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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레벨업, 인생은 셀프입니다

[제1부] 혼자서도 찬란하게: 독립의 서막

제01화: 태어남은 단독 입국, 인생은 1인용 어드벤처

“강지안, 너 오늘도 혼자 밥 먹어?”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오던 반장 민석이가 내 책상 앞에 멈춰 서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미미한 동정심과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읽고 있던 소설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응. 그런데?”

“아니, 그냥. 너 요즘 계속 혼자 다니는 것 같아서.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물어봤지.”

“무슨 일? 아주 큰 일이 있지. 내가 오늘 먹고 싶은 메뉴가 정확히 ‘치즈 듬뿍 떡볶이’인데, 다른 애들 입맛 맞추느라 돈가스 집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는 아주 중대한 사건.”

내 말에 민석이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중학교 2학년, 이 교실이라는 작은 정글에서 ‘혼자’라는 건 곧 ‘사회적 약자’나 ‘왕따’로 번역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이 오역(誤譯)을 바로잡기로 했다.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무리에 끼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 환자였다. 화장실도 친구와 손을 잡고 가야 안심이 됐고, 친구가 무심코 던진 “그 옷 좀 별로다”라는 말 한마디에 그날 하루 전체를 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친구들의 기분 레이더를 살피느라 정작 내 마음 기상청이 폭풍우를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왜 나는 나랑 안 놀아주고, 남이랑만 놀려고 안달일까?’

그 질문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과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인생은 셀프, 지안이의 독립 선언].

학교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익숙한 소음들—의자 끌리는 소리, 급식 메뉴를 외치는 비명—을 뒤로하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특별히 학교 밖 ‘외출 허가’를 받은 날이다. (물론 치과 진료라는 핑계가 있었지만, 진료 후 남은 한 시간은 온전히 나의 자유다.)

치과 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봄바람은 유난히 달콤했다. 평소라면 단짝 친구의 보폭에 맞추느라 앞만 보고 걸었겠지만, 오늘은 혼자다. 덕분에 보도블록 틈새에 핀 이름 모를 노란 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전봇대에 붙은 길고양이 구조 전단지를 가만히 읽어볼 여유도 생겼다.

“자, 강지안. 오늘의 첫 번째 미션.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게 혼밥하기.”

내가 선택한 곳은 골목 어귀에 숨겨진 작은 카페였다. 통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 자리. 예전의 나였다면 ‘혼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겠지?’ 하며 구석진 자리를 찾았겠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각자 자기 핸드폰 속 세상을 보느라 바쁘니까.

나는 가장 햇살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메뉴판을 읽는 시간조차 즐거웠다. 누군가에게 “뭐 먹을래?”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 입맛이 곧 법이고 결정권이라는 것. 나는 ‘트리플 치즈 파니니’와 ‘상큼한 레몬 에이드’를 주문했다.

잠시 후, 갓 구워진 파니니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바삭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입안에서 치즈가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와, 대박. 이 맛을 온전히 나만 느끼고 있다니!’

누구와 수다를 떨지 않으니 음식의 온도, 질감, 향기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천천히 씹으며 내 마음에게 말을 걸었다.

‘지안아, 맛있지? 넌 이런 걸 좋아했구나. 뜨겁고 고소한 거.’

식사를 마치고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냈다. 오늘 아침 느꼈던 기분들, 길가에서 본 노란 꽃의 모양, 그리고 방금 먹은 파니니의 맛을 기록했다.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는 내가 적어둔 좌우명이 있었다.

[태어남은 단독 입국, 인생은 1인용 어드벤처.]

우리는 모두 혼자 태어난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 누구의 손을 잡고 나오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자라면서는 자꾸만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걸을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걸까?

혼자라는 건 외로운 게 아니다. 내 마음의 빈 공간에 타인이 아닌 ‘나’를 채워 넣는 아주 귀한 시간이다. 나는 오늘 치과 진료보다 더 중요한 치료를 받았다. 바로 ‘남의 눈치’라는 고질병을 치료하는 자가 격리 치료.

카페를 나서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혼자 서 있는 내가 꽤 근사해 보였다. 누군가의 곁다리가 아니라, 오롯이 나라는 존재로 서 있는 느낌. 나는 나 자신에게 윙크를 날렸다.

“강지안, 너 오늘 진짜 자유로워 보여.”

학교로 돌아가는 길, 이어폰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길을 걷는 내 발걸음이 리듬에 맞춰 가벼워졌다. 혼자 걷는 이 길은 이제 더 이상 쓸쓸한 통로가 아니었다. 내가 주인공인 영화의 런웨이였다.

[작가의 한마디]

독자 여러분, 혹시 오늘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원치 않는 약속을 잡지는 않았나요? 가끔은 휴대폰을 끄고 나 자신과 데이트를 해보세요. 생각보다 당신은 꽤 재미있는 사람이거든요!

