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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소설

너를 쫓는 이유_04 : 하이틴로멘스

breathinghappiness 2025. 11. 13. 10:20

너를 쫓는 이유_04

22화

첫 무대의 불빛

무대 조명이 켜졌다.

관중석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다은은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렸다.

“쫓지 말아요.

당신이 나를 쫓으면, 나도 당신을 쫓게 될 거예요.”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지운은 뒤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 순간,

도현이 대사 타이밍을 놓쳤다.

“도현, 대사!”

무대 밖에서 하율이 속삭였다.

그제야 도현이 말을 이었다.

“그럼, 나를 잡아요.”

잠시 정적.

다은은 눈을 감았다가 떠서 대답했다.

“잡히면… 같이 도망쳐줄 거예요?”

조명이 두 사람을 비췄다.

박수가 터졌다.

무대는 끝났지만,

지운의 가슴은 이상하게 먹먹했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날 밤, 그는 꿈속에서 다시 조선시대의 자신을 봤다.

“서하… 이번엔 꼭 잡을게.”

그리고 그 순간, 꿈속 여인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나와 함께 사라지게 될 거야.”

23화

기억의 틈

며칠 후, 다은은 보건실에 누워 있었다.

연극 후유증인지,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지운이 조용히 들어왔다.

“괜찮아?”

“응… 그냥 피곤해서.”

“꿈 꿨어?”

“응.”

“또 그 꿈?”

“이번엔 네가 날 쫓는 게 아니라…

같이 도망쳤어.”

지운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같이?”

“응.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사라졌어.”

지운은 말없이 그녀의 손등을 바라봤다.

손가락 한가운데 작은 상처가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말했다.

“이거… 나도 있어.”

그는 자신의 손을 보여줬다.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상처.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은이 낮게 속삭였다.

“혹시…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을까?”

“그럴지도 몰라.”

24화

하율의 고백

방과 후, 하율이 지운을 불렀다.

“지운아, 잠깐 얘기 좀 하자.”

운동장 끝, 벤치에 앉은 하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 좋아했어.”

지운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율아…”

“알아. 너 다은 좋아하지.

근데 나, 이제 그만 쫓을래.”

지운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

“괜찮아. 추노꾼도 언젠가는 포기하잖아.”

“그건… 나쁜 포기가 아니었을까?”

“아니, 진짜 사랑은 도망쳐야 할 때도 있잖아.”

하율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너, 멋있더라.

누군가를 그렇게 끝까지 쫓는 거.”

“고마워. 근데… 네 마음도, 소중했어.”

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은이 울지 않게 해줘.

그게 네가 해야 할 추노야.”

25화

사라진 다은

다음날 아침, 다은이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운은 불안했다.

“혹시 다은이 연락 왔어?”

하율이 고개를 저었다.

도현도 말했다.

“어제부터 전화 안 받아.”

지운은 달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다은의 집 앞까지 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책상 위에 놓인 편지 한 장.

‘지운아, 미안해.

이번엔 내가 먼저 도망칠게.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널 쫓을게.’

지운은 비에 젖은 채 편지를 움켜쥐었다.

“서다은…”

그 순간, 번개가 치며 하늘이 갈라졌다.

그의 머릿속엔 조선의 기억이 스쳐갔다.

불타는 마을, 사슬, 도망치는 여인.

“서하… 다은…”

지운은 주저앉았다.

그날, 하늘도 함께 울고 있었다.

26화

 

기억의 부활

비가 그친 새벽, 지운은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젖은 공기 속에서 그는 편지를 다시 꺼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내가 널 쫓을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눈앞이 흔들리더니 낯선 장면들이 떠올랐다.

“서하… 제발 가지 마!”

조선의 복장을 한 자신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가 사슬에 묶인 채 웃었다.

“지운… 이번 생엔 내가 널 지킬게.”

지운은 숨을 몰아쉬었다.

“서하… 다은… 그 둘이 같은 사람이었어.”

그때, 누군가 옥상 문을 열었다.

하율이었다.

“지운아, 너 괜찮아?”

그는 고개를 들었다.

“하율아, 나 기억났어.”

“뭐를?”

“우리… 예전에 살았던 적이 있어.

그때도 내가 다은을 쫓았어.

그리고… 결국 잃었어.”

하율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이번엔…?”

지운은 미소 지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27화

편지의 비밀

다은의 집 책상 위, 지운은 다시 편지를 살폈다.

그 안에는 두 번째 종이가 숨겨져 있었다.

작게 접힌 종이에는 낡은 붓글씨가 적혀 있었다.

‘추노꾼 지운에게.

만약 이 글을 본다면,

너는 또 나를 찾아온 거야.’

그 글씨는 오래된 듯하지만,

분명 다은의 손글씨였다.

“이건… 어떻게 된 거지?”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다은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지운아… 네가 지운이구나.”

“네?”

“다은이가 자주 말했어.

‘이번 생엔 내가 먼저 다가갈게’라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이의 꿈속에 늘 네가 나왔대.

이상한 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날 부르는 남자.”

지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게… 나였어요.”

“그래. 다은이는 그걸 믿었어.

그게 인연이라면, 언젠가 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지운은 종이를 가슴에 품었다.

“그럼… 난 지금 그 인연을 다시 찾는 거네요.”

28화

그림 속의 비밀

며칠 뒤, 미술실.

하율이 그를 불렀다.

“지운아, 이거 봐.”

그녀는 다은의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 안에는 조선시대 복장의 남자와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는 칼을 들고 있었고, 여인은 머리에 하얀 비녀를 꽂고 있었다.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쫓는 자와 도망치는 자,

결국 같은 곳으로 간다.’

지운은 손끝이 떨렸다.

“이건… 꿈이 아니었어.”

“무슨 뜻이야?”

“우리… 정말 전생에 있었던 거야.

그녀는 도망쳤고, 나는 끝까지 쫓았어.

그리고 마지막엔… 둘 다 사라졌어.”

하율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이번엔 다르게 해야지.”

“그래. 이번엔 잡는 게 아니라… 구해야 해.”

그의 눈빛은 결의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스케치북 사이에서 작은 쪽지가 떨어졌다.

‘지운, 추노의 끝은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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