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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온도, 14.5도_01 : 하이틴로멘스

1화: 카메라 속의 너



"한여름! 너 오늘부터 카메라 담당이야!"
방송부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은채 언니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떨어뜨릴 뻔했다.
"네? 카메라요?"
"응! 3학년 선배가 갑자기 학원 때문에 못 나온다고 해서. 여름이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딱 너한테 맡기면 될 것 같아서."
방송부 부장인 민서 선배가 환하게 웃으며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내 손에 쥐어줬다.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카메라를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자, 선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달이 학교 축제잖아. 축제 준비 과정부터 당일까지 전부 기록하는 게 네 임무야. 할 수 있지?"
"저,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러운 나였지만, 카메라 뒤에 숨어서 하는 일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카메라로 무언가를 담아내는 일은 언제나 설렜다. 작은 렌즈 속에 담기는 순간들이, 그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마법 같다고 생각했으니까.
"할 수 있어요!"
내 대답에 방송부실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축제까지 딱 30일.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축제 준비 회의를 하는 학생회실, 밴드부가 연습하는 음악실, 연극반이 대본을 읽는 시청각실... 모든 장면이 렌즈를 통해 보면 특별해 보였다.
"한여름, 오늘은 체육관 쪽 촬영 좀 부탁해. 농구부가 축제 경기 연습한다고 하더라."
점심시간, 민서 선배가 촬영 스케줄표를 건네며 말했다.
농구부라는 말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아니, 정확히는 '농구부'가 아니라 그 안에 있을 '누군가' 때문이었다.
류진혁.
우리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농구부 에이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는 완벽한 인기남. 하지만 나한테 그는 그저 같은 반 남학생일 뿐, 특별히 말을 섞어본 적도 없는 사이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체육관 문을 열자 고무 바닥과 땀 냄새가 섞인 특유의 냄새가 났다. 농구부 아이들은 벌써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드리블 소리, 신발 끼익거리는 소리, 그리고 "패스!", "슛!" 같은 외침들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카메라를 켰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촬영할 만한 장면을 찾았다.
그때였다.
렌즈 속으로 류진혁이 들어왔다.
그는 하얀 티셔츠에 땀이 배어 있었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농구를 할 때의 그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공을 받고, 드리블하고, 점프하는 모든 동작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유연했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그는 왠지 더 빛나 보였다.
"좋아, 한 번 더! 이번엔 3점 슛 연습이다!"
코치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다시 움직였다. 진혁이 3점 라인에 섰다. 공을 받아 들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공을 날렸다.
쏴아앙—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지만, 림을 맞고 튕겨 나왔다.
"젠장..."
진혁이 작게 혀를 찼다.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쉬워하는 표정, 주먹을 쥐는 손, 그리고 다시 집중하는 눈빛까지.
"한 번 더!"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공을 받아 들고, 같은 자리에서 슛을 시도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실패할 때마다 그의 얼굴은 더욱 진지해졌다.
열 번째 시도였을까.
공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림을 통과했다. 그물이 흔들리며 달그랑 소리를 냈다.
"좋았어!"
팀 동료들이 환호했지만, 진혁은 웃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연습 자세를 잡았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승리보다 묵묵히 노력하는 뒷모습이,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시크한 모습보다 혼자 땀 흘리는 모습이 더 진짜 같았다.
'이게 바로... 카메라 뒤에서만 볼 수 있는 진짜 모습이구나.'
연습이 끝나고 아이들이 물을 마시러 벤치로 향할 때, 나는 슬그머니 체육관을 나가려고 했다.
"거기, 잠깐."
등 뒤에서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류진혁이 땀을 닦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방송부지?"
"어, 응..."
당황한 나는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가슴이 너무 빨리 뛰어서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계속 우릴 찍고 있었어?"
"아, 그게... 축제 준비 과정을 기록하라고 해서..."
"아."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물병을 들이켰다. 목젖이 움직이는 게 보였고,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근데 왜 나만 계속 찍은 것 같은데."
"네?!"
"농담이야."
진혁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작은 미소였지만, 그 미소가 내 심장을 또 한 번 쿵 하고 때렸다.
"촬영하느라 수고했어. 축제 때 멋진 영상 부탁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류진혁이 나한테 웃어줬어... 처음으로...'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오늘 찍은 영상을 확인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영상 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니, 진혁이 나온 장면이 유독 많았다. 전체 촬영 분량의 절반 이상이 그였다.
"아, 나 왜 이랬지..."
얼굴이 빨개져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다시 영상을 재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렌즈 속의 진혁은, 학교에서 보던 무뚝뚝한 농구부 에이스가 아니었다.
농구를 향한 열정,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성공했을 때조차 겸손한 태도... 이 모든 게 카메라 렌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건... 비밀로 해야지."
나는 혼자만의 특별한 영상 폴더를 만들어 그 장면들을 따로 저장했다. 폴더 이름은 '축제 준비_특별편'.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은채한테 온 메시지였다.
[은채: 여름아 오늘 촬영 어땠어?? 재밌었어??]
[나: 응... 생각보다 재밌었어.]
[은채: 오호?? 무슨 일 있었어?? 왜 말투가 수상해??]
[나: 아니야ㅋㅋㅋ 아무 일도 없었어!]
[은채: 흠... 수상한데... 내일 학교에서 자세히 들어야겠다 ㅋㅋ]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보니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축제까지 29일 남았네...'
나는 카메라를 쓰다듬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음엔 또 어떤 모습을 담을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류진혁이 농구공을 던지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가 던진 공은 골대가 아니라 내게로 날아왔고, 나는 그 공을 받으려다 깨어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바로... 설렘이라는 거겠지?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고, 메모리 카드를 확인하고, 렌즈를 깨끗하게 닦았다. 오늘도 촬영할 게 많을 테니까.
"한여름, 일찍 왔네?"
교실에 들어서자 담임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하셨다.
"네, 선생님. 오늘 촬영 준비하려고요."
"오, 방송부 카메라 담당 맡았다며? 잘 어울린다. 여름이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자리에 앉아 오늘의 촬영 계획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오전: 학생회 회의 촬영, 점심: 밴드부 연습, 오후: 미술부 포스터 작업...'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교실 문이 열렸다.
"안녕."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류진혁이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어제 체육관에서 봤던 그의 진지한 모습이 겹쳐졌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진정해, 한여름. 그냥 같은 반 친구일 뿐이야...'
하지만 카메라 렌즈로 본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땀에 젖은 티셔츠, 진지한 눈빛,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
"한여름?"
"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은채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야, 너 왜 이래? 얼굴 빨개졌어."
"아, 아니야! 그냥 더워서..."
"오늘 날씨 진짜 시원한데?"
은채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를 펼쳤지만, 내 얼굴은 계속 빨개졌다.
'이러다 들키겠어...'
하지만 이 설렘을, 이 두근거림을 숨기기엔 내 표정 관리 능력이 너무 부족했다.
축제까지 29일.
나의 첫 설렘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화: 우연인 듯 필연인 듯





"한여름, 오늘 학생회실 촬영 가야 하는 거 알지?"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민서 선배가 나를 불렀다. 손에는 촬영 스케줄표가 들려 있었다.
"네, 알고 있어요."
"오늘 축제 기획 회의가 있대. 각 동아리 대표들이랑 학생회 임원들 전부 모인다니까 중요한 장면 많이 담아줘."
"알겠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챙겨 학생회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데 심장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어제부터 이상했다. 류진혁만 생각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그의 목소리만 들려도 얼굴이 빨개졌다.
'이건 분명... 아니야. 그냥 촬영 대상으로서 관심 가는 거야.'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며 학생회실 문을 열었다.
학생회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밴드부, 연극반, 미술부, 댄스팀... 각 동아리 대표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학생회장인 강시우 선배가 서 있었다.
"자, 다들 모였으니까 회의 시작할게요. 한여름 학생, 촬영 준비됐죠?"
"네, 선배님!"
나는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켰다. 시우 선배는 키도 크고 인상도 부드러워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다. 학생회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는 모범생이었다.
"이번 축제 주제는 '우리들의 찬란한 순간'입니다. 각 동아리에서 준비할 공연이나 부스에 대해 발표해주세요."
회의가 시작되자 나는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촬영을 시작했다. 밴드부 대표가 발표하는 모습, 미술부가 보여주는 포스터 시안, 댄스팀의 공연 계획...
