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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양이 사이, 털 뭉치들


제1회: 운명적 만남 – "너로 정했다!" 내 인생에 털 뭉치가 굴러온 날
인생은 가끔 예고 없이 경로를 이탈한다. 나처럼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먼지 한 톨 없는 깔끔한 거실 바닥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전형적인 '도시인'에게 반려견과 반려묘와의 동행은 사실 계획표에 없던 돌발 변수였다. 하지만 그해 여름, 쏟아지는 장마비는 내 계획표를 완전히 적셔버렸고, 나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보호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1. 빗소리에 섞인 가느다란 떨림
보호소의 공기는 무겁고 눅눅했다. 수많은 철장 너머로 애처로운 눈빛들이 쏟아졌고, 짖는 소리와 낑낑대는 소리가 뒤섞여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냥 구경만 하러 온 거야." 스스로에게 수만 번 되뇌었지만, 복도 맨 끝자리에서 유독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녀석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 다짐은 유리잔처럼 박살 났다.
그 녀석은 리트리버 믹스견이었다. 덩치는 산만 한데,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든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조심스럽게 꼬리를 한 번 '툭' 쳤다. 반가움보다는 "나 여기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존재를 알리는 듯한 몸짓이었다. 관리자 분은 녀석이 파양된 상처가 있어 사람 눈치를 많이 본다고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가 찌릿했다. 세상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도는 내 모습이 녀석의 처진 귀에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이 아이로 할게요. 이름은... '마루'라고 지어줄 거예요."
하늘처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넓게 보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렇게 마루와 나의 첫 인연은 축축한 빗줄기를 뚫고 시작되었다.
2. 덤으로 찾아온 노란 선물, '미오'
마루를 데려온 지 불과 사흘째 되던 날, 운명은 내게 또 다른 장난을 걸어왔다. 지인의 집 뒷마당 창고에서 어미 잃은 아기 고양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갓 태어난 듯 조그마한 몸집에 온통 노란 털을 두른 '치즈 태비' 고양이. 지인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보호소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미 큰 개 한 마리를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단호하게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사진으로 본 녀석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주제에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휘두르며 하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 당돌함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그래, 한 마리나 두 마리나... 죽기야 하겠어?"
결국 나는 녀석을 데려왔다. 미우새(미운 우리 새끼)처럼 사고를 쳐도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름을 **'미오'**라고 붙였다. 그렇게 내 집은 졸지에 '개와 고양이가 공존하는 DMZ'가 되어버렸다.
3. 거실의 정적, 그리고 탐색전
마루와 미오가 처음 대면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마루는 20kg에 육박하는 덩치였고, 미오는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마루는 처음 보는 작고 노란 생명체가 신기한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갔다. 리트리버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미오의 반응은 냉혹했다.
"하악-!"
작은 몸을 잔뜩 부풀리고 등털을 세운 미오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었다. 마루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 소파 다리에 머리를 꽝 박았다. 덩치 큰 바보 마루와 하룻강아지(아니, 하룻고양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미오의 서열 싸움은 그렇게 미오의 판정승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거실 한복판에 앉아 두 녀석을 번갈아 보았다. 한쪽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꼬리를 내리고 있고, 한쪽은 당당하게 내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평화롭던 내 집은 이제 털 날리는 전쟁터가 될 조짐이 보였지만, 묘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4. 4,000일의 대장정을 예고하는 첫날밤
그날 밤, 나는 침대 가운데에 누워 양옆을 살폈다. 왼쪽 바닥에는 마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누워 있었고, 오른쪽 배 위에는 미오가 골골송을 부르며 자리를 잡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장 내일 아침 사료는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예방접종 비용은 얼마나 나올지, 집안 곳곳에 박힐 털들은 어떻게 감당할지 현실적인 고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마루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내 배 위에서 느껴지는 미오의 미세한 진동은 그 어떤 ASMR보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밤, 낯선 두 생명체에게 내 삶의 공간을 내어주며 다짐했다. 이 녀석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날까지, 우리 집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웃음 넘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잘 부탁한다, 마루야. 그리고 미오야."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 장마는 이미 그치고 무지개가 뜨기 시작했다. 이것이 앞으로 40회 동안 이어질, 때로는 눈물 겹고 대부분은 배꼽 잡게 웃긴 우리 식구의 첫 페이지였다.
[작가의 사후 기록]
이날 이후로 내 검정색 정장은 영원히 은퇴하게 되었다. 마루의 흰 털과 미오의 노란 털이 섞인 '털 코트'가 내 일상의 유니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매일 아침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환영 인사를 받게 되었다.
제2회: 첫날밤의 대소동 – "누구냐, 넌?" 잠 못 드는 밤의 서곡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 형광등 불빛이 꺼지자마자 우리 집은 고요한 평화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1회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던 리트리버 믹스 '마루'와 아기 치즈 고양이 '미오'. 이 둘과 함께하는 '첫날밤'은 로맨틱한 동행의 시작이라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탐색하는 첩보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1. 덩치 큰 겁쟁이의 침대 밑 침공
마루는 덩치만 컸지 속은 두부처럼 말랑한 녀석이었습니다. 보호소에서 온 첫날이라 그런지, 불이 꺼지자마자 불안함이 밀려온 모양이었죠. 거실 구석에 마련해준 폭신한 방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녀석은 굳이 내 침실 문을 앞발로 슬쩍 밀고 들어왔습니다.
"끼잉... 끼이잉..."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마루의 콧소리는 마치 "나 혼자 자기 너무 무서워요"라고 하소연하는 듯했습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옆 바닥을 팡팡 쳤습니다. 마루는 기다렸다는 듯 꼬리를 '팡팡' 치며 달려와 내 침대 밑으로 상체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 이미 '선점자'가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2. 어둠 속의 노란 섬광, 미오의 경고
미오는 고양이답게 이미 집안의 가장 아늑하고 은밀한 곳, 즉 내 침대 바로 밑 구석을 자신의 '본진'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마루가 큼지막한 머리를 침대 밑으로 쑥 집어넣는 순간, 고요했던 방 안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샤아아아악-!"
