들이 위험해."

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내일 하자."

그날 밤, 셋은 상소문을 작성했다.

도윤이 초안을 쓰고, 정석이 다듬고, 민호가 검토했다.

"종로상단의 비리를 고발하나이다."

"보부상들이 부당하게 내쳐졌나이다."

"고위 관리들이 연루되어 있나이다."

"이에 조사를 청하나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격식도, 내용도.

새벽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이제 됐어."

정석이 상소문을 접었다.

"내일 아침, 사헌부에 간다."

"조심해."

"너도."

도윤은 정석의 방에 숨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양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제발... 제발 잘 되게 해주세요.'

도윤은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정석은 깔끔하게 옷을 입었다.

유생의 복장.

장부와 상소문을 품에 넣었다.

"가겠어."

"행운을 빌어."

정석은 성균관을 나섰다.

사헌부로 향했다.

민호는 다른 유생들을 모았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다. 같이 가자."

"무슨 일인데?"

"가면 안다."

열 명의 유생이 모였다.

그들도 사헌부로 향했다.

사헌부 앞.

정석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할 수 있어.'

정석은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왔느냐?"

관리가 물었다.

"상소를 올리러 왔습니다."

"상소? 무엇에 대한?"

"종로상단의 비리에 대해서입니다."

관리의 표정이 변했다.

"종로상단?"

"네. 증거가 있습니다."

정석은 장부를 꺼냈다.

관리는 장부를 받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이것이... 모두 사실이냐?"

"네. 직접 겪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누가 작성했느냐?"

"보부상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입니다."

관리는 장부를 덮었다.

"이것은 심각한 고발이다. 확인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상소를 올리는 겁니다."

정석은 상소문을 건넸다.

관리는 읽었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이 상소를 올리면, 큰 파장이 일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너도 연루될 수 있다."

"각오하고 왔습니다."

관리는 정석을 오래 바라보았다.

"용기 있는 젊은이로구나."

"감사합니다."

"상소를 받겠다. 상부에 보고하겠다."

"언제쯤 조사가 시작됩니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내용이면... 곧 시작될 것이다."

정석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석은 사헌부를 나왔다.

밖에서 민호와 다른 유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받아줬어. 조사가 시작될 거야."

유생들이 환호했다.

"잘했어!"

"이제 진실이 밝혀지겠구나!"

하지만 정석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것을.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성균관 유생이 종로상단을 고발했대."

"사헌부에 상소를 올렸대."

"이제 조사가 시작된대."

종로상단은 발칵 뒤집혔다.

강만수는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투자자들이 모였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냐?"

"성균관 유생이라던데."

"유생? 왜 우리를 고발해?"

"누가 시킨 게 분명해."

한 투자자가 말했다.

"강도윤. 네 아들 짓 아니냐?"

강만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마도 맞을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사헌부 조사가 시작되면 우리 모두 위험해."

"막아야 해. 어떻게든."

투자자들은 각자의 연줄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사헌부에 압력을 넣고, 조사를 지연시키고, 증거를 없애려 했다.

하지만 이미 상소는 올라갔다.

장부는 사헌부 손에 있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23회. 조사의 시작

사흘 후, 사헌부는 움직였다.

조사관 셋이 파견되었다.

한 명은 한양에, 두 명은 수원에.

수원 관아에 공문이 전달되었다.

"사헌부의 명이다. 감금된 자들을 조사하라."

수원 관리는 당황했다.

"사헌부가 왜 이 일에?"

"종로상단 비리 조사의 일환이다."

관리는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감옥 문이 열렸다.

"너희, 나와라."

서린과 다른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

며칠간의 감금으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꺾이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서린이 물었다.

"사헌부 조사관이 왔다. 조사를 받아라."

서린은 놀랐다.

'사헌부? 어떻게?'

뜰에 조사관이 앉아 있었다.

중년의 관리. 엄정한 얼굴.

"앉아라."

서린과 다른 사람들이 앉았다.

조사관은 장부를 펼쳤다.

서린의 장부였다.

서린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게...'

"이것이 네가 쓴 것이냐?"

조사관이 물었다.

서린은 잠시 망설였다.

인정하면 더 큰 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네."

"내용이 사실이냐?"

"모두 제가 직접 보고, 겪은 일입니다."

조사관은 페이지를 넘겼다.

"종로상단이 부당하게 자리세를 올렸다?"

"네."

"보부상들을 내쫓았다?"

"네."

"칼부림이 있었다?"

"네."

조사관은 무겸을 보았다.

"너는?"

"백무겸입니다."

"칼부림의 당사자라고 들었다."

"맞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

무겸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합니다."

"후회?"

"네. 제가 한 일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은 종로상단이 만든 구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사관은 무겸을 한참 바라보았다.

"솔직하구나."

조사관은 다른 사람들도 조사했다.

하나하나 증언을 들었다.

메모했다.

몇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조사관은 붓을 내려놓았다.

"조사를 마쳤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서린이 물었다.

"석방한다."

"정말입니까?"

"너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서린은 눈물이 났다.

안도의 눈물.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사는 계속된다. 필요하면 다시

23회. 조사의 시작 (계속)

"하지만 조사는 계속된다. 필요하면 다시 불러야 할 수도 있다."

"언제든 협조하겠습니다."

