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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쫓는 이유_02

8화

과거의 영상
“야, 이거 봐.”
누군가가 도현의 휴대폰을 돌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어린 다은이 CF 속에서 울고 있었다.
“진짜 서다은이잖아!”
“와, 대박. 왜 그런 걸 숨겼대?”
교실 안은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다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그거 꺼.”
“아, 미안. 근데 진짜 네가—”
“꺼!”
그녀의 눈빛은 울 듯이 떨렸다.
지운은 뛰어와 도현의 폰을 잡았다.
“너 미쳤어? 왜 이런 걸 퍼뜨려?”
“재밌잖아. 진실인데 뭐.”
“진실이 상처가 되면, 그건 그냥 폭력이야.”
지운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교실은 고요해졌다.
다은은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메고 나갔다.
지운은 그대로 뒤를 따라나섰다.
복도 끝, 창문 앞에서 다은이 울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괜찮아. 익숙하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지운은 손수건을 내밀었다.
“넌…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거야.”
다은은 고개를 떨구며 손수건을 꼭 쥐었다.
9화

교실의 침묵
그날 이후, 교실은 싸늘해졌다.
다은이 지나가면 속삭임이 따라붙었다.
“연예인 병이래.”
“자기 잘난 줄 아나 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운은 점점 화가 났다.
“왜 아무 말 안 해?”
“내가 말해봤자 달라질 거 없으니까.”
“그래도 네 편이 있잖아.”
“누가? 너?”
“응. 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운아, 네가 내 편이라 해도, 세상은 안 바뀌어.”
“그럼 내가 세상을 바꿀게.”
다은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너,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하지 마.”
“난 아무한테나 하는 말 아니야.”
그날 하교길, 지운은 일부러 다은보다 먼저 가서, 학교 앞 괴상한 낙서를 지웠다.
‘서아린 OUT’
그 문구 위에, 그는 큼지막하게 썼다.
“서다은, 환영해.”
다음 날 아침, 그 문구를 본 다은은 말없이 웃었다.
그 웃음은 작았지만, 지운은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10화

비밀의 편지
그날 오후, 지운의 책상 위에 흰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 애를 쫓지 마. 다칠 거야.’
글씨는 둔탁하고 급하게 쓴 흔적이 있었다.
지운은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은을 찾았다.
“혹시, 이거 네가 쓴 거야?”
“뭐야 그게?”
“몰라. 누가 내 책상에 놨어.”
다은은 잠시 편지를 보더니 얼굴이 굳었다.
“…지운아, 부탁이야. 진짜로 나 쫓지 마.”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그래. 나랑 엮이면… 네가 상처 받아.”
“그럼 도망치면 돼?”
“그래. 그게 나한테도 너한테도 좋아.”
지운은 조용히 웃었다.
“그럼 난 반대로 할래. 도망치는 네 뒤를 쫓을 거야.”
“진짜 왜 이래…”
“그게 나니까.”
다은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다은의 노트 한 장이 찢겨 있었다.
‘추노 — 쫓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아프다.’
11화

다은의 눈물
밤하늘은 유난히 흐렸다.
지운은 교문을 나서다 옥상 불빛이 켜진 걸 보았다.
‘저 시간에 누가 있지?’
그는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옥상 난간에 다은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서다은.”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운아, 넌 왜 이렇게 끈질겨?”
“넌 왜 이렇게 자꾸 도망쳐?”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냥 숨고 싶은 거야.”
“숨으면 숨을수록, 찾고 싶은 사람이 생겨.”
다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누구한테 미움도, 관심도 안 받는 그런 평범함.
근데 사람들은 나를 놓아주질 않아.”
지운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럼 내가 지켜줄게.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넌 못 지켜. 너도 다칠 거야.”
“그럼 같이 다치면 돼.”
잠시 침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운은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겠다.”
다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둘 다겠지.”
12화

추노의 노트
역사 시간,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은 ‘추노’, 즉 조선시대 도망친 노비를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보자.”
지운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웠다.
선생님이 계속 말했다.
“쫓는 자도, 도망치는 자도 결국 자유를 갈망했다. 그게 인간이야.”
그 말에 지운은 노트를 폈다.
그리고 제목을 적었다.
‘추노 — 쫓는다는 건, 잃은 마음을 찾는 일.’
그 옆자리에서 다은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멋있다.”
“나한테 한 말이야?”
“응. 네가 쓰는 말치곤 진지해서.”
“고마워. 근데 그거 너한테 쓴 말이야.”
다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뭐?”
“너 쫓는 게, 그냥 장난 아니야. 진심이야.”
교실 뒤쪽에서 도현이 조용히 그 대화를 지켜봤다.
그의 손엔 공책이 쥐어져 있었다.
‘한지운 = 서다은’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13화

닮은 이야기
점심시간, 도서관의 햇살이 따스했다.
다은이 조용히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지운이 다가와 살짝 말했다.
“뭐 읽어?”
“<추노> 각색 연극 대본이래.”
“우리 학교 축제에서 하려는 거?”
“응. 선생님이 해보래. 나보고 주인공 하래.”
“잘됐네.”
“근데… 난 쫓기는 역할이래.”
지운은 웃었다.
“딱이네.”
“뭐가?”
“너, 현실에서도 쫓기잖아.”
“그럼 넌 추노꾼이야?”
“그럴지도.”
“그럼 마지막엔 날 잡아?”
“아니. 잡으면 네가 사라질 것 같아.”
“그럼?”
“그냥, 같이 도망칠래.”
다은은 웃었다.
“그 대사, 연극에서 써도 되겠다.”
“그럼 나 대본 공동작가 시켜줘.”
“생각해볼게.”
그날, 두 사람은 도서관 한 구석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책 냄새와 햇빛 사이, 어색한 침묵이 따뜻했다.
14화

도현의 질투
운동장 한쪽에서 도현은 농구공을 세게 던졌다.
‘서다은, 한지운… 둘 다 웃기네.’
하율이 다가와 물었다.
“너, 요즘 표정이 왜 그래?”
“아니, 그냥.”
“그냥 아니지. 혹시 다은이 좋아하냐?”
도현은 고개를 돌렸다.
“누가 그 따위 애를 좋아해.”
하지만 그날 오후, 도현은 다은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서다은, 너 연극 한다며. 나도 무대 도와줄까?”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럼 무대 뒤에서라도 볼게.”
지운이 그 장면을 멀리서 봤다.
묘하게 불편했다.
그날 저녁, 단체 채팅방에 이상한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다은이랑 지운이 사귄대 ㅋㅋ’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지운은 휴대폰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추노는 항상 험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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