그때, 학생회실 문이 열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류진혁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그쪽으로 돌렸다가 황급히 다른 곳으로 렌즈를 옮겼다. 심장이 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진혁아, 여기 앉아."
시우 선배가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앉았다.
"농구부는 축제 때 3 on 3 토너먼트를 준비 중입니다."
진혁이 간단하게 발표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어제 체육관에서 봤던 열정적인 모습을 알고 있는 나는 왠지 그 무뚝뚝함 뒤에 숨겨진 진심이 느껴졌다.
"좋아요. 농구 경기는 메인 이벤트로 추진하겠습니다."
시우 선배가 메모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여름 학생, 농구 경기 촬영은 특히 신경 써서 부탁해요.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만들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내 얼굴이 또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진혁을 더 많이 찍어도 된다는 공식 허가를 받은 것 같아서... 아니, 이게 무슨 생각이야!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날 때, 시우 선배가 나를 불렀다.
"여름 학생, 잠깐만요."
"네?"
"혹시 방송부에서 축제 홍보 영상 제작 계획 있어요?"
"아, 아직 구체적으로는..."
"그럼 우리 학생회에서 기획해볼까 하는데, 괜찮으면 여름 학생이 메인 촬영 담당해줄래요?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축제 준비하는 모습들을 담는 거죠."
시우 선배의 제안에 내 눈이 반짝 빛났다. 영상 제작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렜다.
"정말요? 제가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여름 학생 촬영 실력 선배들한테 들었어요. 작년 체육대회 영상 정말 잘 만들었다고."
"감사합니다!"
나는 기쁜 마음에 90도로 인사했다.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대신 작업량이 좀 많을 거예요. 힘들면 언제든 말해요."
"괜찮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학생회실 문 앞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류진혁이었다.
그는 우리를 잠깐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왠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지만, 나는 그저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아! 들었어? 너 홍보 영상 메인 촬영 담당한다며?"
점심시간, 은채가 식판을 들고 내 앞에 앉으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학생회 애들이 떠들더라. 대박이다, 우리 여름이!"
은채가 내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나는 웃으며 그녀를 밀어냈다.
"아직 뭘 만들지도 정확히 안 정해졌는걸."
"그래도 멋지잖아! 근데 말이야..."
은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살폈다.
"너 혹시 강시우 선배... 어떻게 생각해?"
"응? 좋은 분이시지. 학생회 일도 잘하시고."
"아니, 그게 아니라... 어제 내가 봤거든. 시우 선배가 너 보는 눈빛이 좀..."
"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은채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뭔가 관심 있어 보였어. 너한테."
"에이, 설마. 선배님은 그냥 후배 챙겨주시는 거지."
"흠... 내 육감이 틀린 적이 없는데..."
은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강시우 선배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보다는...
나는 무의식중에 교실 뒤쪽을 바라봤다. 류진혁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가끔 친구들 농담에 작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 체육관에서 본 그 모습... 진짜였을까?'
오후 수업이 끝나고, 나는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농구부 연습을 촬영하기로 했으니까.
체육관 문을 열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공이 바닥을 치는 소리, 신발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함성.
나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켰다.
"오늘은 실전처럼 해보자! 5 대 5 연습 경기다!"
코치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연습 경기가 시작됐다. 진혁은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 섰다. 공을 받아 드리블하며 코트를 가로질렀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를 움직였다. 렌즈 속 그의 모습은 어제보다 더 역동적이었다. 상대 선수를 제치고, 패스하고, 다시 공을 받아 레이업 슛을 시도하는 모습.
슈욱—
공이 림을 통과했다.
"좋았어, 진혁아!"
동료들이 환호했고, 진혁은 하이파이브로 화답했다. 그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연습 경기는 30분 정도 계속됐다. 나는 내내 진혁을 따라 카메라를 움직였다. 그의 슛, 패스, 드리블... 모든 순간이 특별해 보였다.
'이건 단순히 촬영하는 게 아니라... 그를 관찰하는 거잖아?'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연습이 끝나고 물을 마시러 가는 진혁을 따라가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앞을 막아섰다.
"여름 학생."
강시우 선배였다.
"아, 선배님! 여기는 웬일이세요?"
"농구부 촬영한다고 해서. 진혁이 연습하는 거 보러 왔어."
시우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체육관 안을 둘러봤다. 그러다 내 손에 든 카메라를 가리켰다.
"오늘도 열심히 찍었네요?"
"네, 홍보 영상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장면들 많이 담았어요."
"좋아요. 나중에 같이 편집하면서 의논해요. 내가 영상 편집 좀 할 줄 알거든."
"정말요? 그럼 많이 배울 수 있겠네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저 멀리서 진혁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내려놓고 다시 코트로 돌아갔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한여름!"
집으로 가는 길,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돌아봤다.
류진혁이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다.
"어? 진혁아..."
우리 반에서는 이름을 부르지만, 막상 마주하니 어색했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봤다.
"너 카메라 항상 들고 다니네."
"응, 촬영할 게 많아서..."
"오늘도 우리 연습 찍었지?"
"어, 응... 홍보 영상에 쓸 거야."
"그래."
짧은 대답 뒤 침묵이 흘렀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근데..."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강시우 선배랑 친해?"
"응? 아니, 그냥 학생회 일 때문에 자주 보는 거야."
"그렇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조심히 들어가."
"어... 너도."
진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뭐였지?'
왠지 진혁이 평소와 달랐다. 말투도, 표정도, 분위기도.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역시나 진혁이 나온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나 진짜 왜 이러는 거야...'
하지만 삭제할 수가 없었다. 렌즈 속 그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으니까.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은채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은채: 여름아 자기 전에 이것 좀 봐!]
은채가 보낸 링크를 클릭하자,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이 떴다.
[공지] 축제 짝꿍 장기자랑 신청 받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올해 축제에서 '짝꿍 장기자랑'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한다고 했다. 두 명이 짝을 지어 무대에서 노래나 춤을 선보이는 거였다.
[은채: 우리 이거 신청하자!! 완전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나: 에이... 나 무대 같은 거 못해...]
[은채: 괜찮아!! 내가 다 이끌어줄게!! 제발~~ 나랑 하자!!]
은채의 간곡한 부탁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무대에 서는 건 정말 자신이 없었지만, 은채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 알았어... 대신 쉬운 노래로 하자...]
[은채: 오케이!! 사랑해 여름아!! 내일 연습곡 정하자!!]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짝꿍 장기자랑이라... 떨리는데...'
하지만 은채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애는 항상 나를 이끌어줬으니까.
창밖을 보니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가을밤의 선선한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축제까지 28일.
오늘도 나의 카메라 속에는 류진혁이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짝꿍 장기자랑 신청했어?"
"나는 아직인데... 너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축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한여름."
고개를 들자 류진혁이 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응?"
"너... 짝꿍 장기자랑 신청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어, 응... 은채랑 하기로 했어."
"그렇구나."
진혁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열심히 해. 응원할게."
"고, 고마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책상에 엎드렸다.
'류진혁이 나를 응원한다고...?'
얼굴이 빨개졌다. 옆자리 은채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야, 너 지금 뭐 때문에 얼굴 빨개진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여름아... 너 혹시..."
은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류진혁 좋아하는 거 아니야?"
"뭐,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교실 안 몇몇 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소리 작게 해! 들리잖아!"
"그럼 맞네! 헐, 대박..."
은채가 신기한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얼굴을 가리며 책상에 엎드렸다.
'들켰어... 완전히 들켰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은채한테 들킨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설렘을, 이 두근거림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게... 왠지 모르게 기분 좋았다.
[2화 끝]
3화: 렌즈 너머의 진심




"한여름, 오늘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짝꿍 장기자랑 연습하자!"
아침 조회가 끝나자마자 은채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벌써? 아직 곡도 제대로 못 정했잖아."
"그러니까 오늘 정하고 바로 연습하는 거지! 축제까지 이제 27일밖에 안 남았어!"
은채의 다급함에 나는 웃음이 났다. 이 친구는 항상 이렇게 열정적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점심시간에 보자."
"오케이! 나 진짜 기대된다!"
은채가 신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배터리를 확인했다. 오늘도 촬영할 게 많았다.
"한여름."
고개를 들자 담임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 계셨다.
"네, 선생님."
