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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소설

보건실에서 줍다 _03 : 하이틴로멘스

breathinghappiness 2025. 10. 27. 19:55

보건실에서 줍다 _03

16화

“폭주하는 가짜 연애”

"응. 우리… 사귀어."

이도윤의 목소리는 너무나 단호해서, 마치 진짜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귄다고? 언제부터? 우리 '절친' 계약 아니었어?'

세미는 충격으로 몇 초 동안 굳어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이 경멸로 일그러졌다.

"이도윤, 너 지금 장난해? 왜 하필 저런 애랑! 너희 둘, 진짜 어울리지도 않아!" 세미가 소리쳤다.

도윤은 세미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손을 잡은 채 미술실 문을 열었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도윤이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좋아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윤수아한테 신경 끄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미술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여전히 손을 잡은 채였다. 복도를 지나는 모든 애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 투명 인간 놀이는 이제 완벽하게 끝났다.

한참을 걸어 인적이 드문 과학실 복도에 이르자, 도윤은 그제야 손을 놓았다.

"야! 너 미쳤어? 왜 사귄다고 거짓말을 해! 우리 '친구' 계약이었잖아!" 내가 숨을 헐떡이며 따졌다.

도윤은 벽에 기대더니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안. 근데 세미의 눈빛 봤지? '친한 친구'라고 했으면 쟤는 계속 널 괴롭히거나, 우리가 진짜 사귀는지 확인하려 들었을 거야. '사귄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야 걔가 포기해."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가짜로 사귄다는 거야?"

"어. 어쩔 수 없어." 도윤은 진지했다. "하지만 너한테는 좋을 수도 있어. 이제 아무도 네 투명 인간 놀이 신경 안 써. 넌 '이도윤의 여자친구'가 된 거야. 완벽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잖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 나는 더 이상 '없는 애'가 아니었다. '이도윤의 여자친구'라는 거대한 타이틀이 나를 세상에 내던진 셈이었다.

"좋아. 그럼 가짜 연애를 해줄게." 나는 결심했다. "대신, 이 계약은 네가 축구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할 때까지야. 그때까지만 나는 네 방패막이가 되어줄게."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17화

“가짜 연애의 조건: 손잡기와 시선”

우리의 '가짜 연애'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도윤은 놀랍도록 능숙하게 연기했다.

쉬는 시간. 도윤은 내 자리로 와서 자신의 수학 노트를 내 책상에 던져놓았다.

"이거 가져가서 봐. 너, 이 문제 어려워했잖아."

애들은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어색해서 고개만 끄덕였지만, 도윤은 대담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쉬는 시간에 공부도 해야지. 착하다, 내 여자친구."

'내 여자친구'라는 단어에 주변에서 '헉'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자, 오히려 편안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도윤의 여자친구'라는 역할 뒤에 숨어, 나는 비로소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았다.

방과 후, 우리는 가짜 데이트를 했다. 도서관에서 함께 숙제하는 척했고, 하교 길에는 약속된 '연기 지침'이 있었다.

[가짜 연애 지침서]

스킨십은 손잡기까지: 애들이 볼 때는 반드시 손을 잡고 다닐 것. (도윤은 절대 놓지 않았다.)

아이 컨택은 3초 이상: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 연습을 할 것. (가짜인 티가 나면 안 되므로)

애칭은 쓰지 않기: '윤수아', '이도윤'이라고만 부를 것. (너무 오글거려서 둘 다 동의)

도윤과 손을 잡고 걷는다는 건 낯선 경험이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크고, 내 손을 꽉 감쌌다. '이건 연기야. 연기일 뿐이야.' 나는 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하지만 3초 이상 눈을 마주치는 연습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자, 윤수아. 3초다. 하나, 둘, 셋… 웃어 봐."

도윤이 진지하게 말하면,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도윤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야, 너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어?" 도윤이 손을 잡은 채 내 심장 박동을 느꼈는지 장난스레 물었다.

"놀라서 그래! 너 때문에." 내가 발뺌했다.

도윤은 씨익 웃었다. "놀라지 마. 이건 우리의 미션 수행일 뿐이야."

