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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두 치


31화 — 소문
"강만복이랑 박은동이 사귄대."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중학교에서 소문이 도는 속도는 항상 놀라울 정도였다.
만복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그 말을 들었다.
"어디서 나온 소문이야?"
옆에 있던 애가 웃으며 말했다.
"매일 방과 후마다 목공실에 둘이 남잖아. 3학년이 1학년이랑 그렇게 있으면 소문 안 나는 게 이상하지."
"목공부 활동이야."
"그게 그렇게 들리냐."
만복이 입을 다물었다.
복도 끝을 봤다. 은동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뭔가 책을 들고 읽으면서 오다가 사람에 부딪힐 뻔했다.
저 애가 그런 거에 신경이나 쓸까.
1학년 교실.
은동이가 책을 읽다가 친구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은동아, 소문 들었어? 만복 선배랑 사귄다는 거."
"응."
"응? 아는 거야?"
"들었어요."
"사실이야?"
은동이가 잠깐 책을 덮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창밖을 봤다.
*아닌 거 맞지?*
매일 목공실에 가는 게. 만복 선배가 오늘은 없냐고 물어보는 게. 같이 작업하는 게 제일 좋은 시간이라는 게.
그게 사귀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
은동이가 다시 책을 폈다.
근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32화 — 뭔지 모를 것
그날 방과 후.
목공실에 은동이가 먼저 와 있었다. 만복이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만복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소문 들었어?"
"……들었어요."
"신경 써?"
"조금요."
"나는 아닌데."
은동이가 만복을 봤다.
"나는요?"
"뭐가."
"아닌 게 확실해요? 선배는."
만복이 멈췄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잠깐 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소문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은동이가 노트로 시선을 내렸다.
"저는 선배랑 있는 게 좋아요. 목공실에 오는 게 학교에서 제일 좋은 시간이에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만복이 아무 말도 못 했다.
은동이가 계속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마음이 기울면 그걸 인정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마음이 기울어?"
"아까 말했잖아요. 선배한테 마음이 기울어요."
만복의 귀가 뜨거워졌다.
은동이가 여전히 노트를 보며 말했다.
"틀렸으면 말해요. 그럼 그냥 그랬구나 하고 잊어요. 만복 선배 의사가 중요하니까."
만복이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네?"
"나도 비슷한 것 같아."
은동이가 고개를 들었다. 만복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귀가 빨간 게 보였다.
"비슷한 게 뭐예요."
"그러니까." 만복이 뒷목을 긁었다. "목공실에 오면 먼저 은동이 왔는지 봐. 없으면 왜 아직 안 왔나 생각하게 돼.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은동이가 잠깐 멍했다가 노트를 덮었다.
"그거면 된 것 같아요."
"뭐가."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요."
33화 — 콘테스트 결과
지역 건축 모형 콘테스트.
세 팀이 경쟁했다. 청현중 팀, 한강중 팀, 동산중 팀.
작품을 전시하고 심사위원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이 청현중 작품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기둥 간격을 눈으로 재봤다. 대들보를 손으로 흔들어봤다. 지붕 경사를 봤다.
"팀장이 누구죠?"
"저요."
만복이 대답했다.
"설계는요?"
은동이가 손을 들었다.
"1학년인가요?"
"네."
"자재 계산은요?"
황철이 손을 들었다.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 분담이 명확하고, 결과물이 그걸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균형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세 팀 중 청현중이 대상을 받았다.
황철이 상장을 보며 말했다.
"와."
그게 전부였다. 근데 그 한 마디에 많은 게 담겨 있었다.
은동이가 상장을 받아들고 가슴에 안았다.
만복이 말했다.
"잘했다."
"선배도요."
황철이 옆에서 헛기침을 했다.
"나는?"
"황 선배도요." 은동이가 웃었다. "세 명이서 한 거잖아요."
34화 — 여름방학 전
여름방학이 일주일 남았을 때.
오 선생님이 목공부에 공지했다.
"방학 동안에 자율 프로젝트 해볼 사람 있으면 신청해. 주제는 뭐든 괜찮아. 학교 심사 거쳐서 좋은 거 하나 지원해줄게."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가 만복을 봤다.
황철이 말했다.
"하자. 셋이서."
만복이 황철을 봤다.
