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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의 친구라고? — 태종의 시대, 나는 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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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태종 10년 · 1410년 봄

다시 궁으로 불려가다

💡 선한 행동은 언젠가 빛을 발한다

봄이 왔다. 새봄이 열여섯에 처음 경복궁 담장을 넘었던 그 봄과 꼭 닮은 봄이었다.

그사이 아홉 해가 지났다. 새봄은 스물네 살이 됐다. 할머니의 약방은 이제 반은 새봄이 꾸려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직접 약재를 고르고, 낮엔 손님을 맞고, 저녁엔 내일 쓸 약을 달였다. 시전 골목 아이들은 커서 이제 새봄을 '언니'가 아니라 '선생님'이라 불렀다. 도윤은 아버지를 이어 내관 쪽 일을 시작했고, 소월은—나중에 알게 됐지만—왕자빈 자리를 거절하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새봄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게 때로는 편했고, 때로는 아쉬웠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새봄이 약방 마당에서 할머니와 나란히 약을 다듬고 있었다.

그때 골목 어귀에 낯익은 옷차림이 나타났다. 내관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 명이 아니었다. 셋이었다. 그리고 그 내관들이 새봄을 보자마자 허리를 깊이 숙였다.

"한새봄 씨를 찾아왔습니다. 전하의 명으로."

새봄의 손이 멈췄다. 할머니도 멈추셨다. 둘이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로요."

새봄이 침착하게 물었다. 내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최근 한양 시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고 들으셨습니다. 직접 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알게 됐을까. 새봄이 가르친 아이 중 하나가 어딘가에서 눈에 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경로인지.

'오 년 가까이 했는데. 그사이에 그게 궁까지 닿은 거야? 근데 이거, 방원이 일부러 알아본 건 아닐까.'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봐라."

"할머니——"

"전하의 명이다. 거절할 수 없어. 그리고 네가 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니."

새봄은 앞치마를 벗었다. 손을 씻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했다. 내관들이 기다렸다.

시전 골목을 나서며 새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홉 해 만이었다. 그 담장을 다시 지나가는 것이.

— 25회 끝 —

다음 회: 너 많이 변했구나 — 아니, 너도

제 26 회태종 10년 · 1410년 봄 — 같은 날

너 많이 변했구나 — 아니, 너도

💡 사람은 변하지만 본질은 남는다

편전 앞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새봄은 안뜰 한쪽에 서서 기다렸다.

경복궁은 기억보다 더 넓고 단단해져 있었다. 아홉 해 사이에 손질이 된 것인지, 아니면 새봄이 어렸을 때 너무 작은 눈으로 봤던 것인지. 햇볕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새봄이 고개를 들었다. 편전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변했다.

당연히 변했다. 열여섯에서 스물다섯이 됐으니까. 키도 더 컸고 어깨도 더 넓어졌다. 얼굴에 왕의 무게가 더해져 있었다. 눈가에 아주 희미하게 그늘이 졌다. 그 그늘이 예전에는 없었다.

그런데 눈빛은 같았다. 처음 후원에서 마주쳤을 때의, 차갑지 않은 차가운 눈빛이.

방원이 새봄 앞에서 멈췄다.

두 사람 모두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방원이 먼저 말했다.

"많이 변했다."

"왕자님도요."

"왕이다."

"……전하도요."

방원이 새봄을 위아래로 봤다. 값비싸지 않은 옷이었지만 단정했다. 손에 약재 물이 조금 배어 있었다. 아직도 직접 약을 다루는 것 같았다. 그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앉아라."

안뜰 한쪽 석대 위에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둘이 마주 앉았다. 시중드는 사람들이 물러났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네. 몇 해 됐어요."

"왜 시작했느냐."

"글 모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요. 특히 여자 아이들. 배울 기회가 없어서 못 배우는 거잖아요. 기회가 있으면 배울 수 있는데."

방원이 가만히 들었다.

"지금 몇 명이나 가르치느냐."

"한 번에 열다섯에서 스무 명 사이예요. 글이랑 숫자랑 기본 예절 정도요. 도윤이랑 소월이도 같이 해요."

방원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월이도."

"네. 의외죠?"

"아니."

방원이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소월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안에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밖으로 내지 못했던 것뿐이고."

새봄이 그 말을 들으며 방원을 봤다.

'아홉 해 만인데 어색하지 않다. 이상하다. 오래 못 봤던 것 같지가 않아. 이 사람 곁에 있으면 그냥 자연스러워. 예전에도 그랬는데.'

"저한테 뭘 시키려고 부르신 거예요?"

새봄이 직접 물었다. 방원이 새봄을 봤다. 그 눈에 뭔가가 지나갔다. 반가움, 아니면 안도, 아니면 그 둘 다.

"그건 조금 이따 말하겠다. 우선은……."

방원이 말을 잇지 않았다. 새봄이 기다렸다.

"잘 있었느냐."

그 물음이 편지에 쓰여 있던 말과 똑같았다. 새봄은 그게 생각나서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네. 잘 있었어요. 전하는요?"

"……나도."

짧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짧음 안에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새봄은 더 묻지 않았다. 그냥 그 대답을 받았다.

안뜰에 봄바람이 지나갔다. 매화가 막 지고 배꽃이 피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 26회 끝 —

다음 회: 왕의 특명: 백성의 소리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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