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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서 두 치
기둥이 중심에서 두 치 벗어났다
- 강만복 (14세, 중2→중3) — 손재주는 천재이지만 설계를 못 하는 목공부 부장. 고집불통이지만 속은 따뜻하다.
- 박은동 (12세, 초6→중1→중2) — 건축가 할아버지에게서 설계를 배운 천재 소녀. 명랑하고 논리적이며 당차다.
- 황철 (15세, 중3) — 목공부 에이스. 만복을 경쟁자로 여기며 방해하다가 점차 변해간다.
- 박철산 (은동 할아버지, 故人) — 전설적인 건축 설계사. 은동에게 모든 지식과 마음을 물려줬다.
📝 각 화 구성 요약
1~3화만복과 은동이의 첫 만남. 기둥 위치의 비밀을 배우다
4~6화첫 번째 수업 — "나무만 보지 말고 집 전체를 봐라"
7~8화처음으로 완성된 모형. 황철의 방해 시작
9~10화재료 도난 사건, 집성목으로 위기 극복
11~14화대회 금상. 황철의 패배. 은동이 전학
15~18화목공부 생활, 빗속의 대화, 대결 제안
19~24화둘만의 팀 대결. 황철의 방해와 은동이의 반박
25~28화황철의 첫 사과. 할머니 댁 방문. 세 사람 팀 결성
29~33화함께 만드는 첫 작품. 콘테스트 대상 수상
34~36화방학 프로젝트 — 화단 쉼터 완성
37~38화진로 결정, 마침내 솔직한 고백
39~40화약속을 나누다 — "같이 집 짓자"

1화 — 또 무너졌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 조각들이 목공실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강만복은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눈앞의 잔해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손에는 아직 대패가 들려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 박힌 나무 먼지가 제법 두꺼웠다. 그만큼 오래 붙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번에도 무너졌다.
전국 중학생 건축 모형 대회. 출품 마감까지 딱 3주 남은 오늘, 만복은 열흘 넘게 공들여 만든 2층 목조 주택 모형을 완성 직전에 날려먹었다. 기둥을 다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고, 지붕 골조까지 얹은 직후였다. 지붕 마감재를 고정하려고 망치를 들었는데 한쪽 기둥이 먼저 기울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더니 기울어진 방향으로 무게가 쏠리기 시작했고, 연쇄적으로 나머지 기둥들도 버티지 못하고 접혔다.
그렇게 열흘치 작업이 삼 초 만에 끝났다.
목공실 문이 삐걱 열리며 오형탁 선생님이 들어왔다. 무너진 모형을 보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복은 그 한숨 소리가 망치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만복아."
"……네."
"또 무너졌냐."
"……네."
선생님이 잔해 앞에 쪼그려 앉아 기둥 하나를 집어 들었다. 꼼꼼히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손재주는 진짜 기가 막힌데. 이 기둥 마감 봐. 반들반들하잖아. 이음새도 깔끔하고."
"그러니까요."
"그러니까가 아니라, 설계가 문제야. 손으로 만드는 건 우리 학교에서 너 따라올 애가 없어. 근데 왜 설계를 이렇게 못 하냐."
만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둥도 단단하게 세웠다. 나무도 제일 좋은 걸 골랐다. 이음새도 교과서보다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왜 완성만 하면 무너지는 걸까.
"대회가 3주 남았어. 이대로 가면 출품 자체가 불가능하다. 알지?"
"……압니다."
"다시 해볼 거야?"
만복은 잔해를 내려다봤다. 열흘치 나무 조각들. 손에 박힌 가시들. 방과 후마다 저녁을 굶으며 붙든 시간들.
"……다시 합니다."
선생님이 등을 두드리고 목공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교실이 조용해졌다. 먼지 냄새와 나무 냄새만 가득했다.
만복은 무너진 모형 앞에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으로 기둥 잔해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잘 다듬어진 나무였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매끄러웠다. 이걸 이렇게 잘 만들었는데 왜 계속 무너지는 건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그때였다.
"기둥 위치가 잘못됐어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만복이 고개를 돌렸다. 목공실 입구에 누가 서 있었다. 작은 애였다. 머리를 양 갈래로 질끈 땋고, 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배낭에는 건축 도면처럼 생긴 종이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신발 끝이 살짝 닳아 있었고,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만복이 미간을 좁혔다.