하악질 한 번에 마루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습니다. 덩치 큰 녀석이 어찌나 놀랐는지, 뒤로 물러나다가 화장대 의자를 들이받아 '우당탕'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놀란 미오는 침대 위로 번개처럼 뛰어올라 내 배 위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악! 내 배!"
잠결에 복부를 가격당한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습니다. 불을 켜보니 상황은 가관이었습니다. 마루는 구석에 처박혀 억울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미오는 커튼봉 근처 선반 위에서 등털을 바짝 세운 채 마루를 노려보고 있었죠.
3. 한 지붕 두 가족의 '거리두기'
나는 결국 거실 불을 다시 켰습니다. 이대로는 한숨도 못 잘 것 같았거든요.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마루와 미오를 양옆에 앉혔습니다.
"자, 들어봐. 마루 너는 저기 방석에서 자고, 미오 너는 캣타워에서 자는 거야. 알겠지?"
내 훈계가 들릴 리 만무했습니다. 마루는 내 손을 핥으며 은근슬쩍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워버렸고, 미오는 그런 마루의 꼬리가 신기한지 멀찍이서 앞발을 휘적거렸습니다.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미오의 눈동자는 좌우로 빠르게 회전했고, 마루는 미오가 다가올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습니다.
새벽 3시. 나는 거실 바닥에서 인간 샌드위치가 된 채 잠이 들락말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발가락 끝에 서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을 살짝 떠보니, 미오가 내 발가락을 장난감으로 착각했는지 사냥 본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냥!" 소리와 함께 내 엄지발가락을 깨무는 순간, 잠은 확 달아났습니다.
4. 화장실 소동: "거긴 내 영역이야!"
잠을 설친 채 겨우 눈을 붙이려는데, 이번엔 소리의 근원지가 바뀌었습니다. 마루가 갑자기 거실 한복판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변 신호였습니다. 급하게 배변 패드를 깔아줬지만, 낯선 환경 탓인지 마루는 패드 근처만 서성이다가 결국 내가 가장 아끼던 러그 위에 '영역 표시'를 거하게 해버렸습니다.
"마루야아아아...!"
절규하며 걸레를 찾아 나서는 내 뒤로, 미오가 유유히 나타났습니다. 미오는 마루가 사고를 친 자리를 코로 킁킁 맡더니, 마치 한심하다는 듯 꼬리를 까딱이며 자신의 모래 화장실로 들어가 우아하게 볼일을 보고 모래를 '착착' 덮었습니다.
"봤냐? 난 이렇게 깔끔하다고."
미오의 눈빛은 확실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한 손엔 탈취제를, 한 손엔 걸레를 들고 새벽 4시에 거실 바닥을 닦으며 실성한 듯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반려 생활'의 실체인가 싶어서 말이죠.
5. 아침 햇살과 함께 찾아온 뜻밖의 평화
지옥 같은 밤이 지나고 거실 창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들어올 무렵, 겨우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댄 나는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뺨에 느껴지는 축축하고 따뜻한 감촉에 눈을 떴습니다.
마루가 내 얼굴을 핥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이제 일어나서 밥 줘요"라고 말하는 듯한 맑은 눈동자. 그리고 내 발치에는 미오가 마루의 꼬리 끝에 몸을 살짝 기댄 채 동그랗게 말려 자고 있었습니다.
밤새 그렇게 싸우고 하악질을 해대더니, 아침이 되니 온기가 그리웠던 걸까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잠든 두 녀석의 모습에 밤샘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비록 내 거실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내 잠은 부족했지만, 이제 이 집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습니다.
"그래, 시작이 반이라잖아. 오늘 밤은 좀 더 나아지겠지."
물론 그것은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습니다. 다음 날은 '식사 시간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작가의 사후 기록]
그날 이후, 저는 침대를 포기했습니다. 정확히는 침대의 3분의 1은 마루에게, 나머지 3분의 1은 미오에게 상납했죠. 저는 남은 3분의 1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허리는 아픈데 마음은 전보다 훨씬 말랑말랑해졌답니다.
제3회: 이름 짓기 전쟁 –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사고를 쳤다"
첫날밤의 폭풍 같은 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가장 시급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 털 뭉치들의 공식 명칭을 정하는 것이었죠. 동물병원 수첩에 적힐 이름, 그리고 앞으로 수만 번은 불러야 할 그 이름 말입니다. 단순히 '개'와 '고양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녀석들은 내 일상의 너무 깊숙한 곳까지 침범해 있었습니다.
1. 작명소 개업: 거실 바닥의 브레인스토밍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거실 소파에 앉아 종이와 펜을 들었습니다. 마루(가칭)는 내 발등 위에 턱을 괴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고 있었고, 미오(가칭)는 식탁 위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내가 든 펜 끝을 사냥하려 노리고 있었죠.
"자, 얘들아. 이제 너희 인생을 책임질 이름을 지을 거야. 집중해!"
첫 번째 후보는 '초코'와 '바닐라'였습니다. 가장 흔하지만 달콤한 이름이죠. 하지만 리트리버 믹스견인 녀석은 초코색보다는 인절미에 가까운 누런빛이었고, 고양이는 치즈 색이었으니 '인절미와 치즈'가 더 어울릴 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세련된 느낌의 '루이'와 '샤넬'. 하지만 명품 이름을 붙여주기엔 마루의 행동이 너무나 '동네 바보 형' 같았습니다. 방금 전에도 자기 꼬리를 잡으려다 거실 벽에 엉덩이를 찧은 녀석에게 '루이'라는 고귀한 이름을 붙여주기엔 양심이 찔렸습니다.
2. 마루: 하늘처럼 넓고 마루처럼 든든하게
강아지의 이름을 고민하던 중, 녀석이 갑자기 내 무릎 위로 커다란 앞발을 턱 올렸습니다. 묵직한 무게감. 그리고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듯한 그 깊은 눈동자. 보호소의 좁은 철장 안에서 얼마나 넓은 세상을 그리워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래, 너는 '마루'야."