하지만 그의 미소는 너무나 달콤했다. 나는 이 가짜 연애가, 진짜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18화

“온라인 속의 질투”

가짜 연애가 지속되자, 나는 더욱 대범해졌다. 도윤의 유명세 덕분에, 나를 대하는 애들의 태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수군거림은 있었지만, 이젠 질투 섞인 호기심이었다. 투명 인간 윤수아는 사라지고, '이도윤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한편, 온라인의 ‘수아의 비밀 노트’에는 쪽지가 뜸해졌다. 당연했다. 이도윤은 현실에서 나와 너무 붙어 있었고, 더 이상 익명 뒤에 숨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며칠 전, 낯선 닉네임의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닉네임: 라이벌17] _요즘 그 아이랑 너무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그 아이의 진짜 고민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질투 나요. 그 아이가 당신에게서 멀어지게 할 방법 없을까요?

나는 흠칫했다. '그 아이'는 이도윤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도윤의 트라우마나 약점을 아는 또 다른 누군가였다. 마치 세미처럼, 이도윤에게 집착하는 또 다른 '라이벌'인 셈이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이도윤의 다른 비밀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날 0교시. 도윤은 미술실로 들어오자마자 휴대폰을 내밀었다.

"윤수아. 나한테 쪽지가 왔는데... 너한테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도윤의 화면 속에는, 익명의 닉네임 '라이벌17'이 보낸 쪽지가 떠 있었다. 내용은 어젯밤 나에게 온 것과 똑같았다.

_요즘 그 아이랑 너무 가까운 것 같아요…

"이게 뭐야? 너한테도 이런 게 와?" 내가 물었다.

"응. 이 계정은 내가 가끔 쓰는 두 번째 익명 계정이야. 내가 '도비'라는 걸 들킨 후에, 그냥 소소한 고민만 익명으로 올리던 곳인데... 며칠 전부터 이런 쪽지가 와."

도윤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내 주변 사람이 확실해. 내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 그리고 내가 너랑 가까워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

나는 생각했다. 이도윤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아는 건 바로 나, 그리고 '도비Dobby'와 '라이벌17' 세 사람이다.

"도윤아." 내가 말했다. "이 사람은 네 트라우마를 약점으로 잡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어. 너랑 내가 가까워지는 걸 막으려는 진짜 '악당'일지도 몰라."

도윤은 내 손을 잡았다. 아까처럼 연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불안해 보였다.

"나... 무서워. 이 가짜 연애 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

"괜찮아." 내가 말했다. "우리가 진짜로 서로에게 의지하면 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미션,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하자. 이 가짜 연애를 진짜 성장으로 만들자."

19화

“가짜 연애의 위기: 진짜 짝사랑”

주말. 도윤은 축구부 주말 경기를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윤수아. 나 오늘 연습 경기할 때 네가 와서 봐주면 안 될까?"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2번 규칙에 어긋나잖아. 공개적인 친절 금지."

"아니, 이젠 연기 아니야. 나... 네가 있어야 덜 불안해. 관중석에 네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일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아."

나는 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알았어. 보러 갈게. 대신 평범하게 갈 거야. 누가 봐도 그냥 축구 좋아하는 애처럼."

경기 당일.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경기장 구석 관중석에 앉았다. 이도윤은 경기장에서 누구보다 빛났다. 드리블, 패스, 모든 동작이 완벽했다. 그는 확실히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었다.

경기가 끝날 무렵, 도윤이 공을 잡고 골대 앞으로 돌진했다. 결정적인 슛 찬스! 그때, 누군가 고의로 도윤의 발목을 걸었다. 도윤은 넘어졌고, 심판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페널티킥. 1년 전 그가 실축했던, 그의 트라우마가 시작된 바로 그 지점.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도윤은 숨을 멈춘 채 공 앞에 섰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재밌겠네. 다시 망치는 거."

옆을 돌아보니, 낯선 얼굴의 남학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라이벌17'**처럼 이도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축구부 라이벌 중 한 명인 듯했다.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이도윤의 진짜 라이벌. 넌 쟤가 얼마나 완벽해야 하는지 몰라. 쟤는 실수하면 안 돼. 쟤의 완벽한 모습을 좋아하는 애들은, 쟤가 실수하면 바로 떠날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그의 말이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이도윤의 완벽함 때문에 그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불안정함 속의 진짜 그를 좋아하게 된 걸까?

경기장. 이도윤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공을 향해 달려갔다. 슛!

공은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관중석에서 실망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도윤은 고개를 떨궜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다시 그를 덮친 듯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가짜 연애'의 계약은 상관없었다. 이도윤의 슬픔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나는 관중석을 박차고 내려가, 도윤에게 달려갔다.

20화

“무너진 가면, 진짜 감정의 시작”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은 마치 이도윤의 심장처럼 보였다. 실망한 관중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이도윤은 축구화 앞코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시, 1년 전 그날처럼,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관중석을 뛰어넘어 경기장으로 달려갔다.

