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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 한 보부상 소녀의 기록 -

24회. 궐 앞에서

다음 날 새벽.

민호가 유생들을 모았다.

백 명이 넘었다.

모두 흰 옷을 입고, 손에는 상소문을 들었다.

"오늘 우리는 왕께 직접 호소한다."

민호가 말했다.

"정석을 구하고, 진실을 밝힌다."

유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나타났다.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당당하게.

"준비됐어?"

민호가 물었다.

"응."

"정말 나가는 거야? 잡힐 수도 있어."

"알아. 하지만 해야 해."

유생들이 도윤을 보았다.

"저 사람이 강도윤?"

"종로상단을 고발한?"

"용감하다..."

도윤은 유생들 앞에 섰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우리는 진실을 위해 왔습니다."

한 유생이 말했다.

"당신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같이 갑시다."

그들은 궐로 향했다.

백 명이 넘는 유생들의 행렬.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저게 뭐야?"

"유생들이 왜 저렇게 많이?"

"뭔가 큰일인가 보다."

행렬은 계속 나아갔다.

궐 앞에 도착했다.

대문 앞.

궁궐 수비병들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냐?"

"왕께 상소를 올리러 왔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상소? 정식 절차를 밟아라."

"긴급한 일입니다. 직접 올려야 합니다."

"안 된다. 물러가라."

유생들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왕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수비병들은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유생들을 어떻게 할까.

"일단... 기다려라. 보고하겠다."

수비병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도윤과 유생들은 기다렸다.

해가 떠올랐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유생들이 왕께 상소를 올린대."

"뭔 일로?"

"종로상단 건이래."

구경꾼들이 늘어났다.

소문이 퍼졌다.

"강도윤이 직접 나왔대."

"용감하네. 잡힐 텐데."

"아니면 왕이 들어줄 수도 있어."

시간이 흘렀다.

정오가 되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유생들은 지쳤지만 버텼다.

"물러나지 않습니다!"

"왕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그때 대문이 열렸다.

관리 하나가 나왔다.

"왕께서 부르신다. 대표 한 명만 들어오라."

도윤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민호가 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조심해."

"응."

도윤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긴 복도를 지나, 전각으로 향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왕을... 직접 뵙는 건가.'

전각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안에는 왕이 앉아 있었다.

도윤은 무릎을 꿇었다.

"신 강도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들어라."

왕의 목소리는 위엄이 있었지만, 차갑지는 않았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왕을 보았다.

중년의 남자.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네가 이 소동을 일으킨 자냐?"

"...네, 전하."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였느냐?"

도윤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늘 고통받는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냐?"

"하지만 부당한 고통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도윤을 한참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를 아느냐?"

"...네."

"네 아버지도 조사를 받고 있다. 네가 그렇게 만들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옳은 일이었습니다."

"옳은 일?"

왕이 되물었다.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

"배신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진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 유생들이 많더구나."

"네. 모두 진실을 원합니다."

"진실을 원한다..."

왕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네 상소를 읽었다."

"...감사합니다."

"내용이 충격적이더구나."

"모두 사실입니다."

"사실이라면, 이것은 단순히 종로상단의 문제가 아니다. 조정 전체의 문제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왕은 도윤에게 다가왔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정의입니다."

"정의?"

"네. 잘못한 자는 벌을 받고, 피해를 입은 자는 구제받는 것. 그것이 정의입니다."

왕은 미소 지었다.

"젊은이답구나.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왕은 도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용기 있는 자로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지혜도 필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왕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좋다. 네 청을 들어주겠다."

도윤은 놀랐다.

"정말입니까?"

"사헌부 조사를 계속하게 하겠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도윤은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너는 관직에 나아가라."

"...네?"

"나라는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안에서 바꾸는 사람이."

도윤은 당황했다.

"저는... 자격이..."

"자격은 내가 판단한다. 너는 이미 증명했다."

"..."

"약속하겠느냐?"

도윤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겠습니다."

"좋다. 물러가라."

도윤은 일어났다.

문을 나서려는데, 왕이 다시 불렀다.

"강도윤."

"네, 전하."

"네 친구, 정석을 풀어주겠다."

도윤은 눈물이 났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도윤은 전각을 나왔다.

밖으로 나가니, 유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민호가 달려왔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어."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생들이 환호했다.

"만세!"

"정의가 승리했다!"

