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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깨진곳

약속이 깨진곳에

머무는 사람은 없다

 

돈밭 사이에도

이끼가 끼어 구르듯

두리뭉실 관계에도

약속이라는 것이 있던데

 

약속이 깨진곳엔

거칠어진 말뿐

사람이 없다

약속이 떠난 자리, 남겨진 말들의 무덤

우리는 흔히 돈이나 명예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믿지만, 사실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가느다란 실밥은 '약속'입니다. 거창한 계약서가 아니더라도 "내일 보자"는 말 한마디, "잊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모여 우리라는 관계의 외벽을 만듭니다. 하지만 시구에서 말하듯, 그 약속이 깨진 곳에 더 이상 머무는 사람은 없습니다.

1. 두리뭉실한 관계에도 뿌리는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개 명확하지 않습니다. '두리뭉실'하게 얽혀 흐르는 것이 인연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개 같은 관계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는 최소한의 중력이 바로 약속입니다. 마치 돈밭 사이에 이끼가 끼고 돌이 구르듯, 풍요롭고 화려해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서로를 향한 아주 작은 신뢰의 조각들이 이끼처럼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약속은 그 모호한 관계에 형체를 부여하는 유일한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2.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는 것

약속이 무너진 순간, 그 공간에서는 가장 먼저 '사람'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이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 기대, 그리고 마음을 쏟았던 정성이 증발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뢰라는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차갑고 딱딱한 것들이 대신 들어차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대개 **'거칠어진 말'**들입니다. 비난, 변명, 날 선 원망 같은 것들이 주인이 떠난 빈집의 먼지처럼 자욱하게 쌓입니다. 한때 다정했던 언어들은 약속의 파기와 함께 서로를 할퀴는 무기가 되어 허공을 떠돕니다.

3. 결국, 머무를 이유를 찾는 일

결국 누군가와 함께 머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약속을 믿고 내 시간을 담보로 잡히는 일입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사람은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황무지에서 발을 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약속 위에 서 있을까요? 혹시 나의 무관심 속에 소중한 관계의 약속이 이끼처럼 깎여 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이 머무는 곳은 화려한 돈밭이 아니라, 작더라도 단단하게 지켜지는 약속의 토양 위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깨진 곳엔 거칠어진 말뿐 사람이 없다." 이 구절을 마음에 품으니, 오늘 제가 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단단한 약속의 땅이 되었기를,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거친 바람이 되지 않았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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