[다음 화 예고]

02화: 등굣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와 대화하기

세상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나만의 주파수에 맞추는 시간. 평범한 등굣길이 뮤직비디오가 되는 마법이 펼쳐집니다!

제02화: 등굣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와 대화하기

어제 카페에서의 '혼밥 대첩' 이후, 내 안에서는 아주 작은, 그러나 단단한 변화의 싹이 틔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여야만 완성된다고 믿었던 내 일상이 사실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풀 패키지'였다는 깨달음. 그 설렘 때문인지 오늘 아침은 알람 소리보다 5분 먼저 눈이 떠졌다.

"강지안, 너 오늘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평소 같으면 "아, 5분만 더..."를 외치며 이불 속에서 사투를 벌였을 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오늘 하루 나의 'BGM(배경음악)'을 선정하는 아주 중대한 작업이다.

나는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입에 넣으면서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 속 스트리밍 앱에 고정했다.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하루를 코디해 볼까?'

누군가는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지만, 나는 음악으로 공간을 정의한다.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하늘 아래서는 몽환적인 드림팝을, 오늘처럼 햇살이 교실 창틀을 간지럽히는 날에는 청량한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시티팝이 제격이다.

리스트의 이름은 [지안이의 런웨이: Version 2.1].

첫 곡은 경쾌한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인디 밴드의 곡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니라, 내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현관문을 나서며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의 소음이 차단됐다. 옆집 아저씨의 구두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아파트 단지의 매미 소리가 모두 뮤트(Mute) 처리됐다. 대신 그 빈자리를 8비트 리듬이 꽉 채웠다.

"자, 이제부터 여긴 내 영화의 세트장이야."

나는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리며 아파트 단지 정문을 나섰다. 평소라면 학교에 늦을까 봐, 혹은 누군가와 마주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게 될까 봐 땅만 보고 걷던 길이었다. 하지만 음악이 흐르는 순간, 내 시야는 16:9 와이드 스크린으로 확장됐다.

저기 편의점 앞에서 졸고 있는 삼색 고양이는 지금 내 영화의 '귀여움 담당' 조연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걷는 엑스트라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리듬에 맞춰 보폭을 조절하는 나는, 의심할 여지 없는 주인공이다.

'하나, 둘. 하나, 둘.'

드럼 비트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니 평범한 보도블록이 피아노 건반처럼 느껴졌다. 문득 길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어깨를 살짝 흔들며 리듬을 타는 내 표정이 무척이나 생동감 넘쳤다. 예전엔 누군가 나를 '혼자 다니는 이상한 애'로 볼까 봐 어깨를 움츠렸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나는 지금 이 노래의 가사처럼 '우주를 유영하는 중'이니까.

"어? 지안아!"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같은 반이자, 작년에 꽤 친하게 지냈던 서윤이었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빼며 멈춰 섰다.

"어, 서윤아. 안녕."

"너 아까부터 부르는데 못 듣더라? 무슨 노래 듣길래 그렇게 신나 보여?"

"아, 그냥... 내가 좋아하는 밴드 노래."

"나도 좀 들려줘 봐!"

서윤이가 자연스럽게 내 이어폰 쪽으로 손을 뻗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어, 그래!" 하며 내 취향을 숨기고 서윤이가 좋아할 만한 대중적인 아이돌 노래로 얼른 바꿨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오직 나만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내 마음의 지도 같았으니까.

"미안, 이건 지금 내 기분이랑 너무 딱 맞는 노래라서 공유하면 김이 빠질 것 같아. 나중에 좋은 거 있으면 추천해 줄게."

단호하지만 다정한 거절. 서윤이는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 강지안. 너 뭔가 좀 달라졌다? 분위기가 되게... 독립적이야."

독립적이라. 그 말이 내 가슴에 기분 좋게 안착했다. 서윤이와 나란히 걷게 됐지만, 나는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 두려워 억지로 말을 지어내던 예전의 피곤함은 없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나는 내 음악 속 세상에 있었고 서윤이는 서윤이만의 생각 속에 있었다.

때로는 침묵도 음악이 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걷는 이 등굣길이 의외로 편안했다.

교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제 본 드라마나 연예인 가십거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을 기다렸다.

마지막 곡은 차분한 피아노 선율로 끝나는 발라드였다. 노래가 끝나고 이어폰을 빼자, 교실의 소음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소음이 나를 덮치는 게 아니라, 내가 소음을 관찰하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와 대화하기' 미션 성공.

나는 일기장을 꺼내 적었다.

[오늘의 발견: 타인의 목소리보다 내 귀에 흐르는 멜로디에 집중할 때, 세상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혼자 걷는 15분의 등굣길.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여행을 다녀왔다. 내일은 또 어떤 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내일 아침의 선곡 시간이 기다려졌다.