구경꾼들도 박수를 쳤다.

도윤은 그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

안도의 눈물.

그리고 희망의 눈물.

'서린... 우리가 해냈어. 정말 해냈어.'

25회. 변화의 시작

왕의 약속은 지켜졌다.

정석이 풀려났다.

사헌부 조사는 계속되었고, 더 많은 비리가 드러났다.

종로상단과 연루된 관리들이 파면되었다.

투자자들은 처벌받았다.

강만수도 유배형을 받았다.

종로상단은 해체되었다.

그리고 왕의 명으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다.

"장터 공정화 법령"

모든 장터는 공공의 것이며, 부당한 자리세 부과를 금한다.

보부상들의 권리를 보호한다.

분쟁 발생 시 관에서 중재한다.

작은 변화였지만, 시작이었다.

수원.

서린은 소식을 들었다.

"정말... 정말 이긴 거야?"

"그래. 왕이 직접 명을 내렸대."

무겸이 말했다.

"도윤이 해냈어."

서린은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서린은 장터로 나갔다.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들었어요? 법이 바뀌었어요!"

"이제 우리도 보호받을 수 있어요!"

보부상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야?"

"우리가... 정말?"

"네! 왕의 명령이에요!"

기쁨이 퍼졌다.

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울었다.

"드디어... 드디어야..."

오랜 고통이 조금은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도윤이 수원에 왔다.

서린과 무겸을 만나러.

"도윤 씨!"

서린이 달려와 도윤을 껴안았다.

도윤은 놀랐지만, 서린을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 네가 시작했잖아. 기록을."

무겸도 다가왔다.

"수고했어."

"너도."

셋은 함께 앉았다.

장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서린이 물었다.

"나는 한양으로 돌아가. 왕과의 약속을 지켜야 해."

"관직에 나간다고?"

"응.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바꾸려고."

"멋지다."

무겸이 말했다.

"너는?"

도윤이 무겸에게 물었다.

"나는 여기 남을 거야. 서린을 도우면서."

"나를?"

서린이 놀라 물었다.

"응. 너는 앞으로도 계속 기록할 거잖아. 나도 돕고 싶어."

서린은 미소 지었다.

"고마워."

셋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말없이.

하지만 마음은 통했다.

그들은 함께 싸웠고, 함께 이겼고, 함께 꿈꿨다.

더 나은 세상을.

"그나저나..."

도윤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야 해."

"유배지로?"

"응. 작별 인사를 해야지."

"힘들겠다."

"응. 하지만 해야 해."

일주일 후.

도윤은 강만수가 유배된 섬으로 갔다.

먼 곳이었다. 배를 타고 이틀이 걸렸다.

섬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 가난하고 외로운 곳.

강만수는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도윤이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저... 도윤입니다."

잠시 침묵.

문이 열렸다.

강만수가 나타났다.

야위었다. 수염이 길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왔구나."

"네, 아버지."

"들어와."

오두막 안은 좁았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침묵이 흘렀다.

강만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옳았다."

"...네?"

"네가 한 일. 옳았어."

도윤은 놀랐다.

"아버지..."

"처음에는 네가 미웠다. 날 배신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봤어. 내가 잘못 살았구나."

강만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돈만 쫓았어. 힘만 믿었어. 사람은 보지 않았지."

"아버지..."

"미안하다, 도윤아. 네게 잘못된 것을 가르쳤구나."

도윤은 눈물이 났다.

"아니에요.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아니야. 나는 선택할 수 있었어. 하지만 쉬운 길을 택했지."

강만수는 도윤을 바라보았다.

"너는 어려운 길을 택했구나."

"...네."

"자랑스럽다."

도윤은 아버지를 껴안았다.

강만수도 아들을 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아버지, 제가 관직에 나갑니다."

"들었다. 잘하거라."

"아버지를 다시 모셔올게요. 유배가 끝나면."

"아니다. 나는 여기가 좋다."

"왜요?"

"처음으로 진짜 사람들을 보고 있어. 가난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을. 나는 여기서 배우고 싶구나."

도윤은 아버지를 다시 보았다.

정말 변했구나.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주 찾아뵐게요."

"그래. 기다리마."

도윤은 섬을 떠났다.

배에서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배에서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윤도 손을 흔들었다.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아버지... 잘 지내세요.'

