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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소설

그림자 위작단 : 하이틴로멘스 03

breathinghappiness 2026. 2. 21. 07:55

그림자 위작단

21회: 승리 후의 현실

판결이 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언론의 관심은 여전했지만, 하늘의 일상은 조금씩 평범해지고 있었다.

"하늘아, 숙제 다 했어?"

아버지가 물었다.

"아직요. 수학 문제가 너무 어려워요."

"그럼 빨리 해. 내일 학교 가야지."

평범한 대화. 평범한 일상.

하늘은 이런 평범함이 좋았다. 지난 몇 달간 너무 특별한 일들만 겪었으니까.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늘아, 전화 왔어."

아버지가 휴대폰을 건넸다. 김태훈 변호사였다.

"하늘 학생, 좋은 소식이에요."

"무슨 소식인데요?"

"박민준 측에서 항소 포기했어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요? 다시 재판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네. 완전히 끝났어요. 이제 배상금 집행 절차만 남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늘은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빠, 항소 안 한대요!"

"정말?"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진짜 끝난 거네. 완전히."

"네!"

두 사람은 껴안고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아빠, 배상금은 언제 받아요?"

"글쎄... 변호사님 말로는 몇 달 걸릴 수도 있대."

"그럼 그동안은요?"

"일해야지. 인쇄소 일은 계속하고 있잖아."

하늘은 걱정됐다. 아버지는 재판 기간 동안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아빠,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아. 이제는 희망이 있으니까. 곧 돈도 받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야."

다음 날 학교에서, 윤아가 신문을 보여줬다.

"하늘아, 이거 봤어?"

신문에는 사설이 실려 있었다.

'14세 소녀가 가르쳐준 정의'

"...강하늘 양의 용기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한 개인의 작은 행동이 법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꾸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 이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하늘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렸다.

"으, 부끄러워."

"좋은 얘기잖아. 자랑스러워해야지."

"그래도 이렇게 계속 주목받는 건 부담스러워."

바로 그때, 담임 선생님이 하늘을 불렀다.

"하늘아, 교장실로 좀 가자."

"네?"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 외에 낯선 사람 두 명이 있었다.

"하늘 학생, 소개할게요. 이분들은 교육청에서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하늘 학생. 저희는 서울시 교육청 인성교육팀입니다."

중년 여성이 악수를 청했다.

"하늘 학생의 이야기를 교육 자료로 만들고 싶어서 왔어요."

"교육 자료요?"

"네. 정의, 용기, 시민의식... 이런 주제로 중고등학생들에게 교육하려고 해요. 하늘 학생 사례가 완벽한 교재거든요."

하늘은 당황했다.

"저는... 그냥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 '당연한 일'을 많은 사람들이 못 해요. 그래서 배워야 하는 거죠."

"동의해주시겠어요? 학교 방문 강연도 몇 차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하늘은 망설였다. 강연? 자신이?

"생각해볼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이죠.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집으로 돌아와서, 하늘은 아버지와 의논했다.

"아빠, 저 강연 같은 거 해야 할까요?"

"네가 하고 싶으면 해. 하기 싫으면 안 하고."

"잘 모르겠어요.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까요?"

아버지는 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움이 될 거야.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어. 어른들한테도, 아이들한테도."

"하지만 떨릴 것 같아요."

"그럼 나랑 연습하자. 뭘 말할지."

그날부터 하늘과 아버지는 저녁마다 연습했다.

하늘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들어주고 조언했다.

"더 자신감 있게 말해봐."

"이 부분은 너무 길어. 간단하게 정리하자."

일주일 후, 하늘은 교육청에 연락했다.

"할게요. 강연."

"정말요? 고마워요, 하늘 학생!"

첫 강연은 한 달 후였다.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 200명 앞에서.

하늘은 떨리는 다리로 강당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하늘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계속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중학생이에요. 좋아하는 과목은 미술이고,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이에요."

학생들이 웃었다. 하늘은 조금 긴장이 풀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하늘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고통을 발견한 것.

진실을 파헤친 것.

두려움과 싸운 것.

그리고 결국 승리한 것.

4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질문했다.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어요. 엄청. 하지만 해야 했어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요?"

하늘은 잠시 생각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에요. 두려워도 하는 거예요."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다가왔다.

"언니, 저도 사실은..."

여학생은 눈물을 글썽였다.

"저희 아빠도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계세요. 근데 말 못 하세요. 잘리까 봐..."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도와드리고 싶어요. 언니처럼. 근데 무서워요."

하늘은 여학생의 손을 잡았다.

"무서운 게 당연해요. 저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혼자가 아니에요."

하늘은 명함을 건넬 수 있는 게 없어서, 종이에 김태훈 변호사 연락처를 적어줬다.

"여기 연락해보세요. 이분이 도와주실 거예요. 무료로요."

"정말요?"

"네. 그리고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세요. 선생님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여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고맙습니다, 언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뿌듯했다.

'내 이야기가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그날 밤, 김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늘 학생, 오늘 강연 갔던 학생이 연락 왔어요."

"아, 그 학생이요?"

"네. 아버지 일 상담하고 싶다고. 제가 도와주기로 했어요."

"다행이다..."

"하늘 학생 덕분이에요. 당신이 그 아이에게 용기를 줬어요."

하늘은 미소 지었다.

한편, 박민준은 교도소에서 복잡한 심정이었다.

접견실에 변호사가 찾아왔다.

"항소는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이기기 어렵고, 오히려 형량만 늘어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박민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상은 어떻게 됩니까?"

"갤러리 자산을 처분하면 대부분 배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인 재산도 일부 압류될 거예요."

"그것도 어쩔 수 없겠죠."

박민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처음에는 정말 작가들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심이 생겼다.

돈, 명예, 권력...

그리고 그 욕심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강하늘... 그 아이가 옳았어.'

박민준은 인정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14세 소녀가 더 용감했다는 것을.

며칠 후, 하늘은 또 다른 제안을 받았다.

"하늘 학생, 책을 써보는 건 어때요?"

한 출판사 편집자가 찾아왔다.

"책이요?"

"네. 하늘 학생의 이야기를 책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논픽션이요."

"제가 책을요?"

"물론 전문 작가가 도와드릴 거예요. 하늘 학생은 이야기만 해주시면 돼요."

하늘은 또 망설였다.

"생각해볼게요."

"좋아요. 그런데 하늘 학생, 한 가지만 알려드릴게요."

"뭔데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늘 학생 이야기를 왜곡해서 전하고 있어요. 진실을 제대로 알리려면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중요해요."

그 말이 하늘을 움직였다.

"알겠어요. 할게요."

그날 밤, 하늘은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부터 책을 쓰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왜곡되지 않은, 진실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특히 나와 같은 아이들이.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중요한 건 용기다.

그리고 정의를 향한 마음이다.'

다음 주부터 하늘은 작가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3시간씩.

하늘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했다.

처음 아버지 그림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

윤아와 함께 조사하던 날들.

조민지, 최예린 작가를 만났을 때.

한강공원에서의 위험한 순간.

법정에서 증언하던 떨림.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무서웠던 순간은요?"

작가가 물었다.

"많았어요. 협박 전화 받았을 때, 한강공원에서 박민준을 만났을 때, 법정에 섰을 때..."

"그런데도 계속한 이유는?"

"포기하면... 아빠가 계속 고통받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도요."

"후회는 안 해요?"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힘들었지만, 옳은 일이었으니까요."

3개월 후, 원고가 완성됐다.

제목은 '14세의 용기 - 한 중학생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

"하늘아, 원고 읽어봤어?"

아버지가 물었다.

"응. 좀 부끄럽긴 한데... 잘 쓴 것 같아."

"나도 읽었어. 감동적이더라."

아버지의 눈가가 붉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네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다 나와 있더라."

"아빠..."

"고맙다, 하늘아. 나를 구해줘서."

"아빠가 저를 키워주셨잖아요. 당연한 거예요."

두 사람은 껴안았다.

책은 두 달 후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하늘의 일상은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 숙제, 친구들과의 시간...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용기를 가지고.

22회: 새로운 시작들

3월이 되었다. 하늘은 고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두고 있었다.

"하늘아, 교복 사러 가자."

"네, 엄마..."

하늘은 말을 멈췄다. 습관적으로 '엄마'라고 부를 뻔 했다. 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아빠,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아니야. 같이 가자. 아빠가 사주고 싶어."

백화점 교복 매장에서, 하늘은 미술 영재고 교복을 입어봤다.

"어때?"

"예쁘다, 우리 딸."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다.

"이 교복 입고 학교 다닐 생각하니까 기분이 어떠니?"

"설레요. 그런데 동시에 떨려요."

"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잖아요. 다들 저를 '그 유명한 강하늘'로만 볼까 봐 걱정돼요."

아버지는 하늘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는 그냥 하늘이야. 그림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 그걸 잊지 마."

"네, 아빠."

교복을 사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서점을 지나쳤다.

"아빠, 잠깐만요!"

하늘은 쇼윈도에 멈춰 섰다.

진열대에 자신의 책이 놓여 있었다.

'14세의 용기'

"벌써 나왔네?"

"응. 출판사에서 미리 보내준다고 했는데..."

하늘은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책이 '화제의 신간' 코너에 쌓여 있었다.

"와..."

하늘은 조심스럽게 책을 집어 들었다. 표지에는 하늘의 뒷모습 실루엣이 있었다. 법정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한 권 사자."

아버지가 말했다.

"왜요? 우리한테 책 많이 주는데."

"그래도 직접 사고 싶어. 내 딸이 쓴 책인데."

계산대에서, 직원이 책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이 책! 저희 서점에서 예약 주문이 엄청 많았어요!"

"정말요?"

"네! 벌써 100권 넘게 예약됐어요. 학교 단체 주문도 들어왔고요."

하늘은 놀랐다. 자신의 책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줄은 몰랐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늘은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헌정사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은 책장을 넘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3개월 전의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자신이 그 일들을 해냈을까?

하지만 책 속의 이야기는 생생했다.

두려움, 용기, 좌절, 희망...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날 밤, SNS가 난리가 났다.

#14세의용기 해시태그가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다.

"이 책 읽고 울었어요"

"중학생 딸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

"용기가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됨"

댓글들이 쏟아졌다.

윤아도 연락했다.

"하늘아! 네 책 샀어! 지금 읽고 있는데 완전 감동이야!"

"윤아야, 너는 그 일 다 알잖아."

"그래도 책으로 읽으니까 또 다르더라.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새삼 느껴져."