"……넌 누구야? 초등학생이 왜 중학교에 와 있어?"
"견학 왔어요. 오늘 우리 학교 진로 견학이에요. 근데 다른 애들이랑 헤어졌어요."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무너진 모형 잔해를 내려다봤다. 쪼그려 앉아서 기둥 하나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이 기둥, 무게 중심에서 2센티 벗어나 있어요."
"뭐?"
"대들보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어요. 기둥이 중심에서 벗어나면 처음엔 버티는 척하다가 결국 이쪽으로 쓰러지게 돼 있어요."
만복은 어이없어서 웃었다. 실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야, 초등학생이 뭘 안다고."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요. 할아버지가 건축 설계사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다 알려주셨거든요."
아이는 기죽은 기색 없이 잔해 속에서 또 다른 기둥을 집어 들었다.
"저기 봐요. 이 기둥 밑에 금 가 있잖아요. 눈에 잘 안 보이지만."
만복이 마지못해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다. 정말이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금이 기둥 하단에 쭉 그어져 있었다. 언제 생긴 건지 전혀 몰랐다.
"이거 언제 생긴 거지."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면 기둥이 버티다가 갈라져요. 선배가 기둥은 튼튼한 걸로 골랐지만, 위치가 틀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선배. 만복은 그 단어에서 멈칫했다. 초등학생이 자기한테 선배라고 불렀다.
"……고치는 방법이 있어?"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대회까지 3주밖에 없었다.
아이가 활짝 웃었다.
"기둥을 정확히 2센티 왼쪽으로 옮기고, 대들보는 5밀리 짧게 다듬으면 돼요.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면 100년은 끄떡없어요."
"100년?"
"할아버지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잘 지은 집은 100년이 간다고."
만복이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키는 자기 어깨도 못 오고, 교복 소매는 살짝 길어서 손목이 가려졌다. 배낭에서 종이들이 삐죽 나와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진짜 건축 도면이었다. 손으로 직접 그린 것 같았다.
"……이름이 뭐야."
"은동이에요. 박은동. 내년에 이 학교 입학해요."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만복이 그 손을 바라봤다가 천천히 잡았다.
"강만복."
"알아요. 목공부 부장이죠? 오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손재주는 천재인데 설계를 못 한다고."
"……선생님이 그 말을 했어?"
"네. 그래서 왔어요."
"뭐?"
은동이가 히죽 웃었다.
"도와주러요."
2화 — 초딩한테 배우라고?
만복은 팔짱을 끼고 은동이를 내려다봤다. 표정에는 '진심이냐'는 말이 가득했다.
"내가 초등학생한테 배워?"
"배운다기보다는." 은동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알려드리는 거죠."
"그게 배우는 거잖아."
"어감이 다르잖아요."
만복이 코웃음을 쳤다. 목공실 의자를 끌어당겨 거꾸로 걸터앉았다. 등받이에 팔짱을 짚고 은동이를 내려다봤다.
"야, 솔직히 말해봐. 초등학생이 건축 설계를 안다는 게 말이 돼? 그냥 할아버지 말 몇 마디 주워들은 거 아니야?"
은동이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낭을 내려서 지퍼를 열었다. 안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냈다. 표지가 닳아서 글씨가 흐릿했지만, 모서리에 '박철산'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할아버지 노트예요."
만복이 손을 뻗어 넘겨봤다. 빼곡하게 도면과 숫자와 설명이 채워져 있었다. 기둥 간격 계산식, 무게 분산 공식, 지붕 경사 권장각도, 지역별 기후에 따른 설계 기준. 전문 설계사가 쓴 것처럼 정교했다.
"이걸 다 이해해?"
"다요."
망설임이 없었다. 만복이 노트를 덮었다.
"……그럼 왜 무너지는지 말해봐. 진짜로."
은동이가 모형 잔해 쪽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았다. 기둥 하나를 집어 들고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선배가 나무 고르는 눈은 정말 좋아요. 이 기둥 봐요. 결이 고르고 단단해요. 근데 이걸 어디에 세울지를 계산 없이 눈대중으로 하잖아요."