도윤은 한양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26회. 각자의 길

석 달 후.

한양.

도윤은 사헌부 관리로 임명되었다.

낮은 직급이었지만, 의미가 있었다.

"강도윤, 앞으로 나오라."

상급 관리가 불렀다.

"네."

"네 첫 임무다. 경기도 지역 장터를 순찰하라. 새 법령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도윤은 경기도로 향했다.

여러 장터를 돌아다녔다.

대부분은 법령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곳은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자리세를 왜 이렇게 많이 받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법령에 정해진 금액 이상입니다."

장터 관리인이 당황했다.

"그게... 관례가..."

"관례는 이제 끝났습니다. 법을 따르십시오."

"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보고하겠습니다."

관리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이렇게 하나하나 바로잡아갔다.

쉽지 않았다.

저항도 많았다.

"누가 이런 법을 만들었어!"

"장사하기 힘들어!"

불만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도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옳은 일이야. 계속 해야 해.'

수원.

서린은 장터에서 장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자리세가 합리적이었다. 보호도 받았다.

장사가 안정되었다.

"서린아, 오늘 장사 잘됐구나."

아버지가 웃었다.

"네, 아버지. 요즘은 매일 이래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서린은 여전히 기록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변화의 기록이었다.

"오늘 새로운 보부상 세 명이 장터에 왔다."

"그들은 한양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온 사람들이다."

"새 법령 덕분에 다시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긍정적인 변화들.

작지만 의미 있는 순간들.

서린은 그것들을 모두 기록했다.

무겸은 서린을 도왔다.

물건을 나르고, 장터를 정리하고, 때로는 분쟁을 중재했다.

"무겸 씨, 고마워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 네가 나를 받아줘서."

"당신은 변했어요. 진짜로."

무겸은 미소 지었다.

"너희들 덕분이야."

무겸은 이제 장터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예전에 나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솔직함을 인정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이 중요하지."

"무겸이는 이제 우리 편이야."

무겸은 비로소 소속감을 느꼈다.

어딘가에 속한다는 느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

어느 날, 서린에게 편지가 왔다.

도윤의 편지였다.

"서린에게,

잘 지내고 있니? 나는 한양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

새 법령을 실행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저항도 많고, 문제도 많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함께 싸운 이유를 잊지 않았으니까.

네 기록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었어. 정말 고마워.

언젠가 다시 만나자. 그때는 더 나은 세상에서.

도윤"

서린은 편지를 읽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답장을 썼다.

"도윤 씨에게,

편지 고마워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수원 장터는 많이 좋아졌어요. 사람들도 웃고, 희망도 생겼어요.

당신이 시작한 변화가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계속 기록할 거예요. 이 변화가 계속되도록.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함께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어떻게 이겼는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게요.

서린"

편지는 오갔다.

한 달에 한 번씩.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로서.

27회. 새로운 적

1년이 흘렀다.

변화는 계속되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다.

한양 북쪽 장터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새로운 상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름은 '북상단'.

그들은 종로상단과 다른 방식을 썼다.

직접적인 폭력이나 부당한 자리세 대신, 교묘한 방법을 사용했다.

"우리가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해드리겠습니다."

북상단은 보부상들에게 제안했다.

"싼 가격에, 좋은 품질로."

보부상들은 솔깃했다.

"정말요?"

"네. 대신 우리와 독점 계약을 맺으셔야 합니다."

"독점 계약?"

"우리 물건만 파시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못 구하시고요."

처음에는 좋았다.

물건이 싸고 좋았다.

장사가 잘 됐다.

하지만 점점 문제가 드러났다.

북상단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달부터 가격이 오릅니다."

"뭐라고요? 왜요?"

"시장 상황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에..."

"계약서를 다시 보세요. 우리가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보부상들은 항의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공급처를 잃은 상태였다.

북상단 물건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다른 데서 구하면 되잖아요."

"그래봤자 더 비쌉니다. 우리가 이미 시장을 장악했거든요."

보부상들은 함정에 빠졌다.

도윤은 이 소식을 들었다.

"북상단? 새로운 문제네."

도윤은 북쪽 장터로 갔다.

현장을 조사했다.

보부상들을 만났다.

"무슨 일입니까?"

"북상단이 가격을 계속 올려요. 우리는 어쩔 수 없어요."

"왜요?"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이미 그들에게 묶였어요."