[작가의 한마디]

여러분만의 '인생 테마곡'은 무엇인가요? 가끔은 세상의 소리를 끄고, 오직 당신의 심장 소리와 닮은 음악에만 귀를 기울여 보세요. 등굣길이 레드카펫으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다음 화 예고]

03화: 짝꿍이 없어도 당당하게 밥 먹는 법

급식실, 그 거대한 정글에서 홀로 살아남기! 눈치 보지 않고 메뉴의 진정한 맛을 즐기는 지안이의 '혼밥 만렙' 도전기가 시작됩니다.

제03화: 짝꿍이 없어도 당당하게 밥 먹는 법

4교시 수학 시간. 칠판 위를 구르는 분필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 신경은 온통 코끝을 간지럽히는 미세한 냄새에 쏠려 있었다.

'이건 분명히... 불향이 섞인 제육볶음이다.'

복도를 타고 스며드는 급식 예고편에 아이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에게 점심시간이란 단순한 식사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세력 과시'의 장이자, '인맥의 성적표'가 공개되는 잔인한 축제다.

띠리링—!

종소리와 동시에 교실은 흡사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리를 지어 급식실로 달려나갔다.

"야, 빨리 와! 자리 뺏겨!"

"오늘 제육이래, 대박!"

누구와 먹을지, 어디에 앉을지 고민하며 눈치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천천히 필통을 정리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도 같이 가!"라며 숨 가쁘게 누군가의 뒤꿈치를 쫓았을 것이다. 텅 빈 급식실 테이블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마치 전교생에게 '나는 친구가 없는 불쌍한 애야'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아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나는 다르다. 가방에서 꺼낸 작은 손소독제를 바르며 나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혼밥은 고독이 아니라, 미식의 완성이다."

급식실 입구.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무리 지어 선 아이들은 서로의 식판을 챙겨주며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 활기찬 소음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고요한 섬처럼 서 있었다. 누군가 내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쟤 강지안 아냐? 쟤 요즘 계속 혼자 다니네. 싸웠나?"

그 소리에 움츠러드는 대신,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싸운 게 아니라 선택한 거다. 누군가의 지루한 고민 상담을 들어주느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내 차례가 왔다. 식판 위에 갓 지은 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육볶음, 바삭하게 튀겨진 김말이가 놓였다. 평소 같으면 "야, 너 고기 많이 받았네? 나 한 점만!" 같은 친구의 장난 섞인 약탈에 대비해야 했지만, 오늘은 이 모든 영토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자리는 급식실 가장 구석, 창가 쪽 1인용 테이블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패배자의 자리'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오늘 보니 '최고의 뷰를 가진 로열석'이었다. 창밖으로는 학교 정원의 푸른 나무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탁.

식판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들었다. 첫 번째 공격 목표는 제육볶음.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매콤달콤한 양념 뒤에 숨은 고소한 육즙이 혀끝을 자극했다.

'음, 확실히 혼자 먹으니 맛의 레이어가 느껴져.'

누군가와 같이 먹을 때는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리액션을 하느라 바빴다. "대박, 진짜?" "맞아, 나도 그래!" 같은 영혼 없는 추임새를 넣는 동안 정작 고기가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는 오직 음식과 나, 단둘뿐이다.

김말이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자 바삭! 하는 경쾌한 소리가 뇌까지 전달됐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너 어제 그 남돌 봤어?" "진짜 잘생겼더라" 같은 소음은 적절한 백그라운드 노이즈로 치부했다. 나는 지금 8.5등신 아이돌보다 이 김말이 속 당면의 탱글함이 더 중요했다.

"저기... 지안아."

그때, 식판을 든 채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 반의 소심한 아이, 민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리가 꽉 차 있었다. 민희는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자리 없는데... 여기 옆에 앉아도 돼?"

예전의 나라면 반갑게 "당연하지! 얼른 앉아!"라고 했겠지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민희와 앉으면 분명 '왜 혼자 먹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 어색한 침묵을 메우기 위한 질문 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나는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응, 앉아도 돼. 대신 나 지금은 좀 조용히 이 제육볶음의 맛을 탐구하는 중이라 대화는 교실 가서 하자. 괜찮지?"

민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절인 듯 거절 아닌 내 제안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각자의 식판에 집중했다.

그 순간의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식사할 권리'를 존중해 주는 어른스러운 공기가 흘렀다. 나는 창밖의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며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식판을 퇴식구에 반납하고 나오는 길, 배는 든든했고 마음은 가벼웠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 속도대로 마친 식사. 그것은 단순한 점심이 아니라, 내 일상의 주도권을 되찾아온 승전보였다.

교실로 돌아오는 복도 거울에 비친 내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지안, 너 오늘 혼밥 레벨 1단계 통과다.'