"눈대중이 나쁜 거야? 솜씨가 있으면 눈대중도 맞아."
"사람 눈은 착각해요. 보기에 맞아도 실제로 재면 달라요. 한 3밀리만 어긋나도 무게가 모이기 시작하고, 그게 쌓이면 결국 이렇게 되는 거예요."
만복이 입술을 다물었다.
"……직접 해봐."
은동이가 눈을 반짝였다.
"재료 남은 거 있어요?"
"창고에 있어."
"자 빌려줘요. 그리고 선배가 눈대중으로 기둥 세워봐요. 제가 재볼게요."
만복이 공구함에서 자를 꺼내 던져줬다. 그리고 창고에서 남은 목재를 가져와 기둥 네 개를 세웠다. 자신 있었다. 목공부 부장으로 2년 동안 닦아온 눈대중이다.
은동이가 자로 재기 시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둥 사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쪽은 30센티, 저쪽은 27.3센티예요."
"……2.7센티."
"2.7센티요. 이 상태로 대들보 올릴까요?"
만복이 가장 짧은 쪽에 가로 목재를 올렸다. 올리자마자 한쪽이 삐걱거리며 미세하게 기울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미 증명이 됐다.
"3밀리도 티 나요." 은동이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집은 속일 수 없어요. 눈으로 봐서 맞아도, 자로 재면 달라요. 그 차이가 쌓여서 무너지는 거예요."
만복은 기울어진 목재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렇게 무너졌는지. 여섯 번? 일곱 번? 그때마다 원인을 몰랐다. 나무가 나빴나, 못이 약했나, 이음새가 부실했나. 근데 이 작은 애가 딱 하나를 집어냈다.
눈대중.
"……한 번만 더 봐봐."
만복이 결국 자를 들었다. 처음으로 정말로, 제대로.
은동이가 옆에서 기둥 위치를 하나하나 짚어줬다. 만복이 자로 재고 맞추고, 조금 더 조정하고, 다시 재고. 네 기둥이 완벽하게 같은 간격으로 섰을 때, 만복이 조심스럽게 대들보를 올렸다.
딱.
삐걱거림 없이. 기울어짐 없이. 그냥 딱 맞아 떨어졌다.
만복은 잠깐 굳어 있었다.
"……이게 되네."
"되죠."
"이게 정말 그냥 간격 차이였어?"
"간격이 전부예요. 나머지는 선배가 다 잘하고 있었어요."
만복이 대들보를 다시 한 번 건드려봤다. 꿈쩍도 안 했다. 열흘 동안 완성 직전에 무너지던 그 구조가, 지금은 이렇게 반듯하게 서 있었다.
"……자존심 상하게 어쩌라고."
"자존심이 중요해요, 대회 나가는 게 중요해요?"
만복이 묻었다. 은동이가 웃었다.
"둘 다요."
만복이 은동이를 내려다봤다. 이 조그만 애가. 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배낭에 건축 도면을 가지고 다니는 이 애가.
"……한 번만 도와줄 수 있어?"
은동이가 활짝 웃었다.
"대회까지 몇 주 남았어요?"
"3주."
"충분해요."
3화 — 설계도의 비밀
다음날 방과 후, 만복이 목공실 문을 열었을 때 은동이가 먼저 와 있었다.
창문 쪽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쳐 놓고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만복이 가방을 내려놓고 옆에 앉아 들여다봤다. 아주 작은 도면이었다. 2층짜리 집 구조도. 기둥 위치와 간격이 숫자와 함께 꼼꼼하게 표시돼 있었다.
"어제 결국 집에 갔어? 견학 다 놓쳤겠다."
"선생님한테 연락했어요. 여기 있었다고요."
"혼나지 않았어?"
"조금요." 은동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괜찮아요. 더 중요한 걸 했으니까."
만복이 도면을 들여다봤다. 어제 만든 기둥 배치가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그 위에 번호가 매겨져 있고, 옆에 계산식이 빼곡했다.
"이게 뭐야."
"선배 작품 설계도요. 어제 기둥 세우는 거 보고 밤에 그렸어요."
"밤에?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그린 거야?"
"잠들기 전에요. 머릿속에서 계산이 안 되면 잠이 안 와요."