도윤은 북상단의 계약서를 확인했다.

교묘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강제가 아니라 '합의'였으니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착취였다.

'이건... 새로운 형태의 지배구나.'

도윤은 북상단 대표를 만났다.

중년의 상인. 이름은 박상옥.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박상옥은 공손했다.

"보부상들이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불만? 무슨 불만이죠?"

"가격을 부당하게 올린다고 합니다."

"부당하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어요."

박상옥은 계약서를 보여줬다.

"보세요.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 조정 가능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강요 아닙니까?"

"강요가 아닙니다. 그들이 선택한 거예요."

"선택지를 없앤 상태에서의 선택은 진짜 선택이 아닙니다."

박상옥은 미소 지었다.

"강 관리님,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단지 장사를 할 뿐이에요."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허점이라니요. 우리는 합법적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도윤은 할 말이 막혔다.

박상옥의 말이 맞았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였다.

'법만으로는 부족하구나.'

도윤은 깨달았다.

종로상단 같은 명백한 비리는 법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교묘한 착취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도윤은 서린에게 편지를 썼다.

"새로운 문제가 생겼어.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상단이 나타났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서린은 답장했다.

"법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사람들의 힘이 필요해요.

보부상들이 스스로 단결하면 어떨까요?"

도윤은 서린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했다.

'단결... 조합?'

도윤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보부상 조합.

보부상들이 스스로 모여서, 서로를 보호하고, 함께 협상하는 것.

도윤은 북쪽 장터 보부상들을 모았다.

"여러분, 제안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조합을 만드는 겁니다. 보부상 조합."

"조합?"

"네. 여러분이 함께 모여서, 북상단과 협상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뭉쳐봤자..."

"아니요. 숫자는 힘입니다. 혼자는 약하지만, 함께면 강합니다."

도윤은 설명했다.

"조합을 만들어서, 함께 가격 협상을 하세요. 거부하면 다 같이 거래를 중단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손해 아닙니까?"

"단기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입니다. 북상단도 어쩔 수 없이 협상에 응할 겁니다."

보부상들은 고민했다.

두려웠다. 위험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다.

"해봅시다."

한 보부상이 말했다.

"더 이상 당할 순 없어요."

다른 보부상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조합을 만들어요."

그렇게 첫 번째 보부상 조합이 탄생했다.

북상단은 처음에는 비웃었다.

"조합? 우습군."

박상옥은 코웃음 쳤다.

"그들이 뭉쳐봤자 얼마나 버티겠어. 곧 무너질 거야."

하지만 보부상들은 버텼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거래를 중단했다.

북상단도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물건이 쌓였다. 팔 곳이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박상옥은 조바심이 났다.

한 달 반이 지나자, 북상단이 먼저 협상을 요청했다.

"가격을 다시 조정하겠습니다."

"얼마나요?"

"원래 가격의 80% 수준으로."

보부상들은 회의했다.

"어떻게 할까요?"

"받아들일까요?"

도윤이 조언했다.

"협상은 타협입니다. 완벽한 승리는 없어요. 하지만 이것도 승리입니다."

보부상들은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계약서를 수정합니다. 일방적인 가격 조정 조항을 없애고, 상호 협의 조항을 넣습니다."

박상옥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새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더 공정한 내용으로.

보부상들은 승리했다.

작은 승리였지만, 의미가 컸다.

'우리도 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느낀 힘.

단결의 힘.

28회. 서린의 책

서린은 도윤의 편지를 읽고 기뻤다.

"조합... 좋은 생각이네요."

서린도 수원에서 비슷한 일을 시작했다.

수원 보부상 모임.

정식 조합은 아니었지만,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돕는 모임.

"오늘 장사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요즘은 안정적이에요."

"법령 덕분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서로 돕기 때문이죠."

모임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열 명이었는데, 이제는 서른 명이 넘었다.

서린은 모임에서 기록을 읽어주곤 했다.

"1년 전, 우리는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싸웠고, 함께 이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다.

자신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서린, 이 기록을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

한 사람이 제안했다.

"책?"

"응.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서린은 생각했다.

'책...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책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다. 인쇄비, 제본비.

"돈을 모아요."

무겸이 말했다.

"우리가 조금씩 보태면 돼요."

"하지만 많이 필요할 텐데..."

"천천히 모으면 돼요. 급할 것 없어요."