다음엔 학교 옥상 벤치에서 혼자 도시락 까먹기에 도전해 볼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졌다. 남들이 불쌍하게 볼까 봐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던 시절은 끝났다. 나는 이제 나라는 가장 완벽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여러분, 혼자 밥 먹는 게 부끄러운가요? 사실은 남들도 여러분이 혼자 먹는지 아닌지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답니다. 오늘 점심은 오직 당신의 혀와 뇌에만 집중해 보세요. 평범한 급식이 미슐랭 3성급 요리로 변할지도 몰라요!

[다음 화 예고]

04화: 첫 번째 단짝,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별

나만큼이나 독립적인 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만남 뒤엔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 성숙하게 안녕을 고하는 법을 배워봅니다.

제05화: 타인의 시선이라는 안경 벗어던지기

월요일 아침, 교문 앞은 흡사 런웨이와 검문소 사이 그 어디쯤의 풍경이다. 똑같은 교복이라도 누군가는 치마 길이를 줄이고, 누군가는 화려한 가방 고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다. 그 보이지 않는 '유행의 계급도' 속에서 나는 오늘 아주 발칙한 반항을 시도했다.

바로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 주신,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 놓인 빈티지 가디건을 교복 위에 걸친 것이다.

"야, 강지안! 너 그 옷 뭐야? 할머니 장롱에서 훔쳐 왔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반 패피(패션 피플)'라고 자부하는 소라가 찢어지는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예전의 나였다면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당장 가디건을 벗어 가방 깊숙이 쑤셔 넣었을 터였다.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지만, 나는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의 나는 꽤 근사했다. 짙은 남색 교복 위에 핀 붉은 꽃송이들이 마치 삭막한 콘크리트 틈에 핀 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옷은 보드랍고 따뜻했다.

"응, 우리 할머니 안목이 좀 높으시지? 이게 요즘 유행하는 '그래니 룩(Granny Look)'이라는 거야. 소라 너는 너무 최신 유행만 따라가서 이런 클래식한 멋을 모르는구나?"

내 당당한 대답에 소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비웃으려던 아이들도 내 말투에 담긴 확신을 느끼자 "오, 자세히 보니 색감이 예쁘긴 하네", "지안이 너니까 소화하는 거 아냐?"라며 슬그머니 태도를 바꿨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건 참 묘하다. 내가 주춤거리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나를 베지만, 내가 단단하게 서 있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본다. 하지만 그 안경은 대개 도수가 맞지 않아 세상을 왜곡시키고, 정작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본질을 가려버린다.

점심시간, 나는 운동장 벤치에 앉아 내 가디건의 꽃무늬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지안아, 넌 이 옷이 마음에 들어?'

'응, 따뜻하고 색깔도 예뻐. 무엇보다 남들이랑 똑같지 않아서 좋아.'

마음속 대화가 끝나자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진 듯 몸이 가벼워졌다. 우리는 왜 그토록 타인의 '좋아요'에 목을 매는 걸까? 내 인생의 타임라인에 가장 먼저 '좋아요'를 눌러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말이다.

"저기, 지안아... 실은 나도 이 양말 신고 싶었는데, 애들이 놀릴까 봐 못 신었거든."

아까 소라 옆에서 같이 웃던 유진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바짓단을 살짝 올렸다. 거기엔 아주 귀여운 오리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이 숨어 있었다.

"와, 진짜 귀엽다! 유진아, 남들 눈에 예쁜 것보다 네 발가락이 즐거운 게 더 중요한 거 아냐? 내일은 그냥 신고 와. 내가 제일 먼저 멋지다고 해줄게."

유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나 한 사람이 '타인의 안경'을 벗어던지자, 주변의 누군가도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잘 산다는 건 고집불통이 되는 게 아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사랑하는 에너지를 주변에 전염시키는 일이다.

방과 후,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가디건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바람이 가디건 사이로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예쁨'의 틀에 나를 구겨 넣지 않으니 숨쉬기가 훨씬 편했다.

나는 오늘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남들의 시선은 일기 예보와 같다. 참고는 하되, 비가 온다고 해서 내 외출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내가 우산을 쓰거나, 그냥 그 비를 즐기기로 마음먹는다면 말이다.]

오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었다. 그것은 꽃무늬 가디건이 아니라, '나를 긍정하는 자존감'이라는 이름의 옷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남들의 평가 한마디에 밤잠을 설치고 있나요? 기억하세요. 당신을 가장 오래 지켜봐 온 관객이자, 가장 열렬한 팬은 바로 거울 속의 당신입니다. 오늘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몇 점을 주고 싶나요?

[다음 화 예고]

06화: 취미 수집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도 몰라서

어느 날은 우쿨렐레, 어느 날은 3D 펜. 끈기 없다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지안이의 엉뚱하고 발랄한 취미 탐험기가 시작됩니다!