"야, 네가 먼저 말하네."
"왜. 싫어?"
"아니, 그냥. 좋아."
셋이서 자율 프로젝트 신청서를 썼다.
주제: 폐자재를 활용한 학교 화단 조형물.
은동이가 설계를 맡았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앉아서 쉴 수 있는 구조물로. 학생들이 방과 후에 화단에 앉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것.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좋은 건물은 사람을 모은다고."
만복이 설계도를 들여다봤다.
"이거 벤치 같은 건데, 지붕도 있네."
"비도 피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황철이 자재 목록을 작성했다.
"폐자재로 할 수 있겠는데."
"해보자."
35화 — 방학 프로젝트
방학이 시작됐다.
만복과 은동이, 황철은 3일에 한 번씩 학교에 나왔다. 화단 조형물 작업을 위해.
첫날은 기초를 잡았다.
은동이가 땅에 선을 그었다. 기둥이 들어갈 자리. 황철이 줄자로 재서 확인했다. 만복이 삽으로 구멍을 팠다.
"깊이는?"
"25센티. 작은 구조물이니까 이 정도면 돼요."
기둥을 박았다. 수평을 확인했다. 완벽했다.
이틀째는 기둥과 서까래를 올렸다.
황철이 서까래 각도를 계산하면서 은동이한테 물었다.
"이 각도가 왜 중요한 거야?"
"비가 옆으로도 치잖아요. 지붕이 충분히 튀어나와야 비를 막을 수 있어요."
황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었다.
"야, 나는 항상 지붕이 있으면 비 막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디테일이 다 이유가 있어요."
삼일째는 벤치 자리를 만들었다.
앉는 판재를 깔았다. 만복이 판재를 다듬었다. 거칠었던 나무가 부드러워졌다.
황철이 손으로 판재를 쓸어봤다.
"손이 안 걸리네."
"그게 만복 선배 손재주예요." 은동이가 말했다. "나무 다루는 건 정말 최고거든요."
만복이 뒷목을 긁었다.
"그만해."
"사실인데요."
닷새째, 조형물이 완성됐다.
작은 쉼터였다. 기둥 네 개, 지붕, 벤치 두 자리. 소박하지만 반듯했다.
셋이 나란히 완성된 조형물 앞에 섰다.
"……됐다."
황철이 먼저 벤치에 앉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위를 올려봤다. 지붕이 햇빛을 가려줬다.
"여기 진짜 괜찮은데."
만복이 다른 쪽에 앉았다.
은동이가 조심스럽게 사이에 앉았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화단을 봤다.
"방학 내내 이거 한 보람 있다."
만복이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보여드리고 싶다."
은동이가 조용히 말했다.
황철이 은동이를 봤다가 다시 화단을 봤다.
"하늘에서 보실 거야."
황철이 먼저 말했다.
만복이 황철을 봤다. 황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잖아."
은동이가 웃었다.
"맞아요."
36화 — 새 학기
2학기가 시작됐다.
방학 동안 만든 조형물이 화단에 놓였다. 학생들이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점점 앉기 시작했다. 수업 사이 쉬는 시간, 점심 먹고 나서.
만복이 창문으로 그걸 봤다.
누군가 그 쉼터에 앉아서 친구랑 얘기하고 있었다.
뭔가 뜻한 것이 가슴에 찼다.
은동이가 옆에 서 있었다.
"봐요, 선배."
"응."
"사람들이 앉아 있어요. 우리가 만든 거에."
"그러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좋은 건물은 사람을 모은다고."
만복이 화단 쉼터를 봤다.
"……진짜 그렇네."
은동이가 웃었다.
37화 — 어느 가을날
가을이 왔다.
교정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다.
만복이 중3이 됐고, 은동이가 중2가 됐다.
황철이 고3이 됐고, 진로 상담을 받으러 자주 없었다. 그래도 가끔 목공실에 들어와서 셋이서 작업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황철이 말했다.
"나 건축학과 갈 거야."
만복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
"응. 이게 재밌어. 설계부터 제작까지. 진짜 건물 짓고 싶어."
은동이가 웃었다.
"황 선배 잘할 것 같아요."
"균형 먼저 배워야 한다는 거 이제 알아. 눈에 예쁜 것보다."
황철이 만복을 봤다.