순우리말로 '정상'이나 '으뜸'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가 편히 쉬는 '대청마루'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든든하게 있어 달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름을 부르자 마루는 마치 자기 이름인 걸 아는 것처럼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거실 바닥을 때리는 꼬리 소리 '탁! 탁! 탁!'이 마치 합격 통보를 알리는 북소리 같았죠.
3. 미오: 미운 오리 새끼? 아니, 미워할 수 없는 너
문제는 고양이였습니다. 이 녀석은 마루처럼 순순히 이름을 받아들일 기색이 전혀 없었거든요. '나비', '치즈', '레오'... 수많은 이름을 불러봤지만 녀석은 귀만 뒤로 젖힐 뿐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녀석이 아침에 내 발가락을 깨물고, 마루의 밥그릇에 발을 담그고, 소파 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놀래키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고뭉치 중의 사고뭉치.
"너 진짜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 완전 '미운 오리 새끼'네."
그 말을 듣자마자 녀석이 "냐앙!" 하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번뜩였죠. 미운 오리 새끼의 앞 글자를 딴 '미오'. 일본어로는 '아름다운 벚꽃' 같은 예쁜 뜻도 있지만, 내게는 '미워하려 해도 너무 귀여워서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라는 의미가 더 컸습니다.
"미오야?" 하고 부르니,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쳐다봤습니다. 드디어 이름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4. 이름값 못 하는 녀석들
이름을 지어주면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마루야, 이리와!"라고 부르면 마루는 엉뚱하게 미오의 캣타워 밑으로 달려갔고, "미오야!"라고 부르면 마루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습니다. 정작 미오는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아주 정중하게... 못 들은 척을 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이름이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집사가 나에게 간식을 줄지도 모르는 신호'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한번은 거실에서 큰 소리로 "마루! 미오!"를 연신 외치고 있는데, 열린 창문 너머로 지나가던 이웃 주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더군요.
"댁에 아이가 둘이나 생겼나 봐요?"
저는 민망함에 허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아주 털이 북슬북슬한 아들딸이 생겼네요."
5. 진짜 '가족'이 된다는 것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의 부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익명의 생명체'를 '내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거룩한 의식이었죠. 이제 나는 길을 걷다가도 '마루'와 닮은 개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고, 편의점의 '치즈' 간식만 봐도 '미오'의 분홍색 코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녀석들의 이름이 정성스럽게 적힌 인식표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찰랑거리는 금속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질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 존재임을 확인했습니다.
"마루야, 미오야. 이제 진짜 우리 식구다. 사고 좀 적당히 치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오는 식탁 위의 물컵을 앞발로 툭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마루는 쏟아진 물을 핥아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름은 멋지게 지어줬지만, 녀석들의 본능은 여전히 '야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름값을 못 하면 어떤가요.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부름에 꼬리를 흔들어주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3회차는 이미 충분히 성공적이었으니까요.
[작가의 사후 기록]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려견 전문가들은 이름을 지을 때 발음이 명확한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마루'와 '미오'는 녀석들이 알아듣기 쉬운 발음이었습니다. 문제는 녀석들이 이름을 '알아듣는 것'과 '대답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의지라는 사실을 제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점이죠.
제4회: 사료의 유혹 –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밥그릇 쟁탈전
이름까지 지어주고 나니 이제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만 남았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식성도, 식사 예절도 전혀 다른 두 짐승(?)과 한 공간에 산다는 건 매끼가 첩보 작전이자 소리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강아지 사료와 고양이 사료, 그 미묘한 맛의 차이가 불러온 거실의 비극을 기록해 봅니다.
1. 0.5초 컷 vs 미식가의 고뇌
먼저 마루의 식사 스타일은 '진공청소기'였습니다. 사료 그릇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흡!" 하고 들이마시면 0.5초 만에 바닥이 드러났죠. 리트리버의 피가 흐르는 녀석답게 식탐은 끝이 없었고, 다 먹고 나면 항상 "나는 오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억울한 표정으로 제 발등을 핥았습니다.
반면 미오는 전형적인 '깨작이' 미식가였습니다. 사료 한 알을 입에 넣고는 창밖을 한 번 보고, 세수 한 번 하고, 다시 한 알을 씹는 식이었죠. 고양이는 자율 배식이 가능하다는 말을 믿고 밥그릇을 가득 채워둔 게 화근이었습니다.
2. 마루의 잠입 취재: "고양이 밥은 무슨 맛일까?"
사건은 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발생했습니다. 평소 자기 밥을 순식간에 해치운 마루가 슬금슬금 미오의 밥그릇으로 다가간 것이죠. 강아지 사료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 향이 훨씬 진한 고양이 사료는 마루에게 거부할 수 없는 천상의 향기였을 겁니다.
마루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커다란 주둥이를 미오의 작은 사료 그릇에 쑤셔 넣었죠. 그때였습니다. 캣타워 위에서 졸고 있는 줄 알았던 미오가 번개처럼 내려와 마루의 콧등에 '냥펀치'를 날렸습니다.
"깨갱!"
마루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미오는 밥그릇 옆을 지키며 "내 밥에 코 대지 마라"는 듯 매서운 눈빛을 쏘아댔습니다. 하지만 마루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거실 소파 뒤에 숨어 눈만 빼꼼히 내밀고 미오가 밥그릇을 비우기만을 기다리는 '잠복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3. 고양이의 반격: "개 사료도 나쁘지 않네?"
웃기는 건 미오였습니다. 정작 자기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마루가 자기 밥그릇 근처에 오는 꼴을 못 보던 녀석이 어느 날은 마루의 빈 그릇에 남은 가루를 핥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강아지 사료는 고양이에게 영양학적으로 부족하지만, 미오에게는 그저 '뺏어 먹는 재미'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루가 간절하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 미오는 보란 듯이 마루의 밥그릇 안으로 들어가 식빵을 구워버렸습니다.
"미오야, 그건 네 침대가 아니야!"
마루는 자기 집(밥그릇)을 점령당한 난민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결국 마루의 자존감을 위해 미오를 안아 들어 캣타워로 옮겨야 했습니다.