모임 사람들이 동의했다.

"저도 낼게요."

"저도요."

"우리 이야기니까, 우리가 만들어야죠."

서린은 감동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기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달에 조금씩.

적은 금액이었지만, 쌓였다.

석 달이 지나자, 제법 모였다.

서린은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밤마다 등불을 켜고, 글을 다듬었다.

너무 길거나 반복되는 부분은 줄였다.

중요한 부분은 강조했다.

무겸이 도왔다.

"이 부분은 조금 어려운 것 같아."

"그래?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쉬운 말로 풀어 쓰면 어때?"

"그렇게 해볼게."

서린과 무겸은 팀이 되었다.

서린이 쓰면, 무겸이 읽고 의견을 냈다.

때로는 아버지도 참여했다.

"이 장면, 기억나는구나. 네가 이렇게 용감했었지."

"아버지도 용감하셨잖아요."

"아니야. 너만큼은 아니었어."

가족이 함께 만드는 책.

반년이 지나자, 초고가 완성되었다.

서린은 제목을 정했다.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처음 던졌던 질문.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장터는 모두의 것이어야 해. 그리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해.'

서린은 원고를 한양의 인쇄소로 보냈다.

도윤이 연결해준 곳이었다.

"인쇄 비용은 이 정도입니다."

인쇄소 주인이 말했다.

"백 권 인쇄하려면..."

서린은 모은 돈을 내놓았다.

"이것으로 부족할까요?"

주인은 돈을 세어보았다.

"조금 부족하네요."

"얼마나요?"

"이십 냥 정도."

서린은 난감했다.

'더 모으려면 또 몇 달이 걸릴 텐데...'

그때 누군가 들어왔다.

도윤이었다.

"서린!"

"도윤 씨?"

"편지 받았어. 책을 만든다고?"

"응. 하지만 돈이 조금 부족해서..."

도윤은 주머니를 꺼냈다.

"내가 보탤게."

"안 돼요. 이건 우리가..."

"우리잖아. 나도 이 이야기의 일부잖아."

도윤은 이십 냥을 내놓았다.

"이걸로 충분해요?"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합니다."

"그럼 언제 완성되나요?"

"한 달 정도 걸립니다."

한 달 후.

첫 번째 책이 완성되었다.

종이를 묶어 만든, 소박한 책.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서린은 첫 페이지를 펼쳤다.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한 보부상의 기록"

눈물이 났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했어.'

도윤도 책을 받아 들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자신의 이야기도 있었다. 무겸의 이야기도 있었다. 수많은 보부상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도윤이 중얼거렸다.

무겸도 왔다.

책을 보고 놀랐다.

"이게... 우리 이야기야?"

"응."

무겸은 자신의 부분을 읽었다.

칼부림, 후회, 변화.

모두 적혀 있었다.

"나도... 역사의 일부구나."

무겸은 처음으로 느꼈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다는 것을.

책은 배포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부상들에게.

그들은 책을 읽고 울었다.

"이거... 우리 이야기잖아."

"내 이름도 여기 있어!"

"서린이가 우리를 기억해줬구나."

그리고 점점 퍼져나갔다.

한양의 지식인들에게.

성균관 유생들에게.

심지어 관리들에게도.

사람들은 책을 읽고 놀랐다.

"이런 일이 있었어?"

"몰랐어. 전혀 몰랐어."

"우리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책은 변화의 씨앗이 되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29회. 왕의 부름

책이 퍼진 지 두 달 후.

도윤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

"왕께서 부르십니다."

"왕이?"

도윤은 놀랐다.

"왜요?"

"모릅니다. 빨리 오라 하십니다."

도윤은 궁궐로 향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지?'

전각에 도착했다.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손에는 책이 있었다.

'장터는 누구의 것인가'

"도윤아."

왕이 불렀다.

"네, 전하."

"이 책을 읽었다."

"...네."

"네가 관여한 것이냐?"

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거짓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일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서린이라는 보부상이 쓴 것입니다."

"서린..."

왕은 책을 펼쳤다.

"대단한 기록이구나. 진실하고,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하구나."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다. 진실은 원래 불편한 법이지."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윤아, 과인이 묻겠다. 세상은 정말 바뀔 수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

"네.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믿고 싶습니다."

왕은 도윤을 돌아보았다.

"믿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됩니다."