"고마워, 윤아야. 네 이야기도 많이 나와."

"응. 나도 책에 나와서 신기해. 우리 진짜 대단한 일 했다, 그치?"

"응. 우리가 해냈어."

한편, 배상금 문제도 진전이 있었다.

김태훈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태수 씨, 박민준 갤러리 자산 처분이 끝났어요."

"그럼 돈을..."

"네. 다음 주에 각 피해자들한테 배상금이 지급될 겁니다."

아버지는 전화를 끊고 하늘을 안았다.

"하늘아, 드디어 끝났어. 진짜로."

"아빠, 돈 받으면 뭐 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했다.

"일단 빚부터 갚아야지. 그리고..."

"그리고요?"

"작은 작업실을 하나 얻을까 해. 집에서 계속 작업하기는 좁으니까."

"좋아요! 아빠 전용 작업실!"

"그리고 너 미술 학원비도 내고."

"아빠, 저는 괜찮아요."

"아니야. 네가 미대 가려면 실기 실력을 키워야지. 좋은 선생님한테 배워."

하늘은 고마웠다.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 후, 정말로 배상금이 입금되었다.

아버지는 1,200만 원을 받았다. 밀린 작업비 전액이었다.

"하늘아, 이리 와봐."

아버지는 통장을 보여줬다.

"봤지?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아빠가 일해서 번 거잖아요."

"하지만 네가 아니었으면 못 받았을 거야."

아버지는 현금 50만 원을 꺼내 하늘에게 건넸다.

"이건 네 거야."

"아빠, 이게 뭐예요?"

"네 수고비.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 축하금."

"아빠, 전 필요 없어요."

"받아. 네가 쓰고 싶은 데 써."

하늘은 돈을 받으며 눈물이 났다.

"고마워요, 아빠."

"내가 더 고맙지."

다음 날, 하늘은 윤아를 만났다.

"윤아야, 오늘 내가 쏜다!"

"진짜? 어디서 돈 났어?"

"아빠가 주셨어.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두 사람은 평소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에 갔다.

"와, 여기 비싼 데인데?"

"괜찮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식사를 하며, 윤아가 물었다.

"하늘아, 고등학교 가면 우리 계속 연락할 거지?"

"당연하지! 넌 내 제일 친한 친구야."

"나도. 너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그때 겁먹고 도망쳤을 때..."

"그런 얘기 하지 마. 넌 나중에 다시 돌아왔잖아."

"그래도 미안했어."

"미안할 거 없어. 누구나 무서울 수 있어."

윤아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하늘아, 우리 평생 친구하자."

"응, 평생."

며칠 후, 조민지 작가가 하늘을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했다.

"하늘아, 보여줄 게 있어."

작업실에는 새로운 그림들이 가득했다.

"와... 작가님, 이거 다 그리셨어요?"

"응. 요즘 그림이 잘 그려져.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봐."

조민지의 그림들은 밝고 희망적이었다. 예전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 그림들로 다음 달에 개인전을 열 거야."

"정말요? 축하드려요!"

"너도 와야 해. VIP로 초대할게."

"꼭 갈게요!"

조민지는 하늘을 안았다.

"하늘아, 고마워. 너 덕분에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됐어."

"제가 뭘 했다고요."

"많이 했지. 용기를 줬잖아. 그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아?"

하늘은 뿌듯했다.

자신의 행동이 조민지 작가에게,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이.

3월 말, 하늘은 두 번째 강연 요청을 받았다.

이번에는 대학교였다.

"하늘 학생, 우리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특강을 해주실 수 있나요?"

서울의 한 명문대 학생회장이 연락했다.

"대학생들한테요? 제가요?"

"네. 신입생들에게 '용기와 실천'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해요."

하늘은 고민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가 격려했다.

"해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하지만 대학생들이 중학생 말을 들을까요?"

"네 이야기는 나이와 상관없어. 진실이니까."

하늘은 용기를 냈다.

"할게요."

강연 날, 대학교 대강당은 500명의 신입생들로 가득 찼다.

하늘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하늘입니다. 여러분보다... 많이 어리죠."

학생들이 웃었다.

"솔직히 여기 서기가 무섭습니다. 여러분은 다 대학생인데, 저는 아직 고등학생도 안 됐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것을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늘은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경험담.

그리고 배운 교훈들.

"저는 배웠습니다. 변화는 거대한 무언가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한 사람의 작은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나이, 지위, 돈...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용기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는 사실 대학에 와서도 불의를 많이 봤어요. 학생회 비리, 교수님들의 갑질... 근데 무서워서 못 말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혼자 하려고 하지 마세요.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그리고 증거를 모으세요.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냉정하게."

"그래도 보복이 두려운데요."

"두려운 게 당연해요. 저도 매일 밤 무서웠어요. 하지만..."

하늘은 학생들을 둘러봤다.

"침묵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 해요."

강연 후, 여러 학생들이 하늘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용기 받았어요."

"저도 작은 것부터 실천해볼게요."

"선배님, 존경합니다!"

하늘은 웃었다. '선배님'이라니.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강연 잘 끝났어요. 대학생들이 제 얘기 잘 들어줬어요!

곧 답장이 왔다.

잘했어, 딸. 저녁 준비해놨으니 빨리 와.

오늘 뭔데요?

비밀. 와서 봐.

하늘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작은 케이크와 꽃다발이 있었다.

"아빠, 이게 뭐예요?"

"고등학교 입학 축하. 미리 하는 거야."

테이블에는 하늘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아빠..."

"우리 딸, 정말 자랑스러워. 고등학생이 되다니."

"아빠, 저 아직 중학생인데요?"

"곧 될 거잖아. 미리 축하하는 거야."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계획.

하늘의 꿈.

아버지의 새로운 시작.

"아빠, 우리 정말 많이 바뀌었죠?"

"그러게. 6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어. 이렇게 될 줄."

"행복해요, 아빠?"

아버지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엄청 행복해. 네가 있어서."

하늘도 웃었다.

"저도요, 아빠."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 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무서웠지만, 해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다.

그리고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신기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니.

6개월 전만 해도 난 그냥 평범한 중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난 여전히 그림을 사랑한다.

여전히 윤아의 친구다.

여전히 아빠의 딸이다.

그리고 여전히 정의를 믿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어른이 되어도.

나는 계속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창밖으로 봄바람이 불어왔다.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었다.

하늘은 미소 지으며 잠들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되었다.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늘은 알았다.

어떤 일이 와도, 자신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용기를 가지고.

23회: 엄마의 전화

4월 첫째 주, 하늘은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쳤다.

미술 영재고등학교. 전국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모인 곳.

"너가 강하늘이구나. 반가워!"

같은 반 학생들이 다가왔다.

"TV에서 봤어. 정말 대단하더라."

"책도 읽었어. 완전 감동이었어!"

다행히 아이들은 하늘을 '유명인'이 아니라 '같은 학교 친구'로 대해줬다.

"나 김지우야. 서양화 전공이야."

"나는 박민서. 한국화."

"강하늘이에요. 저도 서양화요."

새로운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며, 하늘은 평범한 고등학생의 기분을 만끽했다.

"야, 하늘아. 이번 주말에 홍대 갤러리 투어 가는데 같이 갈래?"

"좋아!"

수업도 재미있었다. 미술 이론, 소묘, 회화...

하늘이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 이래서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지.'

하지만 평범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학 일주일 후, 하늘의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늘아?"

하늘은 숨이 멎었다.

이 목소리. 5년 만에 듣는 목소리.

"엄마...?"

"응. 엄마야."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어떻게 전화를..."

"뉴스 봤어. 너 나온 거. 그리고 책도 읽었어."

하늘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기쁨, 분노, 그리움, 배신감...

"왜 전화했어요?"

"보고 싶어서..."

"5년 동안은 안 보고 싶었으면서요?"

하늘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하늘아, 엄마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

"미안하다고 다예요? 엄마는 우리 버리고 갔잖아요!"

"나도 힘들었어. 너희 아빠는 그림만 그리고, 돈은 안 벌고..."

"그래서 우리 버렸어요? 그게 이유예요?"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엄마... 잘못했어. 진짜로. 그때는 젊었고, 미래가 안 보였어."

"지금은 보여요?"

"응. 이제는... 후회돼. 너를 버린 게."

하늘은 눈물이 났다.

"엄마, 왜 이제 와서... 왜 이제야..."

"하늘아, 엄마 한 번만 봐줘. 제발."

"싫어요."

"하늘아..."

"엄마는 우리가 힘들 때 없었잖아요. 아빠가 박민준한테 당할 때도, 제가 무서워서 밤마다 울 때도 없었잖아요!"

하늘은 울며 소리쳤다.

"이제 와서 엄마 행세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늘은 방에 주저앉아 울었다.

5년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엄마에 대한 분노.

버림받았다는 상처.

한참을 울고 나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하늘아, 집에 와 있니?"

"네..."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이상한데."

"아빠... 엄마한테 전화 왔어요."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긴 한숨이 들렸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아빠도 알았어요?"

"엄마가 나한테도 연락했어. 며칠 전에."

"뭐래요?"

"너를 보고 싶다고. 미안하다고."

하늘은 주먹을 쥐었다.

"저는... 안 보고 싶어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아빠는 네 편이야."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하늘을 안아줬다.

"힘들었지?"

"응..."

"엄마 얘기, 하고 싶어?"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생각하기도 싫어요."

"그래. 천천히 생각해. 급할 거 없어."

하지만 그날 밤, 엄마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하늘은 받지 않았다.

문자가 왔다.

'하늘아, 엄마 정말 미안해. 한 번만 만나자. 제발.'

하늘은 문자를 지워버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전화와 문자가 왔다.

하늘은 전부 무시했다.

윤아에게 털어놓았다.

"엄마한테 연락 왔어."

"진짜? 몇 년 만인데?"

"5년."

"뭐래?"

"보고 싶대. 미안하대."

윤아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 한편으로는 보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

"당연하지. 누가 그런 상황에서 안 화나겠어."

"너 같으면 어떻게 할래?"

윤아는 잠시 생각했다.

"음... 나 같으면 일단 만나는 것 같아. 그리고 할 말 다 하고."

"할 말?"

"응.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원망했는지. 다 쏟아내는 거지."

하늘은 고민에 빠졌다.

일주일 후, 하늘은 결심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번만 만나요. 하지만 용서는 안 할 거예요.'

답장이 즉시 왔다.

'고마워, 하늘아. 토요일 2시에 어때? 네가 정한 장소로 갈게.'

하늘은 집 근처 카페를 알려줬다.