"오늘 4교시 체육 시간에 농구 경기 있는 거 알지? 우리 반이랑 3반이랑. 그거 좀 촬영해줄 수 있어?"
"네? 체육 수업을요?"
"응. 축제 홍보 영상에 넣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학생들 활동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농구 경기라면... 류진혁이 나올 텐데.
4교시가 되자 학생들은 모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농구 코트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 오늘은 2반이랑 3반 친선 경기다! 페어플레이로 즐겁게 하자!"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 반 선발 멤버 중에는 당연히 류진혁이 있었다.
그는 포인트 가드로 코트에 섰다. 공을 받아 드리블하며 전진했다. 3반 수비수가 막아섰지만, 진혁은 가볍게 크로스오버로 제쳤다.
"와, 대박!"
응원석에서 여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나는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그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를 움직였다.
진혁이 레이업 슛을 시도했다. 공은 백보드를 맞고 림 안으로 떨어졌다.
"좋았어, 진혁아!"
같은 팀 동료들이 환호했다. 진혁은 평소처럼 무표정했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농구를 할 때의 그는 정말 달랐다.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점수가 팽팽하게 오가는 가운데, 나는 진혁만을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이건... 촬영이 아니라 관찰이잖아.'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패스, 드리블, 슛, 심지어 땀을 닦는 모습까지... 모든 게 렌즈 속에서 특별해 보였다.
"여름아, 너 진짜 진혁이만 찍는다?"
옆에서 은채가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언제 온 건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뭐, 뭐라고? 아니야! 전체적으로 찍는 거야!"
"거짓말~ 카메라가 진혁이만 따라다니던데?"
"에이, 그냥 메인 선수니까 많이 찍는 거지..."
내 변명에 은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인정해, 한여름. 너 완전 진혁이한테 빠진 거야."
"조용히 해! 들리면 어떡해!"
얼굴이 빨개져서 은채를 밀쳤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은채 말이 맞았으니까.
경기는 우리 반의 승리로 끝났다. 마지막 슛을 성공시킨 사람은 역시 류진혁이었다.
학생들이 땀을 닦으며 교실로 돌아갈 때, 나는 카메라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찍었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강시우 선배가 서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체육 수업 촬영하는 거 보고 왔어.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시우 선배는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늘 찍은 거, 나중에 같이 확인해볼까요? 홍보 영상에 쓸 만한 장면 있는지."
"네, 좋아요!"
"그럼 방과 후에 학생회실로 와요. 편집 프로그램도 알려줄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여름 학생 덕분에 홍보 영상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류진혁이었다. 그는 물병을 손에 든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표정 없이 고개를 돌려 교실로 들어갔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은채가 나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자, 우리 연습곡 정해야지!"
은채가 휴대폰을 꺼내며 신나게 말했다. 나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랬다.
"어떤 노래가 좋을까?"
"음... 밝고 경쾌한 거! 우리 둘이 부르기 좋은 노래!"
은채가 몇 곡을 들려주며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결국 경쾌한 팝송 하나를 골랐다.
"좋아! 그럼 이제 연습하자!"
"지, 지금? 여기서?"
"당연하지! 축제까지 27일밖에 안 남았다고!"
은채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어색하게 따라 했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게 여전히 어색했지만, 은채와 함께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넷! 그렇지! 잘하고 있어!"
은채의 격려에 나도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는 30분 넘게 연습했고,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는 제법 동작이 맞아떨어졌다.
"완벽해! 이 정도면 축제 때 대박 날 것 같은데?"
"에이, 그 정도까지는..."
"자신감 가져! 우리 진혁이한테도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은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를 밀쳤다.
"야, 진짜!"
"인정해, 한여름! 너 진혁이 좋아하잖아!"
"조, 조용히 해..."
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류진혁에게 향하고 있었으니까.
방과 후, 나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강시우 선배와 영상을 확인하기로 했으니까.
학생회실 문을 열자 시우 선배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여름 학생, 왔어요?"
"네, 선배님."
"자, 여기 앉아요. 오늘 찍은 영상 같이 봐요."
나는 선배 옆에 앉아 카메라를 연결했다. 화면에 오늘 체육 시간에 찍은 영상이 재생됐다.
"오, 촬영 잘했네요. 특히 이 장면..."
시우 선배가 진혁이 레이업 슛을 하는 장면에서 멈췄다.
"이 장면 정말 좋은데요? 각도도 완벽하고."
"감사합니다..."
"근데 말이에요..."
시우 선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류진혁 장면이 유독 많네요?"
"네?!"
나는 깜짝 놀라 화면을 확인했다. 역시나... 진혁이 나온 장면이 전체의 70% 이상이었다.
"아, 그게... 메인 선수라서..."
"후후, 알겠어요. 여름 학생 마음."
시우 선배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선, 선배님...!"
"괜찮아요. 비밀 지켜줄게요."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화면을 넘겼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나저나 류진혁, 농구 정말 잘하네요. 우리 어릴 때부터 친구인데, 여전히 대단해요."
"진혁이랑 어릴 때부터 아셨어요?"
"응.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 다녔어요. 그때부터 농구를 좋아했죠. 항상 혼자 연습하던 애였어요."
시우 선배의 말에 나는 진혁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농구를 사랑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노력해온 사람이었다는 것.
"진혁이는...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애예요. 한번 마음 준 사람한테는 진심으로 대하고."
"그렇군요..."
"여름 학생도 알게 될 거예요.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시우 선배의 말이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학생회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앞에서 류진혁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
우리는 마주쳤지만, 진혁은 그냥 지나쳐 갔다. 인사도 없이.
'뭐지? 화난 건가?'
하지만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냥 복도를 걸어 나갔다.
교문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한여름."
돌아보니 류진혁이 자전거를 끌고 서 있었다.
"진, 진혁아..."
"아까 학생회실에 있었어?"
"응... 영상 확인하러..."
"강시우 선배랑?"
"응..."
짧은 대답들만 오갔다. 침묵이 흘렀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너... 시우 선배 좋아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뭐?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해?"
"자주 같이 있잖아. 그리고 선배가 너 보는 눈빛이..."
진혁이 말을 흐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시우 선배는 그냥... 학생회 일 때문에 만나는 거야. 좋아하는 감정 같은 건 전혀 없어."
"그래?"
"응."
진혁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조심히 들어가."
"너... 너도."
진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뭐였지? 진혁이 왜 그런 걸 물어본 거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혹시 진혁이 나한테...?
'아니야, 설마. 그냥... 친구로서 궁금했던 거겠지.'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작은 기대감이 싹텄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찍은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체육 시간에 찍은 진혁의 모습들...
슛을 하는 모습, 패스를 하는 모습, 땀을 닦는 모습...
모든 순간이 렌즈 속에서 빛났다.
'류진혁... 너는 카메라 앞에서 정말 솔직해.'
나는 그가 농구를 할 때의 눈빛을 좋아했다. 열정이 가득한, 살아있는 눈빛.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은채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은채: 여름아 자기 전에 이거 봐!!]
은채가 보낸 사진을 확인하자,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이었다. 오늘 체육 시간에 찍힌 사진이었는데...
나와 강시우 선배가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댓글에는...
"저 둘 사귀는 거 아니야?"
"시우 선배 여름이 챙겨주는 거 자주 봤는데..."
"헐, 진짜? 대박..."
나는 깜짝 놀라 은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채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나도 방금 봤어! 누가 올린 건지 모르겠는데... 이거 오해야, 그치?"
"당연하지! 시우 선배랑은 그냥 학생회 일 때문에 만나는 건데..."
"알아, 알아. 근데 문제는..."
은채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류진혁도 이거 봤을 것 같아."
"뭐?!"
순간 오늘 진혁이 물어본 말이 떠올랐다.
'너... 시우 선배 좋아해?'
'설마 이 사진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은채야, 나 어떡하지?"
"일단 진정해. 내일 학교에서 해명하면 돼. 괜찮아."
"근데 진혁이가... 진혁이가 오해하면 어떡해..."
"오? 한여름, 너 지금 진혁이 걱정하는 거야?"
은채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맞았다. 나는 지금 류진혁이 이 사진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신호였다.
나는 류진혁을 좋아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이 수근거릴 것 같았다.
교실 문을 열자, 예상대로 몇몇 학생들이 나를 쳐다봤다.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시우 선배랑 사귀는 거 맞대..."