만복은 그 말이 왠지 묘하게 들렸다. 잠이 안 올 때까지 건축 계산을 하는 초등학생이라니.
"……할아버지 노트 가져왔어?"
"네."
은동이가 배낭에서 낡은 노트를 꺼냈다. 만복이 받아서 천천히 넘겨봤다. 어제는 대충 훑었는데, 오늘은 제대로 읽었다. 글씨체가 곧고 깔끔했다. 각 항목마다 설명이 붙어 있었다.
'기둥은 집의 뼈대다. 뼈가 바르게 서야 집이 바르게 선다.'
'눈대중을 믿지 마라. 자로 재고 다시 재고 또 재라.'
'대들보는 무게를 나눈다. 나무가 짐을 혼자 지면 부러진다.'
짧고 단순한 말들인데, 왜인지 묵직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직접 쓰신 거야?"
"네. 제가 이해하기 쉽게 고쳐 쓴 부분도 있어요."
"언제부터 배웠어?"
"여섯 살 때부터요. 할아버지 일 따라다니면서요."
여섯 살. 만복이 여섯 살 때는 아마 학교도 안 갔을 때다. 그때부터 건축을 배웠다는 게 말이 되나.
"할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어?"
은동이가 잠깐 멈칫했다가 대답했다.
"작년이요. 사고로요."
조용한 대답이었다. 만복이 더 물어보려다가 멈췄다. 더 물어봤자 좋을 것 없을 것 같았다.
"……미안해."
"괜찮아요." 은동이가 노트를 다시 펼쳤다. "할아버지가 저한테 다 남겨주셨으니까요. 이 노트가 있으면 할아버지랑 얘기하는 것 같아요."
만복이 노트를 은동이에게 돌려줬다. 은동이가 노트를 받아 가슴에 잠깐 안았다가 놓았다.
"오늘은 2층 구조 해요. 1층이랑 2층 기둥이 같은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 알아요?"
"……모르는데."
"2층 기둥이 1층 기둥 바로 위에 오면 무게가 그대로 아래로 쏟아져요. 조금 안쪽으로 들어와야 해요. 이게 안전 기준이에요."
만복이 연필을 들었다.
"어디서 어디로?"
은동이가 도면 위에 빠르게 선을 그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복은 듣고, 옮겨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었다. 은동이는 같은 말을 다르게 설명해줬다. 어렵지 않게.
시간이 지나는 줄 몰랐다. 창밖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야, 너 집에 가야 하지 않아?"
"할머니한테 문자 드렸어요. 오늘 좀 늦는다고."
"할머니랑 살아?"
"네."
"부모님은?"
"서울에 계세요. 일 때문에." 은동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더 편해요."
만복이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연필을 다시 들었다.
둘은 늦게까지 목공실에 있었다. 은동이가 설명하고, 만복이 그리고, 틀리면 지우고 다시 그렸다. 창밖 가로등이 켜지고 나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내일도 와?"
만복이 묻자, 은동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완성할 때까지는 올게요."
"……걔 알아서 오겠네."
만복이 중얼거렸다. 혼자서. 은동이가 이미 나간 뒤에.
4화 — 첫 번째 수업
"오늘부터 기초부터 다시 해요."
은동이가 목공실 앞 칠판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만복이 의자를 끌어당기고 앉아서 그 등을 바라봤다.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등. 양 갈래 머리.
내가 지금 초딩한테 수업 받는 건가.
"선배, 설계가 뭔지 알아요?"
"……집 그림 그리는 거 아니야?"
"아니요." 은동이가 돌아섰다. "균형을 미리 계산해서 종이에 옮기는 거예요. 손으로 만들기 전에 머리로 먼저 짓는 거예요."
"머리로 먼저 짓는다."
"집을 짓기 시작하면 바꾸기 어려워요. 나무를 한 번 자르면 다시 붙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설계에서 다 해결하고 시작해야 해요."
만복이 턱을 괴었다. 설명이 납득은 됐다.
"근데 감으로 하면 안 돼? 손재주가 좋으면 중간에 수정할 수 있잖아."
"그게 눈대중이에요. 그리고 그 눈대중 때문에 지금까지 무너진 거잖아요."