 

제06화: 취미 수집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도 몰라서

 

"지안아, 너 또 시작이야? 저번에 산 우쿨렐레는 줄도 안 튕겨보고 구석에 처박아 뒀으면서."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한숨을 내쉬며 내 책상 위에 쌓인 택배 박스들을 가리켰다. 이번에 배달된 건 '프랑스 자수 세트'와 '초보자를 위한 미니어처 하우스 만들기'였다. 엄마의 잔소리는 합리적이었다. 나는 소문난 '작심삼일'의 아이콘이었으니까.

"엄마, 이건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탐색' 중인 거야. 내가 뭘 할 때 심장이 뛰는지 알아내기 위한 일종의 과학 실험 같은 거지!"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며 자수 바늘을 집어 들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중학교 2학년, 공부 말고는 내가 누군지 설명할 길이 없는 이 시기에 나는 나만의 '취향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첫날, 나는 우아한 프랑스 자수에 도전했다. 하얀 천 위에 분홍색 장미를 수놓으며 '아, 나는 섬세한 예술가 타입인가 봐'라고 자아도취에 빠졌다. 하지만 딱 30분 뒤, 엉켜버린 실타래와 바늘에 찔린 손가락을 보며 깨달았다.

'음, 나는 정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좀 멀군. 패스!'

다음 날은 활동적인 취미에 도전했다. 동네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로 한 것이다. 멋지게 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한 발을 올렸지만, 1초 만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대자로 뻗어버렸다. 무릎에 생긴 훈장은 따끔거렸지만, 웃음이 났다.

'보드는 무섭지만, 바람을 가르는 기분은 좋네. 절반의 성공!'

내 방은 점점 정체불명의 도구들로 가득 찼다. 며칠 쓰다 만 캘리그래피 펜, 조립하다 멈춘 드론, 먼지가 쌓인 요가 매트까지. 친구들은 나를 보고 "너 참 산만하다"라고 했지만, 나는 이 과정이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보물찾기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흔히 취미란 하나를 정해서 끝까지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기준이다. '나'라는 원석이 어떤 모양으로 깎일지 모르는 지금, 굳이 하나의 틀에 나를 가둘 필요가 있을까? 이것저것 건드려보며 "아, 이건 나랑 안 맞아!", "오, 이건 의외로 재밌는데?"라고 외치는 순간들이 모여 진짜 '지안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어느 비 오는 토요일 오후, 나는 우연히 낡은 필름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 아빠가 쓰시던 오래된 유물이었다. 셔터를 누를 때 들리는 '찰칵' 하는 묵직한 기계음.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평소보다 훨씬 따뜻하고 밀도 있게 느껴졌다.

'어...? 이건 좀 다른데?'

나는 동네 골목길을 돌며 낡은 대문, 담벼락 아래 핀 잡초, 비에 젖은 우체통을 찍기 시작했다. 현상을 맡기고 기다리는 며칠의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끈기'라는 녀석을 만났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조바심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설렘.

"엄마, 나 드디어 찾은 것 같아. 내 마음을 기록하는 법."

인화된 사진 속에는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조각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비록 자수는 망쳤고, 보드는 포기했지만, 그 수많은 '실패한 취미'들이 나를 이 카메라 앞으로 인도해준 셈이다. 내가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혼자 걷는 것을 즐기며, 사소한 풍경에 감동한다는 데이터를 그동안의 시도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 사진첩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실패할 권리가 있는 지안이의 탐험 일지. 세상에 쓸모없는 시도는 없다. 그 모든 '아니오'가 모여 단 하나의 '예스'를 만들어내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앞으로도 계속 '취미 쇼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방 구석의 먼지 쌓인 도구들은 포기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나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훈장들이니까. 혼자 잘 사는 법의 핵심은, 나를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시험해 보는 용기라는 것을 나는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작가의 한마디]

무언가를 금방 포기해서 속상한가요?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골라내고 있는 중이니까요. 더 많이 실패하고, 더 많이 '찍어 먹어' 보세요. 언젠가 당신의 심장이 "이거야!"라고 소리치는 그 순간을 만나게 될 거예요.

[다음 화 예고]

07화: 혼자 보내는 주말, 방구석 세계 여행

비 오는 주말, 약속이 없어서 심심하다고요? 지안이는 방구석에서 바르셀로나로 떠납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완벽한 여행 설계도가 공개됩니다!

제07화: 혼자 보내는 주말, 방구석 세계 여행

토요일 아침, 창밖에는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알림창에는 단톡방의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야, 비 오는데 영화나 보러 갈래?]

[난 학원 가야 돼 ㅠㅠ]

[지안아, 넌 뭐 해?]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비행기 모드'를 눌렀다. 누군가와 만나서 젖은 신발을 신경 쓰며 돌아다니는 대신, 나는 오늘 나만의 '1인용 비행기'에 탑승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리고 비행기 안은 바로 내 침대 위다.