"진짜? 부럽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은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응... 괜찮아..."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특히 류진혁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는 자기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진혁아... 오해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강시우 선배가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한여름 학생, 잠깐 나와봐요."
"네, 선배님..."
나는 선배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제 게시판 사진 봤어요?"
"네... 죄송합니다. 제 때문에 선배님까지 곤란하시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해는 곧 풀릴 거예요."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다만..."
선배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여름 학생, 혹시 류진혁 좋아해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 아니... 그게..."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선배한테."
시우 선배의 진지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좋아해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고백이었다.
시우 선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역시..."
"선배님?"
"아니에요. 그럼 여름 학생, 진혁이한테 가서 오해 풀어요. 그 애, 지금 오해하고 있을 거예요."
"어떻게 아세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니까요. 진혁이 표정만 봐도 알아요."
시우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가요. 용기 내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류진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 지금 말해야 해.'
나는 용기를 내서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진혁아."
"..."
"나... 할 말이 있어."
진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어제 그 사진... 오해야. 시우 선배랑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
"학생회 일 때문에 만나는 거고, 선배님은 그냥 후배 챙겨주시는 거야. 나는..."
나는 심호흡을 했다.
"나는 시우 선배 안 좋아해."
진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래?"
"응. 진짜야."
"...다행이다."
진혁이 작게 웃었다. 아주 작은 미소였지만, 그 미소가 내 심장을 또 한 번 뛰게 만들었다.
"여름아."
"응?"
"앞으로 오해받을 만한 행동 하지 마."
"...응."
"나... 신경 쓰이니까."
진혁의 마지막 말에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신경 쓰인다고...? 나한테...?'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진혁아."
"뭐가?"
"오해 안 하고... 내 말 믿어줘서."
진혁은 대답 대신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순간, 교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헐, 저거 봐..."
"진혁이가 여름이 머리를..."
"대박..."
나는 황급히 자리로 돌아왔다. 은채가 흥분한 표정으로 나를 흔들었다.
"야, 한여름! 지금 뭐야? 진혁이가 네 머리 쓰다듬었어!"
"조, 조용히 해..."
"이거 완전... 완전 플래그 아니야?!"
은채의 말에 나는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 나와 류진혁 사이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3화 끝]
4화: 14.5도의 거리




류진혁이 내 머리를 쓰다듬은 그날 이후, 학교는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한여름이랑 류진혁 사귀는 거 아니야?"
"아니래. 근데 분위기 심상치 않던데?"
"시우 선배는 어떻게 된 거야?"
복도를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수근거림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은채는 오히려 신나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여름아, 이거 완전 로맨스 드라마 아니야? 남주가 여주 질투하다가 고백하는 거!"
"무슨 소리야... 진혁이는 그냥..."
"그냥? 그냥이 어딨어? 네 머리 쓰다듬고, '신경 쓰인다'고 했잖아!"
은채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날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진혁의 손길, 그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그 눈빛...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있어."
은채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진혁이한테 고백할 거야?"
"뭐?! 고백?!"
"당연하지! 이 분위기면 고백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건... 아직..."
나는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고백이라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축제 때 하면 되잖아! 완전 로맨틱하게!"
"은채야... 나 그런 용기 없어..."
"에이,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은채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고백...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 나는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은채와 짝꿍 장기자랑 연습을 하기로 했으니까.
"자, 오늘은 본격적으로 안무 연습이다!"
은채가 신나게 음악을 틀었다. 우리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여름아, 좀 더 자신감 있게! 축제 때 진혁이도 볼 텐데!"
"그러니까 더 떨려..."
"에이,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은채의 격려에 나는 다시 춤을 췄다. 30분 넘게 연습하자 제법 동작이 자연스러워졌다.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은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여름아."
"응?"
"너 진짜 진혁이 좋아하는 거 맞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해."
처음으로 확실하게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은채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축제 때 고백해. 내가 분위기 만들어줄게."
"은채야..."
"괜찮아. 진혁이도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눈빛이 달랐어."
"정말...?"
"응. 확신해."
은채의 말에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정말... 진혁도 나를?
방과 후,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농구부 연습을 촬영해야 했으니까.
체육관 문을 열자,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류진혁이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다른 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3점 라인에 서서 슛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실패할 때마다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켜고 그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열 번째 시도였을까. 공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림을 통과했다.
하지만 진혁은 웃지 않았다. 그저 다시 공을 집어 들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걸까?'
궁금해진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진혁아."
공을 들고 있던 진혁이 놀라서 돌아봤다.
"한여름? 언제 온 거야?"
"조금 전에... 촬영하러."
"아..."
진혁은 공을 바닥에 놓고 땀을 닦았다.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다른 부원들은?"
"오늘 일찍 끝났어. 나만 남아서 연습하는 거야."
"왜? 혼자서?"
진혁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축제 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
"누구한테?"
내 질문에 진혁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너한테."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나, 나한테?"
"응. 너 농구 경기 촬영한다며. 그럼 내 모습도 찍힐 테고... 카메라에 멋있게 담기고 싶어서."
진혁의 솔직한 고백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진혁아... 너는 이미 충분히 멋있어."
"뭐?"
"카메라로 보는 너... 정말 멋있어. 농구할 때의 눈빛, 포기하지 않는 모습, 팀원들 챙기는 모습... 다 멋있어."
내 말에 진혁의 얼굴도 붉어졌다.
"그, 그래?"
"응. 진짜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한여름."
"응?"
"너... 카메라로 날 많이 찍잖아."
"어... 응..."
"이유가 뭐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그게... 네가 카메라 속에서 제일 빛나서..."
"그게 무슨 뜻이야?"
진혁이 한 발짝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그냥... 네가 농구할 때가 제일 진짜 같아서... 그 모습이 좋아서..."
내 대답에 진혁은 작게 웃었다.
"한여름."
"응?"
"나도 너 찍는 거 좋아해."
"네?"
"카메라 뒤에 숨어서 열심히 촬영하는 너.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너. 그런 모습이... 좋아."
진혁의 고백에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진혁아..."
"나... 너 좋아해, 한여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류진혁이 방금... 고백한 거야?
"뭐... 뭐라고...?"
"좋아한다고. 한여름."
진혁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번엔 더 확실하게.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 나도..."
"응?"
"나도... 좋아해, 진혁아."
내 고백에 진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처음 보는, 정말 환한 미소였다.
"다행이다."
"뭐가?"
"내 마음이 혼자가 아니라서."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한여름, 우리... 사귈래?"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됐다.
체육관을 나서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한여름."
"응?"
"내일부터 학교에서 어떻게 할까? 사람들한테 말할 거야?"
진혁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비밀로 하자. 축제 끝나고 말하는 게 어때?"
"왜?"
"지금 말하면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아. 축제 준비도 해야 하고..."
"그것도 그렇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만의 비밀이네."
"응. 우리만의 비밀."
우리는 웃으며 학교를 나섰다.
"그나저나 은채한테는 말할 거야?"
"음... 은채는 이미 눈치챘을 것 같은데?"
"그렇겠네. 그 친구 육감이 좋더라."
우리는 웃으며 걸었다. 손을 잡고 걷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진혁아."
"응?"
"축제 때 멋진 경기 보여줘. 내가 다 찍을게."
"그래. 너만 보고 할게."
진혁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꿈만 같았다.
류진혁이 나한테 고백했다.
우리는 연인이 됐다.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진혁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진혁: 잘 들어갔어?]
[나: 응! 너도?]
[진혁: 응. 오늘... 고마워.]
[나: 뭐가?]
[진혁: 내 마음 받아줘서. 나 진짜 떨렸거든.]
[나: 나도 떨렸어... 심장 터질 뻔했어.]
[진혁: ㅋㅋㅋ 귀엽다.]
[나: 뭐가!]
[진혁: 한여름, 내일 봐.]
[나: 응, 내일 봐!]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을 보니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연애구나.'
가슴이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 게 설렜다. 진혁을 만날 수 있으니까.
교실에 들어서자 은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한여름."
"왜, 왜?"
"너 뭔가 달라졌어."
"뭐가?"
"표정이... 완전 행복해 보여."
은채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관찰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에이, 그냥 날씨가 좋아서..."
"거짓말~ 뭔가 있지?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무 일도 없었어!"
하지만 은채는 쉽게 속지 않았다. 그녀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한여름! 솔직하게 말해! 진혁이랑 무슨 일 있었지?"
"그, 그게..."