왕은 미소 지었다.

"좋은 대답이다."

왕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과인이 명을 내리겠다."

"명을?"

"이 책을 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

도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더 많이 인쇄하여 각 지방 관아에 배포하라."

"전하..."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군주의 도리다. 과인은 너무 오래 듣지 못했구나."

왕은 책을 도윤에게 건넸다.

"이 서린이라는 이를 불러오라. 과인이 만나고 싶다."

"서린을 요?"

"그렇다. 이런 기록을 남긴 사람을 직접 보고 싶구나."

도윤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도윤아."

"네, 전하."

"수고했다. 네가 옳았다."

도윤은 눈물이 났다.

왕의 인정.

그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그들이 해온 모든 일에 대한 확인이었다.

도윤은 급히 수원으로 갔다.

서린을 찾았다.

"서린! 큰일이야!"

"무슨 일이에요?"

"왕께서 너를 부르셔."

"뭐라고요?"

서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왕이... 저를요?"

"응. 책을 읽고 너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

"하지만... 저는 그냥 보부상인데..."

"네가 그냥 보부상이 아니야. 너는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야."

무겸도 놀랐다.

"대단한데. 왕을 만나다니."

"어떡하죠... 준비도 안 됐는데..."

서린은 당황했다.

아버지가 웃었다.

"준비는 이미 됐어. 네가 평생 준비해온 거야."

"아버지..."

"가거라. 당당하게."

며칠 후.

서린은 한양으로 갔다.

생애 처음 입는 깨끗한 옷.

도윤이 준비해준 것이었다.

"준비됐어?"

"떨려요..."

"괜찮아. 너는 잘할 거야."

궁궐에 들어갔다.

서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려했다. 웅장했다.

'여기가... 권력의 중심이구나.'

전각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왕이 앉아 있었다.

서린은 무릎을 꿇었다.

"백성 윤서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고개를 들어라."

서린은 고개를 들었다.

왕을 보았다.

생각보다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네가 서린이냐?"

"네, 전하."

"이 책을 쓴?"

"네... 기록한 것입니다."

"대단한 기록이다."

"과찬이십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린에게 다가왔다.

"과인이 묻겠다. 왜 이것을 기록했느냐?"

서린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잊히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잊히고 싶지 않다?"

"네.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싸움이, 우리의 승리가 잊히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왜 그것이 중요하냐?"

"잊히면, 다시 반복되니까요."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로운 답이구나."

왕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서린아, 과인이 부탁이 있다."

"무엇이든 말씀하소서."

"계속 기록하라. 세상의 변화를, 백성들의 삶을. 그것이 후세에 귀한 자산이 될 것이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왕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라."

왕은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이것은?"

"포상이다. 진실을 기록한 것에 대한."

서린은 주머니를 받았다.

무거웠다. 금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전하."

"아니다. 과인이 고맙다. 과인의 눈을 뜨게 해주어서."

서린은 전각을 나왔다.

밖에서 도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

"믿을 수 없어... 꿈같아..."

서린은 주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도윤을 보았다.

"우리... 정말 해냈구나."

"응. 해냈어."

두 사람은 웃었다.

눈물을 흘리며.

30회. 확산

왕의 명으로 책은 각 지방으로 퍼졌다.

관아마다 한 권씩.

그리고 관리들은 읽도록 명령받았다.

"이것을 읽고, 백성들의 고통을 이해하라."

왕의 뜻이었다.

처음에는 형식적이었다.

"또 읽으라는 거야..."

"귀찮게..."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 달라졌다.

"이거... 진짜 이런 일이 있었어?"

"끔찍하네..."

"우리가 몰랐던 세상이 있었구나."

관리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했다.

모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는 변했다.

그리고 그 일부가 씨앗이 되었다.

각 지방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전라도 광주.

한 관리가 장터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법령대로 하라. 부당한 자리세를 받지 마라."

"하지만 관례가..."

"관례는 이제 끝났다. 법을 따르라."

충청도 공주.

한 관리가 보부상 모임을 지원했다.

"너희들이 모이는 것을 허가한다. 서로 돕고, 권리를 지켜라."

"정말입니까?"

"그렇다. 왕의 뜻이다."

경상도 대구.

한 관리가 상인들을 단속했다.

"교묘한 착취도 착취다. 공정하게 거래하라."

"하지만 법에는..."