"그거 만복이 너한테 배웠어. 간접적으로."
만복이 황철을 봤다.
"나한테?"
"은동이한테 배운 거 보면서."
만복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결국 은동이한테 배운 거지."
"그거야 당연하지."
은동이가 키득거렸다.
38화 — 처음으로 하는 말
어느 늦은 오후.
목공실 정리가 끝나고 황철은 먼저 갔다. 만복과 은동이만 남았다.
만복이 창문을 닫으려다가 멈췄다.
"은동아."
"네."
"나 고등학교 가면 건축과 갈 거야."
은동이가 손을 멈추고 만복을 봤다.
"언제 결정했어요?"
"요즘 생각했어. 설계 배우면서. 진짜 집 짓고 싶다."
은동이가 환하게 웃었다.
"잘됐다. 선배 손재주에 설계 더 배우면 진짜 최고잖아요."
"은동이는?"
"저도요. 저도 건축 설계 할 거예요."
만복이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럼 나중에 같이 해야겠네."
"언제요?"
"나는 손으로, 넌 머리로. 원래 하던 방식대로."
은동이가 배낭을 들다가 웃었다.
"그거 우리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그러네."
만복이 창문 쪽에 기대며 은동이를 봤다.
"은동아."
"왜요."
"저번에 말하다가 흐지부지했는데."
"뭐를요."
"마음이 기운다고 했잖아. 나한테."
은동이가 가방을 들다가 멈췄다.
만복이 말했다.
"나도 그래. 오래 됐는데 말을 안 했어."
은동이가 만복을 봤다.
"오래 됐다고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만복이 시선을 살짝 피했다. "처음에 초딩이라고 무시했을 때부터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 근데 그게 점점 다른 마음으로 바뀐 것 같아."
"어떤 마음으로요."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서 말을 안 했어. 근데 오늘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은동이가 배낭을 내려놓고 만복을 똑바로 봤다.
"저는 알아요. 제가 느끼는 거요."
"뭔데."
"선배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쉬워요. 선배 말 들으면 기분이 좋고, 선배 힘들어 보이면 나도 힘들어요."
만복이 조용히 들었다.
"그게 뭔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만복이 한동안 은동이를 봤다가 말했다.
"……좋아해."
"네?"
"그 말이잖아. 결국은."
은동이가 멈췄다. 만복이 창문에 기댄 채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귀가 빨간 게 보였다.
"저도요."
은동이가 조용히 말했다.
만복이 고개를 돌렸다.
"진짜야?"
"진짜예요. 오래됐어요."
"오래됐다고?"
"선배가 처음에 '내가 있잖아'라고 했을 때부터요."
만복이 그 말을 기억하는 건지 잠깐 굳었다가 뒷목을 긁었다.
"그거 그냥 한 말이야."
"그냥 한 말이 더 진짜잖아요."
만복이 할 말을 잃었다.
은동이가 웃었다. 목공실 창문으로 노을이 들어왔다. 나무 먼지가 빛 속에서 반짝였다.
39화 — 할머니의 집 다시
그다음 주 토요일.
만복이 은동이네 집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혼자. 은동이가 부른 게 아니라 만복이 먼저 왔다.
은동이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선배?"
"나 왔어."
"왜요?"
"그냥. 오고 싶어서."
은동이가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둘이 縁마루에 앉았다. 할머니가 차와 떡을 내줬다.
마당이 조용했다. 바람이 가끔 불었다.
만복이 기둥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50년 된 기둥. 할아버지가 세운 기둥.
"이 집에 오면 편안한 느낌이 있어."
"왜요?"
"모르겠어. 그냥. 들어오면 숨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
은동이가 기둥을 봤다.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사람이 살기 편하게 설계하셨대요. 햇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바람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다 계산하셨다고."
"그게 느껴지는 것 같아."
"선배는 감각이 좋은 것 같아요."
"나무 감각이 좋은 거야."
"사람 감각도요."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가 앞을 보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 저 무시했잖아요. 근데 들어줬잖아요. 말 하는 거."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선택의 여지가 있었어도 들어줬을 것 같아요."
만복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서가 아니라, 맞는 것 같아서였다.
할머니가 縁마루 옆에 앉으시면서 말씀했다.
"만복이, 은동이 잘 챙겨줘. 이 애가 속으로는 외로운데 내색을 잘 안 해."