"역시! 뭐야, 뭐야? 고백받았어?"
은채의 정확한 추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헐!!!!"
은채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조, 조용히 해!"
"미안, 미안! 근데 진짜야? 진혁이가 고백했어?"
"...응."
"대박! 완전 대박! 그래서? 사귀는 거야?"
"...응."
"으아아악!!!"
은채가 나를 꼭 껴안았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를 떼어냈다.
"근데 아직 비밀이야. 축제 끝나고 공개하기로 했어."
"알았어! 비밀 지킬게!"
은채가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바로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류진혁이 들어왔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진혁은 작게 미소 지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우리만의 비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점심시간, 나는 홍보 영상 촬영을 위해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밴드부 연습실, 미술부 작업실, 댄스팀 연습실...
모든 곳에서 학생들은 축제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정말 열심이구나.'
나는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여름 학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강시우 선배가 서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촬영 잘 되고 있어요?"
"네, 좋은 장면들 많이 담았어요."
"다행이네요."
시우 선배는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여름 학생, 류진혁이랑... 잘 됐어요?"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어제 체육관에서 나오는 거 봤어요. 둘이 손 잡고."
"아..."
들켰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됐어요."
"그렇구나. 축하해요."
시우 선배는 쓸쓸하게 웃었다.
"선배님...?"
"아니에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진혁이 좋은 애예요. 여름 학생한테 잘해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네?"
"진혁이 잘 챙겨줘요. 그 애,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속은 여린 애거든요."
시우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그럴게요."
"좋아요. 그럼 홍보 영상 완성되면 같이 확인해요."
"네, 선배님!"
시우 선배는 미소 지으며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우 선배... 좋은 분이야. 좋은 선배를 만났구나.'
방과 후, 나는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진혁의 연습을 촬영하기로 했으니까.
체육관에 도착하니 농구부 아이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실전 연습이다! 축제 때처럼 해보자!"
코치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켰다. 렌즈를 통해 진혁을 찾았다.
그는 팀원들과 작전을 의논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가끔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을 격려했다.
'저런 모습도 있구나...'
나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연습 경기가 시작됐다. 진혁은 코트를 종횡무진했다. 드리블, 패스, 슛... 모든 동작이 완벽했다.
마지막 슛이 성공하자 팀원들이 환호했다. 진혁도 환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로 화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구나.'
가슴이 따뜻해졌다.
연습이 끝나고, 진혁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도 열심히 찍었어?"
"응. 오늘 정말 멋있었어."
"그래?"
진혁이 수줍게 웃었다. 주변을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학교 앞 떡볶이집."
"좋아!"
우리는 몰래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학교 앞 떡볶이집은 학생들로 붐볐다. 우리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여기 떡볶이 진짜 맛있어."
"나도 자주 와. 은채랑."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축제 이야기, 농구 이야기, 그리고 사소한 일상 이야기까지...
모든 게 즐거웠다.
"한여름."
"응?"
"축제 때 내 경기 보러 와줄 거지?"
"당연하지! 내가 직접 촬영하는데."
"그럼 너만 보고 할게."
"농구공도 봐야지."
"그것보다 넌 더 중요해."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야... 그런 말 갑자기 하면 어떡해..."
"왜? 사실인데."
진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며 그를 쳐다봤다.
'이 사람... 은근히 장난기가 있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우리는 떡볶이를 다 먹고 학교 앞을 걸었다.
"한여름."
"응?"
"손 잡아도 돼?"
"여기서? 사람들 많은데..."
"괜찮아.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진혁아."
"응?"
"축제까지... 23일 남았어."
"응. 알아."
"그때까지 열심히 준비하자. 너는 농구, 나는 영상이랑 장기자랑."
"그래. 둘 다 잘해보자."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가을밤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온도계가 14.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의 설렘처럼, 딱 좋은 온도였다.
[4화 끝]
5화: 비밀 연애의 달콤함




"한여름, 너 요즘 왜 이렇게 행복해 보여?"
아침 조회가 끝나고, 옆 반 친구 지민이가 물었다. 나는 황급히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응? 그냥... 축제 준비가 재밌어서?"
"흠... 뭔가 수상한데..."
지민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표정 관리 좀 해야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류진혁과 사귀기 시작한 후로 모든 게 행복했으니까.
"여름아."
은채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너 완전 들킬 것 같아.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진짜?"
"응. 진혁이 볼 때마다 웃고, 메시지 올 때마다 얼굴 빨개지고..."
"아... 어떡하지..."
"그냥 공개하는 게 어때? 어차피 다들 눈치챌 것 같은데."
"아직은... 좀 더 우리끼리만 있고 싶어."
내 말에 은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데 조심해. 특히 진혁이 팬들..."
"팬들?"
"응. 3학년 선배들 중에 진혁이 좋아하는 사람들 꽤 있거든. 알게 되면 좀... 무섭지 않을까?"
은채의 말에 나는 걱정이 됐다. 하지만 진혁을 믿기로 했다.
점심시간,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진혁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아."
"진혁아!"
나는 반갑게 달려가 그의 옆에 섰다. 주변을 살피니 아무도 없었다.
"점심 먹었어?"
"아니, 너랑 같이 먹으려고."
진혁이 편의점 도시락 두 개를 꺼냈다.
"내가 사왔어. 네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
"어? 내가 언제 김치볶음밥 좋아한다고 했어?"
"안 했어. 근데 급식 때 네가 김치볶음밥 나오면 맛있게 먹더라."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
"관찰했지. 네가 나 관찰하는 것처럼."
진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도시락을 열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고마워. 잘 먹을게."
우리는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여름아."
"응?"
"축제까지 22일 남았어."
"응, 알아."
"짝꿍 장기자랑 연습은 잘 돼?"
"응. 은채가 잘 가르쳐줘서. 너는 농구 연습 어때?"
"괜찮아. 팀워크도 좋고."
진혁이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장기자랑 때 무슨 노래 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
"왜? 궁금해?"
"응. 미리 들어보고 싶어서."
"비밀이야. 당일 날 깜짝 놀라게 해줄 거야."
내 대답에 진혁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기대할게."
"응. 대신 너도 농구 경기 때 멋진 모습 보여줘."
"당연하지. 너만 보고 할 건데."
진혁의 말에 나는 웃었다.
도시락을 다 먹고, 우리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저기 구름 봐. 토끼 같지 않아?"
"어? 정말 그렇네."
"나는 카메라로 하늘도 자주 찍어. 매일 다른 모양의 구름이 있거든."
"그럼 오늘 구름도 찍을 거야?"
"응!"
나는 카메라를 꺼내 하늘을 촬영했다. 그러다 렌즈를 진혁 쪽으로 돌렸다.
"어? 갑자기 왜?"
"너도 오늘의 기록이니까."
나는 진혁을 촬영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피했다.
"야, 창피하잖아."
"왜? 평소에는 잘 찍히면서."
"그건... 모르고 찍힌 거잖아."
"지금도 똑같아. 자연스럽게 있어봐."
진혁은 할 수 없다는 듯 옥상 난간에 기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여름."
"응?"
"너 렌즈로 나 볼 때 어떻게 보여?"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카메라를 내렸다.
"음... 진짜 같아 보여."
"진짜?"
"응.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무뚝뚝한 모습 말고, 진짜 류진혁. 열정적이고, 따뜻하고, 가끔 장난기도 있는... 그런 진짜 모습."
내 대답에 진혁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네가 좋은가 봐."
"응?"
"너는 나를 진짜로 봐주니까."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나도 너를 진짜로 보고 싶어, 한여름."
"...이미 보고 있잖아."
"더 보고 싶어. 더 알고 싶어."
진혁의 진심 어린 말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더 알고 싶어. 너에 대해."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시우 선배와 홍보 영상 편집 작업을 하기로 했으니까.
"여름 학생, 왔어요?"
"네, 선배님."
나는 선배 옆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봤다. 지금까지 촬영한 영상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와... 선배님, 정리 깔끔하게 하셨네요."
"이 정도는 해야죠. 자, 이제 본격적으로 편집해볼까요?"
시우 선배가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배웠다.
"여기 이 장면... 농구부 연습하는 거 정말 잘 찍었네요."
화면에 진혁이 슛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감사합니다..."
"특히 이 각도... 전문가 같아요. 여름 학생, 나중에 영상 관련 일 해도 되겠는걸요?"
