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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두 치

21화 — 대결 당일
화단에 폐자재와 공구들이 준비됐다.
황철 팀은 5명이었다. 3학년 부원 넷에 황철까지. 전부 경험이 있는 애들이었다. 역할을 미리 짜왔는지 들어오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만복 팀은 둘이었다.
만복이 작업대에 도면을 펼쳐놓았다.
"순서 기억하지?"
은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둥 자리 표시. 구멍 파기. 기둥 세우기. 수평 확인. 대들보. 지붕 골조. 지붕 판재. 마감."
"맞아. 근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두 번째 단계요. 구멍 깊이."
"왜?"
"기둥이 얼마나 깊이 박히느냐가 전체 안정성이에요. 표면만 박으면 바람에 흔들려요."
만복이 삽을 들었다.
"깊이는?"
"30센티. 이 정도 창고면 충분해요."
"알겠어. 넌 자재 정리해."
둘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철 팀이 옆에서 분주했다. 다섯 명이 동시에 움직이니 처음엔 빠르게 진행됐다. 근데 중간에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꼬이기 시작했다.
"야, 기둥 먼저 세워야지 대들보는 왜 먼저 꺼내!"
"그쪽에서 잡으라니까! 아니, 왼쪽! 왼쪽이라고!"
황철이 지휘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만복과 은동이는 조용했다. 만복이 구멍을 팠다. 은동이가 자로 재면서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서 정확히 80센티. 여기 표시해요."
"알겠어."
구멍 네 개가 파졌다. 은동이가 깊이를 확인했다.
"29센티. 하나만 더요."
삽을 한 번 더 밀었다.
"됐어요."
기둥을 세웠다. 은동이가 수평계를 댔다. 기포가 정중앙에 왔다.
"완벽해요."
22화 — 기적 같은 호흡
두 시간이 지났다.
황철 팀은 기둥 세 개에 지붕 골조까지 올렸다.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중간에 자꾸 뭔가 틀려서 다시 하는 일이 생겼다.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서 다시 박았다. 대들보가 잘못 얹혀서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만복 팀은 기둥 네 개가 반듯하게 서 있었고, 대들보가 올라갔고, 지붕 골조가 붙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부원들이 수군거렸다.
"어떻게 둘이서 저게 되지?"
"은동이가 자로 재면서 말해주고, 만복 선배가 그대로 하는 거잖아."
"역할 분담이 딱 맞네."
"서로 방해가 없으니까 더 빠른 건가?"
만복이 지붕 판재를 올리려다가 혼자서는 무거웠다. 은동이가 반대편으로 달려왔다.
"제가 잡을게요."
"무거울 텐데."
"괜찮아요."
둘이 양쪽에서 들어올렸다. 무거웠다. 은동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근데 버텼다.
"조금 더 오른쪽이요."
"이만큼?"
"딱 맞아요. 거기서 박아요."
만복이 한 손으로 판재를 잡고 다른 손으로 망치를 들었다. 못을 박았다.
쾅. 쾅.
판재가 지붕에 고정됐다.
은동이가 손을 놓으며 팔을 털었다.
"됐어요!"
만복이 아래로 내려와서 전체를 봤다. 창고가 서 있었다. 기울어짐 없이. 반듯하게.
"……진짜 됐다."
23화 — 황철의 마지막 수
황철이 만복 팀 창고 뒤편으로 돌아갔다.
자기 팀 창고가 어떻게 됐는지 봤다. 지붕 골조까지는 올라갔는데 기둥 하나가 살짝 기울어 있었다. 판재를 올리면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반면 만복 팀 창고는 이미 판재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황철이 눈을 좁혔다.
만복 팀 창고 기둥 중 하나 앞에 섰다. 발로 살짝 찼다.
기둥이 흔들렸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다시 찼다. 더 세게. 기둥이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황철이 미간을 좁혔다.
왜 안 무너지지.
"발로 차면 안 무너지거든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황철이 돌아봤다. 은동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기둥을 30센티 깊이로 박았어요. 그냥 표면만 박은 게 아니라서요."
황철이 말문이 막혔다.
은동이가 황철을 똑바로 봤다.
"황 선배, 이기고 싶으면 발로 차는 것보다 더 잘 지으면 되잖아요."
황철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은동이가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 지붕 마감해야 해요."
24화 — 평가
오형탁 선생님이 두 팀 창고 앞에 섰다.
황철 팀 창고를 먼저 살펴봤다. 기둥을 흔들었다. 삐걱거렸다. 한쪽이 살짝 기울어진 게 눈에 보였다.
"지붕 경사는?"
황철이 대답했다.
"20도입니다."
"우리 지역 강수량 기준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황철이 굳었다.
선생님이 만복 팀 창고로 갔다. 기둥을 흔들었다. 꿈쩍도 안 했다. 발로 살짝 차봤다. 안 흔들렸다.