만복이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은동이가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집 단면도. 기둥이 어디에 있고, 대들보가 어디에 걸리고, 지붕이 어떤 각도로 올라가는지.
"집은 사람 몸이랑 같아요."
"몸?"
"뼈가 삐뚤어지면 사람이 넘어지잖아요. 기둥이 비뚤어지면 집도 무너져요. 척추가 바르게 서야 몸이 바르게 서듯이, 기둥이 바르게 서야 집이 바르게 서요."
만복이 그 그림을 가만히 봤다.
"……그러면 설계는 집의 척추를 미리 그리는 거네."
"맞아요!" 은동이가 눈을 빛냈다. "선배 이해 빨라요."
만복이 뒷목을 긁었다. 칭찬 들으니까 어쩐지 민망했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 집에 대해서."
은동이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요. 그러니까 사람 몸처럼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몸이 균형을 잃으면 아픈 것처럼, 집이 균형을 잃으면 위험하다고요."
"뭔가 멋있는 말이다."
"할아버지가 멋있는 분이셨어요."
은동이가 칠판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기둥 간격 계산식.
"선배, 기둥 간격 계산하는 법 배울게요. 공식이 있어요."
"공식?"
"건물 전체 넓이 나누기 기둥 개수. 근데 여기서 끝내면 안 되고, 각 기둥에 걸리는 무게를 계산해서 그게 나무가 버틸 수 있는 하중 이내인지 확인해야 해요."
만복이 연필을 들었다.
"해봐."
은동이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은데 자기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게 이상했다.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만들었으니까.
"선배."
"왜."
"창밖에 학교 건물 보여요?"
만복이 창문 쪽을 봤다. 교사동 건물이 보였다.
"저기 멀리서 보면 전체가 보이잖아요. 가까이 가서 벽돌 하나만 보면 전체를 못 봐요. 설계는 멀리서 보는 거예요. 전체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부분을 맞춰가는 거예요."
만복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종이로 시선을 내렸다.
멀리서 보는 거.
손재주가 있으면 부분 부분은 다 잘 만들 수 있다. 기둥도 잘 다듬고, 대들보도 잘 올리고, 이음새도 잘 마무리한다. 근데 그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가 됐을 때 무너지는 이유를, 자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나무만 봤구나."
"네. 나무는 잘 봤는데 집을 못 봤어요."
만복이 잠깐 멍하니 있었다가 다시 연필을 들었다.
"다시 가르쳐봐. 기둥 계산."
은동이가 웃으며 다시 시작했다.
5화 — 소문이 퍼지다
학교에 소문이 퍼지는 데는 이틀도 안 걸렸다.
"강만복이 초딩한테 배운대."
"진짜? 어디서 들었어?"
"목공실 앞에서 봤대. 초등학교 교복 입은 여자애랑 둘이서."
"그거 설마 견학 왔던 애 아니야? 지난번에 오 선생님이랑 얘기하는 거 봤는데."
"그 애가 만복이한테 뭔가 가르치더래."
만복은 복도를 걷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흘려들으려 했는데 마음이 뾰족해지는 게 어쩔 수 없었다. 자존심이라는 게 이상한 거라서, 사실인 걸 알아도 남이 말하는 걸 들으면 아팠다.
목공실 앞에 황철이 서 있었다.
황철. 3학년. 건축 동아리 에이스. 전국 대회 수상 경력 세 번. 지역에서 제일 알아주는 목공 실력자.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데다 말도 잘해서 후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만복한테는 한 번도 좋게 대한 적 없었다. 처음부터 견제했다. 이유는 아마 단순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만복 손재주가 자기 위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았다.
"만복이 너, 그 소문 사실이야?"
황철이 팔짱을 끼고 코웃음쳤다.
"뭐가."
"초딩한테 배우는 거."
만복이 황철을 봤다. 황철이 반쯤 웃고 있었다. 비웃는 웃음이었다.
"설계 배우는 거잖아. 나쁜 거야?"
"나쁘다기보다는." 황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창피하지 않아? 중학교 2학년이 초등학생한테 가르침 받는다는 게. 우리 학교에서 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데."
"필요 없어."