4. 특명: 식탁 위의 만찬을 사수하라
진짜 전쟁은 녀석들의 밥그릇이 아니라 '내 밥그릇'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할 때 녀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마루는 식탁 밑에서 '턱 괴기' 신공을 선보였습니다. 내 무릎 위에 묵직한 턱을 올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죠. 반면 미오는 수직 공간의 지배자답게 식탁 바로 옆 의자, 혹은 냉장고 위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내가 고개를 돌린 찰나에 솜방망이를 뻗었습니다.
한 번은 샌드위치를 잠시 두고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마루가 빵을 물고 미오가 햄을 낚아채는 환상의 복식조 플레이를 목격했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앙숙처럼 굴더니, 내 밥을 털 때만큼은 '어벤져스'급 팀워크를 보여주더군요.
5. 평화의 식사 시간을 찾아서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마루는 거실 구석에서 벽을 보고 먹게 하고, 미오는 싱크대 위 높은 곳에서 따로 배식을 시작했죠. 서로가 무엇을 먹는지 보이지 않게 하는 '시각 차단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서로의 그릇을 찾아가 '설거지'를 해주는 녀석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녀석들에게 식사 시간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탐색하는 가장 치열한 소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마루야, 미오야. 각자 밥만 좀 먹자, 제발!"
오늘도 우리 집 식탁 앞은 맛있는 냄새와 녀석들의 끈질긴 콧김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내 반찬 한 점을 뺏겼지만,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는 두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내 배가 다 부른 느낌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사'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죠.
[작가의 사후 기록]
고양이 사료는 개에게 너무 고칼로리라 마루의 다이어트 최대 적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미오는 마루의 사료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침대 밑으로 다 집어넣어 버리는 나쁜 버릇이 생겼죠. 결국 우리 집 침대 밑은 거대한 '사료 저장고'가 되어버렸답니다.
제5회: 첫 산책의 추억 – 줄에 끌려가는 인간과 멈춰버린 강아지
집 안에서의 서열 정리와 식사 전쟁이 어느 정도 일단락될 무렵,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바로 반려견 인생의 꽃이자 집사 운동 부족의 해결책, **‘첫 산책’**입니다. 예방접종을 모두 마치고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제 밖으로 나가도 됩니다"라는 허락을 받은 날, 나는 비장한 각오로 가슴줄(하네스)을 꺼내 들었습니다.
1. 핑크빛 환상: 공원의 모델 견(犬)
내 머릿속 산책은 이랬습니다. 화창한 햇살 아래, 멋진 하네스를 착용한 마루가 내 보폭에 맞춰 우아하게 걷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어쩌면 저렇게 얌전해?"라며 감탄하고, 나는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아 마루와 교감을 나누는 장면.
하지만 현실은 현관문을 열기 전부터 삐걱거렸습니다. 하네스를 처음 본 마루는 그것이 자기를 잡으러 온 포획 도구인 줄 알았는지, 소파 밑으로 기어 들어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억지로 끌어내어 줄을 채우는 데만 30분이 걸렸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미오는 캣타워 꼭대기에서 "바깥세상은 지옥이야, 인간아"라고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꼬리를 까딱였습니다.
2. 문밖은 위험해: '얼음'이 된 마루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고, 바깥세상의 공기가 밀려 들어왔습니다. 나는 위풍당당하게 "가자, 마루야!"를 외치며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어라? 뒤에서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루가 네 발을 대리석 바닥에 접착제처럼 딱 붙인 채 '얼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작은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엘리베이터 벨 소리 하나하나에 마루의 큰 귀가 펄럭이며 떨렸습니다. 20kg의 덩치가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습이라니. 결국 나는 산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루를 안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타야 했습니다. (내 허리가 비명을 지른 건 덤입니다.)
3. 폭주 기관차와 '킁킁' 수사대
아파트 단지 밖 공원에 도착해 마루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겁쟁이 모드가 해제되고 갑자기 **'폭주 기관차 모드'**가 발동된 것이죠.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다른 강아지들의 흔적을 발견한 마루는 코를 바닥에 박은 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루야! 천천히! 마루!!!"
나는 우아한 커피는커녕, 줄에 매달린 채 공원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의 연(Kite)이 되어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다 녀석은 갑자기 멈춰 서서 가로등 밑의 냄새를 5분 동안 맡았습니다. 가야 할 때 멈추고, 멈춰야 할 때 달리는 마루의 청개구리식 산책에 나의 무릎 관절은 서서히 마모되어 갔습니다.
4. 길 위에서 만난 '멍멍' 동지들
산책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다른 강아지를 만날 때였습니다. 저 멀리서 작고 귀여운 푸들 한 마리가 다가오자, 마루는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돌리며 환영 인사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마루가 육중하게 다가오자 푸들 주인분은 화들짝 놀라며 강아지를 안아 올리더군요.
"우리 애는 안 물어요! 그냥 바보예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마루가 신나서 내뱉는 거친 숨소리는 마치 맹수의 포효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본의 아니게 공원의 '기피 대상'이 된 마루를 보며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루야, 괜찮아. 엄마(아빠)가 있잖아."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5. 돌아온 집, 그리고 고양이의 환대(?)
한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집에 돌아오자, 현관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오였습니다. 밖의 냄새를 잔뜩 묻혀온 마루가 신기한지, 미오는 마루의 발을 꼼꼼히 검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루는 산책의 피로가 몰려왔는지 거실 한복판에 대자로 뻗어버렸습니다. 평소엔 마루를 괴롭히던 미오도 그날만큼은 마루의 등 옆에 살며시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 창밖을 바라보더군요. 마치 "고생했다, 똥개야. 밖은 여전히 시끄럽지?"라고 위로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첫 산책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내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마루는 길가에 핀 꽃보다 비둘기 똥에 더 큰 관심을 보였지만, 녀석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이제 마루의 세계는 이 좁은 거실에서 저 넓은 공원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세계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 나의 새로운 임무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작가의 사후 기록]
그날 이후 마루는 '산책'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심지어 제가 운동화를 신는 소리만 들어도 현관 앞에 가서 대기하죠. 덕분에 저도 강제로 매일 5km씩 걷게 되었습니다. 반려견은 주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가장 확실한 '퍼스널 트레이너'임이 분명합니다.