“도윤아!” 내가 소리쳤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잔디 위에 서 있는 나는, 모자도 벗겨진 채 엉망이었다. 주변의 시선은 또다시 우리에게 꽂혔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나는 도윤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도윤의 손은 차가웠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내 눈을 쳐다봤다. "봤지? 나 또 실수했어. 난 안 돼… 사람들이 나한테 실망할 거야."

“사람들이 실망하든 말든, 그게 뭐가 중요해! 네가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실수 하나로 깨지지 않아!” 내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난 네 실수에 실망 안 해. 괜찮아, 도윤아.”

그의 눈에 다시 눈물이 그렁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고통과 혼란, 그리고 나를 향한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윤수아…” 도윤은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축구장 한가운데서, 나는 이도윤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의 땀 냄새,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떨었다.

주변에서는 셔터 소리와 함께 '쟤네 진짜 사귀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이도윤의 떨림만이 내게 느껴졌다.

잠시 후, 도윤은 나를 놓아주었다.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것 같았다.

“고마워. 네가 와줘서.” 도윤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게…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으면 좋겠어.”

그의 진심 어린 고백에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그의 떨림은 이제 내 떨림이 되었다. 가짜 연애를 시작한 이후, 나는 처음으로 **'나도 너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1화

“소문과 질투, 진짜 위기”

도윤의 실수와 축구장 포옹 사건은 삽시간에 학교에 퍼졌다. 이제 우리는 '공식 커플'이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복도에서 세미와 그녀의 친구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어이, 윤수아. 대단하다, 투명 인간." 세미가 비웃었다. "이도윤이 실수한 날, 달려가서 껴안았다고? 노이즈 마케팅이야? 너처럼 존재감 없는 애가 킹카 잡으려고 별짓 다 한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알 바 아니잖아." 내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알 바 아니긴. 이도윤은 실수를 싫어해.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가장 싫어한다고. 네가 아무리 옆에서 응원하는 척해도, 걘 결국 너한테 실망할 거야. 넌 걔의 **'실수'**를 상징하는 존재거든."

세미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내가 이도윤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 그때, 축구부 친구 한 명이 다가와 세미에게 속삭였다.

"야, 세미. 이도윤 지금 엄청 화났대. 연습 빼고 어디론가 가버렸어.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세미는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나를 노려봤다. "봐. 이도윤이 너한테 의지하는 척하지만, 결국 걔는 너 때문에 망가질 거야."

세미가 사라진 후, 나는 이도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아니었다. 트라우마가 재발했을 때,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나는 그를 찾기 위해 학교를 뛰어다녔다. 보건실? 캐비닛 뒤는 텅 비어 있었다. 미술실? 아무도 없었다. 그때, 문득 '도비Dobby'가 내게 보냈던 쪽지 내용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내가 너무 완벽해서 감히 말을 걸 용기가 안 나요.'

도윤은 자신이 가장 초라하다고 느낄 때, 완전히 숨어버리는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은 잠겨 있었지만, 구석에 작은 틈이 있었다. 억지로 몸을 밀어 넣고 옥상 난간으로 다가갔다.

이도윤은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축구부 유니폼이 아닌, 낡은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도윤아.”

그는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22화

 

“솔직한 고백, 성장통의 공유”

“오지 마. 윤수아.” 도윤이 말했다. “지금 내 모습… 넌 안 보는 게 좋을 거야.”

“왜? 네가 실수한 모습이 비겁한 거야?” 나는 그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난 네 비겁한 모습까지 봤어. 네가 날 버리고 도망쳤던 그 비겁한 모습까지도.”

도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맞아. 난 비겁해. 난 완벽하지 못해. 난 실수투성이야. 1년 전 그 실수 때문에, 우리 팀은 졌고… 코치님한테 엄청 혼났어. 그 후로 공을 잡을 때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 난 평생 그 족쇄를 못 풀 것 같아.”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그가 빼지 않았다.

“족쇄? 네가 풀고 싶지 않다면 평생 못 풀어. 하지만 네가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족쇄보다 훨씬 크잖아.” 내가 말했다. “네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그거 나 때문이잖아. ‘이도윤의 여자친구’가 된 나까지 흠집 날까 봐.”

도윤은 나를 올려다봤다.

“아니,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나는… 네가 세상 밖으로 나왔잖아. 나 때문에. 내가 너를 투명 인간에서 구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넌 나 때문에 더 위험해졌고, 나는 너한테 진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 가짜 연애를 끝낼 수가 없었어. 내가 너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망설였어.”