"도도하네." 황철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솔직히 생각해봐. 그 초딩, 공사장이나 목공실 같은 데 데리고 다니면 위험하잖아. 여기 공구도 있고, 뾰족한 것도 많고. 애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만복이 황철을 쳐다봤다.
"걔 걱정해?"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초딩이 학교 외에서 활동하다가 사고 나면 책임 어떻게 질 거야."
황철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잘 생각해봐."
발소리가 멀어졌다. 만복은 그 자리에서 황철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걱정처럼 들렸지만 걱정이 아닌 것 같은 그 말이 이상하게 등골을 긁었다.
다치기라도 하면.
목공실로 들어가자 은동이가 이미 와서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선배, 오늘 지붕 경사 배울게요."
"그래."
만복이 자리에 앉으면서 은동이를 봤다. 배낭을 옆에 내려놓고,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귀에 꽂았다가 뽑아서 손에 쥐는 그 동작이. 매일 오는 게 당연한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황철이 한 말이 다시 스쳤다.
다치기라도 하면.
만복이 은동이를 보며 무언가를 꾹 눌렀다.
지금은 일단 배우자. 그 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6화 — 은동이의 할아버지
작업이 이른 속도로 진행됐다. 은동이의 설명은 명확했고, 만복의 손은 빨랐다.
설계도를 보고 기둥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는 법. 대들보를 올리기 전에 무게 중심을 확인하는 법. 지붕 골조를 세울 때 경사각을 측정하는 법.
하나씩 익혀가는 동안, 만복은 조금씩 은동이에 대해 알게 됐다.
"할아버지가 어디서 일하셨어?"
어느 날 대패를 밀다가 만복이 물었다. 은동이가 도면에서 고개를 들었다.
"여러 군데요. 우리 동네 건물들 많이 설계하셨어요. 저기 시청 옆에 있는 작은 도서관 알아요?"
"응."
"할아버지가 설계하셨어요."
만복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도서관 알았다. 동네에서 오래된 건물인데, 요즘 새로 지은 건물들이랑 달리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었다.
"진짜? 그 도서관?"
"응. 할아버지가 건물도 사람처럼 따뜻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딱딱하고 차가운 건물은 오래 살 수 없다고. 사람이 드나들기 편하고, 햇빛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그 도서관이 그렇게 따뜻한 느낌이었구나."
은동이가 웃었다. 기쁜 웃음이었다.
"할아버지한테 말해드리고 싶다. 누가 알아줬다고."
그 말 끝에 잠깐 침묵이 왔다.
만복이 대패를 내려놓았다.
"여섯 살 때부터 배웠다고 했잖아. 어떻게 가르쳐 주셨어?"
"할아버지 일 따라다녔어요. 설계 현장이랑 공사 현장이랑. 처음엔 그냥 구경만 했는데, 할아버지가 설명해주시면서부터 진짜 배우기 시작했어요."
"학교 공부는?"
"그냥 해요. 어렵진 않아요. 근데 건축이 더 재밌어요."
만복이 코웃음을 쳤다. 어렵지 않다니. 공부가 어렵지 않다는 애.
"할아버지가 제일 강조하신 게 뭐야?"
은동이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균형이요.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가 흔들린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해야 한다고요."
"집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사람도 마음이 기울면 언젠가 무너진다고. 집이랑 똑같대요."
만복이 그 말을 한동안 입 안에서 굴렸다.
사람도 마음이 기울면 무너진다.
"……할아버지, 대단한 분이셨다."
"응. 엄청."
은동이가 노트를 손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그래서 제가 잘 해야 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거니까."
만복은 그 모습을 가만히 봤다. 열두 살짜리가 노트를 쓰다듬는 손이, 어딘지 모르게 아주 어른 같았다.
"잘 하고 있어."
툭 말하고 다시 대패를 들었다. 은동이가 잠깐 멈칫하더니 웃었다.
"……감사요."
7화 — 첫 번째 완성
모형이 완성된 건 수요일 방과 후였다.
마지막 지붕 마감재를 고정하고, 은동이가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모든 기둥을 한 번씩 손으로 확인했다. 꿈쩍도 안 했다.
"다 됐어요."
은동이가 말했다.