"에이, 그 정도까지는..."
"진심이에요. 재능 있어요."
시우 선배의 칭찬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한 시간 넘게 편집 작업을 했다. 각 동아리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이고, 배경음악을 넣고, 자막을 넣었다.
"완성이다!"
시우 선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홍보 영상이 재생됐다.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 웃는 얼굴들, 그리고 축제를 기대하는 분위기...
모든 게 완벽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서는 못 만들었을 거예요."
"아니에요. 여름 학생이 촬영을 잘해줘서 편집하기 쉬웠어요."
시우 선배는 파일을 저장하며 말했다.
"내일 조회 시간에 전교생한테 보여줄 거예요. 축제 분위기 띄우려고."
"네! 다들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요, 여름 학생."
"선배님도 수고하셨어요!"
나는 학생회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한여름."
돌아보니 진혁이 서 있었다.
"진혁아? 아직 안 갔어?"
"응. 너 기다렸어."
"나를?"
"같이 가려고."
진혁의 말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가자!"
우리는 학교를 나섰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 학생회실에서 뭐 했어?"
"홍보 영상 편집했어. 내일 조회 시간에 보여줄 거야."
"오, 기대되는데. 내 모습도 나와?"
"당연하지. 네가 제일 많이 나와."
내 대답에 진혁이 웃었다.
"그럼 내일 꼭 봐야겠네."
우리는 학교 앞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샀다.
"여름아, 여기 앉자."
진혁이 편의점 앞 벤치를 가리켰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한여름."
"응?"
"우리 사귄 지 벌써 3일째야."
"응, 알아."
"시간 진짜 빠르다."
"그러게. 어제 고백한 것 같은데."
우리는 웃었다.
"여름아."
"응?"
"비밀 연애... 어때?"
진혁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음... 달콤해. 우리만 아는 비밀이니까."
"나도 그래. 근데 가끔은..."
"응?"
"다른 사람들한테도 자랑하고 싶어. 내 여자친구 예쁘다고."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야... 갑자기 그런 말 하면 어떡해..."
"사실인데?"
"그래도..."
나는 부끄러워서 음료수를 마셨다.
"진혁아."
"응?"
"축제 끝나면... 공개할 거지?"
"응. 그때는 떳떳하게 손잡고 다니는 거야."
"...좋아."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음료수를 마셨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였다.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진혁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진혁: 잘 들어갔어?]
[나: 응! 너도?]
[진혁: 응. 오늘 재밌었어.]
[나: 나도!]
[진혁: 내일 아침에 봐.]
[나: 응, 내일 봐!]
[진혁: 한여름.]
[나: 왜?]
[진혁: 좋은 꿈 꿔.]
[나: 너도!]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준비한 영상이 있습니다. 축제 준비 과정을 담은 홍보 영상인데요, 학생회에서 직접 제작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이 나왔다. 밴드부, 연극반, 미술부, 댄스팀...
그리고 농구부.
진혁이 슛하는 장면이 나오자 학생들이 환호했다.
"우와, 대박!"
"진혁이 진짜 멋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영상을 봤다. 시우 선배가 정말 잘 편집해줬다.
영상이 끝나자 강당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축제 정말 기대되는데?"
"완전 재밌을 것 같아!"
학생들의 기대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뿌듯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는데, 진혁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아."
"응?"
"영상 진짜 잘 만들었더라."
"고마워. 시우 선배가 도와주셔서 가능했어."
"네 촬영 실력이 좋았어. 진짜로."
진혁의 칭찬에 나는 환하게 웃었다.
점심시간, 또다시 옥상에서 만났다.
"오늘도 도시락 사왔어?"
"응. 오늘은 불고기 덮밥."
우리는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여름아."
"응?"
"우리 처음 만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
"음... 같은 반 된 게 3월이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처음."
"진짜 처음?"
"응. 사실 나 중1 때 너 봤어."
진혁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중1 때? 우리 같은 반도 아니었는데?"
"입학식 날. 너 혼자 벚꽃 사진 찍고 있더라. 작은 카메라 들고."
"아..."
그때가 기억났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정에 핀 벚꽃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걸 어게 기억해?"
"그때부터 눈에 띄었어.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모습이."
"진혁아..."
"그때부터 가끔씩 봤어.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운동장에서... 항상 카메라 들고 뭔가를 찍고 있더라."
"나도 몰랐어..."
"당연하지. 나 표현 못하잖아."
진혁이 쑥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네가 방송부 카메라 담당 맡았다고 했을 때 기뻤어. 나도 네 렌즈에 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진혁아... 그럼 너도 나를..."
"응. 오래전부터 좋아했어, 한여름."
진혁의 고백에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네가 농구할 때 처음 봤어. 그때 반했어."
"정말?"
"응.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게 너무 멋있었어."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운명이었나 봐."
"그런가?"
"응. 서로를 몰래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진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신기하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방과 후,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농구부 연습을 촬영해야 했으니까.
"한여름 학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3학년 선배 두 명이 서 있었다.
"네?"
"너 류진혁이랑 친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어... 같은 반이라서요..."
"진혁이한테 이거 좀 전해줄래?"
선배들이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고백 편지야. 우리 친구가 진혁이 좋아하는데 직접 전하기 부끄럽대."
"아..."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편지를 받았다.
"부탁해!"
선배들이 가버리고, 나는 편지를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연습이 끝나고, 진혁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도 열심히 찍었어?"
"응... 근데 이거..."
나는 편지를 건넸다.
"뭐야, 이거?"
"3학년 선배들이 전해달라고..."
진혁이 편지를 펼쳐봤다. 표정이 곤란해졌다.
"고백 편지네..."
"...응."
"여름아, 나..."
"괜찮아. 거절할 거잖아?"
내 말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겐 네가 있는데."
"그럼 됐어."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생기겠지...'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한여름, 걱정하지 마. 나한텐 너밖에 없어."
"...응. 믿어."
우리는 손을 잡고 체육관을 나갔다.
하지만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앞으로 생길 더 큰 오해의 시작이 될 줄은...
[5화 끝]
삽화 텍스트
삽화 1: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진혁과 여름이.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삽화 2: 여름이가 카메라로 진혁을 촬영하는 장면. 진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피하고 있다.
삽화 3: 편의점 앞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두 사람. 석양을 배경으로 손을 잡고 있다.
삽화 4: 체육관 앞, 3학년 선배들이 여름이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장면. 여름이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6화: 흔들리는 마음
"한여름, 너 요즘 좀 이상해."
은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우리는 옥상에서 짝꿍 장기자랑 연습을 하고 있었다.
"뭐가?"
"표정이 어두워.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나는 어제 일을 떠올렸다. 진혁에게 전달한 고백 편지. 그리고 오늘 아침, 복도에서 본 광경.
3학년 선배가 진혁을 복도 구석으로 불러내 이야기하는 걸 봤다. 진혁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뭔가 설명하고 있었고, 선배는 실망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여름아, 혹시 진혁이 때문에?"
은채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3학년 선배가 진혁이한테 고백 편지를 전해달래서..."
"헐, 그래서?"
"진혁이가 오늘 아침에 거절했어. 내가 봤어."
"그럼 다행이잖아?"
"응... 근데..."
나는 말을 흐렸다.
"왠지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생길 것 같아서 불안해. 진혁이는 인기가 많잖아."
은채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여름아, 진혁이는 너를 좋아해. 그거 하나만 믿으면 돼."
"...응."
"그리고 말이야, 진혁이가 널 선택한 건 이유가 있을 거야. 다른 애들이 아니라 너를 선택한 거잖아."
은채의 말에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고마워, 은채야."
"뭘. 친구 좋자고 있는 거지!"
은채가 환하게 웃으며 음악을 다시 틀었다.
"자, 이제 연습하자! 축제까지 20일밖에 안 남았어!"
점심시간,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진혁과의 약속 시간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진혁아... 괜찮은 거지?'
10분이 지나고, 옥상 문이 열렸다.
"미안, 늦었어."
진혁이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응... 아침에 선배한테 거절했는데, 점심시간에 또 찾아와서..."
"또?"
"응. 왜 안 되냐고, 이유를 알려달라고..."
진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어."
"나를 말한 거야?"
"아니, 이름은 안 밝혔어. 우리 아직 비밀이잖아."
진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뭐라고 했어?"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어. 그랬더니..."
진혁이 잠시 망설였다.