'내가 너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아서.'

도윤의 고백에, 내 마음속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의 가짜 연애, 그의 가짜 연애, 그 모든 것이 진실이었구나.

나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웃으려고 노력했다.

“바보야. 나도 너 좋아해. 가짜 연애가 아니었으면, 넌 절대 나한테 말도 걸지 않았을 거고, 나는 절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야.” 내가 말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라, 우리의 ‘성장통’이야. 너랑 나, 둘 다.”

도윤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슬픔과 트라우마를 이겨낸, 진짜 이도윤의 미소였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진짜 사귀는 걸로 하자.”

23화

“옥상의 진실, 세상에 선포하다”

옥상 난간에 기대앉아, 이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오늘부터 진짜 사귀는 걸로 하자”는 말은, 옥상 위의 차가운 바람을 녹일 만큼 뜨거웠다.

“너, 후회 안 해?” 내가 물었다. “이제 네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야.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네 완벽한 이미지는 진짜로 깨질 수도 있어.”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후회 안 해. 솔직히 말해서, 네가 내 옆에 있는 게 내 완벽한 이미지보다 훨씬 중요해.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순간, 내 가면은 이미 깨졌어. 이제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

우리는 옥상에서 한참 동안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왜 투명 인간이 되려 했는지, 도윤이 왜 완벽함에 집착하며 힘들어했는지. 우리의 로맨스는 ‘가짜 연애’라는 포장지를 벗고, ‘진짜 성장’이라는 알맹이를 드러냈다.

우리는 함께 옥상에서 내려왔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는 순간, 우리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축구장 실수와 세미의 질투, 그리고 우리가 갑자기 사귄다는 소문까지.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세미는 불타는 눈으로 우리를 노려봤다.

이도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세미에게 성큼 다가가더니,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세미야. 나 윤수아랑 사귀는 거 맞아. 그리고 나 실수했어. 중요한 경기에서 페널티킥 실축했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1년 동안 힘들어했어.”

교실 안이 순식간에 정적이 되었다. 핵인싸 이도윤이 자신의 ‘치부’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다니!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세미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일은 너랑 상관없어. 윤수아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고, 나는 더 이상 네 눈치를 보며 완벽한 척 연기하지 않을 거야.” 도윤은 내 쪽을 보며 씨익 웃었다. “윤수아, 너 덕분에 내가 살았어.”

이도윤의 용감한 선포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특히 나에게. 그는 정말로 자신의 가장 아픈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며,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도윤을 향한 내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24화

“라이벌17의 폭로, 가장 아픈 상처”

도윤의 공개 고백 후, 교실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전히 수군거림은 있었지만, '완벽한 킹카'가 아닌 '인간적인 이도윤'을 향한 호기심과 존중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나, 윤수아에게도 당당함이 생겼다.

하지만 잠잠했던 ‘라이벌17’이 다시 움직였다.

그날 밤. 이도윤의 두 번째 익명 계정(도비Dobby가 아닌)에 충격적인 쪽지가 도착했다.

[닉네임: 라이벌17] _네가 윤수아 때문에 행복하다고? 웃기지 마. 걔가 널 좋아하는 건, 네가 ‘실수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걔는 완벽한 사람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애거든. 네가 완벽해지면 걘 널 떠날 거야. 그리고 네 트라우마의 원인이 사실은… 걔랑 관련 있다는 거 몰랐지?

도윤은 다음 날 아침, 미술실에서 이 쪽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손이 다시 떨리고 있었다.

“내 트라우마가… 너랑 관련이 있다고?” 도윤의 눈빛은 흔들렸다. “무슨 소리야, 윤수아?”

나는 라이벌17의 쪽지를 보고 머리가 하얘졌다. 1년 전 그 시점, 나는 이도윤의 일에 전혀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왜 저 익명의 누군가는 나를 끌어들이려 할까?

“아니야, 말도 안 돼. 1년 전 일은 너 혼자 겪은 일이잖아.” 내가 당황하며 말했다.

“혹시… 네가 그때 날 원망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어? 네가 나한테 복수하려고 접근한 거야?” 도윤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 찼다. 우리가 겨우 쌓아 올린 신뢰가, 이 익명의 쪽지 한 장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도윤! 내가 너한테 복수하려고 그랬으면, 보건실에서 네 비밀을 폭로했겠지! 나는 단지….”

“단지?” 도윤이 다그쳤다.