토요일이 되었다.

하늘은 카페에 먼저 도착해 구석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5년 만에 엄마를 만난다.

어떤 모습일까? 변했을까?

2시 정각, 카페 문이 열렸다.

한 여자가 들어왔다.

하늘은 한눈에 알아봤다.

엄마였다.

5년 전보다 조금 나이 들어 보였지만, 여전히 엄마였다.

"하늘아..."

엄마가 다가왔다.

하늘은 일어서지 않았다. 차갑게 앉아 있었다.

"앉으세요."

엄마는 조심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많이... 컸구나."

"5년 지났으니까요."

"그래... 5년이나..."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늘아, 엄마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이미 들었어요."

"알아. 근데 직접 말하고 싶었어."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너 책 읽었어. 세 번이나."

"그래서요?"

"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어. 네 아빠도, 너도."

"이제 알았어요? 5년 동안은 몰랐고요?"

하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늘아, 엄마도 사람이야. 실수할 수 있어."

"실수요? 가족을 버린 게 실수예요?"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변명은 안 할게. 엄마가 잘못했어. 너무 이기적이었어."

"왜 지금 와요? 우리 잘될 때?"

하늘이 쏘아붙였다.

"우리 힘들 때는 어디 있었어요? 아빠가 박민준한테 당할 때, 우리가 생활비도 없어서 라면만 먹을 때는요?"

"그건..."

"이제 우리 책 나오고, 유명해지니까 오는 거 아니에요?"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럼 뭔데요?"

"보고 싶어서... 정말로. 매일 너 생각했어."

"거짓말."

"진짜야! 하늘아, 엄마 진짜 후회하고 있어!"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하늘도 눈물이 났다.

"엄마... 저 정말 힘들었어요."

"알아..."

"아빠도 힘들어하셨어요. 매일 밤 그림 그리면서 한숨 쉬시는 거 다 들었어요."

"미안해, 하늘아..."

"엄마는 편하게 살았겠죠. 우리 없으니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나도 안 편했어. 매일 후회하면서 살았어."

"그럼 왜 안 돌아왔어요?"

"부끄러웠어. 얼굴 들 수가 없었어."

엄마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진들이었다.

"이거... 매일 봤어."

사진에는 어린 하늘의 모습이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생일 파티, 가족 여행...

"이 사진들만 보면서 버텼어."

하늘은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

엄마가 있었던 시절.

"하늘아, 엄마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

"뭘요?"

"가족으로. 다시."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하늘아..."

"엄마는 우리 버렸어요. 5년 동안 연락도 안 했어요. 이제 와서 다시 가족이 되자고요?"

"엄마가 잘못했어. 뭐든지 할게. 보상할게."

"보상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하늘이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봤다.

"엄마가 없을 때... 저 정말 외로웠어요. 학교에서 애들이 '너네 엄마 어디 갔어?'라고 물을 때마다 죽고 싶었어요."

"미안해..."

"아빠 힘들어하실 때도,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저도 어렸으니까. 그때 엄마가 있었으면..."

하늘은 울며 말을 이었다.

"그때 엄마가 있었으면, 우리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도 울었다.

"알아... 엄마가 나빴어. 진짜로."

두 사람은 한참을 울었다.

카페 안이 조용해졌다.

하늘이 먼저 눈물을 닦았다.

"엄마, 저 이제 가볼게요."

"하늘아, 기다려..."

"더 할 말 없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늘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가요."

"하늘아!"

엄마가 하늘의 손을 잡았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제발."

하늘은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

"생각해볼게요. 그게 전부예요."

하늘은 카페를 나왔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비를 맞으며 걸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이 안 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흠뻑 젖어 있었다.

"하늘아! 왜 이렇게 젖었어?"

아버지가 놀라며 수건을 가져왔다.

"아빠..."

하늘은 아버지를 안았다.

"엄마 만났어요."

"어땠어?"

"힘들었어요. 너무."

아버지는 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어도 돼. 다 괜찮아."

하늘은 아버지 품에서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하늘이 물었다.

"아빠는... 엄마 용서했어요?"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용서했는지 모르겠어. 근데... 이제는 미워하지 않아."

"차이가 뭐예요?"

"용서는 잘못을 없던 걸로 하는 거고, 미워하지 않는 건 그냥 놔두는 거지."

"아빠는 엄마를 놔뒀어요?"

"응.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시간이 걸릴 거야. 하지만 넌 할 수 있어."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 엄마를 만났다.

5년 만에.

많이 울었다.

엄마도, 나도.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가족이 되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상처가 너무 깊다.

하지만 아빠 말처럼, 언젠가는 미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용서는 아니어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미 가족이 있다.

아빠가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엄마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하늘아, 오늘 만나줘서 고마워. 엄마 기다릴게. 네가 준비될 때까지.'

하늘은 문자를 읽고 삭제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어쩌면 영원히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하늘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엄마 없이도, 하늘은 잘 살 수 있었다.

이미 증명했다.

지난 5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늘은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그쳤다.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더 강해진 하늘과 함께.

24회: 책의 파장

엄마와의 만남 이후, 하늘은 학교생활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늘아, 이번 주말에 미술관 갈래?"

지우가 물었다.

"응, 좋아!"

친구들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사는 것.

그게 지금 하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하늘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하늘 학생, 이거 봤어요?"

담임 선생님이 신문을 보여줬다.

'14세의 용기, 베스트셀러 1위 등극'

하늘의 책이 출간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와... 진짜요?"

"축하해요! 작가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점심시간, 하늘의 휴대폰이 울렸다. 출판사였다.

"하늘 학생, 축하해요! 1위예요!"

편집자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지금까지 5만 부가 팔렸어요. 계속 증쇄 중이고요!"

"5만 부요?"

"네! 그리고 학교, 도서관, 기업체에서 단체 구매 문의가 쏟아지고 있어요."

"와..."

"그리고 한 가지 더요. 영화사에서 연락 왔어요."

"영화사요?"

"네. 하늘 학생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대요."

하늘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해보시고 연락주세요. 제안서 보내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하늘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화? 자기 이야기가?

"하늘아, 무슨 일이야? 표정이 이상한데?"

민서가 물었다.

"저기... 영화 제안이 들어왔대."

"뭐? 진짜?"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대박! 너 영화 주인공 되는 거야?"

"아니야,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거지..."

"그것도 대박이잖아!"

하늘은 어리둥절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영화 제안이 들어왔대요."

"영화?"

아버지도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네."

"하늘아,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무서워?"

"네. 영화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거잖아요. 우리 이야기를."

아버지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네가 결정해. 아빠는 네 선택을 존중할게."

며칠 후, 영화사 프로듀서가 하늘을 만나러 왔다.

"하늘 학생,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CJ ENM의 김선영 프로듀서입니다."

30대 후반의 지적인 인상의 여성이었다.

"책 정말 감동 깊게 읽었어요. 이건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늘 학생 이야기가 영화가 되는 것?"

하늘은 솔직하게 말했다.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왜 무서워요?"

"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까요? 왜곡되거나 각색되면 어떡하죠?"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그래서 하늘 학생의 참여가 필요해요."

"제 참여요?"

"네. 시나리오 감수, 촬영 자문... 하늘 학생이 직접 확인하고 승인하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그럴 수 있어요?"

"물론이죠. 이건 하늘 학생의 이야기니까요. 주인공의 동의 없이는 만들 수 없어요."

하늘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가족이랑 의논하고 싶어요."

"당연하죠.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그날 밤, 하늘은 가족 회의를 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 영화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알게 될 거야."

"그게 좋은 건가요?"

"좋을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아버지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생각해봐. 우리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

"그렇긴 한데..."

"물론 네가 불편하면 안 해도 돼. 이미 책으로도 충분히 전달됐으니까."

하늘은 고민에 빠졌다.

윤아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윤아야, 너 같으면 어떻게 할래?"

"나? 당연히 하지!"

윤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생각해봐. 영화가 되면 수백만 명이 볼 거잖아. 우리 이야기가!"

"그게 부담스러운데..."

"하늘아, 너 이미 유명해. 책도 베스트셀러고, 강연도 하고. 영화 하나 더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렇긴 한데..."

윤아는 하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나오고 싶어."

"너?"

"응! 나도 중요한 역할 했잖아. 영화에 나오면 진짜 멋질 것 같아!"

하늘은 웃었다. 윤아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김태훈 변호사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변호사님, 영화 제안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기회라고 봅니다. 하지만 계약서를 꼼꼼히 봐야 해요."

"계약서요?"

"네. 어떤 권리를 영화사에 넘기는지, 수익 배분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용 통제권을 하늘 학생이 가질 수 있는지."

"복잡하네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계약서 검토하고, 협상도 함께하죠."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일주일 후, 하늘은 결정했다.

"해보기로 했어요."

프로듀서에게 전화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늘 학생!"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시나리오는 제가 다 확인할 거예요. 그리고 왜곡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 요청할 거고요."

"당연하죠."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 아빠, 친구들, 피해자분들... 모두 동의를 받아야 해요."

"물론입니다. 그분들의 동의 없이는 진행 안 할게요."

계약 과정은 복잡했다.

김 변호사가 계약서를 검토하고, 여러 조항을 수정했다.

"여기 이 부분, '영화사가 내용을 자유롭게 각색할 수 있다'는 조항은 빼야 해요."

"대신 이렇게 바꿉시다. '중요한 사실 관계 변경은 하늘 학생의 승인을 받는다'."

한 달간의 협상 끝에, 계약이 성사되었다.

"축하합니다, 하늘 학생. 이제 공식적으로 영화 제작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영화 제작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시나리오 작업만 6개월은 걸릴 거예요."

"그 다음에 캐스팅, 촬영, 편집... 개봉까지는 최소 2년?"

하늘은 놀랐다.

"2년이나요?"

"네. 영화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럼 그동안 저는 뭘 하죠?"

"평범하게 사세요. 학교 다니고, 그림 그리고. 중간중간 우리가 자문 요청하면 도와주시고요."

하늘은 오히려 안도했다.

2년이면 충분히 평범한 생활을 할 시간이었다.

한편, 책의 인기는 계속되었다.

독자들의 편지가 쏟아졌다.

'하늘 학생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요. 저도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참고 있었는데, 신고하기로 했어요.'

'제 딸이 이 책을 읽고 많이 배웠대요. 정의가 뭔지, 용기가 뭔지.'

'중학생인데, 하늘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저도 용기 있는 사람이 될래요.'

하늘은 편지를 읽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의 이야기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어느 날, 특별한 편지가 왔다.