제6회: 수직 공간의 발견 – “올라가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마루가 산책을 통해 ‘가로의 세계(평면)’를 확장했다면, 미오는 집 안에서 자신만의 ‘세로의 세계(수직)’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한 공간에 살 때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 바로 이 ‘높이’에 대한 관점입니다. 마루에게 바닥은 삶의 전부였지만, 미오에게 바닥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하찮은 통로일 뿐이었죠.
1. 캣타워: 고양이만의 난공불락 성벽
드디어 거실 한구석에 거대한 캣타워를 조립해 세운 날이었습니다. 마루는 이 거대한 나무 기둥이 새로운 간식 창고인 줄 알았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미오는 달랐습니다. 녀석은 조립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판을 딛고 꼭대기 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갔습니다.
그곳은 마루의 주둥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미오만의 ‘성역’이었습니다. 캣타워 꼭대기 바구니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미오의 표정은 흡사 고대 로마의 황제 같았습니다. 마루가 밑에서 "나랑 놀자!"며 짖어대도, 미오는 아주 느긋하게 앞발을 핥으며 마루의 정수리를 구경할 뿐이었죠.
2. 마루의 부러운 눈빛: “나도 올라가고 싶어!”
마루는 억울했습니다. 자기는 덩치도 훨씬 크고 힘도 센데, 왜 저 작은 치즈 덩어리는 하늘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마루는 캣타워 첫 번째 발판에 앞발을 올리고 끙끙거렸습니다. 하지만 리트리버의 몸구조상 수직 상승은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한 번은 마루가 큰 결심을 한 듯 뒷다리에 힘을 주고 점프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쿵!' 소리와 함께 거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 진동에 놀란 미오는 캣타워 위에서 "하악!" 짧은 비명을 지르며 털을 세웠습니다. 그날 이후 마루는 캣타워 근처에 갈 때마다 슬픈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3. 냉장고 위의 지배자
미오의 영역 확장은 캣타워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요리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냉장고 위에서 두 개의 노란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미오야! 거기 어떻게 올라갔어?"
녀석은 식탁을 징검다리 삼아, 찬장을 거쳐 냉장고 꼭대기까지 점령한 상태였습니다. 그곳은 집안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명당이었죠. 마루는 주방 바닥에 앉아 목이 꺾일 듯 고개를 처들고 냉장고 위를 향해 간절하게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마치 "거기 경치 좋아? 간식 있어?"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미오는 그런 마루가 가엽지도 않은지, 냉장고 위에 쌓아둔 키친타월 뭉치를 앞발로 툭 쳐서 마루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습니다. '수직의 권력'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이었습니다.
4. 하늘과 땅의 평화로운 공존
시간이 흐르면서 두 녀석은 나름의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마루는 바닥의 지배자로서 현관문을 지키고, 소파 밑 장난감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미오는 하늘의 감시자로서 커튼봉 위, 장롱 위, 캣타워를 돌며 집안의 치안을 담당했죠.
재미있는 건, 가끔 마루가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 때면 미오가 조용히 캣타워에서 내려와 마루의 옆구리에 슬쩍 몸을 붙이고 잠든다는 사실입니다. 높은 곳이 안전하긴 하지만, 가끔은 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모양입니다. 그러다 마루가 잠결에 다리를 휘저으면 미오는 순식간에 다시 책장 위로 도망가 버리곤 했지만요.
5. 집사의 시선: 입체적인 행복
두 녀석 덕분에 나의 시야도 입체적으로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바닥에 떨어진 먼지만 신경 썼다면, 이제는 천장에 매달린 거미줄이나 냉장고 위의 먼지까지 체크해야 하는 '풀 옵션 청소'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소파에 앉아 아래로는 마루의 묵직한 머리를 쓰다듬고, 위로는 캣타워에서 늘어진 미오의 꼬리를 구경하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 삶이 이렇게 꽉 찬 적이 있었나?'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복슬복슬한 온기. 6회차에 접어든 우리의 동행은 그렇게 높낮이를 맞춰가며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사후 기록]
결국 저는 미오의 등쌀에 못 이겨 벽면에 '캣워크'를 설치해주었습니다. 이제 미오는 거실 벽을 타고 질주하며 마루를 농락합니다. 마루는 포기했는지 이제는 미오가 벽을 탈 때마다 관객처럼 앉아서 꼬리만 흔듭니다. "오, 오늘 점프 좀 높았는데?" 하는 표정으로 말이죠.
제7회: 배변 훈련 잔혹사 – “거기는 화장실이 아니야!”
개와 고양이를 동시에 키우며 가장 먼저 마주하는 냉혹한 현실, 그것은 바로 '배변' 문제입니다. 고양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래만 있으면 알아서 뒷처리를 하는 '유전적 결벽증'을 타고난 반면, 강아지는 세상 모든 바닥을 도화지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표현주의 예술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1. 고양이 미오의 ‘모래 사랑’과 사막화
미오는 정말 기특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 위치를 한 번 알려주었더니, 그 작은 발로 모래를 파헤치며 완벽하게 적응했죠. 문제는 미오의 '열정'이었습니다. 볼일을 보고 나면 모래를 어찌나 정성스럽게 덮는지, 화장실 주변은 늘 고비 사막처럼 모래바람이 일었습니다.
거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에 서걱거리는 모래 알갱이들. 나는 매일 무선 청소기를 들고 미오의 뒤를 쫓아다니는 '사막 관리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마루에 비하면 아주 우아한 고민이었습니다.