만복이 완성된 모형을 내려다봤다. 2층 목조 주택. 기둥 여섯 개. 대들보 두 단. 지붕은 25도 경사. 손으로 한땀한땀 다듬은 기둥들은 나무 결이 고르게 드러났고, 이음새마다 흠 하나 없이 맞아들었다.
만복이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기둥을 건드렸다. 꿈쩍도 안 했다. 살짝 밀었다. 역시 안 흔들렸다. 대들보도 당겨봤다. 단단했다.
뭔가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라서 잠깐 뭔지 몰랐다가, 곧 알았다.
뿌듯함이었다. 진짜 뿌듯함. 완성했을 때 진심으로 완성됐다는 걸 아는 그 느낌.
"……진짜 됐다."
목소리가 낮게 나왔다.
"됐어요." 은동이가 옆에서 웃었다. "선배 손재주면 설계만 배우면 진짜 잘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언제 이런 말 했어."
"처음 만났을 때요."
만복이 모형을 한 번 더 보고, 은동이를 봤다.
"하이파이브."
손을 들었다.
은동이가 잠깐 멍하니 보다가 키득 웃으면서 손을 올렸다.
짝.
맑은 소리가 목공실에 울렸다.
"대회 잘 나가요."
"응. 잘 나갈게."
만복이 모형을 안전한 선반에 올려두었다. 은동이가 배낭을 챙기면서 말했다.
"선배, 저 대회날 같이 가도 돼요?"
만복이 멈칫했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대회에 들어올 수 있어?"
"입장은 되잖아요. 응원으로요."
만복이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은동이가 히죽 웃으며 목공실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만복이 선반 위 모형을 다시 봤다.
잘 지어진 집은 100년이 간다고 했다.
지금 이게 100년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8화 — 황철의 방해
대회 출품 목록이 교무실 앞 게시판에 붙었다.
청현중학교 대표: 강만복, 작품명 2층 목조 주택 모형.
황철이 그 앞에서 팔짱을 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만복이. 그 자식이 출품한다고. 이번에 작품이 괜찮다는 소문을 들었다. 설계가 정밀하다고. 지붕 경사가 교과서 수준이라고. 오 선생님이 이번엔 기대해봐도 되겠다고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황철이 피식 웃었다.
기대해봐도 되겠다고. 그게 만복한테 하는 말이라는 게 우스웠다. 자기가 3년 동안 닦아온 실력을. 자기가 대표로 나갈 줄 알았는데, 만복이 대신 나간다는 게.
황철이 입술을 비틀었다.
'초딩이 도와준 거잖아. 만복 혼자 한 게 아니라고.'
그 생각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만복의 손재주는 인정했다. 솔직히 자기보다 손재주는 좋다. 그래서 더 꼴 보기 싫었다. 거기에 설계까지 갖추면 자기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황철은 게시판을 등지고 걸어가면서 생각을 굴렸다.
목공실 재료 창고. 열쇠는 동아리 부장인 자기가 가지고 있었다.
다음 날 방과 후, 만복이 목공실 창고 문을 열었다.
"있어야 하는 마감 도료가 없는데."
은동이가 옆에서 창고 안을 들여다봤다.
"어제까지는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어디 갔지."
선반을 뒤졌지만 없었다. 창고 안을 뒤졌지만 없었다. 어젯밤까지 분명히 여기 있었다.
만복의 얼굴이 굳었다.
"황철이."
"증거 있어요?"
"없는데. 느낌이."
은동이가 창고를 한 번 더 살폈다.
"재료 목록 확인해봐요. 뭐가 없어졌는지."
"목록이 어디 있어."
"오 선생님한테 있을 거예요. 창고 재고는 매달 기록해야 하니까."
만복이 오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이 재고 목록을 꺼내줬다. 목재 마감 도료 두 병. 어젯밤까지는 목록에 있었다. 오늘은 없었다.
"누가 가져갔지?"
선생님이 미간을 좁혔다.
"창고 열쇠는 황철이가 갖고 있는데."
"……황철이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
만복이 황철에게 직접 찾아갔다. 황철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나는 몰라. 창고에 갔다가 없어진 거 아니야? 재고 관리가 허술한 거 아닌가."
"네가 창고 열쇠 가지고 있잖아."