발신인은 '익명'.

하늘은 편지를 펼쳤다.

'하늘 학생에게,

저는 박민준 갤러리에서 일했던 직원입니다. 이수진이 아닌 다른 직원이에요.

당신 덕분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백하고 싶습니다.

박민준 뒤에는 더 큰 조직이 있습니다. 정치인, 재벌, 그들이 박민준을 비호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박민준을 무너뜨린 후, 그 조직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확대했고, 몇몇 인사들이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시작한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계속 용기를 잃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늘은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다.

자신이 한 일이 계속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박민준만이 아니라, 그 뒤의 부패한 시스템까지.

"아빠, 이거 봐요."

하늘은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우리가 한 일이... 계속되고 있대요."

아버지도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래. 네가 시작한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무서우면서도 뿌듯해요."

"그럴 만해. 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어."

그날 밤, 뉴스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다.

"검찰, 미술계 비리 수사 확대... 유명 인사 10여 명 포함"

"박민준 사건 이후 드러난 미술품 거래 비리"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등 혐의"

하늘은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한 작은 행동이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었구나.'

하지만 동시에 부담도 느꼈다.

'더 잘해야 하는 건 아닐까?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버지는 하늘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하늘아, 너무 부담 갖지 마."

"네?"

"네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

"하지만..."

"넌 이미 충분히 했어. 이제는 네 인생을 살아도 돼."

"제 인생이요?"

"응. 고등학생으로서의 인생. 그림 그리고, 친구들이랑 놀고, 사랑도 하고."

하늘은 얼굴이 빨개졌다.

"아빠! 사랑은 무슨..."

"뭐, 나중에는 하게 되겠지."

아버지가 웃었다.

하늘도 웃었다.

맞았다. 자신은 아직 열다섯 살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다시 용기를 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쉬어도 괜찮았다.

하늘은 창밖을 바라봤다.

봄이 깊어지고 있었다.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고, 세상은 아름다웠다.

하늘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봄을.

그리고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책상에 앉아 스케치북을 폈다.

연필을 들었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봄 풍경을.

평화로운 자신의 방을.

그리고 책상 위의 책, '14세의 용기'를.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이었다.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영웅적이면서도 일상적인.

그런 인생.

하늘은 미소 지으며 그림을 그렸다.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25회: 조용한 복수

5월이 되었다. 학교는 중간고사 준비로 분주했다.

"하늘아, 미술사 시험 범위 어디까지야?"

지우가 물었다.

"르네상스부터 인상파까지."

"아, 망했다. 아직 바로크도 안 봤는데."

평범한 고등학생의 대화.

하늘은 이런 일상이 좋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하늘아... 이거 봐."

TV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박민준, 교도소에서 자살 시도... 현재 병원 이송"

하늘은 숨이 멎었다.

"자살이요?"

"응. 아까 속보로 나왔어."

화면에는 앰뷸런스와 교도소 건물이 나왔다.

"박민준 씨는 오늘 오후 독방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으며,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동료 수감자의 신고로 발견되었지만, 이미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늘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박민준은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아빠, 저... 이상한가요?"

"뭐가?"

"박민준이 걱정돼요. 미워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하늘을 안아줬다.

"이상한 거 아니야. 그게 인간이야. 네가 착한 아이라는 증거지."

다음 날, 학교는 이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야, 박민준 자살 시도했대!"

"진짜? 하늘이 때문에?"

"뭔 소리야. 본인이 잘못해서 그런 거지."

하늘은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우가 다가왔다.

"하늘아, 괜찮아?"

"응... 그냥 복잡해."

"당연하지. 그 사람 때문에 네가 고생했는데."

"근데 죽으면... 안 되잖아."

"그래도 네 잘못은 아니야."

점심시간, 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늘아, 뉴스 봤지?"

"응..."

"너 괜찮아? 죄책감 같은 거 느끼는 거 아니지?"

"조금..."

"하늘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박민준이 스스로 선택한 거야."

"알아. 근데..."

하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저녁, 김태훈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늘 학생, 괜찮아요?"

"네... 그냥 좀 놀랐어요."

"당연히 놀라겠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이건 하늘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근데 제가 고소하지 않았으면..."

"하늘 학생, 박민준은 본인이 저지른 죄 때문에 거기 있는 거예요. 하늘 학생이 죄를 만든 게 아니에요."

"..."

"그리고 하늘 학생이 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들이 계속 피해를 입었을 거예요. 하늘 학생은 옳은 일을 한 거예요."

변호사의 말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며칠 후, 박민준의 상태에 대한 추가 보도가 나왔다.

"박민준, 의식 회복... 자살 동기는 '극심한 죄책감'"

병원에서 회복 중인 박민준은 짧은 인터뷰를 했다.

"저는... 제가 한 일을 후회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특히 강하늘 학생과 그 가족, 그리고 모든 피해자분들께..."

화면 속 박민준은 수척하고 창백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들이. 그래서..."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하늘은 복잡한 심경으로 화면을 봤다.

저게 진심일까? 아니면 감형을 위한 연기일까?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하늘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박민준이 진심으로 후회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했다.

"모르겠다. 사람 마음은 복잡하니까."

"만약 진심이라면... 우리가 너무 가혹했던 걸까요?"

"하늘아."

아버지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박민준이 후회하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그게 그의 죄를 없애지는 않아."

"..."

"그는 수년간 수십 명을 착취했어. 그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렸어. 후회한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는 건 아니야."

"그럼 용서는 안 되는 건가요?"

"용서는... 각자의 몫이야. 어떤 사람은 용서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못 할 수도 있어."

"아빠는요?"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아직 모르겠어. 미워하지는 않지만, 용서했는지는 모르겠어."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박민준의 변호사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면회를 요청한 것이다.

"박민준 씨가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합니다."

"사과요?"

"네. 회복하면 출소 후에라도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혹시 지금 병원에서 만나주실 수 있으신지..."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법정에서 다 끝냈습니다.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하늘도 동의했다.

"저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변호사는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그날 밤, 하늘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박민준을 만나지 않은 게 맞았을까?'

'만약 만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박민준을 대면할 준비가.

어쩌면 평생 준비가 안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도 괜찮았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

검찰은 박민준 배후 세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정형사가 하늘에게 연락했다.

"하늘 학생, 혹시 시간 있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다음 날, 하늘은 아버지와 함께 정형사를 만났다.

"사실은 말이에요..."

정형사는 서류를 꺼냈다.

"박민준 사건을 조사하다가 더 큰 걸 발견했습니다."

"더 큰 거요?"

"네. 박민준은 빙산의 일각이었어요. 뒤에 거대한 미술품 거래 비리 조직이 있었습니다."

정형사는 조직도를 보여줬다.

"재벌 회장,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이들이 박민준을 통해 미술품으로 뇌물을 주고받았습니다."

"와..."

"그리고 탈세, 자금 세탁... 규모가 수천억 원대예요."

아버지가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요?"

"박민준이 협조했습니다. 자살 시도 후에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모든 걸 털어놨습니다."

"그럼..."

"네. 곧 대규모 검거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형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들은 힘이 막강합니다. 우리를 방해하려 할 거예요. 그리고 혹시..."

정형사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 학생한테도 위협이 올 수 있습니다."

"위협이요?"

"네. 이 사건의 시작이 하늘 학생이니까요. 압박을 넣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늘은 긴장했다.

"어떤 압박이요?"

"협박, 회유, 명예훼손... 여러 방법이 있죠. 조심하세요."

정형사는 명함을 또 하나 건넸다.

"뭔가 이상한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세요. 24시간 연락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불안했다.

"아빠, 또 위험해지는 건가요?"

"괜찮아. 경찰이 보호해줄 거야."

"하지만..."

"하늘아, 우리는 이미 한 번 이겼어. 또 이길 수 있어."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 걸까?'

그날 밤, SNS에 이상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강하늘의 진실? 책에 안 나온 이야기'

'14세 소녀, 사실은 조작된 영웅?'

익명 계정들이 하늘을 공격하는 글을 올리고 있었다.

"하늘아, 이거 봤어?"

윤아가 황급히 전화했다.

"SNS에 너 욕하는 글이 엄청 많아!"

하늘은 휴대폰으로 확인했다.

정말로 여러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강하늘은 아버지를 이용해 유명해졌다'

'박민준은 사실 피해자다'

'14세의 용기는 거짓말로 쓴 책'

하늘은 손이 떨렸다.

"이게 뭐야..."

아버지에게 보여줬다.

"아빠, 이거..."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조직적이야. 정형사가 말한 압박이 시작된 거야."

"어떡해요?"

"일단 무시해. 대응하면 더 커질 수 있어."

하지만 다음 날,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하늘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야, 너 SNS 봤어?"

"뭔 소리야, 설마 믿는 거야?"

"근데 거짓말은 아닐 수도..."

하늘은 귀를 막고 싶었다.

점심시간, 지우와 민서가 다가왔다.

"하늘아, 괜찮아?"

"응..."

"우리는 안 믿어. 너 그런 애 아니잖아."

"고마워..."

하지만 학교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변호사와 통화 중이었다.

"네, 법적 대응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늘에게 말했다.

"김 변호사님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고 하셨어."

"하지만 익명 계정인데 어떻게..."

"IP 추적하면 찾을 수 있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하늘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빠, 저 너무 힘들어요."

"알아..."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아버지는 하늘을 안아줬다.

"미안해, 하늘아. 네가 이런 고생을 하게 해서."

"아빠 잘못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더 강했으면, 네가 나서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두 사람은 한참을 안고 있었다.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다.

박민준 자살 시도 소식도 충격이었고,

SNS 공격도 힘들었다.

나는 그냥 옳은 일을 했을 뿐인데,

왜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언제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하면 그들이 이기는 거니까.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힘들어도.

무서워도.

왜냐하면 나는 옳으니까.'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하늘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준비되어 있었다.

어떤 일이 와도 이겨낼 준비가.

용기를 가지고.

26회: 언론의 칼날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늘아! 밖에 나가지 마!"

아버지가 창문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왜요?"

하늘이 창가로 다가가 보니, 집 앞에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강하늘 학생! 나와서 해명해주세요!"

"SNS에 올라온 의혹, 사실인가요?"

"아버지를 이용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하늘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아빠, 저 사람들..."

"찌라시 기자들이야. 자극적인 기사로 돈 버는 사람들."

아버지는 커튼을 쳤다.

"학교 어떻게 가요?"

"오늘은 쉬어. 내가 학교에 연락할게."