나는 울컥했다. “단지 너랑 가까워지는 게 좋았어! 네 옆에 있으면 내가 투명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 같아서! 나는 너한테 어떤 의도도 없었어!”

우리의 관계는 처음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익명의 공격이, 우리 사이의 가장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이다.

25화

“윤수아의 결심, 라이벌의 정체”

이도윤은 미술실을 뛰쳐나갔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나는 남아 라이벌17의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네 트라우마의 원인이 사실은 걔랑 관련 있다는 거 몰랐지?' 이 한 문장이 자꾸만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1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1년 전, 나는 1학년이었고, 이도윤은 2학년이었다. 축구 경기가 있던 날, 나는 학교에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가장 아웃사이더가 되었던, 가장 끔찍한 사건을 겪고 있었다.

'아… 설마.'

나는 퍼즐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라이벌17은 이도윤의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 그리고 내가 이도윤과 가까워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

나는 휴대폰을 켰다. 익명 계정에서 라이벌17에게 답장을 보냈다.

[수아의 비밀 노트] _당신이 말하는 ‘트라우마’와 ‘윤수아’의 관계가 뭔지 알려주세요. 당신이 숨어 있는 이유와, 이도윤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함께요. 그렇지 않으면, 이 계정 주인은 경찰에 이 모든 익명 협박을 신고할 겁니다. 1시간 안에 답장하세요.

강하게 나가자, 5분 만에 쪽지가 도착했다.

[닉네임: 라이벌17] _…윤수아. 너 진짜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네가 궁금해하는 거, 내가 다 알려줄게. 지금 당장 보건실로 와. 나 거기 있어.

보건실.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비밀 공간. 라이벌17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보건실로 향했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선 순간,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앉아 있었다.

축구부 라이벌. 이도윤이 페널티킥 실수를 했을 때, 옆에서 나를 비웃었던 바로 그 남학생. 이름은 강민준이었다.

“강민준… 네가 라이벌17이었어?” 내가 경악했다.

강민준은 피식 웃었다. “놀랐지? 이도윤의 그림자 노릇 하는 거 지겨워서. 이도윤은 모두에게 완벽해야 해. 그래야 내가 걔를 누르고 올라설 기회가 생기거든. 근데 네가 걔를 망치고 있어.”

그는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네가 이도윤을 망치는 방법, 내가 알려줄게.”

26화

“트라우마의 진실, 그리고 악당의 속셈”

“네가 이도윤을 망치는 방법은… 네가 사라지는 거야.” 강민준이 내 손목을 쥐고 말했다.

“무슨 말이야!” 내가 손목을 빼려 했지만, 힘이 세서 빠지지 않았다.

“1년 전, 이도윤이 실수했던 그 경기. 사실은 걔가 페널티킥을 실축한 게 아니야. 실패한 건 나였어.”

강민준의 고백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네가… 페널티킥을 실축했다고?”

“응. 근데 이도윤이 자기 잘못이라고 뒤집어썼어. 나를 위해서. 걔는 언제나 나보다 잘났지만, 그날은 내가 너무 비참해서… 걔가 날 지켜줬어. 모두가 걔를 비난했고, 걔는 트라우마에 갇혔지.”

나는 이도윤의 희생에 눈물이 났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친구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근데 그게 왜 나랑 관련 있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강민준은 차갑게 웃었다. “네가 그날, 학교 폭력을 당했던 날이잖아. 이도윤이 나를 위해 죄를 뒤집어쓴 날, 너는 학교에서 가장 비참한 날을 보냈지. 이도윤은 네가 그날의 고통 때문에 ‘투명 인간’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 거야. '내가 친구를 지키기 위해 실수했을 때, 나는 윤수아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강민준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도윤은 네가 행복해야만,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하지만 네가 옆에 있으면, 네가 당했던 그 비참한 날이 계속 떠올라서, 자신의 희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거짓말!” 내가 소리쳤다.

“거짓말이 아니야. 넌 이도윤의 가장 큰 '죄책감'이야. 네가 행복할수록, 걔는 너를 더 지켜주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널 망칠까 봐 더 무서워해. 걔는 너 때문에 축구도, 친구도 모두 잃게 될 거야.” 강민준이 속삭였다. “네가 진정으로 이도윤을 위한다면, 네가 먼저 걔를 떠나. 네가 사라져야 걔가 다시 완벽해질 수 있어.”

그의 말을 듣자,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도윤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와 나의 상처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니. 나는 이도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가장 큰 짐을 지우고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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