2. 마루의 예술 혼: "카페트는 나의 캔버스"
마루는 배변 패드라는 문명 도구에 큰 의구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녀석에게 패드는 볼일을 보는 곳이 아니라, 신나게 물어뜯고 흔들어서 거실에 눈꽃송이(솜뭉치)를 뿌리는 놀잇감이었죠.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마루는 현관문 앞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반겼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에는 묘한 죄책감이 서려 있었죠.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내가 가장 아끼던 아이보리색 페르시아풍 카페트 정중앙에 거대한 '지구본' 형상의 얼룩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마루야아아! 여기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마루는 내 목소리 톤이 올라가자마자 바닥에 배를 깔고 기어가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면 화를 낼 수가 없었지만,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향기는 내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강아지도 패드에 서게 한다?
인터넷에서 배변 훈련법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결론은 '혼내지 말고, 성공했을 때 간식으로 폭풍 칭찬하라'였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잠복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마루가 밥을 먹고 나면 나는 간식을 들고 녀석의 엉덩이만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마루가 킁킁거리며 바닥을 돌기 시작하면 나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안아 패드 위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마루는 내가 쳐다보고 있으면 쑥스러운지 갑자기 하품을 하며 먼 산을 보더군요. 그러다 내가 잠시 물을 마시러 간 찰나에... 패드 바로 옆, 단 10cm 비껴간 바닥에 볼일을 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마루는 "거의 다 맞혔죠?" 하는 당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습니다.
4. 미오의 훈수: "형, 멍청해?"
더 웃긴 건 미오의 반응이었습니다. 마루가 배변 실수를 해서 내가 걸레질을 하고 있으면, 미오는 높은 캣타워에서 그 꼴을 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내려와서 마루가 실수한 자리를 냄새 맡고는, 앞발로 바닥을 긁는 흉내를 냈습니다. 마치 "야, 이건 이렇게 덮어야 하는 거야. 멍청하긴"이라고 훈수를 두는 것 같았죠.
마루는 그런 미오의 참견이 자존심 상했는지 코를 킁킁거리며 미오를 쫓아냈지만,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또 다른 위치에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려놓곤 했습니다.
5. 마침내 찾아온 '골인'의 순간
사투를 벌인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마루가 평소와 다르게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배변 패드 위에 올라갔습니다. 뒷다리를 살짝 굽히고 집중하는 그 경건한 자세!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마침내 '골인'.
"우와아아! 마루 천재! 마루 최고!"
나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환호하며 마루를 껴안고 거실을 돌았습니다. 마루는 자기가 뭘 잘했는지 정확히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주인이 저렇게 미친 듯이 좋아하며 간식을 퍼주니 "아, 이 하얀 종이 위에 뭔가를 배출하면 파티가 열리는구나"라고 깨달은 모양이었습니다.
6. 걸레질 끝에 오는 평화
물론 그날 이후로도 몇 번의 실수는 더 있었습니다. 하지만 빈도는 확실히 줄어들었고, 이제 내 코는 '범죄 현장'을 즉각 찾아내는 탐지기 수준으로 진화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으며 나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가 흘린 뒤처리를 묵묵히 해주는 인내심이라는 것을요. 락스 냄새와 사료 냄새가 섞인 우리 집 거실. 비록 카페트는 세탁소로 떠났지만, 패드 위에서 당당하게 꼬리를 흔드는 마루를 보니 오늘도 왠지 모를 성취감이 밀려옵니다.
[작가의 사후 기록]
배변 훈련이 끝났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강아지들은 가끔 주인이 관심을 안 주면 '복수'의 의미로 다시 카페트를 찾곤 하니까요. 그리고 고양이 미오는 여전히 마루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문앞에서 감시관처럼 지키고 서 있답니다.
제8회: 마루의 첫 목욕 – 욕실의 물귀신과 ‘개기름’의 최후
배변 훈련의 고비를 넘기니 이번엔 '후각적 테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책길에 온갖 풀숲을 헤집고 다니고, 미오의 하악질을 피해 구석진 먼지를 온몸으로 닦고 다닌 마루에게서 드디어 '꼬수운' 개 냄새를 넘어선 '시큼한' 향기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죠. 드디어 운명의 날, 마루의 생애 첫 목욕일이 밝았습니다.
1. 평화로운 유인 작전
욕실 문을 열고 따뜻한 물을 틀었습니다. 마루는 물소리가 나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욕실 근처를 기웃거렸죠. 나는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마루가 가장 좋아하는 닭가슴살 간식을 들었습니다.
"마루야, 여기 좋은 거 있다~ 시원하게 마사지 한 번 할까?"
마루는 간식에 홀려 꼬리를 살랑이며 욕실 안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발바닥에 닿은 타일의 차가운 감촉, 그리고 자욱한 수증기를 마주한 순간 마루의 본능이 경보를 울렸습니다. 녀석은 뒤를 돌아 탈출을 시도했지만, 나는 이미 잽싸게 문을 닫은 후였습니다.
2. 물에 젖은 리트리버는 '해그리드'가 된다
샤워기에서 따뜻한 물이 뿜어져 나오자 마루는 패닉에 빠졌습니다. 20kg의 거구가 내 다리 사이로 머리를 파고들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죠.
"괜찮아, 마루야. 시원해지는 거야!"
억지로 물을 뿌리기 시작하자, 녀석의 그 풍성했던 털들이 순식간에 몸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듬직했던 마루는 간데없고, 웬 뼈대만 앙상한(사실은 살집이 있는) 생쥐 꼴을 한 짐승이 서 있었습니다. 샴푸를 짜서 거품을 내자 마루는 자포자기했는지 먼 산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하는 표정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헹구기' 단계였습니다. 물이 몸에 닿을 때마다 마루는 전신을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파다다다닥!"
엄청난 원심력과 함께 샴푸 거품과 물기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내 안경은 순식간에 거품 범벅이 되었고, 욕실 벽면은 마루의 '예술적 액션 페인팅'으로 도배되었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마루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녀석의 꼬리는 이미 거대한 물채찍이 되어 내 종아리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3. 구경꾼 미오의 고소한 미소
욕실 안이 아수라장이 된 그때, 투명한 욕실 문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바로 미오였습니다. 고양이는 물을 극도로 싫어하기로 유명하죠. 미오는 문밖 안전한 거리에서 캣타워에 앉아, 물에 젖어 생쥐 꼴이 된 마루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봐, 인간이랑 놀아나더니 꼴좋다"라고 비웃는 듯한 그 표정. 마루가 억울함에 "왈!" 하고 짖자, 미오는 여유롭게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솜방망이로 문 유리창을 툭툭 쳤습니다. 마치 관람료라도 내야 할 판이었죠.