하늘은 소파에 앉았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메시지가 수백 개였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에서 온 악플이었다.

'거짓말쟁이'

'돈 벌려고 아버지 팔아먹었네'

'위선자'

하늘은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늘아, 휴대폰 꺼."

아버지가 말했다.

"보지 마. 상처만 받아."

"근데 친구들 연락은..."

"친구들한테는 내가 따로 연락할게. 너는 쉬어."

점심때쯤, 김태훈 변호사가 집으로 왔다.

"강태수 씨, 하늘 학생. 괜찮으세요?"

"별로 안 괜찮아요."

하늘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그러겠죠.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어요."

변호사는 노트북을 펼쳤다.

"SNS 공격의 출처를 추적했습니다. 대부분 특정 여론 조작 업체에서 나왔어요."

"여론 조작 업체요?"

"네. 돈 받고 특정 인물을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조직이에요. 이미 경찰에 고발했고, 곧 수사가 시작될 겁니다."

"그럼 누가 돈을 준 건가요?"

변호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정형사님 말로는 박민준 배후 세력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네. 하늘 학생의 신용을 떨어뜨려서 수사를 방해하려는 거죠."

아버지가 주먹을 쥐었다.

"비겁한 놈들..."

"하지만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꺼냈다.

"기자회견을 준비했어요. 오늘 오후 3시."

"기자회견이요?"

"네. 하늘 학생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는 게 좋겠어요. 침묵하면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하늘은 망설였다.

"저... 기자회견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질문 예상되는 것들 준비하고, 답변도 같이 만들죠."

오후 내내 하늘은 변호사와 기자회견 준비를 했다.

"'아버지를 이용했다'는 주장에는 뭐라고 답할까요?"

"음... '저는 아버지를 도우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용한 게 아니라 함께 싸운 겁니다'?"

"좋아요. 그리고 감정을 실어서 말하세요. 진심이 전달되도록."

오후 3시,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2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하늘은 떨리는 다리로 연단에 섰다.

플래시가 터졌다.

"안녕하세요. 강하늘입니다."

하늘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또렷했다.

"최근 SNS에 저에 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명확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늘은 준비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첫째, 저는 아버지를 이용한 적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고통받는 걸 보고 도우려 했을 뿐입니다."

"둘째, 제 책에 거짓말은 없습니다. 모든 내용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셋째, 저는 유명해지려고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위해서였습니다."

하늘은 원고에서 눈을 떼고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는 열다섯 살입니다. 완벽하지 않아요. 실수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한 일만큼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옳은 일이었으니까요."

"저를 공격하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진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되었다.

"하늘 학생, 박민준이 자살 시도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책임이 아니에요. 박민준 씨가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책으로 얼마나 버셨나요?"

"그게 중요한가요? 저는 돈 때문에 책을 쓴 게 아니에요."

"하지만 베스트셀러로 상당한 수익이..."

하늘은 목소리를 높였다.

"네, 돈을 벌었어요. 그리고 그 돈의 일부는 예술가 지원 재단에 기부했어요. 나머지는 제 학비와 생활비로 쓸 거고요. 뭐가 문제인가요?"

기자는 할 말을 잃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혹시 정치적 의도가 있나요? 야당 인사들이 하늘 학생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저는 어떤 정치인도 만난 적 없어요. 그리고 만날 생각도 없어요. 저는 정치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당 인사들이 수사받고 있는데..."

"그건 그분들이 잘못했기 때문 아닌가요? 제 탓이 아니라."

하늘의 당당한 태도에 일부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김 변호사가 하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어요, 하늘 학생. 정말 멋있었어요."

"떨렸어요..."

"전혀 안 보였어요. 아주 당당했어요."

그날 저녁 뉴스는 하늘의 기자회견을 크게 다뤘다.

"강하늘, 의혹에 정면 반박... '진실은 숨길 수 없다'"

"15세 소녀의 당당한 해명, 네티즌 '감동'"

여론이 다시 반전되기 시작했다.

SNS에는 하늘을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애가 저렇게 당당한데 거짓말일 리 없지"

"오히려 공격하는 쪽이 수상하다"

"하늘이 응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악플도 많았다.

"연기 잘하네"

"변호사가 다 시킨 거 아니야?"

"믿을 수 없어"

하늘은 댓글을 보다가 휴대폰을 내려놨다.

"보지 말라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알아요. 근데 자꾸 보게 돼요."

"하늘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어. 네가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안 믿는 사람은 안 믿어."

"그럼 어떡해요?"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해. 그 사람들을 위해 계속 진실을 말하는 거야."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경찰이 여론 조작 업체를 적발했다.

"미술품 비리 수사 방해 목적... 여론 조작 조직 검거"

"강하늘 학생 공격한 배후 밝혀져"

뉴스에서는 검거된 사람들의 모습이 나왔다.

"이들은 특정 세력으로부터 돈을 받고 강하늘 학생을 비방하는 게시물을 수백 건 올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형사가 하늘에게 연락했다.

"하늘 학생, 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형사님..."

"배후도 거의 파악했어요. 곧 발표할 겁니다."

"정말요?"

"네. 하늘 학생 덕분에 큰 물고기들을 잡게 됐어요."

며칠 후, 검찰은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재벌 회장 A씨, 국회의원 B씨 등 5명 구속"

"미술품 거래 통한 뇌물 수수, 탈세 혐의"

"총액 3천억 원대 비리"

뉴스는 연일 이 사건을 다뤘다.

하늘이 시작한 작은 고소가 거대한 부패 사건을 드러낸 것이다.

"하늘 학생이 없었으면 이 비리는 영원히 묻혔을 겁니다."

검사가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한 시민의 용기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학교에서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늘아, 진짜 대단하다!"

"재벌이랑 국회의원까지 잡았어!"

"너 완전 영웅이야!"

하지만 하늘은 영웅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냥 피곤했다.

"지우야, 나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

"무슨 소리야. 넌 이미 특별한걸."

"특별한 거 싫어. 그냥... 그림이나 그리고 싶어."

지우는 하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그림 그려.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사람들이 가만 안 둘 텐데..."

"신경 쓰지 마. 너는 네 인생 살아."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시선이 아니라.

그날 밤, 하늘은 오랜만에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느낌대로.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색들이 섞이고 번지며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제목은 '해방'.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한참을 그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거야.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거.'

그림.

정의도 중요하고, 용기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본질은 예술가였다.

그걸 잊지 말아야 했다.

아버지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늘아, 아직도 깨어있어?"

"응. 그림 그렸어."

아버지는 하늘의 그림을 봤다.

"와... 좋은데?"

"그렇게 생각해?"

"응. 감정이 느껴져. 해방되고 싶은 마음."

"아빠도 알아?"

"그럼. 아빠도 화가니까."

두 사람은 웃었다.

"하늘아."

"응?"

"너 정말 잘하고 있어. 힘든 일도 많지만, 넌 잘 버티고 있어."

"고마워, 아빠."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곧 끝날 거야."

"정말?"

"응. 배후 세력들 다 잡혔으니까. 이제 마무리만 남았어."

하늘은 안도했다.

정말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길고 힘든 싸움의 끝이.

"아빠, 끝나면 우리 뭐 할까?"

"음... 여행 갈까? 둘이서."

"좋아! 어디로?"

"네가 정해. 가고 싶은 데."

"제주도!"

"오케이. 제주도 가서 그림도 그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약속이야, 아빠."

"약속."

두 사람은 악수했다.

창밖으로 달이 떠올랐다.

환한 보름달이었다.

희망의 달 같았다.

하늘은 미소 지으며 달을 바라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리고 나면 평범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림 그리고, 친구들이랑 놀고, 그런 평범한 삶.'

'기대된다.'

하늘은 붓을 들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달을 그렸다.

환한 보름달을.

희망의 상징으로.

그날 밤, 하늘은 행복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행복이었다.

27회: 화해의 시작

6월이 되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학교에서 미술 수업 시간에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아, 네 그림 정말 좋다."

미술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특히 눈빛이 살아있어. 뭔가... 강한 의지가 느껴져."

하늘은 자신의 그림을 봤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

6개월 전보다 성숙해 보였다.

눈빛도 달랐다. 더 단단하고, 더 깊었다.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방과 후, 윤아가 하늘을 불렀다.

"하늘아, 이거 봤어?"

윤아가 휴대폰을 보여줬다.

한 포털 사이트의 인물 검색 순위.

강하늘 - 1위.

"와... 또 1위네."

"응. 네가 요즘 제일 유명한 사람이야."

"유명한 건 피곤해."

"그래도 좋은 쪽으로 유명한 거잖아."

하늘은 씁쓸하게 웃었다.

집으로 가는 길, 하늘의 휴대폰이 울렸다.

또 모르는 번호였다.

요즘은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았다. 대부분 기자나 이상한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받고 싶었다.

"여보세요?"

"하늘아... 엄마야."

또 엄마였다.

"..."

"끊지 마. 잠깐만 들어줘."

하늘은 한숨을 쉬었다.

"뭐예요?"

"하늘아, 엄마 뉴스 봤어. 너 힘들었겠다."

"..."

"SNS에서 공격받고, 기자회견하고... 엄마가 옆에 없어서 미안해."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요?"

하늘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알아... 엄마가 자격 없는 거. 근데..."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도 너처럼 용기를 내보려고. 너 보면서 배웠어."

"뭘 배웠는데요?"

"도망치지 않는 것. 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맞서 싸웠잖아. 엄마는 도망쳤고."

하늘은 할 말을 잃었다.

"하늘아, 엄마 지금 상담 받고 있어."

"상담이요?"

"응. 심리 상담. 왜 엄마가 도망쳤는지, 왜 너희를 버렸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

"그리고 알았어. 엄마가 겁쟁이였다는 걸. 힘들면 도망치는 게 습관이었어."

엄마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근데 너를 보면서 생각했어. 내 딸은 나보다 훨씬 용감하구나. 나보다 훨씬 강하구나."

"엄마..."

"하늘아, 엄마 용서해달라는 거 아니야. 그냥... 엄마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하늘은 눈물이 났다.

"엄마는... 왜 이렇게 늦게 깨달은 거예요?"

"미안해. 엄마가 느려서."

"5년이나 걸렸잖아요..."

"알아. 정말 미안해."

침묵이 흘렀다.

하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저... 아직은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요."

"알아..."

"근데 엄마가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고마워, 하늘아."

"그리고 언젠가는... 어쩌면... 다시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지만 천천히요. 제 속도로."

"그래. 엄마 기다릴게. 얼마든지."