"지붕 경사는?"
은동이가 대답했다.
"25도입니다. 이 지역 연평균 강수량 기준으로 권장 각도예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 안으로 들어가봤다. 빛이 잘 들어오게 나무 간격이 계산돼 있었다. 통풍도 고려된 구조였다.
"만복이 팀. 안정성과 실용성 둘 다 앞서."
황철이 고개를 떨궜다.
옆에 있던 황철 팀 부원이 조용히 말했다.
"형, 저 창고 진짜 단단하다. 기둥이 어떻게 저렇게 박혔어?"
황철이 대답하지 않았다.
25화 — 사과
대결이 끝난 후.
황철이 목공실에 왔을 때 만복과 은동이가 정리를 하고 있었다.
황철이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있어?"
만복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황철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노트를 들고 있었다.
은동이의 노트였다.
"이거."
은동이가 노트를 봤다.
"……그거 어디서요?"
"책상 위에 놓고 간 날 있었잖아. 내가 가져갔어."
만복이 황철을 쏘아봤다.
"야."
"미안해. 돌려주려고 가져왔어."
황철이 노트를 은동이한테 내밀었다.
은동이가 받아서 가슴에 꼭 안았다.
황철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했다.
"그거 말고도. 재료 창고에서 없어진 마감 도료. 내가 치웠어."
만복이 굳었다.
"그거 알고 있었어?"
"응. 사실이야."
잠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황철이 먼저 말했다.
"만복이 네가 잘되는 게 싫었어. 솔직하게 말하면 그랬어."
만복이 황철을 봤다. 화가 났다. 당연히 화가 났다. 근데 동시에,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황철이 처음이라서 뭔가 이상하게 힘이 빠졌다.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때는 선생님한테 말할 거야."
"안 해."
은동이가 노트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마음이 비뚤어지면 집도 기울어진다고."
황철이 고개를 들어 은동이를 봤다.
"자기 마음 먼저 고르게 세우면 집도 곧아진다고요."
황철이 한동안 은동이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알겠어."
그게 황철의 사과였다.
26화 — 할머니를 만나다
봄이 무르익은 어느 토요일.
은동이가 문자를 보냈다.
[은동이: 선배, 우리 집 올래요? 할머니가 떡 만드셨어요.]
만복이 잠깐 망설이다가 답장했다.
[만복: 가도 돼?]
[은동이: 제가 부른 거잖아요.]
은동이네 집은 주택가 안쪽이었다. 대문이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었다. 만복이 초인종을 누르자 은동이가 뛰어나왔다.
"왔어요?"
"응."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무 냄새가 났다. 집 자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만복이 자연스럽게 기둥을 봤다. 손으로 살짝 두드려봤다. 단단한 소리가 났다.
"오래됐는데 기둥이 단단하네."
"할아버지가 지으셨어요. 할머니 시집올 때요."
만복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 50년이 넘은 거잖아."
"응. 근데 기둥 하나 안 흔들려요.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제대로 지으셨으니까."
만복이 집 전체를 봤다. 새로 지은 건 아닌데,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었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봤다. 딱딱 잘 맞아들어갔다. 50년이 됐는데 문도 삐걱거리지 않았다.
잘 지어진 집은 100년이 간다.
은동이가 한 말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縁마루에서 나왔다. 작고 야윈 분이었다. 머리가 하얗고 손이 거칠었다.
"만복이구나. 은동이한테 많이 들었어."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은동이 잘 부탁해. 학교에서 친구가 없어서 내가 걱정이 많았는데."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가 할머니를 가볍게 밀었다.
"할머니, 그런 말씀 왜 하세요."
"사실이잖아. 친구 사귀는 걸 어려워하는 애라서."
"선배 있잖아요."
할머니가 만복을 보며 웃었다.
"고맙네. 은동이 외롭지 않게 해줘서."
만복이 뒷목을 긁었다.
"제가 얻어먹는 게 더 많아서요."
27화 — 세 사람
다음 주 월요일.
황철이 목공실에서 만복에게 다가왔다.
"야."
"왜."
"나 목공 기초 더 다지고 싶은데. 설계 좀 가르쳐줄 수 있냐."
만복이 멈칫했다.
"내한테?"
"아니 은동이한테. 네가 중간에서 부탁해줄 수 있냐고."
만복이 황철을 봤다. 황철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직접 부탁하면 안 돼?"
"내가 먼저 뭔 짓을 했잖아. 노트도 가져가고. 은동이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거야 물어봐야 알지."
황철이 입을 다물었다.
만복이 은동이를 찾아갔다. 은동이가 창가에서 도면을 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황철이가 설계 배우고 싶대. 은동이한테."
은동이가 잠깐 굳었다가 생각했다.
"……저한테요?"
"응."
"황 선배가요?"
"응."