"엄마, 나 오늘 바르셀로나 다녀올게. 저녁 전에는 입국할 거야!"

"뭐라는 거야, 쟤가 또 사춘기 증세인가..."

주방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혼잣말을 뒤로하고 나는 내 방 문을 잠갔다. 자, 이제부터 이곳은 인천공항 라운지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에서 '바르셀로나 골목길 걷기 ASMR' 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띄웠다. 화면 속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은 고딕 지구의 돌담길이 펼쳐졌고, 이어폰 너머로는 스페인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먼 곳의 성당 종소리가 들려왔다.

"올라(Hola)! 오늘의 여행 가이드 강지안입니다."

나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침대 머리맡에 놓인 조명을 은은한 노란색으로 바꿨다. 그리고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 꾸러미를 펼쳤다. 바삭한 감자칩은 스페인의 타파스가 되었고, 시원한 포도 주스는 샹그리아가 되었다.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나는 람블라스 거리를 걷는 상상을 했다.

혼자 보내는 주말이 외롭다는 건 편견이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내 페이스를 조절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가고 싶지 않은 맛집에 줄을 서거나, 다리가 아파도 참아야 하는 고통 없이 나는 오직 내가 보고 싶은 풍경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영상을 보며 나는 드로잉 노트를 펼쳤다. 화면 속에 잠시 스쳐 지나간 가우디의 건축물 모양을 서툴게 따라 그려보았다.

'이 곡선은 정말 파도 같네. 가우디는 혼자 이 건물을 설계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유영했다. 혼자 있을 때 인간의 창의력은 극대화된다는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실제로 나는 지금 이 방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예술가이자 탐험가였다.

오후 2시,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치고 나는 이번엔 '과거의 나'로 여행을 떠났다.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과 앨범을 꺼내 든 것이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오늘 떡볶이가 맛없어서 슬펐다"라는 문장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의 지안이와 지금의 지안이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

"야, 강지안. 너 저 때 되게 귀여웠네. 떡볶이 하나에 인생 다 산 것처럼 굴고 말이야."

친구들과 만나 연예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겁지만, 이렇게 내 인생의 주인공들과 조우하는 시간은 내면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복습하는 시간 없이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으니까.

비가 그칠 무렵, 나는 비행기 모드를 해제했다.

[지안아, 너 어디 아파? 왜 연락 안 돼?]

서윤이의 메시지에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어 보냈다. 창밖의 무지개와 내가 그린 가우디의 성당 그림, 그리고 빈 과자 봉지.

[나? 바르셀로나 여행하고 이제 막 입국했지. 진짜 환상적이었어!]

친구들은 "또 엉뚱한 소리 한다"며 웃어넘겼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내 방은 단순한 사각형의 공간이 아니라, 내 상상력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었다.

주말은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다.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휴게소다. 나는 오늘 완벽하게 충전됐고, 내일 학교라는 정글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나는 일기장에 오늘의 여행기를 짧게 요약했다.

[목적지: 나의 내면. 경비: 과자값 3,000원. 소감: 일등석 부럽지 않은 완벽한 독립 만세!]

혼자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 나는 이제 주말의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근사한 '방구석 여행자'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약속이 없는 주말이 불안한가요? 그건 당신이 자신과 보내는 시간을 '공백'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공백에 당신의 상상력을 채워 넣으세요. 당신의 방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우주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화 예고]

08화: 감정 일기: 내 마음의 날씨 중계석

갑자기 울컥하거나, 이유 없이 짜증이 날 때. 내 감정의 기상캐스터가 되어 마음을 진정시키는 지안이만의 마법 같은 대화법이 공개됩니다!

제08화: 감정 일기: 내 마음의 날씨 중계석

오늘 내 마음의 하늘은 아침부터 '흐림'이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아침에 거울을 보다가 발견한 작은 뾰루지 하나, 등굣길에 내 인사를 못 보고 지나친 선생님의 무심한 뒷모습, 그리고 수학 시간에 옆자리 애가 빌려 간 샤프를 돌려주지 않고 가방에 쏙 넣는 장면을 목격했을 뿐이다.

이 사소한 조각들이 모여 마음속에 눅눅한 습기를 만들어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 찜찜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있었어!"라며 감정의 쓰레기통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내 감정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환경 미화원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내 책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으로 정돈되어 있다. 하얀 책상 위에 하얀 노트를 펼치는 순간, 복잡했던 머릿속이 일순간 정지되는 기분이 들었다.

"자, 오늘의 기상 중계, 시작합니다."

나는 펜을 들고 노트 맨 위에 오늘의 날씨를 그렸다. 먹구름 두 개와 번개 모양 하나.