"법의 정신을 따르라. 문구가 아니라."

변화는 느렸다.

저항도 많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편, 반발도 컸다.

기득권층은 불만을 표했다.

"왕이 너무 나간다."

"백성들을 너무 편든다."

"이러다가 질서가 무너진다."

비밀 회합이 열렸다.

종로상단 투자자였던 사람들, 다른 대상단 주인들.

"막아야 한다."

"어떻게?"

"왕을 압박한다. 상소를 올린다."

"무슨 명목으로?"

"민생 혼란. 상업 질서 파괴."

그들은 상소를 준비했다.

수십 명의 양반들이 서명했다.

"이 책은 사회를 어지럽힙니다."

"계급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왕께서는 신중하셔야 합니다."

상소가 올라갔다.

왕은 읽었다.

그리고 일축했다.

"기각한다."

"전하, 하지만..."

"과인의 결정이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왕은 단호했다.

반발 세력은 당황했다.

"왕이... 우리 말을 안 듣네."

"예전과 다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도윤은 이 소식을 듣고 불안했다.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정석과 민호를 만났다.

"어떻게 할 거야?"

민호가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대비는 해야 해."

"뭘?"

"그들이 폭력을 쓸 수도 있어."

"설마..."

"종로상단도 그랬잖아. 권력을 잃는 사람들은 위험해."

정석이 말했다.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네."

"응. 서린을 보호해야 해. 그리고 책의 원본도."

도윤은 급히 수원으로 갔다.

서린을 만났다.

"위험할 수 있어."

"무슨?"

"반발 세력이 너를 노릴 수도 있어."

서린은 놀랐다.

"저를요?"

"응. 너는 이제 상징이야. 변화의 상징."

무겸이 나섰다.

"내가 지킬게."

"혼자서는 안 돼."

"그럼 사람을 더 모으자."

무겸은 수원 보부상 모임 사람들을 모았다.

"서린을 보호해야 해."

"당연하지. 서린은 우리의 목소리야."

열 명이 자원했다.

교대로 서린을 지키기로 했다.

서린은 미안했다.

"제 때문에..."

"아니야. 우리 모두를 위한 거야."

한 달이 지났다.

큰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서린의 집에 불이 났다.

"불이야!"

무겸이 소리쳤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물을 길어 끄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경고였다.

"누가 이런 짓을?"

"분명 일부러 낸 거야."

아버지가 화를 냈다.

"비겁한 놈들!"

서린은 침착했다.

"이제 진짜 싸움이 시작된 거예요."

"두렵지 않아?"

무겸이 물었다.

"두렵죠. 하지만 물러날 수 없어요."

서린은 책 원고를 확인했다.

안전한 곳에 숨겨뒀기에 무사했다.

"다행이다..."

다음 날, 도윤이 달려왔다.

"괜찮아?"

"응. 무사해."

"범인을 찾아야 해."

"찾을 수 있을까?"

"노력은 해봐야지."

도윤은 관아에 보고했다.

수원 관리가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누가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고의입니다."

"증명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도윤은 답답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날 밤, 도윤은 서린과 무겸과 함께 앉았다.

"우리 더 조심해야 해."

"알아요."

"하지만 동시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해."

"무슨 뜻이에요?"

도윤은 계획을 설명했다.

"책을 더 많이 퍼뜨려야 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수록, 우리는 더 안전해져."

"왜요?"

"사람들이 알면, 우리를 공격하기 어려워져. 여론이 우리 편이 되니까."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침묵이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

무겸이 물었다.

"두 번째 판을 만들자. 더 많이, 더 싸게."

"돈은?"

"내가 해결할게. 그리고 유생들도 도울 거야."

도윤은 한양으로 돌아가 유생들을 설득했다.

"책을 더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나?"

"위험하기 때문에 더 해야 합니다. 진실은 숨겨지면 사라지니까."

유생들이 모금을 시작했다.

한 달 만에 충분한 돈이 모였다.

두 번째 판. 오백 권.

책은 다시 인쇄되었다.

그리고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백성들에게도.

주막에, 장터에, 마을에.

사람들은 책을 읽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읽어줬다.

이야기는 퍼졌다.

"이런 일이 있었대."

"보부상들이 이렇게 힘들었대."

"우리도 조심해야겠어."

여론이 형성되었다.

변화를 지지하는 여론.