조사관은 수원 관리를 불렀다.

"이들을 석방하라. 사헌부의 명이다."

수원 관리는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문이 열렸다.

서린과 다른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눈부셨다.

며칠 만에 보는 햇살.

"자유다..."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무겸이 서린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응... 믿기지 않아. 정말 풀려난 거야?"

"그래. 도윤이가 해냈어."

"도윤 씨가?"

"분명 그가 장부를 전달한 거야. 아니면 사헌부가 움직일 리 없어."

서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윤 씨... 고마워요.'

아버지가 서린을 껴안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아버지도 괜찮으세요?"

"그럼. 아버지는 튼튼하단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 껴안고 기뻐했다.

하지만 조사관의 말대로,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한양.

사헌부는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종로상단의 장부를 압수했다.

투자자 명단을 확인했다.

증인들을 불러 조사했다.

강만수도 소환되었다.

"종로상단 주인 강만수, 앞으로 나오라."

강만수는 사헌부 앞에 섰다.

당당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했다.

"네가 부당하게 자리세를 올렸다는 고발이 있다."

"부당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상행위였습니다."

"보부상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는데?"

"그것은 시장의 원리입니다. 낼 수 있는 사람만 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잃었다."

"그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조사관은 장부를 펼쳤다.

"이 투자자 명단을 보라. 고위 관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강만수는 침묵했다.

"이들이 압력을 넣은 것 아니냐?"

"아닙니다. 정당한 투자입니다."

"투자 대가로 특혜를 준 것 아니냐?"

"그런 일 없습니다."

조사관은 강만수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우리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강만수는 당황했다.

'어떤 증거?'

조사관은 또 다른 장부를 꺼냈다.

종로상단의 내부 장부였다.

"이것을 보라. 특정 관리들에게 뇌물이 전달된 기록이 있다."

강만수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그걸...'

그 장부는 비밀리에 보관하던 것이었다.

누군가 내부에서 넘긴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강만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일단 구금한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포졸이 강만수를 끌고 갔다.

강만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정말 끝인가...'

소문은 한양 전체를 뒤흔들었다.

"종로상단 주인이 잡혔대."

"사헌부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대."

"고위 관리들도 연루됐대."

사람들은 술렁였다.

"정말 세상이 바뀌는 건가?"

"아니야, 저들이 또 빠져나갈 거야."

의견은 갈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성균관 유생들이 움직였다.

정석과 민호를 중심으로 더 많은 유생들이 모였다.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사헌부 조사를 지지합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합니다."

그들은 상소를 준비했다.

백 명이 넘는 유생들이 서명했다.

"이것을 왕께 올리자."

"우리의 뜻을 보여주자."

운동은 커져갔다.

도윤은 정석의 방에 숨어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창문 너머로 모여드는 유생들을.

그들의 열정을.

'내가 시작한 작은 불씨가... 이렇게 커졌구나.'

도윤은 뿌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다.

'반발도 클 거야. 기득권은 쉽게 물러나지 않아.'

도윤의 예감은 맞았다.

투자자들이 모였다.

비밀 회합.

"이대로는 안 된다."

"사헌부 조사를 막아야 해."

"어떻게?"

"왕께 압력을 넣자."

"하지만 유생들까지 들고 일어났는데..."

"유생들을 겁주면 돼."

한 투자자가 말했다.

"주동자를 잡아라. 본때를 보여줘라."

"누가 주동자지?"

"정석이라는 자다. 성균관 유생."

"좋아. 그를 잡자."

다음 날.

정석이 성균관을 나서는데, 포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석이냐?"

"네, 그런데..."

"체포한다. 모반죄로."

"뭐라고?"

정석은 놀랐다.

"모반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왕을 거역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혔다."

"저는 단지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저항하지 마라."

포졸들이 정석을 끌고 갔다.

다른 유생들이 막으려 했다.

"정석을 놔주시오!"

"그는 무죄요!"

하지만 포졸들은 밀쳐냈다.

민호가 급히 도윤에게 달려갔다.

"큰일이야! 정석이 잡혔어!"

도윤은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모반죄래. 완전히 억지야."

도윤은 주먹을 쥐었다.

"이건... 보복이야."

"어떻게 해? 정석이 위험해."

도윤은 생각했다.

'나 때문이야. 내가 시작한 일 때문에 정석이...'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 크게 싸워야 해."

도윤이 말했다.

"더 크게?"

"응. 이제 숨어 있을 때가 아니야."

도윤은 결심했다.

직접 나서기로.

"민호야, 유생들을 모아줘. 최대한 많이."

"뭐 할 건데?"

"왕께 직접 호소할 거야."

"너 미쳤어? 나가면 잡혀!"

"상관없어. 진실이 더 중요해."

민호는 도윤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도윤의 눈빛을 보고 멈췄다.

단호했다. 흔들리지 않았다.

"...알았어. 유생들 모을게."

"고마워."

도윤은 준비했다.

마지막 상소문을.

밤새 썼다.

왕께 올릴 글.

"신 강도윤, 목숨을 걸고 아뢰옵니다."

"종로상단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진짜 문제는 구조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을 짓밟는 구조."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백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비록 불충한 자식이오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실입니다."

"부디 살펴주소서."

도윤은 상소문을 접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다.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