4. 드라이기라는 괴물과의 사투
목욕보다 더한 난관은 말리기였습니다. 수건 세 장을 써서 닦아냈지만 마루의 털은 여전히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었습니다. 드라이기를 켜는 순간, 그 '위이잉' 하는 기계음에 마루는 다시 한번 발광했습니다.
드라이 바람을 피하려 거실을 질주하는 마루와, 드라이기를 들고 쫓아가는 나, 그리고 그 소동을 피해 전등 위로 올라가려는 미오. 우리 집은 순식간에 서커스장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나는 마루를 구석에 몰아넣고 30분 동안 팔이 빠져라 드라이질을 한 끝에야 보송보송한 '인절미'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5. 향긋한 평화 뒤의 대참사
목욕을 마친 마루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향기로운 강아지가 되었습니다. 베이비 파우더 향기를 풍기며 거실에 누워 있는 마루를 보며 나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5분을 가지 못했습니다. 마루는 자기 몸에서 나는 낯선 향기가 싫었는지, 거실 소파 밑 구석—먼지가 가장 많이 쌓인 그곳—으로 기어 들어가 등을 바닥에 대고 미친 듯이 비벼대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 마루야! 방금 씻었단 말이야!"
다시 소파 밑에서 기어 나온 마루의 등에는 회색 먼지 뭉치들이 훈장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녀석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보며 웃더군요.
6. 깨달음: 씻기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땀과 물에 젖어 녹초가 된 나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털 한 번 씻기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싶다가도, 뽀송해진 털을 내 얼굴에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마루를 보니 사르르 녹았습니다.
옆에서 미오는 "난 스스로 씻는데"라며 우아하게 그루밍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청결을 유지하는 두 짐승 사이에서, 나는 내일도 모레도 걸레를 들고 뛰어다닐 운명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꼬수운 냄새든, 파우더 향기든, 이 녀석들이 내 곁에서 내뿜는 모든 숨결이 이제는 내 삶의 향기가 되었으니까요.
[작가의 사후 기록]
이후 저는 '펫 드라이룸' 가격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드라이기를 다시 집어 들었죠. 마루야, 우리 그냥 운동 삼아 좀 더 뛰어다니자. 대신 미오야, 너는 구경할 때 팝콘이라도 좀 들고 있지 그러니?
제9회: 예방접종 가는 길 – 이동장 안의 호랑이와 사시나무 개
목욕의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도 전,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그날이 왔습니다. 바로 '정기 예방접종' 날입니다. 집 안에서는 호랑이보다 무섭고 폭주 기관차보다 힘이 넘치는 녀석들이지만, '병-원'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비겁한(?) 모습들을 목격한 하루였습니다.
1. 눈치의 달인들: "가방이 나오면 도망쳐라"
녀석들은 귀신같습니다. 평소엔 내가 가방을 들면 "회사 가나 보다" 하고 배웅도 안 하던 녀석들이, 동물병원 전용 이동장과 마루의 굵직한 외출용 목줄을 꺼내자마자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미오는 캣타워 가장 깊숙한 구멍으로 쏙 들어가 '식빵'을 굽기 시작했고, 마루는 꼬리를 다리 사이로 감춘 채 식탁 밑으로 잠적했습니다. 평소 "마루야 산책 가자!" 하면 현관문이 부서져라 달려오던 녀석이, '병원' 냄새가 나는 이동장 앞에서는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온 척 연기를 하더군요.
2. 이동장 안의 호랑이: 미오의 분노
먼저 미오를 이동장에 넣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평소 내 무릎 위에서 골골대던 그 천사 같은 고양이는 어디 가고, 이동장 입구에 발을 갖다 대자마자 사방으로 발톱을 세운 '성난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샤아아악! 하악!"
공중에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미오를 간신히 이동장에 넣고 지퍼를 잠갔습니다. 이동장 안에서 들려오는 미오의 울음소리는 마치 "이 배신자 집사야!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거냐!"라는 원망 섞인 통곡 같았습니다. 미오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식탁 밑 마루의 눈동자는 점점 더 커지며 경련을 일으켰죠.
3. 사시나무 개: 20kg의 굴욕
문제는 마루였습니다. 덩치가 산만한 녀석을 안고 갈 수도 없고, 녀석은 이미 바닥에 배를 딱 붙인 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결국 간식으로 달래고 달래서 겨우 차 뒷좌석에 태웠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백미러로 본 마루의 상태는 가관이었습니다. 창밖 풍경을 즐기기는커녕, 턱을 덜덜 떨며 창문에 코를 박고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덩치는 산만한 리트리버 믹스가 옆에 놓인 작은 이동장 속 미오보다 더 겁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미오는 오히려 이동장 틈새로 마루를 쳐다보며 "넌 덩치값도 못 하냐?"는 듯 잠시 울음을 그치고 한심하게 쳐다보더군요.
4. 병원 대기실: 엇갈린 공포
동물병원 대기실은 그야말로 '비명과 침묵'의 전당이었습니다. 미오는 이동장 안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우워어어언..." 하며 저주에 가까운 소리를 냈고, 마루는 대기실 의자 밑으로 머리만 밀어 넣은 채 몸통은 다 노출된 '타조'식 숨기 비법을 선보였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마루, 미오 들어오세요~"라고 부르는 순간, 마루는 바닥에 발톱을 박고 버텼습니다. 결국 나는 20kg의 마루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해서 진료실로 입성했습니다.
5. 반전의 진료실: 주사보다 무서운 체중계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수의사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체중 검사'였습니다. 마루는 주사를 맞기도 전에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이 "어휴, 마루가 그새 살이 좀 올랐네요?"라고 하자 마루는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너도 창피한 건 아는구나?)