31회. 두 번째 파도

책의 확산은 예상보다 빨랐다.

석 달 만에 오백 권이 모두 팔렸다.

아니, 팔린 게 아니라 퍼진 것이었다.

어떤 이는 돈을 내고 샀고, 어떤 이는 빌려 읽었고, 어떤 이는 베껴 썼다.

각 지방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전주에서 보부상 조합이 만들어졌다.

진주에서 장터 개선 운동이 시작되었다.

평양에서 청년들이 모여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변화는 파도처럼 번져갔다.

하지만 저항도 거세졌다.

각 지방의 대상단들이 연합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들은 자금을 모았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격은 책 자체를 향했다.

"이 책은 허위 사실을 담고 있다!"

고발이 들어왔다.

사헌부에 조사 요청이 들어왔다.

도윤은 긴장했다.

'설마 책을 금서로 만들려는 건가?'

조사가 시작되었다.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서린이 소환되었다.

"이 내용이 모두 사실이냐?"

"네."

"증거가 있느냐?"

"제 기록과 증인들이 있습니다."

서린은 원본 장부를 제출했다.

그리고 증인들을 불렀다.

함께 모임을 했던 보부상들, 무겸, 도윤.

모두가 증언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겪은 일입니다."

조사는 한 달이 걸렸다.

결론이 나왔다.

"허위 사실이 아니다. 책의 내용은 대체로 정확하다."

서린은 안도했다.

하지만 상단 연합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공격은 경제적이었다.

"보부상 조합과는 거래하지 않는다."

상단들이 선언했다.

"조합에 속한 보부상들에게는 물건을 공급하지 않겠다."

보부상들은 당황했다.

"물건을 어디서 구해?"

"다른 곳을 찾아야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대상단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부상 조합은 위기에 처했다.

도윤은 대책을 찾았다.

"직접 거래를 만들어야 해."

"무슨?"

"생산자와 직접 연결하는 거야. 상단을 거치지 않고."

"가능해?"

"해봐야지."

도윤은 농민들을 만났다.

"보부상들에게 직접 파시겠습니까?"

"상단보다 좋은 가격을 드리겠습니다."

농민들은 솔깃했다.

"정말?"

"네. 중간 마진이 없으니까요."

새로운 유통 구조가 만들어졌다.

생산자 - 보부상 - 소비자.

상단을 거치지 않는.

처음에는 어려웠다.

물량도 적었고, 품질도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나아졌다.

농민들도 이익을 봤다.

보부상들도 이익을 봤다.

소비자들도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샀다.

상단들만 손해를 봤다.

"이건... 우리를 우회하는 거잖아!"

"막아야 해!"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공격은 정치적이었다.

상단들은 고위 관리들을 압박했다.

"이대로 두면 상업 질서가 무너집니다."

"왕께 아뢰십시오."

일부 관리들이 움직였다.

왕께 상소가 올라갔다.

"보부상 조합이 질서를 어지럽힙니다."

"직거래 구조가 세금 징수를 방해합니다."

"엄단이 필요합니다."

왕은 조정 회의를 소집했다.

도윤도 참석했다.

낮은 직급이었지만, 왕이 특별히 부른 것이었다.

"경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왕이 말했다.

한 대신이 나섰다.

"전하, 보부상 조합을 해산시켜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존의 상업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대신이 나섰다.

"전하, 그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무슨 말이냐?"

"보부상 조합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득권을 침해합니다!"

"기득권이 부당하다면, 침해되어도 됩니다."

논쟁이 격렬했다.

왕은 도윤을 바라보았다.

"강도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도윤은 일어났다.

"전하, 신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말해보아라."

"변화는 불편합니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게는요."

"계속하라."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막을 수는 없습니다. 변화가 정의롭다면요."

"정의로운 변화?"

"네. 보부상 조합은 약자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것입니다. 직거래는 더 공정한 분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도윤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것을 막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이익을 지키는 것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인도 그리 생각한다."

왕은 선언했다.

"보부상 조합을 인정한다. 직거래 구조도 허용한다."

"전하!"

반대파 대신들이 항의했다.

"과인의 결정이다."

왕은 단호했다.

회의는 끝났다.

도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겼다... 다시 이겼다.'

하지만 도윤은 알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반대 세력은 계속 저항할 것이다.

더 교묘하게, 더 집요하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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