"나만 있는 거 아니야. 선생님도 계시잖아."
황철이 어깨를 으쓱하고 돌아섰다.
만복이 주먹을 쥐었다. 황철이 사라지고 나서야 만복은 숨을 내쉬었다.
9화 — 재료가 사라졌다
"어떡해요?"
은동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만복이 목공실 벤치에 앉아 팔꿈치를 무릎에 올렸다. 도료가 없으면 마무리를 못 한다. 마무리를 못 하면 작품이 완성이 안 된다. 작품이 완성이 안 되면 대회에 나갈 수 없다.
"다른 데서 사면 되지 않을까."
"학교 예산으로 구한 거잖아요. 다시 사면 돈이 없어요."
만복이 천장을 봤다. 황철이 일부러 그런 거라면 증거도 없고, 따질 방법도 없었다.
"대회 포기해야 하나."
"안 돼요."
은동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포기하면 황철이 이기는 거잖아요."
"이기는 게 아니라 그냥 계획이 어긋난 거지."
"그게 황철이 이기는 거예요."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가 진지한 얼굴로 만복을 봤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재료가 없으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방법을 못 찾으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요."
"현실적으로 말해봐. 도료가 없으면 마무리를 못해."
"도료 말고 다른 마감재 쓰면 되잖아요. 미술실에 아크릴 마감재 있을 거예요."
"목재에 아크릴?"
"양이 적으면 목재에도 쓸 수 있어요. 발수 효과는 좀 떨어지는데, 모형이잖아요. 실제 집 짓는 것도 아니고."
만복이 잠깐 생각했다.
"……미술실 선생님한테 빌릴 수 있을까."
"부탁해볼게요. 제가 말 잘해요."
은동이가 가방을 들고 일어나려는 걸 만복이 먼저 일어나며 막았다.
"내가 가. 여기 내 학교잖아."
은동이가 빙긋 웃었다.
"그러세요."
만복이 미술실로 가서 김 선생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김 선생님이 웃으며 아크릴 마감재를 두 병 내줬다.
"대회에서 잘 써봐요."
"감사합니다."
목공실로 돌아오니 은동이가 이미 붓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됐어요?"
"응."
"그럼 마무리 시작해요. 이 마감재가 목재용보다 마르는 시간이 두 배는 걸리니까 오늘 첫 번째 칠하고 내일 두 번째 칠해요."
만복이 붓을 들었다.
"……네가 더 침착하다."
"당연하죠." 은동이가 웃었다. "저는 항상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10화 — 집성목과의 씨름
마감재 작업이 끝나고 이틀 후, 모형이 완전히 완성됐다.
은동이가 완성된 모형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선배, 이거 진짜 잘됐어요. 마감재도 균일하게 발렸고, 기둥 하나도 안 흔들려요."
만복이 모형을 손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정말 꿈쩍도 안 했다.
"……이제 진짜 됐네."
뭔가 뭉클한 것이 가슴에 차올랐다. 열흘 넘게 공들이고 무너뜨리고 다시 한 이 작품이. 이번엔 제대로 됐다.
그런데 만복은 문득 이 모형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나무만 봤다. 기둥 하나하나를 잘 다듬는 것, 이음새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기둥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기둥과 기둥 사이 거리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대들보가 어떤 각도로 얹혀야 하는지. 전체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부분을 채워가는 것. 그게 설계였다.
그리고 그걸 이 조그만 애한테 배웠다.
만복이 은동이를 봤다. 은동이는 모형 주변을 돌아다니며 세세한 부분을 체크하고 있었다. 진지한 얼굴로. 할아버지 노트를 가슴에 안은 채로.
"은동아."
"네."
"고마워."
은동이가 고개를 들었다. 만복이 시선을 피하며 모형 쪽을 봤다.
"처음에 쫓아냈어야 했는데 안 쫓아낸 거. 잘한 것 같아."
은동이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웃었다. 밝은 웃음이었다.
"그죠? 제가 있어서 다행이죠?"
"거만하게 말하지 마."
"사실인걸요."
만복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같이 웃었다.
목공실에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완성된 모형 위로 빛이 떨어졌다.
집성목의 윤기가 빛을 받아 반들반들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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