"꼭 알아낼 거라고 하더라."
"뭐?!"
"괜찮아. 조심하면 돼."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한여름,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처리할게."
"...응."
하지만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진혁은 내 불안한 마음을 알았는지, 평소보다 더 많이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다.
"여름아, 장기자랑 연습은 잘 돼?"
"응. 은채가 잘 가르쳐줘서."
"무슨 노래 하는지 이제 알려줘도 되지 않아?"
"안 돼! 비밀이야!"
내가 장난스럽게 거절하자 진혁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쳇, 그럼 축제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응! 그때 깜짝 놀라!"
우리는 웃으며 도시락을 먹었다.
"진혁아."
"응?"
"너... 농구 경기 긴장돼?"
"조금. 근데 네가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내가?"
"응. 네가 응원해주면 힘이 날 것 같아서."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당연히 응원할 거야. 열심히 촬영도 하고."
"고마워."
진혁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미술부실로 향했다. 축제 포스터 작업을 촬영하기로 했으니까.
미술부실 문을 열자 학생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촬영하러 왔어요."
"아, 방송부! 어서 와요!"
미술부 부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학생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축제 포스터, 각 동아리 간판, 장식물들...
모든 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여름 학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강시우 선배가 서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촬영 열심히 하고 있네요."
"네, 미술부 작업이 정말 멋져서요."
시우 선배는 잠시 주저하더니 조용히 물었다.
"여름 학생, 오늘 점심시간에 진혁이 만났어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진혁이한테 들었어요. 3학년 선배 일로 좀 힘들어하더라고요."
"아..."
"괜찮아요? 많이 불안하진 않아요?"
시우 선배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 불안해요. 진혁이는 인기가 많으니까..."
"이해해요. 근데 말이에요, 한여름 학생."
시우 선배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진혁이는 한번 마음 준 사람한테는 정말 진심이에요. 그 애가 여름 학생 선택한 건 확실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요. 도와줄 수 있는 건 돕고 싶으니까."
"네, 선배님."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미술부실을 나갔다.
'시우 선배... 정말 좋은 분이야.'
촬영을 마치고 복도를 걷는데, 앞에서 여학생 몇 명이 수군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들었어? 류진혁 좋아하는 사람 있대."
"진짜? 누구야?"
"모르겠대. 말 안 해준대."
"에이, 궁금한데..."
그 학생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소문이 퍼지고 있어...'
교실로 돌아오니 은채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아."
"왜? 무슨 일이야?"
"너... 학교 커뮤니티 봤어?"
"아니, 왜?"
은채가 휴대폰을 보여줬다. 학교 익명 게시판이었다.
[익명] 류진혁 좋아하는 사람 누구야?
오늘 복도에서 3학년 선배한테 거절하는 거 봤는데,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더라. 누군지 아는 사람?
댓글들이 쭉 달려 있었다.
"혹시 2학년?"
"아니면 1학년?"
"같은 반 아니야?"
"한여름이 아닐까? 요즘 둘이 자주 보이던데..."
마지막 댓글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름아...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아."
"어떡하지..."
"일단 진혁이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은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과 후,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진혁에게 이 일을 알려줘야 했다.
체육관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진혁아, 솔직하게 말해줄래? 그 여자 누구야?"
3학년 선배의 목소리였다.
"선배님, 말씀드렸잖아요. 말할 수 없어요."
"왜? 혹시 그 여자... 한여름이야?"
나는 숨이 멎었다.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 너 요즘 한여름이랑 자주 보이더라. 점심시간에도 같이 있고."
"그건... 같은 반이라서..."
"진혁아, 네가 한여름이 좋아하는 거 다 알아. 숨기지 마."
선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선배님..."
"한여름이한테 말할 거야. 진혁이 네가 자기 좋아한다고."
"안 돼요!"
진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안 돼? 사실이잖아."
"제발... 그러지 마세요. 여름이한테 피해 가요."
"피해? 오히려 좋아할 걸? 류진혁이 자기 좋아한다는데."
"선배님!"
진혁의 절박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체육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님, 그만하세요."
둘 다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한여름...? 언제부터 있었어?"
"방금 왔어요. 그리고..."
나는 심호흡을 하고 선배를 똑바로 쳐다봤다.
"진혁이가 좋아하는 사람... 저 맞아요."
"뭐?!"
선배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한여름아...!"
진혁이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저도 진혁이 좋아해요. 우리 사귀고 있어요."
"여름아, 왜 갑자기..."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진혁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 진혁아. 내 마음대로..."
"아니야. 괜찮아."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오히려 고마워. 용기 내줘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3학년 선배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가, 결국 체육관을 나갔다.
"미안해요... 진혁 선배..."
선배의 마지막 말이 쓸쓸하게 들렸다.
체육관에 우리 둘만 남았다.
"한여름... 괜찮아?"
"응... 너는?"
"나도 괜찮아."
진혁이 나를 안았다.
"미안해. 내가 제대로 처리 못해서 네가 나설 수밖에 없었어."
"아니야. 이게 맞는 것 같아."
나는 진혁의 품에 안겨 말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공개할 거였잖아. 그리고..."
"응?"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어. 우리 사귀는 거."
진혁이 나를 꼭 안았다.
"고마워, 한여름. 날 위해 용기 내줘서."
"나도 고마워. 날 선택해줘서."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한여름이랑 류진혁 사귄대!"
"진짜? 대박!"
"어제 3학년 선배가 직접 봤대!"
복도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부럽다..."
"한여름이가 어떻게...?"
"진혁이 진짜 잘생겼는데..."
나는 고개를 들고 걸었다. 부끄러웠지만, 후회는 없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은채가 환호하며 달려왔다.
"여름아! 들었어! 공개한 거 맞아?"
"응... 어쩌다 보니..."
"대박! 완전 대박! 우리 여름이 당당해!"
은채가 나를 꼭 껴안았다.
"앞으로 좀 힘들 수도 있어. 진혁이 팬들 많거든."
"괜찮아. 진혁이가 있으니까."
내 대답에 은채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 마음가짐이면 돼!"
바로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류진혁이 들어왔다.
학생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진혁은 신경 쓰지 않고 내 책상으로 다가왔다.
"아침 먹었어?"
"아니, 아직..."
"그럼 같이 먹으러 가자. 매점."
진혁이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교실이 웅성거렸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자."
"응!"
우리는 손을 잡고 교실을 나갔다.
복도를 걷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되니까.
"한여름."
"응?"
"후회 안 해?"
"전혀. 너는?"
"나도."
진혁이 내 손을 꼭 쥐었다.
"앞으로 떳떳하게 사귀자."
"응!"
우리는 웃으며 매점으로 향했다.
축제까지 19일.
이제 우리는 떳떳한 연인이었다.
[6화 끝]
7화: 공개 연애의 시작




"한여름, 진짜 대단하다!"
쉬는 시간, 여학생 몇 명이 내 책상으로 몰려왔다.
"류진혁이랑 사귀는 거 진짜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질문 공세에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밝게 대답했다.
"얼마 안 됐어. 그냥... 자연스럽게?"
"와, 부럽다! 진혁이 진짜 멋있는데!"
"너희 어울려! 진짜!"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몇몇 여학생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특히 진혁을 좋아했던 아이들의 눈빛에는 질투가 섞여 있었다.
"뭐야,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진혁이가 왜 한여름이를...?"
작은 소리였지만 들렸다.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여름아, 신경 쓰지 마."
은채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질투하는 거야. 네가 진혁이 얻었으니까."
"응... 알아."
"당당하게 있어. 너는 진혁이가 선택한 사람이잖아."
은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 진혁이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한여름, 점심 먹으러 가자."
"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진혁아, 우리도 같이 가도 돼?"
농구부 친구 민우가 물었다.
"아니, 오늘은 여름이랑 둘이."
진혁의 단호한 대답에 민우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오, 열애 중이네~"
"시끄러워."
진혁이 민우의 머리를 툭 쳤다.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손을 잡고 급식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저기 한여름이랑 류진혁..."
"완전 잘 어울린다!"
"부럽다..."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이제는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한여름."
"응?"
"괜찮아?"
"응. 너는?"
"나도 괜찮아. 오히려 좋아."
"뭐가?"
"당당하게 네 손 잡을 수 있어서."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야... 사람 많은데..."
"괜찮아. 이제 다 아는데."