은동이가 한동안 생각했다. 만복이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배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는 가르쳐야 한다고."
"그러면?"
"해볼게요. 근데 제 말 잘 들어야 해요."
그날 오후.
황철이 은동이 앞에 앉았다.
어색했다. 황철도 어색하고, 은동이도 어색했다.
은동이가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황 선배, 균형이 뭔지 알아요?"
황철이 헛기침을 했다.
"……수평 맞추는 거."
"정확하지는 않아요. 균형은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는 거예요. 보기에 수평이어도 무게 중심이 쏠려 있으면 언젠가 무너져요."
황철이 조용히 들었다.
만복이 옆에서 대패를 밀면서 그 모습을 봤다.
뭔가 이상하게 좋았다. 이렇게 셋이 있는 게.
28화 — 지역 콘테스트
지역 건축 모형 콘테스트 공고가 붙었다.
학교 팀 대항이었다. 이번엔 팀을 구성해서 나가는 방식이었다.
오형탁 선생님이 만복을 불렀다.
"이번에 학교 대표 팀 꾸려볼 생각인데, 만복이 팀장 해볼게?"
"누구랑요?"
"그건 만복이가 정해."
만복이 목공실로 돌아와서 은동이한테 물었다.
"이번 콘테스트, 황철이랑 셋이 나갈까?"
은동이가 놀랐다.
"황 선배요?"
"설계 배우기 시작했잖아. 여기서 경험 한 번 쌓으면 도움 되겠지."
"황 선배가 할까요?"
"물어봐야 알지."
황철한테 물어보니, 황철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
이렇게 세 명 팀이 구성됐다.
첫 번째 팀 회의.
만복이 말했다.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하자. 설계는 은동이. 자재 계산이랑 보조는 황철이. 제작은 내가."
황철이 은동이를 봤다.
"1학년 애가 설계를 맡냐."
"황 선배보다 은동이가 설계를 더 잘해요."
황철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알겠어."
29화 — 함께 만드는 집
준비 2주.
세 사람이 매일 방과 후 목공실에 모였다.
처음엔 어색하고 서먹했다. 황철이 은동이 말에 반응이 느렸다. 은동이가 황철한테 말할 때 주저했다.
근데 작업을 시작하면 달라졌다.
은동이가 기둥 간격을 계산했다. 황철이 자재 양을 계산했다. 만복이 나무를 다듬었다.
"이 기둥 무게가 이 정도면 각 기둥에 걸리는 하중은……."
황철이 계산식을 뽑아냈다.
은동이가 들여다봤다.
"거기서 2를 더 나눠야 해요. 기둥이 네 개니까."
"아."
황철이 수정했다.
"맞아요. 잘했어요."
황철이 뻘쭘하게 웃었다.
"……1학년한테 칭찬 들으니까 이상하다."
"그냥 받으시면 돼요."
만복이 옆에서 피식 웃으며 대패를 밀었다.
어느 날 황철이 말했다.
"야, 이거 진짜 재밌다. 세 명이 같이 하니까."
"그죠?" 은동이가 웃었다.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거 보면 기분 좋잖아요."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야."
만복이 기둥을 세우다가 말했다.
"그게 진짜 만드는 맛이야."
황철이 만복을 봤다가 슬며시 웃었다.
30화 — 첫 번째 진짜 감정
콘테스트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은동이가 혼자 목공실에 남아 있었다. 만복과 황철이 선생님께 잠깐 불려간 사이였다.
도면을 그리다가 연필을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교정에 벚꽃이 다 지고 초록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은동이가 할아버지 노트를 펼쳤다.
마지막 페이지에 할아버지 손글씨가 있었다. 평소엔 잘 안 읽었다. 보면 눈물이 나서.
'은동이에게.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들을 잘 쓰거라. 네 손으로 집을 짓고, 누군가가 그 안에서 살게 해라. 그게 할아버지 바람이다.'
은동이가 노트를 덮었다.
*할아버지, 저 잘하고 있죠.*
문이 열리며 만복이 들어왔다.
"어, 혼자야? 황철이는?"
"화장실 갔어요."
만복이 자리에 앉으며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가 눈을 꾹 눌렀다.
"왜, 눈 아파?"
"아니요."
만복이 더 묻지 않았다.
은동이가 다시 도면을 펼치려다가 만복 쪽을 봤다.
"선배."
"왜."
"저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복이 도면 위에 눈을 내리깔다가 은동이를 봤다.
"뭐가."
"여기서요. 목공부에서. 선배랑."
만복이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응."
짧았다.
"그냥 응이에요?"
"잘하고 있어. 더 말해줄 필요 있어?"
은동이가 피식 웃었다.
"……없어요."
황철이 들어오며 말했다.
"왜 둘이 쳐다봐요?"
"아무것도 아니야."
만복이 도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동이도 도면을 펼쳤다.
근데 둘 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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