전화를 끊고, 하늘은 벤치에 앉았다.

가슴이 복잡했다.

엄마에 대한 분노, 그리움, 연민...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나도 변하고 있나 봐.'

예전 같았으면 엄마에게 더 차갑게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됐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날 밤, 하늘은 아버지에게 엄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또 전화했어요."

"그래? 뭐래?"

"상담 받고 있대요. 변하려고 노력한대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 다행이네."

"아빠는 화 안 나요?"

"화? 예전에는 화났지. 근데 이제는..."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는 그냥 안쓰럽더라. 네 엄마도 힘들었을 거야."

"아빠..."

"사람은 다 자기 사정이 있어. 네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럼 아빠는 엄마를 용서한 거예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용서라기보다는... 내려놓았다고 해야 하나.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

"차이가 뭐예요?"

"용서는 잘못을 없던 걸로 하는 거고, 내려놓는 건 그냥 신경 안 쓰는 거지."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될 거야. 넌 나보다 마음이 넓으니까."

며칠 후, 또 다른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박민준이었다.

정확히는 박민준의 변호사.

"하늘 학생, 박민준 씨가 편지를 썼는데요. 전달해도 될까요?"

"편지요?"

"네.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하늘은 망설였다.

"생각해볼게요."

"알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저녁 식사 때, 하늘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박민준 편지 받아볼까요?"

"네가 결정해. 받고 싶으면 받고, 싫으면 거절하고."

"아빠는요?"

"나는... 궁금하긴 해. 뭐라고 쓸지."

"그럼 받아볼까요?"

"네가 좋으면."

일주일 후, 편지가 도착했다.

하늘은 봉투를 한참 쳐다보다가 열었다.

손으로 쓴 편지였다.

'강하늘 학생, 강태수 선생님께

저는 박민준입니다.

이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두 분과 다른 많은 분들께 끼친 고통에 대해.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한 일은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작가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심이 생겼습니다.

돈, 명예, 권력... 그것들이 저를 망가뜨렸습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은 여러분의 신뢰를 배신한 것입니다.

특히 하늘 학생, 당신은 나이도 어린데 옳은 일을 위해 싸웠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을 협박하고 방해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교도소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살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들이.

하지만 하늘 학생의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도망치는 건 또 다른 비겁함이라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제대로 속죄하겠다고.

검찰에 모든 것을 털어놨습니다. 배후 세력들까지.

그들은 저를 이용했고, 저도 그들을 이용했습니다.

이제 그들도 처벌받을 것입니다.

저는 5년 형을 받았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제대로 반성하겠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에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술가들을 진짜로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속죄의 의미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하늘 학생, 강태수 선생님.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압니다.

다만, 제가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신들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

미술계의 불공정한 관행들이 개선되고 있고,

법도 바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들의 용기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박민준 올림'

하늘은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았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빠, 읽어봐요."

아버지가 편지를 읽었다.

한참 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진심인 것 같네."

"저도 그렇게 느껴져요."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건 아니야."

"알아요."

두 사람은 침묵했다.

하늘이 먼저 말했다.

"아빠, 저... 답장 쓰고 싶어요."

"답장?"

"네.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뭐라고 쓸 건데?"

"음..."

하늘은 생각했다.

그날 밤, 하늘은 편지를 썼다.

'박민준 씨에게

편지 잘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화가 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한 일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후회하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후 세력을 밝힌 것도 용기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못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변하려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소 후에 정말로 예술가들을 돕는 일을 하신다면,

그것이 진짜 속죄가 될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저도 배웠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당신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길로.

강하늘 올림'

편지를 봉투에 넣으며, 하늘은 생각했다.

'이게 맞는 걸까?'

'박민준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 게?'

하지만 마음은 편했다.

증오를 계속 품고 사는 것보다,

조금씩 내려놓는 게 나았다.

완전한 용서는 아니어도.

적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윤아가 물었다.

"하늘아, 너 박민준한테 편지 썼다며?"

"어떻게 알았어?"

"네 아빠가 우리 엄마한테 얘기하셨어."

"아..."

"미쳤어? 왜 그런 놈한테 편지를 써?"

하늘은 웃었다.

"나도 몰라. 그냥... 쓰고 싶었어."

"이해 안 돼."

"나도 나를 이해 못 하겠어. 근데 쓰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윤아는 하늘을 한참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 진짜 대단하다."

"왜?"

"보통 사람은 못 해. 자기를 괴롭힌 사람한테 그런 편지 쓰는 거."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나도 앞으로 가고 싶어서."

"앞으로?"

"응.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윤아는 하늘을 안았다.

"너 정말 성장했다."

"그래?"

"응. 6개월 전 하늘이랑 완전 달라."

하늘도 웃으며 윤아를 안았다.

정말 많이 변했다.

예전의 자신은 상처받으면 그냥 아파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 박민준에게 편지를 보냈다.

용서는 아니다.

하지만 증오도 아니다.

그냥... 내려놓는 것.

엄마에게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변하고 있다.

더 성숙해지고, 더 강해지고, 동시에 더 부드러워지고 있다.

이게 성장이구나.

아프지만, 나쁘지 않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창밖으로 여름밤이 보였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은 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미래가 기대되었다.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삶을 살지.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하늘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될 것이었다.이어서 써줘

28회: 작은 씨앗들

7월이 되자 학교는 기말고사와 방학 준비로 분주해졌다.

"하늘아, 방학 때 뭐 할 거야?"

지우가 물었다.

"음... 그림 그리고, 아빠랑 제주도 가기로 했어."

"좋겠다! 나도 데려가!"

"하하, 다음에 같이 가자."

평범한 대화. 평범한 일상.

하늘은 이런 평범함이 소중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하늘을 주목하고 있었다.

"하늘 학생, 잠깐 시간 있어요?"

담임 선생님이 하늘을 교무실로 불렀다.

"네, 선생님."

"이번 여름 방학에 청소년 리더십 캠프가 있는데, 하늘이를 추천하고 싶어서."

"리더십 캠프요?"

"응. 전국에서 모범 학생들이 모여서 일주일 동안 같이 활동하는 거야. 하늘이한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하늘은 망설였다.

"생각해볼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물론이지. 천천히 생각해봐."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상의했다.

"리더십 캠프라... 좋은 기회 같은데?"

"근데 아빠, 저 그런 거 잘 못해요. 리더 같은 거..."

"왜? 넌 이미 많은 사람들을 이끌었잖아."

"그건... 우연히 그렇게 된 거고..."

아버지는 웃었다.

"하늘아, 넌 생각보다 리더 자질이 있어. 용기 있고, 정의로우니까."

"하지만..."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근데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하늘은 고민 끝에 참가하기로 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하늘은 캠프에 갔다.

전국에서 모인 60명의 고등학생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안녕! 나는 부산에서 온 이서준이야. 학생회장 하고 있어."

"서울에서 온 김민지야. 봉사활동 500시간 했어!"

"대전에서 온 박지훈. 수학 올림피아드 금메달!"

하늘은 주눅이 들었다.

'나는 뭐지? 특별한 재능도 없는데...'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하늘을 알아봤다.

"어? 너 강하늘이잖아!"

"와, 진짜네! 책 읽었어!"

"사인 받아도 돼?"

하늘은 부끄러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캠프 첫날, 조별 활동이 있었다.

주제는 '사회 문제 해결 프로젝트'.

하늘의 조는 6명이었다.

"우리 뭐 할까?"

서준이 물었다.

"학교 폭력 문제는 어때?"

"아니면 환경 문제?"

"청소년 인권?"

의견이 분분했다.

하늘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예술 교육 불평등 문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예술 교육?"

"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기 어렵잖아요. 학원비도 비싸고..."

하늘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가난해서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것.

자신도 학원을 다니고 싶었지만 포기해야 했던 것.

"그래서 재능 있는 아이들이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주제다!"

"그럼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거지?"

일주일 동안 조원들은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무료 미술 교육 프로그램 제안.

기업과 연계한 장학금 시스템.

온라인 미술 교육 플랫폼.

하늘은 처음으로 팀을 이끄는 경험을 했다.

"하늘아, 네가 발표해."

"네? 제가요?"

"응.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리고 설득력 있어."

최종 발표 날, 하늘은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60명의 학생들과 10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강하늘입니다."

하늘은 심호흡을 하고 시작했다.

"여러분은 그림을 배워본 적 있나요?"

몇몇 손이 올라갔다.

"저도 그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어요.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요."

하늘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조원들과 만든 해결책을 제시했다.

"예술은 부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이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심사 결과, 하늘의 조가 1등을 했다.

"축하해, 하늘아!"

조원들이 하늘을 안았다.

"네 덕분이야!"

하늘은 뿌듯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의미 있는 것을.

캠프 마지막 날, 강연이 있었다.

유명한 사회운동가가 와서 이야기했다.

"여러분은 미래의 리더들입니다. 하지만 리더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학생들이 대답했다.

"지식!"

"카리스마!"

"소통 능력!"

강연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감'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

강연자는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강하늘 학생처럼요."

하늘은 놀라서 얼굴이 빨개졌다.

"하늘 학생은 아버지의 아픔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행동했죠. 그것이 진짜 리더십입니다."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생각했다.

'공감...'

맞았다. 자신이 움직인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리고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공감.

'나도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함께 세상을 바꾸는 법을.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 캠프?"

"좋았어요! 많이 배웠어요."

"뭘 배웠는데?"

"공감이요. 그리고 함께하는 것."

아버지는 미소 지었다.

"그래, 중요한 걸 배웠네."

"아빠, 저 생각했어요."

"뭘?"

"캠프에서 발표한 프로젝트, 진짜로 해보고 싶어요."

"무료 미술 교육?"

"네. 저처럼 배우고 싶은데 못 배우는 아이들한테 그림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아버지의 눈이 빛났다.

"좋은 생각이다!"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음... 일단 작게 시작하자. 우리 동네 복지관에 문의해볼까?"

"정말요?"

"응.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에 무료 미술 교실을 열어보는 거야."

"제가 가르칠 수 있을까요?"

"왜 안 돼? 아빠도 도와줄게."

다음 주, 하늘과 아버지는 동네 복지관을 찾아갔다.

"무료 미술 교실을 열고 싶은데요."

복지관 관장님은 환영했다.

"오, 좋은 제안이네요! 아이들이 좋아할 거예요."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음 달부터 가능해요. 토요일 오후 2시는 어때요?"

"좋아요!"

준비 기간 동안, 하늘은 수업 계획을 짰다.