드디어 주사 타임. 마루는 바늘이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선생님이 주는 개껌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어? 끝났어요?" 하는 표정으로 껌을 씹는 마루를 보며 아까의 소동이 허무해졌습니다.
반면 미오는 진료대에 오르자마자 선생님의 손길을 피해 요리조리 '액체 괴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하지만 베테랑 수의사 선생님의 담요 신공(고양이를 보자기처럼 싸는 기술) 앞에서는 미오도 속수무책이었죠. 주사를 맞고 나서 미오는 분노의 꼬리치기를 선보이며 다시 이동장으로 자진 입성했습니다. "빨리 집에 가자!"는 강력한 의지표현이었죠.
6. 돌아오는 길의 평화와 '간식의 보상'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마루의 꼬리는 다시 헬리콥터처럼 돌기 시작했습니다. "나 주사 잘 맞았지?"라며 위풍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조금 전 식탁 밑 겁쟁이와 같은 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 문을 열어주자 미오는 번개처럼 캣타워 꼭대기로 도망갔습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특식(츄르와 북어 트릿)을 꺼냈습니다. 방금까지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던 녀석들이, 간식 봉지 뜯는 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발밑에 모여 앉았습니다.
"너희 정말 단순하구나..."
주사 자국을 핥으며 맛있게 간식을 먹는 녀석들을 보며, 이 소란스러운 외출도 결국 우리를 건강하게 이어주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 파란만장한 1부의 대미를 장식할 '가족사진' 촬영뿐입니다.
[작가의 사후 기록]
동물병원 영수증을 볼 때마다 제 가슴도 조금 아프지만, 녀석들의 건강한 숨소리를 들으면 금세 잊힙니다. 참, 미오는 그날 이후로 제가 가방만 만져도 30분 동안 장롱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부작용(?)이 생겼답니다.
제10회: 첫 번째 가족사진 – 따로 또 같이, 비로소 ‘우리’가 된 순간
드디어 제1부의 대미를 장식할 미션이 찾아왔습니다. 입양 후 10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여, 우리 셋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공식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죠. 하지만 사진 한 장에 개와 고양이, 그리고 영혼이 탈탈 털린 집사가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NASA에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만큼이나 정교한 계산과 운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1. 스튜디오는 무리, 거실을 세트로!
전문 스튜디오에 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낯선 곳에 가면 '얼음'이 되는 마루와 '분노의 질주'를 하는 미오의 성격을 고려해, 우리 집 거실 창가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곳을 스튜디오로 꾸몄습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타이머를 맞춘 뒤, 나는 비장한 각오로 녀석들을 소집했습니다.
"마루, 미오! 일로 와봐. 오늘 우리 가족사진 찍는 날이야!"
2. 1단계: 마루의 ‘혓바닥’ 공격
먼저 마루를 자리에 앉혔습니다. 녀석은 "사진"이라는 단어는 몰라도 "간식"이라는 기류는 읽었습니다. 얌전히 앉아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나를 바라보는 마루의 모습은 꽤 그럴싸했습니다. 문제는 내가 마루 옆에 앉기만 하면 녀석이 반갑다며 내 얼굴을 거대하고 축축한 혓바닥으로 닦아주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마루야, 뽀뽀는 나중에! 앞을 봐, 앞을!"
타이머 셔터가 터지는 순간, 사진 속의 나는 마루의 혓바닥에 눈이 가려져 윙크하는 것처럼 찍혔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마루의 과한 애정으로 실패였습니다.
3. 2단계: 미오의 ‘탈출 마법’
이제 미오를 합류시킬 차례였습니다. 미오는 고양이답게 내가 지정한 자리에 앉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캣타워에서 억지로 데려다 놓으면 소파 밑으로 들어가고, 소파 밑에서 꺼내놓으면 창틀 위로 올라갔습니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인 '츄르'를 꺼내 들었습니다. 츄르를 카메라 렌즈 바로 위에 발라두자 미오가 드디어 렌즈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좋아, 지금이야!"
다시 타이머를 맞추고 빛의 속도로 녀석들 사이에 끼어 앉았습니다. 하지만 셔터가 터지기 직전, 미오는 츄르 향기를 다 맡았는지 뒤태만 남기고 프레임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사진에는 얌전한 마루와 웃고 있는 나, 그리고 허공으로 날아가는 노란 꼬리 한 가닥만 남았습니다.
4. 3단계: 장난감과 소리의 협주곡
벌써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땀 범벅이 되었고, 마루는 기다림에 지쳐 하품을 했으며, 미오는 캣타워 꼭대기에서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봤습니다.
마지막 전략을 짰습니다. 한 손에는 마루를 위한 개껌을, 다른 한 손에는 미오가 환장하는 깃털 장난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입에는 삑삑이 장난감을 물었습니다.
"삑-삑-!"
입으로 소리를 내며 깃털을 흔들자, 마루는 귀를 쫑긋 세우며 정면을 봤고, 미오도 신기한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메라를 응시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찰칵!'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5. 사진 속의 세 식구, 그리고 1부의 끝
결과물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마루는 혓바닥을 반쯤 내밀고 바보처럼 웃고 있었고, 미오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심오한 철학자 같은 표정이었으며, 나는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 속에는 지난 10회 동안 우리가 겪었던 모든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으로 태어나, 전혀 다른 길을 걷던 우리 셋이 이제는 한 프레임 안에서 같은 온기를 나누는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사진을 인화해 냉장고 문에 붙였습니다. 털 날리고, 잠 못 자고, 걸레질하느라 손이 마를 날 없는 일상이지만, 저 사진 속 녀석들의 눈망울을 보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루야, 미오야.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더 재미있게 지내보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오는 사진이 붙은 냉장고 문을 앞발로 툭 치고 지나갔고, 마루는 내 발가락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좌충우돌 입성기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 더 깊은 일상의 바다로 나아갈 2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의 사후 기록]
이 가족사진은 현재 우리 집의 보물 1호입니다. 물론 그날 이후로 녀석들은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는 '사진 공포증'이 생겼지만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진보다 더 선명한 기억들이 제 마음속에 매일매일 저장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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