진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급식실에서 밥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은채도 우리 테이블에 합류했다.
"완전 공개 데이트네! 학교에서!"
"은채야, 여기 급식실이야..."
"그래도 좋잖아! 이제 숨지 않아도 되니까!"
은채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건 맞아."
"그나저나 여름아, 짝꿍 장기자랑 연습 더 열심히 해야겠다. 진혁이한테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은채야...!"
나는 얼굴을 붉히며 은채를 말렸지만, 진혁이 관심 있다는 듯 물었다.
"무슨 노래 하는데?"
"비밀이야!"
"여름아가 절대 안 알려줘. 깜짝 놀래키고 싶대."
은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럼 더 기대되는데."
진혁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내 심장이 또 빠르게 뛰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방송부실로 향했다. 민서 선배가 나를 부른 것이다.
"한여름, 왔어?"
"네, 선배님."
"축제 홍보 영상 반응이 정말 좋더라. 잘했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민서 선배가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너 류진혁이랑 사귄다며?"
"아... 네..."
"축하해! 근데 촬영하는 데 문제없겠어? 진혁이 찍을 때 떨리거나 그러지 않아?"
선배의 걱정에 나는 웃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축제 당일 메인 경기 촬영 부탁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방송부실을 나오는데, 복도에서 3학년 선배 몇 명과 마주쳤다.
어제 체육관에서 봤던 그 선배였다.
"한여름 학생."
"네, 선배님..."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좀 감정적이었나 봐."
선배가 쓸쓸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진혁이 잘 챙겨줘. 좋은 애니까."
"...네. 감사합니다."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선배님... 괜찮으실까...'
체육관으로 향하는데, 앞에서 여학생 세 명이 나를 막아섰다.
"한여름이지?"
낯선 얼굴들이었다. 2학년 선배들 같았다.
"네... 왜 그러세요?"
"너 류진혁이랑 사귄다며?"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나는 긴장했지만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뭐가 좋아서 사귀는 건데? 진혁이 인기 많은 거 알고 꼬신 거야?"
"꼬신 게 아니에요. 좋아해서 사귀는 거예요."
"좋아한다고? 너 같은 애가?"
선배 중 한 명이 비웃듯 말했다.
"카메라나 들고 다니는 애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진혁이가 좋아해?"
"선배님..."
"진혁이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냥 헤어져."
선배들의 말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화가 났지만, 참으려고 했다.
"저희 일이니까 상관하지 말아주세요."
"뭐야? 지금 선배한테 반말하는 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선배님들, 그만하세요."
강시우 선배였다.
"시우야?"
"후배들 괴롭히는 거 별로 안 좋아 보여요."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만하시고 가세요. 제가 학생회장으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시우 선배의 단호한 목소리에 선배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갔다.
"한여름 학생, 괜찮아요?"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바로 말해요. 제가 도와줄게요."
"감사합니다."
시우 선배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시우 선배... 정말 좋은 분이야.'
체육관에 도착하니 농구부 연습이 한창이었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켰다. 진혁은 3점 슛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성공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공개 연애를 한 후에도 진혁을 찍는 건 여전히 설렜다.
연습이 끝나고, 진혁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도 열심히 찍었어?"
"응. 오늘 컨디션 좋더라."
"응. 기분이 좋아서."
"왜?"
"너랑 떳떳하게 사귀니까."
진혁의 말에 나는 웃었다.
"나도 좋아."
우리는 체육관을 나섰다.
"한여름."
"응?"
"오늘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좀 어둡던데."
"어? 티 났어?"
"응. 뭐 있었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2학년 선배들이 나를 막아섰던 일.
진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그랬어?"
"괜찮아. 시우 선배님이 도와주셨어."
"이름 알려줘. 내가 가서..."
"안 돼!"
나는 진혁의 팔을 잡았다.
"괜찮아. 그냥 질투하는 거야.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진혁아, 나는 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만 믿으면 돼. 다른 사람들 말은 중요하지 않아."
내 말에 진혁이 나를 꼭 안았다.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당연하지."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다. 공개 연애의 시작,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선배들의 질투...
삐- 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학교 커뮤니티 알림이었다.
[익명] 한여름이 뭐가 좋은 거야?
솔직히 별로 예쁘지도 않고, 특별한 것도 없는데 진혁이가 왜 사귀는지 모르겠음. 진혁이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ㄹㅇ 별로임"
"진혁이 인기 이용하려는 거 아님?"
"아니야 둘이 잘 어울려"
"진혁이가 선택한 건데 왜 남이 참견함"
찬반이 갈렸다.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신경 쓰지 말자. 중요한 건 진혁이와 나니까.'
삐- 삐-
진혁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진혁: 여름아, 커뮤니티 보지 마.]
[나: 봤어?]
[진혁: 응. 신경 쓰지 마. 질투하는 애들이야.]
[나: 알아. 괜찮아.]
[진혁: 한여름.]
[나: 응?]
[진혁: 너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 말은 중요하지 않아.]
[나: 고마워, 진혁아.]
[진혁: 내일 봐. 좋은 꿈 꿔.]
[나: 너도!]
나는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맞아. 중요한 건 우리 둘이니까.'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좀 나아진 것 같았다.
"한여름아, 어제 게시판 글 봤어?"
"응... 봤어."
"신경 쓰지 마. 그냥 질투하는 애들이야."
"응, 알아."
교실에 들어서니 책상 위에 쪽지가 있었다.
'한여름아, 응원해! 진혁이랑 행복해! - 같은 반 친구들'
쪽지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가 놔준 거야?"
"우리! 어제 게시판 글 보고 기분 나쁠 것 같아서."
반 친구들이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얘들아..."
"괜찮아! 우리는 너 응원해!"
친구들의 따뜻한 말에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점심시간, 진혁과 함께 급식을 먹고 있는데 시우 선배가 다가왔다.
"진혁아, 한여름 학생."
"선배님."
"학생회에서 결정한 건데, 축제 때 '베스트 커플' 투표를 할 거야."
"베스트 커플요?"
"응. 축제 분위기 띄우려고. 너희도 참가할래?"
"저희요?"
나는 당황했지만, 진혁이 먼저 대답했다.
"할게요."
"진짜?"
"응. 당당하게 하자."
진혁이 내 손을 잡았다.
"좋아요. 그럼 기대할게요."
시우 선배가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진혁아, 괜찮아? 베스트 커플 투표..."
"괜찮아. 오히려 좋아."
"왜?"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우리가 잘 어울린다는 걸."
진혁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런가..."
"응. 그리고 여름아."
"응?"
"축제 때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비밀이야. 축제 때 알려줄게."
진혁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야! 궁금하잖아!"
"나도 네가 무슨 노래 하는지 궁금한데?"
"그건... 비밀이야!"
우리는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방과 후, 나는 은채와 함께 옥상에서 장기자랑 연습을 했다.
"여름아, 이제 완벽해! 축제 때 대박 날 것 같아!"
"정말?"
"응! 진혁이도 깜짝 놀랄 거야!"
은채의 말에 나는 기대가 됐다.
"은채야, 고마워. 네가 없었으면 못 했을 거야."
"무슨 소리! 친구 좋자고 있는 거지!"
은채가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베스트 커플 투표 들었어?"
"응, 들었어."
"너희 1등 할 것 같은데? 완전 잘 어울리잖아!"
"에이, 설마..."
"진짜야! 나도 투표할 거야!"
은채의 말에 나는 웃었다.
연습을 마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진혁의 연습을 촬영하려고.
체육관에 들어서니 농구부 아이들이 실전처럼 연습하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축제 당일처럼 해보자!"
코치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진혁은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드리블, 패스, 슛... 모든 게 완벽했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렌즈 속의 진혁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 사람... 내 남자친구구나.'
여전히 믿기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경기가 끝나고 진혁이 내게 다가왔다.
"어땠어?"
"완벽했어. 축제 때도 이렇게만 하면 돼."
"응. 열심히 할게."
진혁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여름."
"응?"
"축제까지 18일 남았어."
"응, 알아."
"그때까지 열심히 하자. 너는 장기자랑, 나는 농구."
"응! 그리고 베스트 커플 투표도!"
내 말에 진혁이 웃었다.
"그것도."
우리는 손을 잡고 체육관을 나갔다.
공개 연애 3일째.
힘든 일도 있었지만, 진혁과 함께라면 괜찮았다.
[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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