무엇을 가르칠지, 어떻게 가르칠지.

윤아도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나도 같이 할래! 보조교사로!"

"윤아야, 고마워!"

8월 첫째 주 토요일,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15명의 아이들이 왔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강하늘입니다."

하늘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릴 거예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선생님, TV에서 봤어요!"

"책도 읽었어요!"

하늘은 웃었다.

"오늘은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걸 그려볼까요?"

아이들은 신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한 명씩 돌아다니며 조언했다.

"와, 색 선택 잘했다!"

"이 부분 더 진하게 칠해보면 어때?"

"네 상상력 대단한데?"

아버지도 옆에서 도왔다.

전문 화가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한 아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화가 될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물론이지! 네가 원하면 뭐든 될 수 있어."

"하지만 우리 집 가난해서... 학원 못 다녀요."

하늘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돈이 없어도 그림은 그릴 수 있어.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정말요?"

"응. 나도 학원 못 다녔어. 근데 여기까지 왔잖아."

아이의 눈에 희망이 차올랐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 다음 주에 또 보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말했다.

"하늘아, 오늘 정말 좋았어."

"저도요, 아빠."

"저 아이들 눈빛 봤어? 반짝반짝했잖아."

"네. 저도 느꼈어요."

"우리가 좋은 일 하는 거야. 씨앗을 심는 거지."

"씨앗이요?"

"응. 저 아이들 중 누군가는 정말 화가가 될 수도 있어. 우리가 심은 씨앗이 자라서."

하늘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씨앗...'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날 밤, 하늘은 SNS에 글을 올렸다.

'오늘 첫 무료 미술 수업을 했습니다.

15명의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어요.

모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제가 받은 용기를 나눴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입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입니다.'

댓글이 쏟아졌다.

"하늘이 정말 멋있다!"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도 와줘!"

"감동받았어요"

하늘은 댓글을 읽으며 미소 지었다.

자신의 작은 행동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이것이 파급 효과였다.

한 사람의 용기가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며칠 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하늘 학생, 책 판매 부수가 10만 부를 넘었어요!"

"10만 부요?"

"네! 대박이에요! 그리고..."

편집자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외 출판사들에서 번역 출판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해외요?"

"네! 일본, 중국, 미국... 여러 나라에서요!"

하늘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읽힐 거라니.

"와..."

"하늘 학생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지는 거예요!"

전화를 끊고, 하늘은 창밖을 바라봤다.

여름 하늘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처럼.

'내 이야기가 세계로...'

신기했다.

6개월 전만 해도 평범한 중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교만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 혼자 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 윤아, 조민지, 김 변호사, 그리고 함께 싸운 모든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늘은 다짐했다.

'이 기회를 잘 사용해야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야지.'

그것이 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한 책임이었다.

그날 저녁, 가족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하늘아, 제주도 여행 다음 주에 가는 거 어때?"

"좋아요!"

"3박 4일로 넉넉하게 가자."

"아빠, 돈 괜찮아요?"

"응. 배상금도 받았고, 그림도 좀 팔렸어. 이제 좀 여유 생겼어."

하늘은 기뻤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아빠, 제주도 가서 그림 많이 그려요!"

"그래, 바다도 그리고, 한라산도 그리고."

"기대된다!"

두 사람은 웃으며 식사를 마쳤다.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폭풍 같았던 지난 6개월을 지나,

이제는 평온한 시간이 찾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늘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더 큰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늘은 준비되어 있었다.

어떤 일이 와도 맞설 준비가.

용기를 가지고.

29회: 제주도의 바람

8월 중순, 하늘과 아버지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아, 설레지?"

"네! 진짜 오랜만이에요."

마지막으로 가족 여행을 간 게 엄마가 있을 때였다. 거의 6년 전.

비행기가 이륙하고, 하늘은 창밖을 내다봤다.

구름 위로 펼쳐진 하늘.

자신의 이름처럼 넓고 푸른 하늘.

"뭐 생각해?"

"그냥... 행복해요, 아빠."

"나도."

제주공항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렸다.

"어디부터 갈까?"

"음... 바다!"

두 사람은 협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와..."

하늘은 신발을 벗고 백사장을 걸었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아빠, 여기서 그림 그려도 돼요?"

"그럼! 그러려고 온 거지."

하늘은 가방에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냈다.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도, 하늘, 수평선...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아버지도 옆에서 자신의 캔버스를 펼쳤다.

"오랜만에 야외 스케치네."

"아빠도 그리세요?"

"응. 같이 그리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그림을 그렸다.

말없이, 편안하게.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하늘은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한 가족이 다가왔다.

"저기... 혹시 강하늘 학생 맞나요?"

30대 부부와 초등학생 딸이었다.

"아, 네..."

"와, 진짜네! 책 읽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부인이 흥분해서 말했다.

"애가 학생 보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서 만나다니!"

초등학생 딸이 수줍게 다가왔다.

"언니, 사진 찍어도 돼요?"

"응, 그럼."

하늘은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언니, 저도 언니처럼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넌 이미 용감해. 낯선 사람한테 먼저 말 걸었잖아."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가족이 떠나고, 아버지가 말했다.

"유명세도 힘들겠다."

"괜찮아요. 저런 분들은 좋아요."

"좋아?"

"네. 진심으로 응원해주시잖아요."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성산일출봉 근처 펜션에 짐을 풀었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해물뚝배기를 먹었다.

"맛있다!"

"그치? 역시 제주도 해산물은 신선해."

식사 후, 해변을 산책했다.

일몰이 아름다웠다.

오렌지빛 하늘이 바다를 물들였다.

"하늘아."

"응?"

"우리 많이 왔지?"

"그쵸. 정말 많이 왔어요."

"6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어. 이렇게 될 줄."

아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었어. 그림이나 그리면서."

"..."

"근데 네가 나를 끌어냈어. 세상 밖으로."

"아빠, 미안해요..."

"아니야."

아버지는 하늘을 돌아봤다.

"고마워. 진짜로."

"네?"

"너 덕분에 나는 다시 살게 됐어. 진짜 나로."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박민준한테 일할 때는... 나는 내가 아니었어. 그냥 기계였지. 남의 그림 베끼는."

"아빠..."

"근데 이제는 달라. 내 이름으로 그림 그려.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려. 그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

하늘도 눈물이 났다.

"알아요, 아빠."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는 하늘을 안았다.

"내 딸이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자라줘서 고마워."

"아빠..."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었다.

파도 소리만 들렸다.

다음 날, 하늘과 아버지는 한라산에 올랐다.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하늘은 씩씩하게 올라갔다.

중간 쯤 올라가서 쉬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하늘아, 앞으로 뭐 하고 싶어?"

"음... 화가가 되고 싶어요."

"그건 알아. 그 다음은?"

"그 다음이요?"

하늘은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좋은 그림 그리고 싶어요."

"좋은 그림이 뭔데?"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 그림. 용기를 주는 그림."

아버지는 미소 지었다.

"좋은 목표네."

"아빠는요? 앞으로 뭐 하고 싶으세요?"

"나? 나는..."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너처럼 무료 미술 교실을 더 많이 열고 싶어. 전국에."

"정말요?"

"응. 우리가 시작한 게 씨앗이잖아. 그걸 더 많이 심고 싶어."

"좋아요! 같이 해요!"

"그래, 같이 하자."

정상에 올라가니 구름 위 세상이 펼쳐졌다.

"와..."

하늘은 팔을 벌렸다.

"세상이 다 보여요!"

"그래, 여기서 보면 모든 게 작아 보이지?"

"네."

"우리 고민들도 여기서 보면 작은 거야."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면, 모든 게 작고 사소했다.

SNS 악플도, 협박도, 두려움도.

중요한 건 이 순간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정상에 서 있는 이 순간.

그날 밤, 펜션으로 돌아와 하늘은 그림을 그렸다.

한라산 정상에서 본 풍경.

구름 위 세상.

제목은 '자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을 담았다.

"하늘아, 저녁 먹자!"

"네!"

저녁은 아버지가 직접 요리했다.

삼겹살을 구워 쌈을 싸 먹었다.

"아빠, 요리 실력 늘었네요?"

"그치? 요즘 유튜브 보면서 배워."

"대단해요!"

"혼자 사는 남자는 요리 못 하면 안 돼."

식사 후, 펜션 테라스에 앉아 별을 봤다.

제주도의 밤하늘은 별이 많았다.

"저기 북두칠성!"

"오, 잘 찾았네."

"아빠, 저 별 하나하나가 다 태양 같은 거래요."

"그래, 우주는 넓어."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네요."

"그렇지. 하지만 작다고 해서 의미 없는 건 아니야."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너 하나가 세상을 바꿨잖아."

"아빠..."

"작아도 빛날 수 있어. 저 별들처럼."

하늘은 별을 보며 생각했다.

맞았다. 작아도 빛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랬다.

평범한 중학생이었지만, 세상을 바꿨다.

조금.

하지만 분명히.

셋째 날, 우도에 갔다.

"배 타는 거 오랜만이다!"

"저도요!"

우도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었다.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하늘아, 사진 찍어줄까?"

"네!"

하늘은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버지가 사진을 찍었다.

"하나, 둘, 셋!"

찰칵.

"잘 나왔어!"

사진 속 하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

"아빠도 찍어요!"

"나는 됐어."

"안 돼요! 같이 찍어야지!"

하늘은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부탁했다.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그럼요!"

아버지와 하늘이 나란히 섰다.

"하나, 둘, 셋!"

찰칵.

사진을 확인하니, 두 사람 모두 행복해 보였다.

"이거 인화해서 집에 걸어요!"

"그래, 그러자."

그날 밤,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이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아빠, 시간 너무 빨라요."

"그치? 좋은 시간은 빨리 가."

"더 있고 싶어요."

"나도. 근데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일상..."

하늘은 창밖을 바라봤다.

"아빠, 제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바빠질까요?"

"어쩌면."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아버지는 하늘의 손을 잡았다.

"하늘아, 넌 이미 평범하지 않아."

"..."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니야. 특별하다는 게."

"하지만 힘들어요."

"알아. 근데 있잖아."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네가 특별한 만큼, 할 수 있는 일도 많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많고."

"..."

"그게 축복이자 책임이야."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자신이 받은 관심과 영향력은 축복이었다.

동시에 책임이기도 했다.

잘 사용해야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봤다.

성산일출봉에서.

"와..."

태양이 수평선에서 떠올랐다.

주황빛이 하늘을 물들였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

새로운 시작.

"아빠, 우리 새로 시작하는 거죠?"

"응?"