[감정 중계 1: 억울함의 안개]

원인: 내 소중한 샤프를 가져간 짝꿍.

중계: "지안 선수, 지금 속으로 '왜 말을 못 해!'라며 자책하고 있군요. 하지만 이건 지안 선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내일 정중하게 돌려달라고 말하면 안개는 금방 걷힐 거예요. 소심한 게 아니라 신중한 거니까요."

노트 위에 감정을 글자로 옮겨 적는 순간, 신기한 마법이 일어났다. 내 머릿속을 윙윙거리며 괴롭히던 짜증이 실체가 있는 '데이터'로 변했다. 감정이라는 건 안개와 같아서, 가만히 두면 내 시야 전체를 가리지만 이렇게 문장으로 가두어버리면 그저 종이 위의 검은 점일 뿐이다.

[감정 중계 2: 소외감의 소나기]

원인: 인사를 받지 않으신 선생님.

중계: "잠시 소나기가 내렸네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어제 잠을 못 주무셨거나, 급한 용무가 있으셨을 뿐입니다. 지안 선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는 점, 명확히 확인되었습니다."

일기를 쓰다 보니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불안했는지의 원인이 하얀 종이 위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하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걸 싫어한다. 나 역시 그랬다. 꼬여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내어 정갈하게 배열하고 나니, 마음속 습기가 순식간에 증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별거 아니었네."

나는 일기장 마지막 줄에 커다란 해 모양을 그렸다.

내 감정의 주인이 된다는 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로봇이 되는 게 아니다. 폭풍우가 치면 잠시 비를 피할 동굴을 찾고, 햇볕이 나면 마음껏 광합성을 할 줄 아는 '능숙한 기상캐스터'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하얀 침대 시트 속으로 쏙 들어갔다. 하얀색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색이다. 오늘 어떤 얼룩이 묻었든, 내일 아침이면 다시 깨끗한 백지 상태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누군가에게 내 기분을 설명하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늘 나 자신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눴고,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주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맑은 예보를 써줄게, 지안아.'

스스로를 다독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기분 좋게 울렸다. 혼자 사는 법의 여덟 번째 수업은 '내 마음의 기온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이유 없이 울적한 날이 있나요? 그럴 땐 백지를 하나 꺼내 당신의 마음을 중계해 보세요. "나는 지금 슬프다"라고 적는 순간, 슬픔은 당신을 집어삼키는 괴물에서 당신이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조약돌로 변할 거예요.

[다음 화 예고]

09화: 첫 번째 경제 자립 선언 (용의주도한 용돈 관리)

진정한 독립은 지갑에서 시작된다! 떡볶이의 유혹을 뿌리치고 '꿈을 위한 예산'을 짜는 지안이의 똑소리 나는 경제 탐험기.

제09화: 첫 번째 경제 자립 선언 (용의주도한 용돈 관리)

"진정한 자유는 지갑에서 나온다."

어디선가 읽은 이 문장이 오늘따라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하얀 책상 위에 새로 산 투명한 가계부와 필통을 가지런히 놓았다. 나는 오늘부로 '되는 대로 쓰고 남으면 저축하는' 무계획한 삶과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강지안의 경제 자립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사실 중학생에게 경제 자립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엄마가 주시는 한 달 용돈 5만 원. 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나는 '떡볶이의 노예'가 될 수도, '꿈을 향한 투자자'가 될 수도 있다.

"자, 우선 고정 지출부터 정리해보자."

나는 하얀 종이에 자를 대고 칸을 나누었다.

생존 비용: 친구들과의 최소한의 간식비 (15,000원)

문화 생활: 한 달에 책 한 권 또는 전시회 관람 (12,000원)

비상금: 예상치 못한 문구류 구입 등 (5,000원)

독립 자금: 미래의 나를 위한 저축 (18,000원)

적어놓고 보니 내 꿈의 무게가 숫자로 보였다. 지난달의 나는 어디에 그 많은 돈을 썼을까? 편의점에서 무심코 집어 든 1+1 음료수, 유행이라길래 샀다가 서랍에 처박아둔 스티커들…. 명확하고 정갈한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에 그런 '흐릿한 지출'은 일종의 오점이었다.

"지안아, 나와서 떡볶이 시켜 먹자!"

거실에서 동생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콜!"을 외치며 달려 나갔겠지만, 오늘은 가계부를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미안, 난 오늘 이미 '생존 비용' 한도를 채웠어. 난 사과 깎아 먹을게!"