"할머니."
"사실이잖아."
은동이가 뺨이 살짝 붉어졌다.
만복이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40화 — 너의 설계도
봄이 또 왔다.
목공실 창문으로 교정이 보였다. 벚꽃이 피고 있었다. 화단 쉼터에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만복이 중3이고 은동이가 중2였다.
오 선생님이 목공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만복아. 고등학교 진로 정했냐?"
"건축과요."
"어느 고등학교?"
"아직 알아보는 중이에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면 특성화고 건축과 충분히 갈 수 있어. 학교 추천서 써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나갔다.
은동이가 말했다.
"저도 고등학교 건축 설계 관련 학교 알아보고 있어요."
"그래?"
"응. 할아버지가 나오셨던 곳이랑 같은 데로 가고 싶어요."
"한 학교?"
"다른 지역이에요. 기숙사 있어요."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그러면 여기서 떠나는 거야?"
은동이가 만복을 봤다.
"2년 후인데요."
"2년 후면 나는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인데."
"그때까지는 여기 있잖아요."
만복이 대패를 내려놓았다.
"……서운한데."
그 말이 튀어나왔다. 만복 자신도 놀랐다. 은동이도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서운해요?"
"응."
"저는요. 저도 서운할 것 같아요. 선배 없는 데 가면."
만복이 창밖을 봤다.
"나중에 같이 하자고 했잖아."
"응. 했어요."
"그거 진짜인 거야."
은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손으로 짓고 은동이가 머리로 설계하고."
"그게 우리 방식이잖아요."
"응."
잠깐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만복이 먼저 말했다.
"은동아."
"네."
"할아버지 노트에 있던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야?"
은동이가 잠깐 생각했다.
"집은 사람 마음 같은 거래요. 마음이 고르면 집도 곧고, 마음이 비뚤어지면 집도 기울어진다고요."
"그거."
"그게요?"
"나는 그 말이 제일 좋아."
은동이가 만복을 봤다.
"왜요?"
"집 얘기인데 사람 얘기 같잖아. 우리 얘기 같고."
은동이가 노트를 폈다. 마지막 페이지. 할아버지 손글씨.
'집은 사람 마음 같은 것이다.'
은동이가 그 위에 자기 글씨로 조금 아래에 썼다.
'그러니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지어야 한다.'
만복이 그 글씨를 봤다.
"언제 쓴 거야."
"방금요."
만복이 그 페이지를 한동안 봤다.
창밖으로 벚꽃 잎이 떨어졌다. 목공실에 봄바람이 들어왔다. 나무 향이 섞였다.
만복이 은동이 쪽을 봤다.
"고마워."
"뭐가요."
"처음 와줘서. 기둥 위치가 잘못됐다고 말해줘서."
은동이가 웃었다.
"저도요. 선배가 들어줘서요."
"……우리 나중에 진짜로 집 짓자."
"진짜요?"
"응. 할아버지 설계처럼. 사람이 따뜻하게 살 수 있는 집."
은동이가 노트를 가슴에 안았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당연하지. 손녀딸이 짓는 건데."
은동이가 웃었다.
만복이 손을 내밀었다.
"약속."
은동이가 그 손을 잡았다.
"약속이요."
햇살이 목공실 바닥에 길게 들어왔다.
완성된 것들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들과, 앞으로 같이 만들어갈 것들이 그 빛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에필로그
몇 년 후.
한 건축 회사에 두 사람 이름이 나란히 있었다.
강만복 — 시공 담당.
박은동 — 설계 담당.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은동이의 할아버지가 설계했던 그 도서관처럼. 사람이 따뜻하게 드나들 수 있는.
준공식 날, 두 사람이 완성된 건물 앞에 섰다.
만복이 기둥을 손으로 두드렸다. 단단한 소리가 났다.
"좋다."
은동이가 웃으며 건물 전체를 봤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잘 지어진 집은 100년이 간다고."
"우리 것도 100년 가겠다."
"당연하죠."
봄바람이 불었다.
처마 끝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 집은 사람 마음 같은 것이다.
> 마음이 고르면 집도 곧고, 마음이 비뚤어지면 집도 기울어진다.
> 그러니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지어야 한다.
> 박철산의 노트, 은동이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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