"제주도에서 돌아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그래, 새로 시작하자."

아버지는 하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과거는 과거야. 중요한 건 앞으로야."

"네, 아빠."

두 사람은 해돋이를 보며 다짐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서로를 더 사랑하겠다고.

비행기 안에서, 하늘은 제주도에서 그린 그림들을 정리했다.

바다, 한라산, 우도, 일출...

모두 아름다웠다.

"아빠, 이 그림들로 전시회 하면 어때요?"

"전시회?"

"네. '제주도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는 웃었다.

"좋은 생각이다!"

"진짜 할까요?"

"왜 안 돼? 네 첫 개인전이네!"

하늘은 설렜다.

자신의 첫 개인전.

그것도 의미 있는 여행에서 그린 그림들로.

"아빠, 수익금은 기부할래요."

"기부?"

"네. 무료 미술 교실 운영비로."

아버지는 하늘을 자랑스럽게 바라봤다.

"좋은 생각이야. 역시 내 딸."

비행기가 서울에 착륙했다.

제주도의 꿈같은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가방을 메고 아버지와 함께 공항을 나섰다.

서울의 공기는 제주도와 달랐다.

더 복잡하고, 더 분주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곳이 하늘의 집이었다.

이곳에서 하늘은 싸웠고, 이겼고, 성장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었다.

"아빠, 집 가요!"

"그래, 집에 가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었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안고.

30회: 첫 개인전

9월이 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하늘은 이제 적응했다.

주목받는 것도, 질문받는 것도.

"하늘아, 방학 때 뭐 했어?"

"제주도 갔다 왔어. 그림 많이 그렸어."

"오, 보여줘!"

하늘은 스케치북을 펼쳤다.

친구들이 감탄했다.

"와, 진짜 잘 그렸다!"

"이거 전시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사실 그럴 예정이야."

"진짜? 언제?"

"다음 달. 작은 갤러리에서."

소식이 퍼지자, 학교가 들썩였다.

"강하늘 개인전 한대!"

"가봐야지!"

하늘은 부끄러웠지만 기대도 되었다.

방과 후, 하늘은 아버지와 함께 갤러리를 찾아갔다.

인사동의 작은 갤러리였다.

"안녕하세요, 강하늘 학생이시죠?"

갤러리 관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네, 안녕하세요."

"책 읽었어요. 정말 감동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 꼭 하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갤러리는 아담했다. 약 20평 정도.

"여기에 15점 정도 전시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네, 그 정도 준비했습니다."

"전시 기간은 2주로 할까요?"

"좋습니다."

하늘과 아버지는 갤러리를 둘러보며 어디에 어떤 그림을 걸지 계획했다.

"입구에는 일출 그림을 걸까?"

"좋아요.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가운데 벽에는 한라산."

"네!"

한 달 동안 하늘은 전시 준비에 매진했다.

그림을 다듬고, 액자를 고르고, 홍보 자료를 만들었다.

윤아도 도와줬다.

"하늘아, SNS 홍보는 내가 할게!"

"고마워, 윤아야!"

"당연하지. 네 첫 전시회인데!"

윤아는 하늘의 그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강하늘 첫 개인전! <제주도의 바람>'

'10월 5일부터 19일까지'

'인사동 아트갤러리'

게시물은 순식간에 퍼졌다.

좋아요가 수천 개, 공유가 수백 건.

"하늘아, 대박! 벌써 조회수가 10만이야!"

"진짜?"

"응! 사람들이 엄청 관심 많아!"

하지만 하늘은 긴장되기 시작했다.

"윤아야, 만약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해?"

"무슨 소리야. 이렇게 관심 많은데?"

"그래도..."

"걱정 마. 나만 해도 친구들 20명은 데려갈 거야."

조민지 작가도 연락했다.

"하늘아, 축하해! 첫 개인전이네!"

"감사해요, 작가님."

"내가 미술계 사람들한테 소문 좀 냈어. 많이 올 거야."

"정말요?"

"그럼! 하늘이 전시는 놓칠 수 없지."

김태훈 변호사도 응원했다.

"하늘 학생, 초대장 보내주세요. 꼭 갈게요."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드디어 10월 5일, 오프닝 날이 왔다.

하늘은 새 옷을 입고 갤러리로 갔다.

아버지도 정장을 입었다.

"긴장되니?"

"엄청요..."

"괜찮아. 잘될 거야."

오후 5시, 오프닝 리셉션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미술계 인사들, 기자들...

갤러리가 금세 가득 찼다.

"와, 사람 진짜 많다!"

윤아가 놀라며 말했다.

"나도 놀랐어..."

하늘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오셔서 감사합니다."

"축하해요, 하늘 학생!"

조민지가 꽃다발을 건넸다.

"축하해! 첫 개인전!"

"고맙습니다..."

김 변호사도 왔다.

"하늘 학생, 그림 정말 좋네요. 평화롭고 아름다워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예린 작가도 왔다.

"하늘아..."

"작가님!"

하늘은 오랜만에 보는 최예린을 안았다.

"오랜만이에요."

"응... 미안해. 그동안 연락 못 했어."

"괜찮아요.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최예린은 하늘의 그림들을 보며 말했다.

"좋다. 순수하고 진실해."

"정말요?"

"응. 네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6시, 하늘의 짧은 인사말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하늘입니다."

하늘은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제주도의 바람>입니다. 올여름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에 갔을 때 느낀 자유와 평화를 담았습니다."

하늘은 각 그림을 소개했다.

"이 그림은 협재해수욕장에서 그렸어요. 에메랄드빛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건 한라산 정상에서 본 풍경이에요. 구름 위 세상이었죠."

"그리고 이건... 성산일출봉에서 본 일출이에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하늘의 설명을 들으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 전시 수익금 전액은 무료 미술 교실 운영비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인사말이 끝나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했다.

"이 그림 사고 싶은데요."

한 중년 남성이 말했다.

"네? 정말요?"

"네. 얼마예요?"

하늘은 가격표를 보여줬다.

"30만 원입니다."

"삽니다."

하늘은 놀라고 기뻤다.

첫 판매였다!

그 후로도 그림이 팔렸다.

한 점, 두 점, 세 점...

오프닝이 끝날 때쯤, 15점 중 7점이 팔렸다.

"하늘아, 대박! 절반 가까이 팔렸어!"

윤아가 흥분해서 말했다.

"믿을 수 없어..."

아버지도 감격스러워했다.

"하늘아, 잘했어. 정말 잘했어."

오프닝 파티가 끝나고, 가족들만 남았을 때.

하늘은 조용히 갤러리를 둘러봤다.

자신의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내 그림이... 팔렸어.'

신기했다.

6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늘아, 뭐 생각해?"

"그냥... 신기해요."

"뭐가?"

"제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아버지는 하늘을 안았다.

"넌 더 멀리 갈 거야."

다음 날부터 2주간, 전시는 계속되었다.

평일에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강하늘 학생 전시 보러 왔어요."

"어서 오세요!"

갤러리 관장이 말했다.

"하늘 학생, 반응이 정말 좋아요. 하루에 50명 이상 오시는데 이건 대단한 거예요."

"정말요?"

"네. 그리고 문의도 많아요. '다음 전시는 언제냐', '그림 더 없냐'..."

하늘은 뿌듯했다.

주말에는 하늘이 직접 갤러리에 있었다.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그림 정말 좋아요. 평화로워요."

한 여성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요즘 힘든 일이 많았는데, 이 그림 보니까 위로가 돼요."

"정말요? 그렇다니 다행이에요."

"화가로서 앞으로 계획이 있으세요?"

"네, 계속 그림 그릴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멋지네요. 응원할게요."

이런 대화들이 하늘에게 힘을 줬다.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전시 마지막 주, 특별한 손님이 왔다.

엄마였다.

"하늘아..."

하늘은 놀랐다.

"엄마... 어떻게..."

"SNS에서 봤어. 네 전시."

엄마는 조심스럽게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와도 괴찮았을까?"

"아니... 괜찮아요."

엄마는 하늘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봤다.

한참을 보다가, 일출 그림 앞에서 멈췄다.

"이 그림... 정말 아름답다."

"감사합니다."

"하늘아,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이렇게 멋진 사람이 됐네."

"엄마..."

"미안해. 네 성장을 곁에서 못 봐줘서."

하늘도 눈물이 났다.

"괜찮아요. 엄마도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응..."

엄마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거... 받아줄래?"

하늘이 열어보니,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네 그림값. 일출 그림 사고 싶어."

"엄마..."

"30만 원 맞지?"

"엄마, 그냥 드릴게요."

"안 돼. 제대로 사고 싶어. 네 첫 작품을."

하늘은 받았다.

"고마워요, 엄마."

"내가 고맙지. 이렇게 좋은 그림을 그려줘서."

엄마는 하늘을 안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엄마의 온기.

낯설면서도 그리웠다.

"하늘아, 언젠가는... 우리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늘은 엄마를 보며 말했다.

"노력하고 있잖아요. 엄마도, 저도. 그럼 언젠가는 될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하늘아."

엄마는 그림을 들고 갤러리를 나갔다.

하늘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조금씩, 천천히.'

'우리는 나아가고 있어.'

전시 마지막 날, 15점 모두 완판되었다.

"하늘아, 축하해! 전부 다 팔렸어!"

갤러리 관장이 샴페인을 터뜨렸다.

(물론 하늘은 미성년자라 주스를 마셨다)

"총 450만 원이에요!"

"와..."

"이중 30%가 갤러리 수수료니까, 하늘 학생 몫은 315만 원이에요."

하늘은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그림으로 315만 원을 번 것이다.

"이 돈 전부 기부할게요."

"정말요?"

"네. 무료 미술 교실에."

"하늘 학생, 정말 대단해요."

그날 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하늘아, 축하한다. 첫 개인전 대성공!"

"고마워요, 아빠."

"그리고 자랑스러워. 수익금 전부 기부한다고 해서."

"당연한 거예요. 제가 받은 걸 나눠야죠."

"넌 진짜 착한 애야."

두 사람은 웃으며 건배했다.

(하늘은 주스로)

그날 밤, 하늘은 일기를 썼다.

'오늘 전시가 끝났다.

첫 개인전.

모든 그림이 팔렸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사고, 좋아해줬다.

신기하고 감사하다.

엄마도 왔다.

내 그림을 샀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행복하다.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창밖으로 가을밤이 보였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하늘은 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미래가 밝았다.

자신의 이름처럼.

강하늘.

넓고 푸른 하늘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그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아갈 것이었다.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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