거절의 순간은 짧았지만, 그 뒤에 오는 뿌듯함은 길었다. 누군가의 제안에 휩쓸리지 않고 내 계획을 지켜냈다는 통제감. 그것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 이상의 쾌감을 주었다. 내가 내 삶의 핸들을 꽉 쥐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돈을 관리하기 시작하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예전엔 5,000원이 그저 '커피 한 잔 값'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사고 싶은 필름 카메라를 향한 100분의 1의 발걸음'이 되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참아낸 간식값이 내일의 더 큰 자유가 되어 돌아올 것임을 믿기에, 하얀 가계부의 공란을 채우는 시간은 지루한 숙제가 아니라 즐거운 게임 같았다.

하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얼룩지는 것을 경계한다. 나에게 무분별한 소비는 내 미래를 흐릿하게 만드는 얼룩과 같았다. 지출 내역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남은 잔액을 확인할 때, 내 마음은 갓 세탁한 하얀 셔츠처럼 빳빳하고 상쾌해졌다.

"엄마, 이번 달 용돈은 저축을 좀 많이 해서 남을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진짜 사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보탤게요."

내 말에 엄마는 기특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진정한 독립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오늘, 내 지갑의 주인이 됨으로써 내 삶의 당당한 경영자로 데뷔했다.

나는 가계부 마지막 칸에 이렇게 적었다.

[돈을 지배하는 자가 시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운명을 지배한다. 오늘의 1,000원은 미래의 나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작가의 한마디]

부자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번 돈(또는 받은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입니다. 숫자로 정리된 당신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거예요. 오늘부터 당신만의 '꿈 예산'을 짜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화 예고]

10화: '나'라는 사람과 처음으로 악수하던 날

제1부의 마지막 이야기. 숱한 방황과 실험 끝에 드디어 거울 속의 자신과 화해하고, 평생 함께할 '최고의 파트너'로 인정하게 되는 지안이의 감동적인 피날레.

제10화: '나'라는 사람과 처음으로 악수하던 날

어느덧 연두색 새싹들이 짙은 초록으로 바뀌어가는 계절이 왔다. 책상 위에 놓인 화이트보드에는 지난 몇 달간 내가 도전했던 기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혼밥 레벨 5 달성', '플레이리스트 10개 완성', '용돈 기입장 3개월 유지'.

하나씩 줄을 그어 지워가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혼자 잘 사는 법'을 연습했던 건, 단순히 외로움을 참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집 안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하얀색 면 티셔츠를 입은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예전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부터 찾아내기 바빴다. '눈이 조금만 더 컸으면', '피부가 좀 더 깨끗했으면', '성격이 조금 더 싹싹했으면' 하는 아쉬움의 화살들이 나를 찔러댔었다.

하지만 오늘 거울 속의 나는 조금 달라 보였다.

혼자 밥을 먹으며 음미할 줄 아는 입술,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까딱이던 발가락, 그리고 매일 밤 하얀 일기장 위에 진심을 쏟아내느라 굳은살이 살짝 박인 중지 손가락까지. 그 모든 조각들이 모여 '강지안'이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안녕, 지안아. 고생 많았지?"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동안 나는 타인에게 친절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해왔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고,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얼마나 다정했었나. 나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나에게, 나는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어 거울 표면에 갖다 댔다. 거울 속의 지안이도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유리 너머로 온기가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 자신과 나누는 생애 첫 번째 악수였다.

'이제 너를 외롭게 두지 않을게. 누구보다 내가 먼저 네 편이 되어줄게.'

악수를 나누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하얀색은 모든 색을 거부하는 차가운 색이 아니라, 모든 빛을 품고 있는 가장 뜨거운 색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내 삶은 비로소 어떤 색깔의 물감이 떨어져도 두렵지 않은 단단한 캔버스가 된다.

"지안아, 너 오늘 진짜 빛난다."

누구의 칭찬보다 달콤한 자화자찬. 나는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겠지만, 그 사이의 긴 여정 동안 나는 절대 혼자가 아닐 것이다. '나'라는 가장 믿음직하고 재미있는 친구와 평생을 함께할 테니까.

나는 책상으로 돌아와 제1부의 마지막 일기를 써 내려갔다.

[독립(獨立):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섬. 하지만 나에게 독립이란 '나와 함께 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제 나는 혼자일 때 가장 당당하고, 함께일 때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의 14살, 참 근사하게 시작됐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하얀 커튼을 흔들었다.

서툴렀던 독립의 시작이 끝나고,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기장을 덮었다. 내일은 또 어떤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입가에 번진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단짝 친구가 되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제1부를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과 악수해본 적이 있나요? 오늘 밤, 거울 앞에 서서 수고한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보세요. "너랑 평생 잘 지내보고 싶어"라고 말이죠. 그 순간, 여러분의 진짜 인생이 시작될 거예요.

[제2부 예고: 관계라는 파도를 타는 법]

11화: 스무 살,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빠지다

중학생 지안이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 혼자서도 단단해진 지안이가 대학이라는 새로운 정글에서 어떻게 관계의 파도를 넘게 될지, 더 깊고 푸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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